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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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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연재수 :
1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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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49
추천수 :
478
글자수 :
691,236

작성
22.05.15 21:20
조회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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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1쪽

5장 내부의 적 (1)

DUMMY

‘골치 아프군.’


로앙 기사단 소속 기사, 말토로니 로앙은 부단장실 앞에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일은 많은데 좋은 말을 전하긴 힘들다. 아랫사람으로서 가장 싫은 상황 중 하나라고 해도 좋을 상황이 매일 계속되다 보니 그는 지쳐가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 멍청이들이 일을 실패한 게 시작인가.’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 속으로 따지던 말토로니는 곧 그 시작점을 전에 도적 조합에 일을 맡겼던 때를 꼽았다.


기껏 뒤늦게나마 새로운 성표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손을 썼건만, 그 기민함이 무색하게도 도적들은 실패했다.


다행히 뒤처리는 문제없이 끝나서 접촉한 흔적은 일절 드러나지 않았고 써먹은 놈들은 모조리 아비톨람으로 보내버렸으니 속은 풀었다.


그러나 그때를 기점으로 연이어 일이 터지니 최근 갖가지 일에 대응이 늦어지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가장 우선해야 할 기사단의 비원에는 진전이 있다고 들었으나 그게 언제 끝날지 자세히 모르니 당장은 그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

똑똑


“들어오게.”

“실례합니다.”


허락이 내려지자 말토로니는 곧 문을 열고 들어가 정중하게 머리를 숙였다. 그는 곧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어가서 고급진 원목 책상에 가지고 온 서류를 내려놓았다.


“부단장님, 오늘 보고입니다.”

“음.”


책상에 앉아 자신의 앞에 놓여진 서류를 잠시 들춰보던 로앙 기사단 부단장, 페사알리 로앙은 곧 서류를 내려놓고 말토로니를 바라보았다.


“여전한 일을 굳이 더 볼 필요는 없는 거 같군.”

“......죄송합니다.”

“시기가 좋지 않다는 건 나도 아니 그리 책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건 물어야겠어.”


페사알리는 느긋한 어조로 그렇게 말했지만 말토로니는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그 선택이 옳았다는 듯, 곧 페사알리는 두 눈을 날카롭게 하며 냉랭하게 물었다.


“젊은 녀석들이 이탈하고 있다는 일, 어떻게 되었지?”

“그, 그게......”


아무런 일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하지만 도무지 성과가 없었기에 차마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마냥 입을 닫고 말을 줄인다고 해도 페사알리가 그냥 넘어가 줄 리 없었다.


그걸 가장 잘 알고 있는 말토로니는 곧 체념하고 말을 꺼냈다.


“어려울 거 같습니다.”

“쯧.”


말토로니의 말에 페사알리는 혀를 짧게 차더니 그만 나가보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수치심을 느꼈는지 말토로니는 붉은 얼굴로 고개를 숙인 후 재빨리 방을 나갔다. 그가 나간 후 홀로 남은 페사알리는 못마땅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가뜩이나 ‘시술’을 받으러 비밀리에 자리를 비웠던 단장의 부재를 가리느라 힘에 부치건만, 남의 고충도 모르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고까웠다.


거기에 뜻에는 따르지만 제대로 하지 못하는 말토로니 같은 이들도 있다니 보니 페사알리의 미간에서는 주름이 사라질 줄을 몰랐다.


“제기랄.”


신전 기사, 그것도 부단장이라는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할 자리에 앉은 이가 입에 담기에는 부적절한 언사를 입에 담은 페사알리는 서랍을 열고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겉면에 [알톤 그레이엄 로앙]이라고 수려한 필체로 서명된 그것은 페사알리에게 단장 알톤이 보낸 편지였다.


“앞으로 1주일인가.”


자신을 믿고 자리를 비운 단장을 생각하니 볼 면목이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기대가 되었다.


이번 ‘시술’은 비원에 한층 더 다가가는 일이고, 잘하면 ‘재현’에 성공할지도 모른다고 들었다.


만약 정말로 재현에 성공한다는 더는 저 이상한 이들에게 홀린 젊은 단원들을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그들 스스로가 후회하고 돌아올 테니 말이다.


“쯧, 외직이면 외직답게 굴 것이지.”



***



“허어, 일이 복잡하게 되었군요.”

“복잡? 이게 복잡하게 되었다고 끝낼 일은 아닌 거 같은데.”


대신관장의 말에 같이 마티언이 보낸 내용을 읽어본 프레이뮬은 심각한 얼굴로 머리를 흔들었다.


“단적으로 말해서 최악이야. 첫 성전에서 빼앗은 태초의 비보가 도로 빼앗겼어. 거기에 마수 기사라는 오래전에 저들이 잃어버린 전력까지 등장했지.”

“만에 하나를 위한 보험은 아직 남아있지 않습니까.”


평이하게 달래듯 말하는 대신관장이었으나 프레이물은 도통 일그러진 얼굴을 펼 수 없었다.


“그건 말 그대로 보험, 최악을 피한 것에 불과해. 마지막 기회가 남았을 뿐이지. 그리고 그 기회는 이 수도에 사는 이들을 담보로 얻은, 말 그대로 최악에 가까운 짓거리다.”

“흐음, 그러고 보니 그 문제도 있군요. 수도에 사는 이들을 피난시키는 게 좋겠습니다.”

“어림도 없는 소리. 물경 십만 아니 오가는 이들을 포함하면 수십만에 이르는 이들이 사는 대도시가 수도다. 그리 쉽게 사람들을 내보낼 수 있을 거 같아?”

“힘들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모른 척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닙니까.”


대신관장의 말은 정론이라면 정론이었다. 그러나 그 정론은 때때로 현실이라는 장벽에 막혀서 힘을 잃는 법, 프레이뮬은 그가 간과하고 있는 현실을 일러주었다.


“사람들이 무슨 장난감 병정인 줄 알아? 기약도 없이 수도를 떠나라고 하면 잘도 그러겠다.”

“......그렇군요.”


프레이뮬의 말에 자신의 말이 너무 근시안적이었음을 한발 늦게 자각한 대신관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외각에 자리를 마련하는 건 어떻습니까?”

“나쁘진 않아. 마찬가지로 기약이 없다는 점만 제외하면 말이지.”

“허허.”


결국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것이었다. 저들이 언제 수도를 습격할지 아무도 모른다.


“골치 아프군요.”

“골치 아픈 건 그게 다가 아니야.”

“또 뭐가 있습니까?”


대신관장의 물음에 프레이뮬은 슬쩍 주변을 살폈다. 혹여 누군가 듣는 이는 없는지 면밀히 살핀 그는 다가가서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기사단 가운데 하나가 이상하다.”

“......로앙이군요.”


프레이뮬의 말에 대신관장은 대번에 깨닫고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어쩌다 저리되었는가.’


로앙, 그 누구보다 빛나는 이름이다.


본래 그 이름의 주인은 대신전이 형태를 갖추었던 오래전, 상고 시대라고 부르기 부족하기 않은 시기에 임명된 가장 오래된 신전 기사들 가운데 하나의 이름이다.


그런 이의 이름을 따서 창설된 만큼 로앙 기사단의 역사도 짧진 않다.


손에 꼽을 정도로 역사가 깊은 기사단, 그것이 로앙 기사단이건만 대신전에서 오래 있다 보면 다들 무언가 이상함을, 위화감을 느끼는 기사단이기도 하다.


평상시 별다른 일이 없는 때라면 그저 내외로 분리한 기형적인 구조나 폐쇄적인 운영으로 인한 것이라 치부하겠으나 당금의 상황은 그것만으로 넘기기에는 이상한 점이 많았다.


비협조적인 태도를 이런 비상시국에도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하면 단장인 알톤은 장시간 자리를 비우고 있다.


심지어 그가 없다는 것조차 이번에 성전을 위해 사람들을 소집하고 단장들에게 조력을 구하다가 알았다.


이는 바꿔 말해 적어도 수도에서 그 난리가 있기 전에 이미 자리를 비웠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기이한 일입니다. 이미 각성한 수호자는 전원 로앙이건만, 정작 로앙에서는 이리도 두루뭉술한 태도라니.”

“기이하다라. 전에도 그런 낌새를 보였다고 하면 어때?”

“그렇습니까?”

“전에도 미묘하게 그랬지. 마티언 그 녀석을 아비톨람으로 보낸 것부터가 타당하지만 이상한 일이었어. 유일하게 살아남은 전대 성전의 영웅, 불의 수호자. 이게 얼마나 영광된 이름인지 알잖아?”


대신관장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다. 마티언의 일도 그렇고, 프레이뮬에게 그들이 그동안 성전이 벌어지면 행했던 일을 듣고 나면 더욱 확실하게 의심이 들었다.


외직이면 그거 의례적인 축하, 내직이면 관두지 않겠냐 하다가 먹히지 않으면 모른 척.


마치 로앙은 그들 사이에 영웅이 새로이 서는 걸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밥그릇 싸움을 벌이는 추한 곳, 이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자니 이게 또 애매한 게 로앙 기사단은 대대로 수도에 거주할 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어느 때보다 이상하고, 어느 때보다 고결하다.”

“그게 무슨?”

“수호자라는 건 아무나 되는 게 아니야. 신께서 그 사람의 자질과 심성을 살피고, 돌아서지 않으며 주저하지 않을 이들만 뽑힌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프레이뮬만큼 많을 걸 알지는 못할지 모르나 기록을 통해 역대 수호자들이 어떻게 싸웠고, 어떤 선택을 하며 싸웠는지 알고 있었다.


“모르겠나? 어쩌면 이건 로앙을 향한 경고일지도 몰라. 같은 시대에 한 기사단에서 둘 이상의 수호자가 나온 전례가 없었어.”

“흐음, 엄밀히 말하자면 마티언 경은 같은 시대라고 하긴 어렵지 않겠습니까?”

“속 편한 소리를. 어쩌면 선별일지도 모른다고.”

“선별이라. 아니면 선한 사람일지도 모르지요.”


경전에 있는 이야기에 빗대어 서로에게 말한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서로를 보았다. 침묵이 내려앉은 대신관장실에는 정적만이 감돌았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정적을 깨야겠다는 듯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똑똑


“대신관장님, 실례합니다.”

“클레하스 신관장, 무슨 일입니까?”

“강철과 불꽃, 신전병대 편성이 완료되어서 확인을 받고자 왔습니다.”


그렇게 서둘렀건만 결국 완전 편성까지 시간이 걸려서 두 번의 중요한 전투에서 구성원 대다수가 활약하지 못한 강철 신전병대와 이번에 마티언에게 보고를 들으며 추가로 편성한 불꽃 신전병대의 편성이 끝났다는 말에 대신관장은 미묘한 얼굴이 되었다.


“때 늦은 조치는 아닐런지 걱정이군요.”

“손은 하나라도 더 많이 필요해. 어차피 네놈일이다. 사람들을 내보내지 못하면 공표하고 떠나는 걸 권하겠지.”

“허허, 이거 너무 뻔히 보이는 수였습니까.”

“뻔히 보이다 못해 아주 투명하다, 투명해.”


소리 없이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난 프레이뮬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서 문으로 다가갔다.


“들어와라.”

“프레이뮬 신관님도 계셨군요.”

“이제 갈 거지만.”

“프레이뮬 신관.”


이제 갈 거라는 말을 지키듯 바깥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그를 향해 대신관장이 조용히 그를 불러세웠다. 몸을 반쯤 바깥으로 내민 그는 고개를 돌렸고, 대신관장은 멀리서 눈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묻지 않겠습니다. 그건 알아서 지켜주시길.”

“물론이다.”


프레이뮬은 그렇게 말하더니 나이 든 몸에 어울리지 않게 빠르고 기운차게 걸어나갔다. 그가 나간 후 클레하스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 뒷모습을 보다가 대신관장에게 시선을 돌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가 방해되었습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 단지 이제 서로 이야기할 틈이 없을 거 같긴 하군요.”


클레하스가 모를 이야기를 한 대신관장은 어느새 열린 문 너머 복도에도 보이지 않는 프레이뮬을 떠올리며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부디 언제나 구함 받으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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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5장 내부의 적 (5) 22.05.23 53 3 12쪽
63 5장 내부의 적 (4) 22.05.20 57 3 12쪽
62 5장 내부의 적 (3) 22.05.19 54 3 13쪽
61 5장 내부의 적 (2) 22.05.17 54 3 11쪽
» 5장 내부의 적 (1) 22.05.15 63 3 11쪽
59 4장 시작의 땅(18) 22.05.14 54 4 13쪽
58 4장 시작의 땅(17) 22.05.13 55 4 12쪽
57 4장 시작의 땅(16) 22.05.12 56 4 11쪽
56 4장 시작의 땅(15) 22.05.10 60 4 12쪽
55 4장 시작의 땅(14) 22.05.08 63 4 12쪽
54 4장 시작의 땅(13) 22.05.07 64 4 12쪽
53 4장 시작의 땅(12) 22.05.06 58 3 12쪽
52 4장 시작의 땅(11) 22.05.05 73 4 12쪽
51 4장 시작의 땅(10) 22.05.03 65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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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4장 시작의 땅(6) 22.04.29 72 3 12쪽
46 4장 시작의 땅(5) 22.04.28 65 3 11쪽
45 4장 시작의 땅(4) 22.04.27 71 3 12쪽
44 4장 시작의 땅(3) 22.04.26 72 3 12쪽
43 4장 시작의 땅(2) 22.04.25 71 3 12쪽
42 4장 시작의 땅(1) 22.04.24 8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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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장 노병의 찬가(12) 22.04.21 8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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