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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비정규직 신전 기사가 위대해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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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03.18 19:48
최근연재일 :
2023.06.19 22:00
연재수 :
1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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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71
추천수 :
478
글자수 :
691,236

작성
22.04.25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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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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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4장 시작의 땅(2)

DUMMY

파칵


“제길, 이번에는 또 뭐야?”


힘차게 휘두른 곡괭이 끝에 걸리는 감각에 자르달은 투덜거리며 흙을 파헤쳤다. 이윽고 거대한 암반을 발견한 그는 고개를 흔들며 앞으로 할 고생을 생각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낫긴 한데, 이놈의 땅은 무슨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 존재하는 땅인가?’


대신전 교화소에서 이곳으로 끌려온 지 벌써 두어 달은 가벼이 지났다. 지하에서만 생활해서 시간 감각을 상당히 상실한 것을 고려하면 그것보다 더 많이 시간이 흘렀을 수도 있다.


“대장, 무슨 일입니까?”

“암반이다. 가서 감독관 나으리 좀 불러와라.”

“옙.”


그와 같이 끌려온 이들 가운데 하나에게 말한 자르달은 적당한 바위에 걸터앉아서 곡괭이를 살폈다. 다행히 부러지거나 하는 건 아니나 끝부분이 살짝 상한 게 미미하게나마 힘이 더 들어가게 생겼다.


의외로 이런 작은 부분에서 노동에 들어가는 수고가 상당히 달라진다는 건 이미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던 자르달의 얼굴은 도통 펴질 줄을 몰랐다.


쉬익


‘뱀?’


갑자기 들려온 거슬리는 소리에 자르달은 바짝 긴장했다. 황무지라는 단어가 이곳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비톨람 황야에서 유일하게 생명력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있는 아비톨람 요새라도 뱀은 없었다.


그러나 이곳에 오고 나서 그는 뱀을 몇 번이고 보았다. 다만 그 뱀은 흔히 아는 그런 뱀이 아니었다.


쉬싯


“후우. 그래서, 언제라고?”


쉬수싯


“......알겠소.”


어디선가 들려오는 뱀의 혓바닥소리에 자르달은 무언가를 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뱀 소리는 더 들리지 않게 되었고, 부하가 불러온 신전 기사를 보며 자르달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줄을 잘못 잡았어.’



***



“형님.”

“뭔데.”

“우리, 언제까지 이러고 있습니까?”

“글쎄다.”


렉스의 질문에 심드렁하게 대답한 리발은 무미건조한 얼굴로 아비톨람 요새를 바라보았다. 들어갈 방법이 극히 제한된 아비톨람 요새지만 최근 마수들의 공격으로 인해 더욱 제한된 탓에 쉬이 접근할 수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안에 들어가서 내실을 다 알아보고 싶으나 그러다가는 목숨이 여럿이라도 힘들다. 설령 그와 같은 이라도 마찬가지다.


‘그냥 무한히 죽겠지. 불사는 만능이 아니야.’


불사가 만능은 아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긴 리발은 망원경을 들어서 요새 이곳저곳을 살폈다.


가만히 여러 곳을 살핀 그는 한숨을 내쉬며 렉스를 보았다.


“후우, 솔직히 말할까? 이번 의뢰, 어떻게 달성해야 할지 감도 안 온다.”

“뭘 새삼스럽게.”


큰맘 먹고 말했건만, 렉스는 다 안다는 듯 대답했다. 그에 리발은 오묘한 얼굴로 그를 살폈으나 진심인 듯 흔들림이나 동요는 보이지 않았다.


“......일이 얼마나 길어질지가 아니라 성공 여부도 불투명하다고 말한 거다만.”

“형님이랑 다니면서 겪은 일 중에 그런 게 한둘인 줄 아십니까?”


렉스의 말에 리발은 곧장 지금까지 그와 함께했던 일들을 떠올렸다. 그러고 나니 도무지 반박할 말이 없던 리발은 궁색하게 중얼거렸다.


“크흠, 그래도 다른 건 다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어.”

“그러셨겠죠.”


부정하는 것보다 더 얼굴이 붉어지는 대답에 리발은 결국 뭐한 놈이 성낸다고 괜스레 벌컥하고 말았다.


“아, 진짜 왜 그렇게 침착한데! 넌 뭐 방도라도 있냐?”

“없는데요.”


한결같이 열받게 하는 말이요 태도였으나 이렇게 되니 되려 침착해진 리발은 이상한 얼굴로 물었다.


“근데 왜 이렇게 침착해? 너, 원래 계획대로 흐르는 걸 좋아하지 않았어?”

“좋아하긴 하죠. 하지만 형님하고 살다 보니 딱 하나는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아니, 두 가지구나.”

“두 가지? 그게 뭔데?”


리발의 물음에 렉스는 그를 보며 씩 웃었다. 어째 기분 나쁜 웃음이라는 생각이 든 찰나, 렉스가 입을 열었다.


“하나는 계획대로 흘러가는 건 없다는 겁니다.”

“험험.”


이런저런 상황에 영향을 받은 적도 없지는 않다. 적지 않은 경우가 그랬으나 그보다도 더 많이 그의 즉흥적인 행동으로 인해 어그러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지라 리발은 저도 모르게 헛기침하며 딴청을 부렸다.


“양심은 있으셨군요?”

“시끄러. 그래서, 두 번째는 뭔데?”


놀랍다는 투로 이야기하는 렉스에게 핀잔을 주며 물으니 곧 대답이 돌아왔다.


“형님이 생각보다 운이 엄청나게 좋다는 겁니다.”

“운이 좋다고? 내가? 이런 꼴인데?”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말에 리발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이윽고 그는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허헛. 재밌는 소리 잘 들었다. 지루함은 조금 가셨으니 넘어가 주마.”

“누가 옵니다.”


렉스의 말에 고개를 돌린 리발의 눈에 멀찍이서 다가오는 무리가 보였다. 망원경으로 살피니 말을 탄 이들 십여 명이 보였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아닌 거 같은데.”

“여기에 있는 시점부터 이미 일반적이라는 말은 턱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허긴.”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동감을 표한 리발은 망원경 너머에서 다가오는 이들 가운데 선두에 선 한 사람이 낯익다는 걸 깨달았다.


“선두에 있는 놈, 낯이 익은데? 누군지 알겠냐?”

“선두? 어떤, 어?”


똑같이 망원경을 들어서 리발이 가리킨 이를 찾던 렉스는 곧 당황한 듯 어물거렸다. 그 모습에 렉스가 누군지 알아보긴 했으나 자신들과 그리 좋은 관계인 이는 아니라는 걸 안 리발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누군데?”

“어, 형님은 기억 안 나십니까?”

“모르니까 너에게 묻는 거잖아? 난 길게 사귄 놈들 아니면 금세 잊어.”

‘살아온 세월이 몇 인데.’


일종의 자기방어인지 리발은 정말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 오래 만난 이가 아니면 금세 머리에서 지우곤 했다.


물론 기억의 특성상 아예 기억지 못하는 건 아니다. 다만 남들에 비해 떠올리는 시간이 길었기에 리발은 이런 식으로 사람을 알아보는 걸 때때로 렉스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다.


“빨리 말해봐.”

“......하아, 전에 봤던 그 신전 기사입니다.”

“그 신전 기사?”

“형님 머리를 부순 그 사람이요.”

“!”


직설적인 말에 그제야 그가 본 이가 누군지 떠올린 리발은 다시 망원경으로 살폈다. 잠시 관찰하던 리발은 곧 망원경을 내리고 중얼거렸다.


“제길, 그놈 맞네. 갑옷이랑 무기가 아주 달라져서 알아보는 게 늦었어.”

“그것도 그렇긴 한데, 보통 자기 머리 부순 놈을 잊어먹나요? 전에는 복수해주겠다고 이를 가시더니.”

“저런 괴물을 뭔 수로.”


괴물이라는 말은 정작 그 말을 한 리발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 여긴 렉스였으나, 이내에 전에 본 광경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어떠한 술수나 조화가 있었는지는 모르나 병장기를 맨몸으로 막아내는 그 모습은 확실히 충격적이었다.


“......가만.”

“뭡니까.”

“아까 네 말, 맞는 거 같다.”

“예?”


두서없는 말에 렉스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에 리발은 렉스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내가 운이 좋다는 거.”

“......저기, 머리는 괜찮으십니까? 혹시 그때 부서지고 재생이 좀 덜 되셨나요?”


렉스는 진심으로 그렇게 물었다. 그도 그럴게, 이게 대체 어디가 운이 좋은 일인지 알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서로 머리를 부수고 목숨을 노린 관계인데, 그런 사람이 나타나니 운이 좋다고 하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가질 거라고 렉스는 확신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가 모시는 형님은 생각이 다른 거 같았다.


“가자.”

“어딜요?”

“저 친구가 있는 곳에.”

“예에!?”



***



“웅장하군요.”


멀찍이 보이기 시작한 아비톨람 요새를 보며 아레타가 말하니 옆에 있던 호붼이 맞장구를 쳤다.


“놀라운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곳에서 고고히 존재하는 요새, 진정으로 훌륭하며 진정으로 가장 숭고한 이들이 머물 요새가 아닌가 합니다.”

“숭고한 이들?”

“아비톨람 기사단이 그러한 이들이라고 들었습니다.”

“아.”


호붼의 말에 아레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나도 듣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지.’


생명력이 없는 아비톨람 황야에서 고고히 죄인들을 교화하는 기사단.


이런 문구를 듣고 나면 그들의 숭고함을 의심하는 이는 없다. 물론 그들은 숭고하다. 대대로 아비톨람을 지키는 이들이니 그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허나 그 실상, 그러니까 아비톨람 기사단 구성원들이 숭고함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이들인가 하면 그건 아니었다.


‘그들을 표현하는 문구가 가장 야성적인 기사단이랬나.’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야성적이라는 그들을 볼 생각을 하니 살짝 걱정이 들었다.


“음? 사람?”

“이런 곳에 말입니까?”


의아함이 가득 담긴 호붼의 말에 아레타 역시 의아함을 담아서 묻고는 주변을 살폈다.


“저쪽입니다.”


호붼이 말과 동시에 손을 들자 그 손을 따라서 시선을 옮기니 과연 그가 말한 것처럼 사람 둘이 보였다.


“아비톨람 요새 사람일까요?”

“글쎄요, 복장도 그렇고 그렇게 보이진 않습니다만. 그리고 아비톨람 요새에서 이리 우리가 올 것을 안다고 할지라도 일시까지는 모를 텐데, 저렇게 바깥으로 사람을 보낼까요?”

“아니겠죠. 정찰 같은 걸 할 이유도 없고요.”


혹시나 싶어서 물어보았지만 호붼 역시 그리 생각하지 않는 듯 잔뜩 부정적인 말을 늘어놓았다. 그와 비슷한 생각이던 아레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 후 곧 철봉에 손을 가져가다가 곧 지금 상황에서는 그것보다 다른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에 팔에 손을 올렸다.


여차하면 팔 보호대 안쪽에 내장된 비수로 제압할 생각을 하던 아레타는 그들이 다가오면서 익숙함을 느끼곤 이상하게 여겼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아비톨람에 올 사람이 있던가?’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해보았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중, 상당히 가깝게 다가온 그들을 보고 돌연 아레타는 전에 겪은 일을 떠올렸다.


“......도적?”

“도적이요? 이런 곳에 말입니까?”

“얼굴이 익습니다. 예전에 수도로 가는 길에 마주친 도적들입니다.”

“수도로? 설마 예전에 성표를 전하러 오셨던 때 말입니까?”


이곳까지 오는 동안 서로 이야기할 시간은 많았기에 호붼은 아레타가 하는 말을 금세 알아듣고 눈을 찌푸렸다. 동시에 창에 손을 댄 그를 보며 아레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 당시 도망친 놈들입니다.”

“그럼 더 볼 필요 없겠군요.”


여기에 있는 이유는 모르나 도적이라면 굳이 두고 볼 이유가 없다. 그렇게 생각한 호붼은 곧 손을 들어서 다른 신전병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에 곧장 기마 전투 태세를 취한 신전병들을 곧 창을 들고 널찍하게 늘어섰다. 이쪽의 태세를 본 것인지 다가오던 이 가운데 하나가 움찔하며 걸음이 느려졌으나 다른 한 사람은 여전히 당당히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죽여도 죽지 않던 그자라는 걸 확인한 아레타는 팔 보호대를 열고 비수를 집었다.


“어디, 이번에도 죽지 않을지 한번 볼까.”


만약 저자가 죽지 않는 근원이 백색 교단과 같다면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아레타는 차분히 이적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



“형님?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전 목숨이 하납니다.”


멀리서 봐도 알 수 있는 적대감에 걸음이 느려졌던 렉스는 초조한 걸음으로 재빨리 리발에게 붙어서 팔을 붙들었다.


그에 리발은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레타가 있는 곳을 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잠깐! 말을 좀 하자!”

“도적과 할 말은 없다!”


대답은 그가 아는 신전 기사가 아니라 그 옆에 있는 이가 했다. 그에 리발은 저도 모르게 성질을 내며 입을 열려고 했으나 그보다는 렉스의 말이 빨랐다.


“항복합니다! 말만 좀 들어주세요!”

“야!”

“아, 전 목숨 하나라 재도전이 안 된다구요!”


리발의 타박에도 렉스는 양손을 들고 그리 말했다. 그에 리발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더니 양손을 들었다.


“그래, 항복이니까 말이나 좀 들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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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5장 내부의 적 (5) 22.05.23 53 3 12쪽
63 5장 내부의 적 (4) 22.05.20 58 3 12쪽
62 5장 내부의 적 (3) 22.05.19 55 3 13쪽
61 5장 내부의 적 (2) 22.05.17 54 3 11쪽
60 5장 내부의 적 (1) 22.05.15 63 3 11쪽
59 4장 시작의 땅(18) 22.05.14 54 4 13쪽
58 4장 시작의 땅(17) 22.05.13 55 4 12쪽
57 4장 시작의 땅(16) 22.05.12 56 4 11쪽
56 4장 시작의 땅(15) 22.05.10 61 4 12쪽
55 4장 시작의 땅(14) 22.05.08 63 4 12쪽
54 4장 시작의 땅(13) 22.05.07 65 4 12쪽
53 4장 시작의 땅(12) 22.05.06 58 3 12쪽
52 4장 시작의 땅(11) 22.05.05 74 4 12쪽
51 4장 시작의 땅(10) 22.05.03 65 3 13쪽
50 4장 시작의 땅(9) 22.05.02 87 3 12쪽
49 4장 시작의 땅(8) 22.05.01 63 3 11쪽
48 4장 시작의 땅(7) 22.04.30 63 3 12쪽
47 4장 시작의 땅(6) 22.04.29 73 3 12쪽
46 4장 시작의 땅(5) 22.04.28 65 3 11쪽
45 4장 시작의 땅(4) 22.04.27 72 3 12쪽
44 4장 시작의 땅(3) 22.04.26 73 3 12쪽
» 4장 시작의 땅(2) 22.04.25 72 3 12쪽
42 4장 시작의 땅(1) 22.04.24 87 3 12쪽
41 막간 - 살아남은 자들 22.04.23 83 3 14쪽
40 3장 노병의 찬가(13) 22.04.22 82 3 12쪽
39 3장 노병의 찬가(12) 22.04.21 8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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