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이나름

정의로운 배우님은 회귀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이나름
작품등록일 :
2022.05.21 03:27
최근연재일 :
2022.06.16 19:52
연재수 :
35 회
조회수 :
7,755
추천수 :
632
글자수 :
193,589

작성
22.05.31 19:30
조회
164
추천
15
글자
12쪽

19. 미카엘 (2)

DUMMY

촬영장에 있는 미카엘의 표정이 지쳤고 슬펐으며 또는 안쓰러워 보였다.

저렇게 어린 꼬마에게서 나올 수 있는 분위기라고 볼 수는 없었다.


나름대로 배우 생활 오래 했던 루시퍼 역할의 저스틴에게 밀리지 않는다.

그나마 아쉬운 거라곤 경력이 없다는 거였다.


연기의 미숙함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는 아이는 초록 배경에 세워진 건축물에서도 진짜 본인 집처럼 행동 하나하나가 자연스러웠다.


“···저게 어린아이일 수가 있나?”


숨 쉬는 것처럼 연기하는 정의는 귀여운 외모에는 없을 것 같은 연기를 해냈다.

본인이 미카엘이 된 것처럼 연기를 이어가다 눈을 감는다.


“잘하네.”


메튜는 잘한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천재는 천재였다.


하지만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정의는 입술을 꾹 깨물자 붉었던 입술이 희게 질렸다.


“제가 무슨 말을 할 건지 알겠어요?”

“···네.”


박정찬 감독은 그런 정의를 보며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그 대답이 뭔지 알겠는지 답하는 온정의는 답답해 보였다.


“어우, 힘들다.”


힘들다며 루시퍼 역의 저스틴이 찌뿌둥한 몸을 기지개를 켜며 물 한 모금을 삼켰다.

아무렇지 않게 메튜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눈을 끔벅인다.


“저스틴.”

“엉? 왜?”

“네가 보기엔 정의 문제가 뭐라고 생각해?”


문제라는 말에 갸웃거리던 저스틴은 곤란한 질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눈을 찡그렸다.

그러다 느릿하게 시선 끝에 보이는 시무룩한 정을 보며 느리게 답한다.


“굳이 따지면··· 본인이 자신을 믿지 못하는 거?”

“왜? 배우라는 건 원래 끝없이 생각하며 날 의심하는 직업이잖아?”


메튜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저스틴을 보며 물었다.

배우들은 항상 하는 고민 중에 꼭 있는 고민이었다.

그들은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수없이 많은 도전과 실패를 한다.


“그거야 당연한 거지. 근데 이 경우는 다르지 않나?”


그리고 우리는 서로가 꿈꿔왔던 답에 근접한 것들을 찾아내곤 한다.


“연기를 할 때만큼은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해야지.”


그게 비록 오답이라고 하더라도.


“상대가 이 배역에 이해하게 할 수가 있도록. 내가 한 연기에 빠져들게끔.”


우린 다른 삶을 연기하고 겪어보지 못한 것을 표현해야만 하는 배우였다.

그렇다면 틀린 답이라도 보는 사람이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그것 역시 답이었다.


“그래, 그렇지. 저스틴의 연기는 그런 거군.”


각자가 얻어낸 답은 나중에 틀렸음을 깨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도전했고 나아갈 지표가 되기도 했다.


“뭐야, 그 교훈적인 말투는?”

“아니, 뭐··· 그냥 연기를 아무리 잘해도 이런 점에선 차이가 나는구나 싶어서.”


저 아이에겐 확신이 필요했다.

자기 연기를 인지하고 연기할 때만큼은 본인의 연기가 맞는다고 생각하며 나아가야 함을 알아야 했다.


“나는 그럼 착한 선배 노릇이나 해볼까?”


연기에 이제야 발을 들인 아이를 이끌어주는 것 역시 선배가 할 일이었다.

아직 연기는 내가 더 뛰어나니까 얼마나 다행인지.


“근데 내가 보기엔 너 되게 잘했어. NG라고 생각 못할 만큼.”


스스로 본인의 연기가 언젠가 따라잡힐 거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도 모른 채 조언한다.


“잘했다고···?”


그 조언에 의아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정의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걸었다.

머리가 좋은 편이니 이젠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어느 순간 아역 배우가 아닌 배우로서 조언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



난 한 번도 연기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메튜는 내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한다.


연기를 잘한다고.


내가 정말 연기를 잘했냐고 생각한다면 아니라고 말을 할 수가 있었다.

그야 연기 잘하는 사람들은 널렸고 김성현일 때는 온정의도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너 같은 새X들이 제일 짜증 나. 알아? 주제도 모르고!’


막말해도 연기를 잘하는 온정의가 부러웠고 나도 카메라 앞에서 내 연기를 하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친구가 그랬듯이 나 역시도 사랑했던 연기였다.


부족한 만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날 깎아내리고 잠을 포기하면서라도 해야만 했다.


“뭐가 안 풀려요?”


감독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언제부터 자신의 앞에 서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괜히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카엘이 이해가 안 되는 캐릭터이긴 하죠.”


미카엘이 어렵기도 했고 어린아이가 풀어낼 감정치고는 너무 무겁고 복잡했다.

그걸 해내고 있었으니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거였다.

그런데도 정찬은 그럴 수가 없었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도 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온정의였다.

그런 열정을 무시하고 보기엔 충분하다고 넘어간다면 그게 감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박정찬은 계속해서 NG를 외쳤다.

언제쯤 알까, 언제쯤 성장해서 보여줄까 궁금했다.


“그럴 땐 제가 했던 말을 떠올리세요.”


박정찬은 웃었고 그 표정을 마주한 온정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네. 감독님.”


기운이 빠진 정의는 벽에 등을 기대고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참 인자한 미소로 웃던 박정찬은 고개를 돌려 정의를 향해 물었다.


“근데 배우님의 나이가 어떻게 됐죠?”

“저요? 11살···. 아, 곧 12살 돼요.”


아직 겨울이라 11살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온정의였다.

박정찬 감독은 말을 하지 못하고 이마를 짚었다.


“새삼 어리긴 하네요···.”


그렇긴 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사람은 꽤 나이가 많았으니 나이를 합쳤다면 박정찬 감독보다 나이가 많을 것 같았다.

괜한 생각에 긴장감이 풀려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촬영 들어가야 해서 조금 더 고민해보고 못하겠으면 말해요.”


웃으며 자신의 자리로 가는 감독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말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싶기도 했다.

그렇게 뛰어가던 감독은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온정의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 온정의 배우님. 미카엘은 루시퍼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미카엘은 루시퍼에게 무슨 감정이 있을까.

어째서인지 나는 미카엘이 아닌 김성현일 때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분명 미카엘과 루시퍼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인 나였다.


“···부러웠을 것 같아요.”

그런데 어째서인지 내 마음과 달리 입에서 흘러나온다.

“닮고 싶었을 거고··· 동경의 대상이 되었을 것 같아요.”


연기를 잘하고 인기 많은 온정의를 보던 나의 본심이었다.

나도 잘할 수 있는데,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람들은 날 원하지 않았다.

이 세상에 주인공이 정해진 것처럼, 그 자리가 한 번도 내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루시퍼가 타락했을 때 임무를 맡게 된 미카엘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루시퍼와 미카엘은 영화 속에선 형제로 나왔다.

부러워서 닮고 싶었고 그렇게 되고 싶었던 동경의 대상인 루시퍼를 처단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존경스러웠고 닮고 싶었던 루시퍼를 죽인다면 평생 넘지 못할 존재가 되어버리는 거였다.

제 손으로 형제를 베고 떳떳하게 자신은 사탄을 죽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통스러웠겠네요.”


신의 종으로서 따라야 하지만, 자신의 임무를 다해야만 하는 것을 알고 있어도.


“되게··· 슬펐을 것 같아요.”


감정이 메말라버린 미카엘의 모습이 어째서 어린아이여야만 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 감정 그대로 다시 찍을 수 있겠어요?”

“···네.”

“그럼 한 번 볼까요?”


빠르게 뛰어가는 정의를 보던 박정찬은 고개를 돌려 웃고 있는 메튜와 눈이 마주친다.

둘은 눈을 피하지 않고 보면서 가볍게 웃었다.


“완벽하지 않았어요? 깨닫기 전에도 충분히 잘했다고 보는데.”

“배우가 만족했다면, 저도 넘어갔을 겁니다.”


대부분 연기에 대한 만족은 없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간혹 그런 배우들이 있었다.

조금 더 끌어내면 되는데도 이만큼 했으면 됐다고 잘했다며 스스로 한계를 그어버린다.


그런 이들을 처음엔 그것들을 전부 끌어내려 노력했다.

그렇게 해서 성공한다고 해도 결국 들려오는 소리는 좋지 않다.

괴팍하다느니 역시 이상하다는 말만 들으며 이 자리까지 왔다.


“배우가 만족한다?”

“하지만 더 할 수 있는데, 배우 스스로 욕심까지 있다면 더 끌어내고 싶은 법이니까요.”


메튜는 반짝이는 두 눈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역시 한국에서도 소문이 독특하고 모험심이 강하며 어떨 땐 이상한 것에 몰두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메튜 배우님은 지금 연기에 만족하세요?”

“···지금 이거 분발하라는 소리로 들리는데.”

“그럴 리가요.”


하하, 웃으며 빠져나가는 감독의 모습에 메튜는 어이가 없다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전혀 다른 성향의 스타일링에 내려진 앞머리를 괜히 만지며 돌아선다.


“미카엘 준비되셨습니까?”

“네!”


소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감정이 섞인 모습으로 서 있는 정의가 보였다.

사인과 함께 조용해지는 촬영장과 루시퍼를 보는 눈에서 복잡한 감정이 섞인 미카엘이 서 있었다.


“···더 잘하네.”


슬프게도 어째서인지 더 잘하고 있었다.

이러다가 개봉하고 미카엘이 주인공인 줄 알 것만 같아서 어지러웠다.


“컷! 수고했어요!”


자신의 문제를 알았다고 한 번에 끝내버리는 건 천재들이나 가능한 것이었다.

그걸 여전히 본인만 모르는 듯해서 문제지.

그래서일까 분명 진 것 같은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



그날 저녁엔 꿈을 꿨다.

온정의를 생각해서인지 오랜만에 온정의가 나왔으나 그는 여전히 날카로웠고 막말을 일삼았다.


“네가 왜 떨어지고 내가 붙은 줄 알아?”


그중 온정의를 처음 마주했을 때 들은 말이 들려온다.

오디션을 같이 보게 된 날, 그는 내게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했었다.


“표현할 줄을 모르잖아. 지금 너 같이 연기하는 놈들은 바깥에 나가면 널렸다고. 새X야.”


말을 뱉으면서도 어째서인지 그 눈에서 독기가 느껴졌다.

그때는 그게 너무 억울하고 슬펐지만, 연기라곤 배운 적도 없었던 지망생에겐 당연한 거였다.


“···재수 없는 새X.”


내가 해야 할 말을 본인이 다 해놓고 돌아서는 그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했다.

그렇게 몇 번의 실패 이후 매니저와 배우로 만나게 된 온정의 표정은 최악이었다.

비웃을 줄 알았던 내 생각과는 정반대되는 행동에 당황도 잠시 그는 다시 막말했다.


“결국 갈 곳이 없는 새X들의 종착지가 매니저라니···. 매니저가 아주 만만하지?”


그의 매니저로 지내면서 온정의는 하루도 빠짐없이 날 싫어했다.

보는 눈도 없고 눈치도 없고 할 줄 아는 거라곤 남의 대본 몰래 읽는 것뿐인 거지 같은 새X라고 불렀다.


“네가 거지야? 왜 남이 갖다버린 걸 주워서 읽고 지X이냐고.”


그럴 때마다 구겨진 대본이 휴지통으로 가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예민하고 날이 서 있는 온정의를 평소와 같이 대표실 앞에 두고 돌아섰다.


평소처럼 온정의는 대표에게 소리치고 한껏 짜증이 나서 물건을 던지는 것까진 똑같았다.


“왜 저 새X를 매니저로 만들었냐고 묻잖아. 안 들려?”


그날따라 유난히 화를 참지 못하는 온정의는 머리까지 쥐어뜯으며 말한다.

그 표정이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워서 더는 볼 수가 없었다.


“왜! 저 새X 대신에··· 날 세웠냐고. 묻잖아···.”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얼굴을 한 온정의는 처음 봤기에.

처음으로 그가 안쓰러웠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44 우주귀선
    작성일
    22.05.31 19:46
    No. 1

    재밌게 읽고 선작 추천 누르고 가요~ ^^ 건필하세요! 화이팅!!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장금
    작성일
    22.06.01 08:19
    No. 2

    정의가 질투를 했네요. 자기보다 매니저가 연기를 잘하니까. 근데 매니저는 왜 화를 냈는지 이해를 못하고 연길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나 보다 ㅠ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정의로운 배우님은 회귀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13화가 수정되었습니다. +1 22.05.29 132 0 -
35 35. 운명을 바꾸고 싶다 (1) +1 22.06.16 116 6 12쪽
34 33. 생존을 위하여 (5) +1 22.06.15 87 7 11쪽
33 33. 생존을 위하여 (4) +1 22.06.12 100 7 14쪽
32 32. 생존을 위하여 (3) +1 22.06.11 105 7 12쪽
31 31. 생존을 위하여 (2) +1 22.06.09 119 10 12쪽
30 30. 생존을 위하여 (1) +1 22.06.08 119 8 12쪽
29 29. 사랑받은 아이 (2) +2 22.06.07 118 12 12쪽
28 28. 사랑받은 아이 (1) +2 22.06.06 142 12 11쪽
27 27. 김성현 (2) +1 22.06.05 142 14 13쪽
26 26. 김성현 (1) +1 22.06.05 139 14 16쪽
25 25. 꿈 (2) +2 22.06.04 146 13 12쪽
24 24. 꿈 (1) +2 22.06.03 154 11 12쪽
23 23. 평범한 일상 (3) +2 22.06.02 145 15 11쪽
22 22. 평범한 일상 (2) +2 22.06.02 155 14 11쪽
21 21. 평범한 일상 (1) +1 22.06.01 162 13 11쪽
20 20. 미카엘 (3) +1 22.06.01 161 14 13쪽
» 19. 미카엘 (2) +2 22.05.31 165 15 12쪽
18 18. 미카엘 (1) +1 22.05.31 161 14 12쪽
17 17. 주인공 (3) +1 22.05.30 185 11 12쪽
16 16. 주인공 (2) +1 22.05.30 187 17 12쪽
15 15. 주인공 (1) +1 22.05.29 201 17 12쪽
14 14. 대본 그리고 배우 (2) +1 22.05.29 210 19 12쪽
13 13. 대본 그리고 배우 (1) +1 22.05.28 216 23 11쪽
12 12. 천재 소년 (4) 22.05.28 237 21 13쪽
11 11. 천재 소년 (3) 22.05.27 235 17 14쪽
10 10. 천재 소년 (2) 22.05.27 251 17 13쪽
9 09. 천재 소년 (1) +1 22.05.26 275 20 13쪽
8 08. DNA (2) +1 22.05.26 289 21 12쪽
7 07. DNA (1) 22.05.25 302 2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