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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름

정의로운 배우님은 회귀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이나름
작품등록일 :
2022.05.21 03:27
최근연재일 :
2022.06.16 19:52
연재수 :
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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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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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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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09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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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1. 생존을 위하여 (2)

DUMMY

“컷!”


조용했던 촬영장이 소란스러웠다.

카메라 앞에 서 있는 온정의는 평온하게 땀을 닦는다.


“이야, 혹시 연기 좀 해봤어요? 아니, 뭔 신인이 이렇게 연기를 잘해?”

“칭찬 감사합니다. 이게 다 PD님이 잘 찍으셔서 그렇죠.”

“혹시 진짜 배우 생활해 본 거 아니죠? 어우, 신인들이 전부 이랬으면 우리가 참 편할 텐데.”


오늘도 수고했다며 손을 흔들며 얼른 가라고 하는 PD를 지나간다.

촬영분이 끝난 탓에 이제 집으로 가면 되는데, 누군가 잡는다.


“저기.”


붙잡는 손의 힘이 얼마나 셌던 건지 몸이 휘청였다.

당황스러움도 잠시 얼굴을 보는데, 익숙한 얼굴이었다.


“······ 그 주연 배우의 여자 아역 맞죠?”

“제 이름을 기억 못하시네요? 내가 그렇게 얼굴이 금방 잊을 얼굴이 아닌데.”


그거야 이때까지 아는 척도 안 했던 사람이니까···.

알면 그게 더 이상할 지경이었다.


“제가 사람 이름을 못 외워서요.”

“그런 건 또 아닌 것 같던데.”


양심이 없게도 다른 인사를 했던 배우들의 이름은 다 아는 편이었다.

인사를 했을 때 처음부터 무시했던 인물이라 잊고 있었다.


“아아, 그건 됐고! 어떻게 그렇게 연기를 잘해요?”

“네?”


갑자기 붙잡고 나서 하는 말이 연기 잘하는 거에 대한 질문이었다.


“어떻게 당신처럼 연기를 잘할 수가 있냐구요. 그쪽 연기 좀··· 어디서 배운 것 같아서요.”


하지만 그녀는 째려보며 빨리 답이나 하라며 발을 동동 굴렀다.

내가 왜 이런 말에 대답을 해줘야 하나 싶었다.


“그냥 공부 하세요, 열심히 하고 노력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하거든요? 제가 당신보다 훨씬 더 많이 했으면 했다고요. 배운 곳 없어요?”


짜증 섞인 목소리로 가려는 나를 굳이 붙잡고 말한다.

지금 어리광을 나한테 부리는 건가 싶어서 얼굴을 본다.

단발에 앳된 얼굴의 딱 봐도 온정의랑 또래로 보였다.


“네, 더 노력하세요. 그럼···.”


무례한 사람에게 질질 끌려다닐 생각은 없었다.

귀찮기도 했고 바쁘기도 했으니까.


“야! 알려주면 덧나냐? 좀 알려줄 수도 있는 거잖아! 치사하게 그런 걸 숨겨?”


버럭 소리치는 여자는 숨을 들이마시며 짜증을 나에게 풀었다.

무슨 맡겨놓은 사람처럼 소리치는데, 답할 가치를 못 느꼈다.


“아서라, 연기는 재능이야. 너도 배우 생활 좀 해봤으면서 왜 떼를 써?”


대신 뒤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가 입을 열었다.

자꾸만 분위기를 흐리는 여자가 거슬렸던 건지 얼른 가라며 손으로 휘젓는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

“별말씀을, 얼른 가봐.”


싱그럽게 웃는 배우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벗어난다.

그 뒤로 날 보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나는 신경을 끄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뚜르르르- 달칵!


“정호 형, 저예요. 오늘 몇 시랬죠?”

-“한 시간 뒤였지. 너 진짜 괜찮겠어? 촬영 끝내고 바로 오는 건 좀 힘들 것 같은데···.”

“제가 안 가면 누가 기를 세워준다고. 금방 갈게요. 지금 막 끝나서 시간 넉넉할 것 같아요.”


조용히 택시를 타고 향했다.

오늘은 좀 일찍 가야 재밌는 구경을 할 것 같기도 했고.


“OBS로 가주세요.”


그 전에 일단 호감도 작을 해두는 것이 좋겠다.

역시 그러려면 먹을 게 최고겠지.



*



두 손이 가득하게 들어도 많은 탓이었을까, 결국 정호를 따로 불렀다.

내려오자마자 보이는 양에 정호도 놀랐다.

커피를 잔뜩 들고서 향한 촬영장에서 너도나도 하나씩 가져간다.


“응응, 할머니··· 그거 용돈 안 썼던 걸로 샀어요.”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웃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할머니는 갑자기 지출되는 돈에 깜짝 놀랐다는데, 애초에 어릴 때 벌었던 돈도 있고 용돈도 있었다.


돈을 안 쓰니까 통장에 모아두기만 했고, 점점 쌓이던 차에 잘된 일이었다.


-“그래도 돈은 아껴 써야지. 정 그랬으면 할머니 카드 쓰면 되는데···.”

“다음부턴 그럴게요. 얼른 쉬세요, 요즘 몸도 안 좋으시면서.”


전화를 끊고 나서 주변 분위기가 이상했다.

나는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라도 생겨서 날 보는 건가 싶었다.


“음?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왜 전부 저를··· 아, 너무 시끄러웠나요?”

“아뇨···, 되게 보기 좋아서요. 우리 촬영장에선 흔한 그림이 아니라서 그런가? 안 그래?”


스태프들의 눈이 서로를 향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도 같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게, 나도 모르게 부모님이 보고 싶어서 통화할 뻔했잖아.”

“오랜만에 통화하는 건··· 나쁘지 않은데? 불 속성 효자가 드디어 정신 차렸단 말 듣겠네.”

“에이, 오늘 하루만 하실 거잖아요.”

“들켰네. 하하, 워낙 바빠서 딸한테도 인사 못하고 나오는 팔자인데. 뭐, 어쩔 수 있나?”


분위기가 좋아진 상태에서도 촬영이 시작되지 않아 눈을 굴리며 서 있었다.

원래라면 시작하고도 남았을 시간이기도 했고, 다른 배우들이 기다리고 있다.


“도율 배우님이 이제 거의 다 왔답니다! 한 10분 남았다고 방금 말했는데, 어떡할까요?”

“진짜 혈압 오르네, 언제까지 우리가 저 배우 비위를 맞춰야 해요?”

“지금도 봐, 벌써 3시간 지각인데도 이제 거의 다 왔대. 오늘은 5시간 지각이겠네.”


벌써 내부에서 터지는 불만이 끊임없었다.

수군거림은 끝이 없고 한참 뒤에나 등장한 도율은 느린 걸음으로 들어와 손만 들었다.


“어우, 차가 막혀서 늦었네. 김 PD, 박 작가, 내가 왔어.”

“차가 많이 밀렸나 봐요. 자택에서 여기까지 1시간 거리이시던데.”

“매니저가 너무 늦게 데리러 왔기도 했지. 근데 설마 벌써 촬영 시작한 거 아니지?”


나 없이. 라는 말을 덧붙이며 싸늘한 표정을 짓는 도율이었다.

쟤는 어째 어렸을 때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뭐야, 처음 보는 얼굴이네. 이쪽도 배우?”

“아! 제 친한 동생입니다. 배우에 꿈이 있어서 구경 오고 싶다고···.”


급하게 막으며 어색하게 웃는 정호였다.

그런 정호를 보다가 다시 온정의를 훑는 시선이 노골적이라서 불쾌했다.

무언가 나를 어떤 망상에 집어넣은 그런 불쾌함.


“그래? 그럼 연기 못하겠네. 얼굴은 봐줄 만해서 사모님들에게 빌붙으면 가능하겠지만···.”

“···배우님.”

“뭐, 맞잖아. 연기보단 뒤에서 인기 많을 것 같은데. 야, 똘마니 후배 어디든 성공하길 빈다?”


아무도 웃지 않았지만, 혼자 웃기는지 낄낄 웃으면서 간다.

정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형, 촬영 곧 시작한대요.”

“···넌 아무렇지 않아?”

“음, 뭐가요?”


온정의에 얼굴은 섭섭하거나 상처받은 기색도 안 보였다.

정호는 워낙에 연기도 잘하는 놈이니까 감정을 숨긴 줄 알고 눈치를 본다.


“그··· 모욕적인 말 들었잖아.”

“뭐, 진짜도 아닌데요. 괜찮아요.”


굳이 따지자면 연기를 그렇게 잘하는 편에 속하지 않은 도율이었다.

그나마 얼굴이 호감 상이라서 인기가 있었던 거고. 그걸 알고 있어서 화도 나지 않았다.


“진짜 괜찮아요, 제가 더 연기 잘하잖아요.”

“그렇지, 네가 훨씬 연기를 잘하긴 하는데···.”


강도율은 신인들에게 계속 밀리다 보니까 그는 얼굴만 잘생기고 연기 못하는 애들을 보면 화냈다.

물론 얼굴 잘생기고 연기도 잘하면 질투하고 욕하기 바빴고.


“형이 인정해주면 됐죠. 그렇게까지 좋게 생각하던 사람에게 들은 것도 아니고···.”

“···너어 자꾸 이 형을 감동 시키려고 하는데! 난 감성이 여려서 홀딱 넘어간다고!”

“으···, 거부하겠습니다.”


무언가 우리를 보는 시선이 이상하다는 사실에 급히 거부했다.

너무 싫어하는 표정이 티가 났는지 오히려 상처받은 정호의 눈에서 눈물이 맺힌다.


“그렇게 진지하게 거부할 필요까진 없지 않냐···. 장난도 안 받아주네. 이젠···.”


무슨 혼자 드라마 찍는 것처럼 아련한 남자 연기를 하는 정호에게 정색한다.

원래 이렇게 눈물이 많았던가.

호르몬 변화라고 해도 너무 극심한데.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죠. 다 받아주면 버릇 나빠진대요.”

“그건 네가 할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데···. 입장이 반대가 아닐까.”


시무룩한 정호를 무시하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이미 대기실로 홀로 들어간 도율 방향을 보며 눈매를 좁히다가 가볍게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언제부터 이랬어요? 한두 번 해본 느낌이 아니던데.”

“뭐가?”

“저렇게 갑질 하는 거?”

“뭐, 처음부터 그랬지. 오죽하면 룸을 잡아서 부르기까지 하니···, 아.”


드디어 나온 증언에 해사하게 웃으며 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저 여기 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녹음 다 했는데.”


이 정도면 데뷔도 안 한 배우가 갑질 한다는 것쯤은 폭로할 수도 있다.

그러게, 누가 입을 털라고 했던가.


“자, 그럼 형이 말을 해보실까요?”


우물쭈물하던 형의 입은 열릴 줄을 몰랐다.

시간은 흐르고 도율이 나와서 찍을 때까지도 말이 없던 형은 고개를 숙인다.


“계약이라서 말을 못해. 알잖아, 나 원래 손해 안 보고 사는 사람인 거. 괜찮은 계약···.”

“그거 계약서에 비밀 유지 계약 조항은 없던데···, 누락이 됐나?”

“···아?”


당황한 형의 눈이 생기가 돌았다.

그런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웃으며 묻는다.


“그래서 형이 무슨 일을 당하고 뭘 먹였어요?”


말하지도 않은 피해를 묻는 정의였지만, 정호는 그게 두려웠는지 몸이 벌벌 떨렸다.


“···네가 어떻게 알아?”


대체 말하지도 않았던 걸 어떻게 알아차린 건지.


“제가 어떤 기자한테 들었단 말이죠. 들어보니까 형이 생각나더라고요.”


조용히 귀에 속삭이는 온정의에 다른 분위기에 꿀꺽 삼킨다.

무언가 압박감이 들어서 자기가 아는 온정의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DN엔터가 조카를 내세우기 위해 접대를 하고 범죄들을 은폐했다···.”


그때 때마침 자기를 보는 도율을 향해 환하게 웃어주었다.

들으라고 아주 크게 이야기할까 하다가 제 앞에 있는 정호를 생각해서 작게 속삭인다.


“마약, 폭행, 음주운전, 학폭··· 들어보니까, 소속사는 그걸 다 숨겨줬다고 하더라고요.”

“···그 정도면 규모가 너무 큰데?”

“네, 근데 지금 이쪽으로 쓰레기가 오는데.”


정호가 고개를 돌리자 굳은 표정의 도율이 걸어왔다.

다 들었던 건지 때릴 기세로 주먹을 쥐고 오기에 뒤로 빠졌다.

사람도 많은 곳에서 날 때릴 생각인가?


“때리면 여기 사람들 다 봐요. 전부 증인이 되는데?”

“선배가 후배를 가르치겠다는데, 그게 뭐가 문제라고. 흔한 교육 시간이지. 안 그래?”

“와, 이걸 선후배로 가네.”


이걸 어떻게 이길 거냐는 반응에 나는 생각했다.

굳이 따지자면 연기 쪽은 내가 먼저가 아닌가.

그렇다고 그걸 알릴 수는 없으니···.


“그래, 네가 선배 해라. 뭐 그게 좋다고.”


그냥 네가 다 하라고 보내줬다.

하지만 데뷔도 안 한 놈이 선배라는 건 또 웃기긴 했다.


“반말? 선배한테 반말해? 겨우 지망생 주제에?”

“왜, 너는 해도 되고 난 하면 안 돼? 왜?”

“난 선배니까···!”

“그렇게 따지면 어리잖아, 너.”


할 말이 없었다. 정의보다 어린 건 사실이었다.

비록 도율이 외국에서 살다가 왔고 키도 컸지만, 한국과 외국은 엄연히 다르다.


“17살이나 됐으면 술은 먹지 말자. 여기 한국이야. 또, 마약은 외국에서만 하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마치 무언가라도 본 사람처럼 다들 바쁘게 움직이며 뛰다가 도율을 쳤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너! 넌 뭔데, 나를 치고 지나가?!”

“기, 기사가 떴어요! 이거 이대로 방송 나갈 수 있는 거 맞아요? PD님. 우리··· 어떡해요?”


한참을 핸드폰 액정을 보던 PD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인다.


“촬영 접지. 아무래도··· 주연을 바꿔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당황한 도율이 몸을 움찔거리며 매니저를 찾지만, 보이지 않았다.

불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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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5. 운명을 바꾸고 싶다 (1) +1 22.06.16 116 6 12쪽
34 33. 생존을 위하여 (5) +1 22.06.15 87 7 11쪽
33 33. 생존을 위하여 (4) +1 22.06.12 100 7 14쪽
32 32. 생존을 위하여 (3) +1 22.06.11 105 7 12쪽
» 31. 생존을 위하여 (2) +1 22.06.09 119 10 12쪽
30 30. 생존을 위하여 (1) +1 22.06.08 119 8 12쪽
29 29. 사랑받은 아이 (2) +2 22.06.07 118 12 12쪽
28 28. 사랑받은 아이 (1) +2 22.06.06 142 12 11쪽
27 27. 김성현 (2) +1 22.06.05 142 14 13쪽
26 26. 김성현 (1) +1 22.06.05 139 14 16쪽
25 25. 꿈 (2) +2 22.06.04 146 13 12쪽
24 24. 꿈 (1) +2 22.06.03 154 11 12쪽
23 23. 평범한 일상 (3) +2 22.06.02 145 15 11쪽
22 22. 평범한 일상 (2) +2 22.06.02 155 14 11쪽
21 21. 평범한 일상 (1) +1 22.06.01 161 13 11쪽
20 20. 미카엘 (3) +1 22.06.01 160 14 13쪽
19 19. 미카엘 (2) +2 22.05.31 164 15 12쪽
18 18. 미카엘 (1) +1 22.05.31 161 14 12쪽
17 17. 주인공 (3) +1 22.05.30 185 11 12쪽
16 16. 주인공 (2) +1 22.05.30 187 17 12쪽
15 15. 주인공 (1) +1 22.05.29 201 17 12쪽
14 14. 대본 그리고 배우 (2) +1 22.05.29 210 19 12쪽
13 13. 대본 그리고 배우 (1) +1 22.05.28 216 23 11쪽
12 12. 천재 소년 (4) 22.05.28 237 21 13쪽
11 11. 천재 소년 (3) 22.05.27 235 17 14쪽
10 10. 천재 소년 (2) 22.05.27 251 17 13쪽
9 09. 천재 소년 (1) +1 22.05.26 275 20 13쪽
8 08. DNA (2) +1 22.05.26 288 21 12쪽
7 07. DNA (1) 22.05.25 301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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