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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름

정의로운 배우님은 회귀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이나름
작품등록일 :
2022.05.21 03:27
최근연재일 :
2022.06.16 19:52
연재수 :
35 회
조회수 :
7,754
추천수 :
632
글자수 :
193,589

작성
22.05.21 19:56
조회
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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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1. 배우의 꿈 (1)

DUMMY

씁쓸한 향이 입안에서 머물다 이내 뽀얀 연기와 함께 허공으로 흩어진다.

담벼락 너머의 시끌벅적한 현장에는 불빛이 반짝이는 환경엔 배우들의 연기가 오간다.

겨울인 분위기와 다르게 봄처럼 얇게 입은 배우들은 바다를 보고 있었다.


“분명 지금, 이 순간도 그런 거겠지.”

“···혜성아.”


불안함에 덜덜 떨려오는 손끝을 잡아주며 고개를 젓는 남자는 다정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날··· 위해서가 아니라 널 위해서.”


밝은 갈색의 머리칼이 부드럽게 바람에 살랑였지만, 그 눈에 보이는 꺾이지 않을 마음이 느껴졌다.

여자의 눈에 고이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조명 아래, 오직 카메라와 자신만 존재하는 것처럼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컷! 수고하셨습니다!”


시끌시끌한 분위기에 붙어있던 몸이 훅 떨어지고 서로 각자가 있어야 할 곳으로 향한다.

다정할 수도 있는 분위기마저도 얼음장처럼 차갑게 변하는 것을 보면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진짜 저 사람 담배 좀 피우지 말라고 해요!”

“왜 지X이야? 야, 너 배우 그만하고 싶어서 환장했어? 시X, 진짜 별 미X 것들이.”

“저 미X 새끼··· 저런 새끼를 좋아하는 팬들이 정신이 나간 거지.”


한껏 달콤했던 분위기는 살얼음판보다 더한 냉기가 느껴졌다.

철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남자 배우는 꿀이 떨어진다던 눈빛을 지우고 전보다 더한 냉기를 뿜어내며 으르렁거렸다.


“매니저 이 새X는 또 어디 갔어? 야!!”

“네, 갑니다!”


내 나이 34살, 겨우 28살 먹은 망나니에게 웃으면서 뛰어가고 있었다.

모자를 꾹 눌러쓰고 검은색 패딩에 청바지, 운동화 차림의 성현의 모습에 눈을 찌푸린다.


“옷 좀 바꿔 입어. 거지도 아니고 옷 없어? 옷이 없냐고. 구린 패션 감각 자랑하나···.”

“아··· 옷.”


내려다본 자신의 패션은 그냥 매니저 중에서도 정말 평범한 축에 속했다.

저번 인터뷰 기사 댓글에 매니저에 대한 평가도 있었더니 마음에 담아둔 것 같았다.


“똑같은 옷만 계속 입는 거 보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생각이 있다면 생각을 해.”

“···.”

“아, 온정의 다 죽었네? 잘나가는 배우 매니저가 거적때기 입고 다니는데, 지만 아주 잘 입고 사네. 때깔 좋은 것 봐라, 이야··· 지 혼자 좋은 것만 처먹네?”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는 모습에 눈치 보며 자리를 피하는 스태프들이었다.

인성 쓰레기라고 불리는 배우 온정의는 벌써 해치운 매니저만 10명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씹어? 야, 내 말이 우습지?”


소문은 거짓이 없었다.

인성은 별로여도 멜로에 어울리는 잘생긴 외모에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 뛰어난 연기실력에 지나치게 과거가 깨끗한 배우.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온정의 배우를 맡을 사람은 이젠 김성현만 남았다.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신경질 내는 배우에게 줄 수 있는 건 너무 단 커피와 사탕이었다.

안 어울리는 조합이었지만, 이상하게 저것만 먹으면 풀어지는 모습에 자주 사 오곤 했다.


“하, 진짜 배우 하겠다고 설치고 들어올 때부터 알아봤는데···.”


사탕 껍질을 까서 얼굴에 집어 던지는 배우의 모습에 이를 으득 갈면서도 부정할 수가 없었다.

배우 하겠다고 들어왔던 그날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매니저까지 할 일은 없었을 테니까.


“매니저까지 끝나면 갈 곳 없는 놈이··· 정신 좀 차려. 운전하다가 고의로 사고도 내겠다?”


어깨를 툭툭 치는 모습에도 입술을 꾹 깨물고서 참아낸다.

입술에 비릿한 피 맛이 감돌고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출발··· 하겠습니다.”

“피곤해 죽겠으니까 운전 똑바로 해. 잘못되면 내가 너 이 바닥 뜨게 해줄 테니까.”


매사에 날카로운 온정의는 차가 덜컹거리는 것을 싫어했고 앞 자석은 죽어도 타지 않았다.

버스 하나만 자기 눈을 조금만 가려도 성질내기 바빴다.

그 이유는 죽어도 알려주지 않는 온정의는 늘 의문스러운 사람이었다.


덜컹-


“죄송합니다. 갑자기 앞에 차가 끼어들어서···.”


지나치게 조용한 온정의 반응에 눈을 찌푸리며 룸미러를 살짝 틀어서 본다.

평소와 달리 곤히 자는 온정의를 보며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웬일로 푹 주무시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깨를 으쓱였다.

불면증이 있던 온정의가 잘 자는 것만큼 좋은 건 없으니까 이상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어둡냐···.”


차도 별로 없는 게 원래도 좀 지역을 넘나들면서 촬영하니까 이런 길은 익숙했는데, 지나치게 어두운 탓에 조심스럽게 코너를 돈다.


한참을 달렸을까 절로 오늘 온정의가 했던 대사를 혼자서 중얼거리며 읊었다.


“···쉬어가는 건 어떨까.”


온정의에게 갔던 대본을 가장 먼저 몰래 보던 순간을 기억했다.

깔끔한 글들에 느껴지는 정성과 열정.


“우리가 돌고 돌아서 만난 이 시간이 소중하고 두렵다는걸.”


느릿해지는 시간 속에 툭툭 손으로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묘하게 대사의 타이밍을 맞춰주는 것만 같아서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연기가 차 안에 채워지기 시작한다.


“너도 그런 거였잖아, 지금의 꿈을 지켜왔던 이유가.”


갈망했던 연기에 대해 생각하며 운전대를 꽉 잡았다.

자꾸만 연기에 대한 갈증이 나서 내뱉을 때마다 자꾸만 차오르는 이 감정을 막아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멈춘 대사에 낮게 으르렁거리는 배우 온정의였다.


“···계속해.”


낯선 온정의 목소리에 멈추려고 했지만, 룸미러로 보이는 노려보는 온정의 모습에 성현은 룸미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덜덜 떨리는 입가가 그다음 대사를 머뭇거리며 더듬더듬 내뱉는다.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어.”


그 순간 나를 보며 처음으로 활짝 웃는 배우 온정의 표정에 급하게 정면을 보는 순간이었다.


쾅-


기다렸다는 듯 일어난 사고에 귀가 먹먹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너무 환한 불빛에 눈이 시려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 탓일까.

내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지금, 이 순간도 그런 거겠지.’

‘그러니까 나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날 위해서가 아니라 널 위해서···.’


내 귓가엔 계속해서 대사가 이어지고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그 대사를 읊고 있다는 것뿐.

복부와 하체에서 느껴지는 으스러지는 강한 통증에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느껴지는 거라곤 매캐한 냄새와 내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의 꺼져가는 숨소리뿐.


‘연기··· 하고 싶었는데.’


죽어가는 이 와중에도 나는 연기가 하고 싶었다.

죽음의 순간에도 갈망하는 연기도 그저 죽으면 다 끝나는 일인데도.


‘그래도 다시 하고 싶다면··· 난 진짜 미친 걸까.’


흐려지는 시야 속에 내 마지막 기억은 아직도 나는 연기가 하고 싶었다는 거였다.



*



정신이 들자 과할 정도로 숨이 차는 이 상황은 대체 무엇일까.


‘아, 나 사고를 당했었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눈을 뜨는 것이 두려워졌다.

일어났더니 몸을 다쳤으면 이제 매니저 일도 못하게 될 텐데,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가 막막했다.

부모님은 또 모자란 놈이라며 욕하겠다고 생각하자 귀가 따가워지는 것만 같았다.


-‘그러게, 내가 배우라는 건 포기하라고 했잖아!’

-‘이제 뭐 하고 먹고 살 거냐? 이제라도 회사 들어올 생각은 있고?’


주름진 얼굴로 날 보며 잔소리하는 부모님의 얼굴이 생각하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난 결국 배우가 될 운명이 아니었던 거였던 거다.

사고까지 났으니 이젠 정말 가망이 없어지겠단 생각에 절망스럽기만 하다.


“아직도······ 어떡···.”

“금······ 깨어날···.”


옆에서 웅얼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선명하게 들려왔다.


“으···.”


눈을 살며시 뜨자 뿌연 시야 속에 하얀 천장이 보였다.

역시나 소독약 냄새도 많이 나는 걸 보면 병원이 확실했다.


“괜찮아? 괜찮은 거야?”

“아들!!”


처음 듣는 목소리의 남자와 여자가 누군갈 불렀다.

누가 깼나보다 생각하며 눈을 깜빡이는데, 감격한 듯 울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 사람도 어지간히 사랑받는다고 생각하며 몸을 일으키자 모르는 남자와 여자가 울면서 날 보고 있었다.


‘왜?’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 눈을 깜빡이는데, 그들을 날 갑자기 안았다.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 놓인 나는 끌어안긴 상태로 보이는 거울을 보는데, 밝은 갈색 머리칼과 눈동자, 강아지상에 뽀얀 피부를 가진 남자아이가 안긴 상태로 표정 변화도 없이 보고 있음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거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일단 내 얼굴은 아니었고 그러니까 저 얼굴은···.


“···온정의?”


떠오른 이름에 맞는 것 같다며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는데, 거울 속의 남자아이도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저 아이는 뭔데, 날 따라 하는 걸까.

정말 많이 닮았다며 거울을 유심히 보는데, 이제야 더위가 느껴져 땀이 흘렀다.

한국의 12월 겨울이 추워야 정상인데, 히터를 얼마나 튼 건지 땀이 비가 오듯이 흐른다.


“더워···.”


내 입에서 나오는 앳된 목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벌떡 일어난다.

분명 머리라도 부딪쳐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내 시야가 너무나도 낮았다.

덜덜 떨리는 손을 올리는데 앙증맞은 손과 작은 발이 보인다.


“누, 누구···.”


당황스러워서 돌아본 거울에는 손을 들고 있는 남자아이가 거울을 보고 있다.

말이 절로 나오지 않아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있는데, 날 안았던 모르는 남자가 내게 손을 뻗었다.

절로 몸이 움츠러드는데, 그런 모습에 당황해 내게 더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왜? 어디가 아파?”

“정의야?”


날 향해 외치는 이 사람들의 말을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정의는 당연히 다른 병동에 가서 찾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다.


“왜 무슨 일이야?”


거울 속의 남자아이가 정말 아픈 사람처럼 안색이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내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도 이상했다.


“저기··· 저 사람 왜 저 따라 해요?”


손가락으로 거울을 가리키는 모습에 갑자기 눈물이 터진 사람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거울 속에 있는 남자아이도 같이 손을 뻗었다.

그제야 나는 알 수가 있었다. 저 거울 속에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급한 마음에 링거가 꽂힌 팔을 보지도 않고 침대 밑으로 내려갔다.


“아냐··· 그럴 리가······.”


링거 바늘이 뽑혀 피가 팔을 타고 흘러내렸다.

바닥에 흐르는 핏방울이 자국을 남기며 아릿한 통증이 왔지만, 나는 귓가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바깥에 적힌 내 이름을 확인하고자 했다.


‘온정의’


선명하게 적힌 이름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피가 흐르잖아. 많이 아팠어? 말이라도 좀 해봐.”

“왜 그러는데, 말이라도 좀 해봐···.”


돌아본 부부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의 슬픈 얼굴이 온정의를 닮아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손을 뻗었고 그 손을 보던 나는 내 몸에 닿자마자 몸을 피했다.

본능적이었다.

모든 것이 당황스러움과 동시에 내가 뭘 잘못 했길래 이런 일을 겪어야만 하는지를 생각했다.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일정하게 들려오고 작은 웅덩이가 생길 때쯤 떠올렸다.


-‘연기··· 하고 싶었는데.’


그건 죽으면서도 연기가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내 모습이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99 장금
    작성일
    22.05.28 07:34
    No. 1

    사고로 영혼이 바뀌었나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8 fundi
    작성일
    22.05.31 07:30
    No. 2

    빙의.. 회귀물인줄 알았는데;; 근데 회귀 후 정의로운 사람이 되는건가요? 제목 보고 정의로운 어떤 일을 하고 죽어서 회귀하는 줄 알았는데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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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배우님은 회귀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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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5. 운명을 바꾸고 싶다 (1) +1 22.06.16 116 6 12쪽
34 33. 생존을 위하여 (5) +1 22.06.15 87 7 11쪽
33 33. 생존을 위하여 (4) +1 22.06.12 100 7 14쪽
32 32. 생존을 위하여 (3) +1 22.06.11 105 7 12쪽
31 31. 생존을 위하여 (2) +1 22.06.09 119 10 12쪽
30 30. 생존을 위하여 (1) +1 22.06.08 119 8 12쪽
29 29. 사랑받은 아이 (2) +2 22.06.07 118 12 12쪽
28 28. 사랑받은 아이 (1) +2 22.06.06 142 12 11쪽
27 27. 김성현 (2) +1 22.06.05 142 14 13쪽
26 26. 김성현 (1) +1 22.06.05 139 14 16쪽
25 25. 꿈 (2) +2 22.06.04 146 13 12쪽
24 24. 꿈 (1) +2 22.06.03 154 11 12쪽
23 23. 평범한 일상 (3) +2 22.06.02 145 15 11쪽
22 22. 평범한 일상 (2) +2 22.06.02 155 14 11쪽
21 21. 평범한 일상 (1) +1 22.06.01 162 13 11쪽
20 20. 미카엘 (3) +1 22.06.01 161 14 13쪽
19 19. 미카엘 (2) +2 22.05.31 164 15 12쪽
18 18. 미카엘 (1) +1 22.05.31 161 14 12쪽
17 17. 주인공 (3) +1 22.05.30 185 11 12쪽
16 16. 주인공 (2) +1 22.05.30 187 17 12쪽
15 15. 주인공 (1) +1 22.05.29 201 17 12쪽
14 14. 대본 그리고 배우 (2) +1 22.05.29 210 19 12쪽
13 13. 대본 그리고 배우 (1) +1 22.05.28 216 23 11쪽
12 12. 천재 소년 (4) 22.05.28 237 21 13쪽
11 11. 천재 소년 (3) 22.05.27 235 17 14쪽
10 10. 천재 소년 (2) 22.05.27 251 17 13쪽
9 09. 천재 소년 (1) +1 22.05.26 275 20 13쪽
8 08. DNA (2) +1 22.05.26 289 21 12쪽
7 07. DNA (1) 22.05.25 302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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