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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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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연재수 :
1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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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54
추천수 :
478
글자수 :
691,236

작성
22.05.20 23:35
조회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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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5장 내부의 적 (4)

DUMMY

팰론.


팰론 로앙.


로앙 기사단에서도 가장 대우 받는 이른바 내직 로앙 기사다. 그러나 그게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웠던 건 오직 서임을 받은 날 하루뿐이었다.


날이 갈수록 이상한 기사단 구조와 내부 분위기에 그는 적응하기 힘들었고, 결국 먼저 나서서 외직 관리나 대신전으로 파견되는 업무를 도맡았다.


기사단 내부 동료들이나 상층부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른다.


남들이 꺼려하는 일을 한다고 좋게 보았을지, 아니면 튀어나온 못을 보는 심정으로 보았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한 가기 확실한 게 있다면, 기사단 본부에 얼굴을 내미는 일이 적어질수록 나날이 마음이 편해졌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신전 기사단을 박차고 나가거나 스스로 외직이 될 각오는 없었던 지라 그게 가장 좋았다.


이상함 속에서 평온을 추구한, 기사가 아닌 실무자나 사무자로서 나날을 살아가던 그에게 변화는 돌연 찾아왔다.


대성전에서 그 난리가 있고 백색 교단의 존재가 공표되어도 달라지지 않던 그의 일생을 바꾼 날, 그건 바로 아레타가 정식으로 수호자로 임명되던 날이었다.


그날 그는 아레타를 보며 작게나마 부러움과 안도라는 감정을 품었다.


더 대단했으나 이제는 그보다 못한 곳에 있던 이가 제 자리를 찾은 거 같다는 안도, 그리고 바깥에 있음에도 더 높은 곳이자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은 것에 대한 부러움.


그리고 그날부터 그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어딘지는 모른다. 그가 뒤에 있고 아레타가 앞에 있다. 그리고 주변에 많은 이가 있었다.


무엇인지 모를 것에 대적하고 대적하는 대상은 어느 날은 어두운 것이고 어느 날은 검은 기사였다. 이윽고 날이 흐르며 그는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아레타가 돌로 된 거인들과 마주하는 꿈.


불꽃이 지키는 아비톨람이 어둠에 습격당하는 꿈.


수도에서 나온 뒤틀린 빛이 다른 빛들을 해하는 꿈.


이외에도 많은 걸 보았다.


아비톨람에 대한 건 나중에 알았지만, 어쨌든 그가 아비톨람에 대한 꿈을 꾼 날 이후 그를 프레이뮬 신관이 찾아왔다.


그는 그에게 말했다.


세 번째 수호자, 시간을 찾았다고.


이해할 수 없었다. 알아듣지 못한 게 아니라, 알아들었기에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이 수호자?


어떻게? 왜? 무슨 자격이 있다고?


그러나 연이은 훈련과 이적 끌어내기를 통해 완전히 각성한 팰론은 이해했다.


더불어 한 가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로앙 기사단에 남아있어선 아니 된다.


이 일을 대신관장에게 상담했고, 결국 그는 로앙이라는 이름을 버렸다.


이제 그는 신전병 가운데 하나로 위장한 시간의 수호자, 팰론이다.



***



“실례합니다.”

“팰론 경.”


클레하스 신관장은 팰론의 정체를 아는 몇 안 되는 이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그가 보는 것들을 대신전에 전하기 위한 연락책이기도 했다.


“들어오시지요.”


팰론의 얼굴을 보고 주변을 살핀 클레하스는 곧 그를 안으로 들였다. 팰론을 안으로 들인 클레하스는 곧 주변을 한 번 더 살핀 후 단단히 문을 잠그고 몸을 돌렸다.


“무엇을 보셨습니까?”

“......신전병대가 쓰러진 모습입니다.”

“그리고요?”

“......수도가 어둠에 휩쓸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까.”


침착하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긴 했으나 클레하스의 머리는 명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시간의 수호자들은 결과를 보지 않는다. 일어날 일을 보긴 하나, 그들은 그 결과를 보지 못한다.


미처 각성하기 전에 아레타를 통해 보인 마하난 평원도 그렇고, 아비톨람에서 일어날 일도 그렇다.


일어날 일을 보여주나 그것이 결과는 아니다. 하지만 때때로 어떤 것들은 그 결과라고 할 수 있으니 마음을 굳게 할 필요가 있었다.


‘수도가 전장이 되는 건 피할 수 없나 보군.’


그들이 지는 걸 보지 않았다. 그들이 이기는 걸 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백색 교단이 그들을 공격하는 것과 그 전장이 수도가 되리라는 것 그리고 그 가운데 희생이 없을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알았으니 움직여야 한다. 쓰러진 이도, 부서진 수도도 최소한으로 끝낼 수 있도록 말이다.


“알겠습니다. 지금은 강철 신전병대입니까?”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위장은 그만하는 게 좋겠습니다.”

“예?”


위장은 그만하는 게 좋겠다. 그 말에 팰론은 당황했다. 클레하스가 말하고자 하는 게 조금 과격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클레하스는 그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의도로 이 말을 꺼냈고, 그와 팰론이 생각하는 차이를 금세 알고 말을 덧붙였다.


“시간 신관들이 곧 훈련을 마칩니다. 이제는 숨어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전력으로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할 시간입니다.”

“......그렇습니까.”


시간 신관이라는 말에 이제 더는 숨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니라, 지금 이상으로 나서면 안 된다는 걸 이해한 팰론은 쓰게 웃었다.


잠시 고심하던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이요?”

“예, 다른 수호자들과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이적 공유의 기본은 믿음이니 그편이 수월하긴 하겠군요. 알겠습니다. 대신관장님께 말씀드려서 일정을 조율해보겠습니다.”


클레하스는 그리 말하고는 시간이 아깝다는 듯 곧장 문으로 향했다.


“당신께서 본 환상은 그리 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 망설일 시간이 없군요.”


마치 농담하듯 그리 말한 클레하스는 바깥으로 나갔다. 졸지에 홀로 남은 팰론이었으나 그는 걱정하지 않았다. 이렇게 될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아레타가 알아야 해.”


로앙의 이변을 눈치챌 수 있는 건 그 이상함과 비틀림을 아는 자들뿐이다.



***



“와, 제 인생에서 이렇게 쫄깃한 적은 처음입니다.”

“너만 그런 줄 아냐?”

“어라, 형님도요?”


대신전에서 내어준 저녁을 먹고 대신전에서 내어준 방으로 온 렉슨는 의외라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살아온 세월이 적지 않으니 이런 것보다 더 긴장되는 경험을 해봤을 거라 여겼는데 그렇지 않다니, 상당히 의외였다.


“제길, 저런 자리보다 차라리 예전에 어딘지 모를 곳을 탈출하는 게 더 쉬웠어.”

“오,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기네요.”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긴데.”


두 사람은 그들의 이야기에 끼어드는 자의 말에 바로 반응해서 몸을 돌리고 경계 태세를 취했다.


“워워, 진정하라고. 나야 나.”

“스틸롱? 공사다망한 놈이 이런 귀한 곳까진 어떻게 왔어?”

“그거 보통은 누추한......아니, 귀한 곳이 맞나?”


눈살을 찌푸리며 푸대업에 불평을 토하던 스틸롱은 리발이 한 말이 말 자체는 틀리지 않다는 걸 깨닫고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고개를 휘휘 저은 그는 곧 본론을 입에 담았다.


“어떻게 됐어?”

“조합은 살겠지만, 자르달은 힘들 거 같다.”

“제길, 자르달은 늦었었나.”

“늦었었지. 그리고 그사이 대단한 짓을 벌여준 모양이다.”


대단한 짓이라고 말하며 짖궂게 웃는 리발의 얼굴을 본 스틸롱은 가볍게 말하는 것과 달리 말 그대로 정말 대단한 짓거리가 벌어졌다는 걸 알고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향후 책잡힐 정도인가?”

“글쎄?”


자신은 관계없다는 듯 적당히 대답하는 리발의 모습을 보자니 스틸롱은 머리에 절로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다. 허나 이런 곳에서 폭발해보았자 그만 손해라는 건 누구보다 스틸롱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리발의 입을 열게 하는 가장 좋은 수단 역시 알고 있으니 스틸롱은 멀리 돌아갈 필요 없이 곧장 준비한 수단을 내밀기로 했다.


“의뢰 완수에 따른 보수, 기억하고 있지?”

“......설마?”


스틸롱이 하는 말을 듣던 리발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싹 사라졌다.


“찾았어?”

“그럴 듯한 걸 하나 얻었지.”


자신만만한 대답에 리발은 고심했다. 그토록 바라던 것에 대한 단서가 하나 잡혔다.


“옛날이라면 그냥 주겠지만, 나도 이제 간부야. 거래는 거래, 알지?”

“알고 있지.”


리발이 예전에 스틸롱과 함께 다니던 시절 말해준 말이다. 지금도 종종 쓰는 말이니 모를 수가 없었다.


“어, 형님? 전 나가 있을까요?”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나도 모르는 일인데 뭘.”


리발은 가벼이 그리 말한 후 스틸롱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중요한 결론부터 말하자면, 상당히 잘 보이는 게 좋아. 자르달이 벌인 일 덕에 지금 대신전에서 전황에서 밀리고 있다고 보아도 좋으니까.”


그렇게 운을 뗀 리발은 천천히 스틸롱에게 아비톨람에서 벌어졌던 일에 대한 전모를 전했고,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난 스틸롱은 한껏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런 젠장.”



***



“대화는 끝나셨습니까?”

“끝났습니다. 이제 나가도록 하지요.”

“이쪽입니다. 들어온 정문은 이 시간에는 쓸 수 없습니다.”


오래전 스틸롱에게 주워져서 똑똑함을 보여 대신전에 신관으로 보낸 고아의 도움으로 들어왔던 그는 나갈 때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바깥으로 나갔다.


“그럼 다음은 언제 오시나요?”


신관의 말에 스틸롱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동시에 방금 했던 존칭은 잠시 접어두고 예전으로 돌아가서 충고했다.


“아니, 다음에는 이렇게 할 필요 없어. 조합 간부라는 명칭으로 당당히 올, 도적놈이 당당하다니 그것도 이상하네. 아무튼 이런 건 더 없어. 네게도 너무 위험해.”


그러나 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신관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외려 그리운 듯 웃었다.


“고작 이 정도 일, 대단한 건 아닙니다. 대신전은 열려있으니까요.”

“......제법 신관다운 말을 하는구나.”

“신관이니까요.”


당연한 말과 당연한 대답에 스틸롱은 멋쩍게 웃더니 곧 몸을 돌렸다. 도적이 아니라 신관으로 성장한 이 아이는 이제 그와 연이 없는 게 좋은 아이였다.


실제로도 그럴 생각이었으나,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다. 그와 연결된 대부분이 파멸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잘 있어라.”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인사를 뒤로하고 스틸롱은 어둠이 내린 밤거리를 달렸다.


한참을 달려서 수도 외곽 안가에 도착한 그는 곧장 연통을 보냈다.


알게 된 사실로 인해 생각 이상으로 그들이 위험한 상황에 초조함이 가득한 얼굴로 기다리던 그는 시간이 몸으로 제대로 느껴진다 여겼다.


결국 초조함을 참지 못한 스틸롱은 저도 모르게 탁자를 한쪽 손가락을 두들겼고, 그 두드림은 쿨레마가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탁자 꺼지겠네.”


안가의 문을 열고 들어선 쿨레마는 대뜸 그렇게 말하고는 사방을 둘러보더니 툴툴거렸다.


“누님은 또 마지막이야? 하여간 일찍 오는 날이 없어요.”

“뒷담화는 그 사람이 오지 않을 장소에서 하라고 몇 번이나 일렀던 거 같은데, 가게에서 험한 꼴 당하고 싶니?”

“켁, 언제 오셨대?”

“풉.”


그가 대신전에서 상황을 확인하고 오기 전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들에 스틸롱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저들이 자신과 같은 걸 들어도 여전할지, 아니면 달라질지 궁금했다. 그리고 달라진다면 그걸로 동료들이 공감해줄 동지가 되었을 기뻐하며 재밌어 할 수도 있을 거 같았다.


“크흠, 현상을 파악했어. 한시라도 빨리 알리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소집했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리 급히 부른 걸 보니 좋은 상황은 아닌 거 같은데.”

“예상보다 좋지 않다고 보아도 무방하겠죠.”


쿨레마와 레실리아의 반응에 스틸롱은 곧 그가 아는 걸 털어놓았다. 모든 일을 듣고 안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스틸롱이 리발에게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낸 결론 역시 그와 비슷했다.


“제길, 이거 처음부터 적극 협조밖에는 길이 없었잖아?”

“골치 아프네. 아무리 밑지고 드는 게 많아도 멸망보다는 나으니 선택지가 없는걸. 설마 이 정도로 답 없는 상황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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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5장 내부의 적 (7) 22.05.26 60 3 13쪽
65 5장 내부의 적 (6) 22.05.24 52 3 11쪽
64 5장 내부의 적 (5) 22.05.23 53 3 12쪽
» 5장 내부의 적 (4) 22.05.20 58 3 12쪽
62 5장 내부의 적 (3) 22.05.19 54 3 13쪽
61 5장 내부의 적 (2) 22.05.17 54 3 11쪽
60 5장 내부의 적 (1) 22.05.15 63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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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4장 시작의 땅(17) 22.05.13 55 4 12쪽
57 4장 시작의 땅(16) 22.05.12 56 4 11쪽
56 4장 시작의 땅(15) 22.05.10 60 4 12쪽
55 4장 시작의 땅(14) 22.05.08 63 4 12쪽
54 4장 시작의 땅(13) 22.05.07 65 4 12쪽
53 4장 시작의 땅(12) 22.05.06 58 3 12쪽
52 4장 시작의 땅(11) 22.05.05 74 4 12쪽
51 4장 시작의 땅(10) 22.05.03 65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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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4장 시작의 땅(7) 22.04.30 62 3 12쪽
47 4장 시작의 땅(6) 22.04.29 72 3 12쪽
46 4장 시작의 땅(5) 22.04.28 65 3 11쪽
45 4장 시작의 땅(4) 22.04.27 71 3 12쪽
44 4장 시작의 땅(3) 22.04.26 72 3 12쪽
43 4장 시작의 땅(2) 22.04.25 71 3 12쪽
42 4장 시작의 땅(1) 22.04.24 86 3 12쪽
41 막간 - 살아남은 자들 22.04.23 83 3 14쪽
40 3장 노병의 찬가(13) 22.04.22 82 3 12쪽
39 3장 노병의 찬가(12) 22.04.21 86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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