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이나름

정의로운 배우님은 회귀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이나름
작품등록일 :
2022.05.21 03:27
최근연재일 :
2022.06.16 19:52
연재수 :
35 회
조회수 :
7,758
추천수 :
632
글자수 :
193,589

작성
22.05.29 19:30
조회
201
추천
17
글자
12쪽

15. 주인공 (1)

DUMMY

여유를 즐기고 있는 사이 나의 시간은 너무나도 빨랐다.

금세 내 나이가 12살이 되어간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쿠키 먹을 사람?”

“저요!”


그동안 정말 익숙해진 생활에 학교 가는 것 역시 이제는 적응이 된 상태였다.

시간이 참 빠르다며 부스러기를 흘리지 않기 위해 고개를 쭉 내밀고 쿠키를 씹는다.


달콤한 초코칩이 입안에 퍼진다.

고소한 우유를 마시며 한때를 보내는 것만큼 여유로운 일은 없었다.

뜻하지 않은 자유를 가지게 된 건 부모님의 말씀 때문이었다.


-“벌써 1년에 두 작품이나 찍었잖아. 조금 쉬었다가 찍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 이유는 내가 나이가 아직 11살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게 쉬게 된 건 좋았으나 연기를 하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가지자 따로 선생님을 구해주셨다.


“선생님이랑 하는 공부는 재밌어?”

“네!”


다행이라며 웃는 어머니가 돌아보자 입술을 비죽였다.

연기를 선생님 앞에서 밖에 하지 못하니까 더 재밌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그저 어린아이가 그냥 배우고 싶은 줄 알고 왔던 선생님이었다.


“일찍 오셨네요?”

“하하! 제자가 보고 싶어서요.”


지금은 누구보다 자기 제자라며 눈에 불을 태우며 연기를 도와주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내 연기를 보고 정말 진지하게 성인의 연기 기준으로 짚어줬다.


“그 부분 호흡 깨졌어요. 정.”

“아, 네!”


금방이라도 다른 생각했다는 걸 알아차린 선생님의 표정은 날카로웠다.

연기에 진심이고 또 내 연기를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증거였다.


“방금 연기는 괜찮았는데, 조금 더 호흡을 섞었으면 좋겠어요. 감정이 너무 메말랐어.”


제대로 연기를 배우고 나니까 무언가 잘못되었던 점이 단박에 이해가 되는 걸 보면 신기했다.

전문적인 연기라는 건 이런 거구나 싶었다.


“수고했어요. 정. 우리 제자는 지금 이렇게 있을 인재가 아닌데···.”

“감사합니다, 근데 아직 모자란 점이 많은걸요···.”


매번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는 선생님은 눈을 도르륵 굴린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가지도 않고 서서 머리를 쓰다듬고만 있었다.


“···선생님?”

“혹시··· 정. 영화 한 번 더 찍을 생각 없어요?”

“영화요?”


갑작스러운 영화 소식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끔 오는 대본에는 사실상 흔하고 그렇게까지 끌리지 않았기에 줄기차게 거부해왔다.

쉬라고 하는 부모님의 의견을 따라 열심히 이행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영화라니.


“···어떻게 알고 감독 하나가 붙어서 우는 소릴 하는데. 어후, 아무튼 일단 이거 받아요.”


질린다는 얼굴로 내게 내미는 시놉을 들고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어로 적힌 ‘Esper’ 옆에 있는 이름이 어쩐지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박정···참? 찬? 감독이라고 들었는데.”


익숙한 이름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박정찬 감독은 실제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사람이었다.

워낙에 한국에서 보기엔 새롭고 스케일을 큰 작품을 주로 시도했다.


한국에선 인기가 없는 것도 시도하는 실험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다.

물론 그래서 주로 외국 배우들과 외국 투자자를 구하는 편이었다는 게 함정이지만.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나도 살짝 봤는데, 재밌기도 하고···.”


말하면서도 우물거리며 말을 아꼈다.

내가 시놉을 펼쳐서 보는 도중에도 불안한 사람처럼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작품성만 보면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은 해요. 근데 제자에겐 막상 추천할 수가 없어서···.”


나는 조용히 시놉을 한 장씩 넘기며 읽었다.

그러자 보이는 어설픈 흔적들을 보며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께서는 유명하지 않은 감독이라서 그러는 거죠?”

“그거예요. 아무래도··· 너무 실험적인 감독에 동양인이니까요.”


타지에서 작품성으로 살아남고 대중에게 인기를 얻으려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걸 알고는 있지만,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 정의는 어깨를 으쓱였다.


“음, 하지만 재밌을 것 같아요.”

“배우는 초반의 필모가 중요한 거 알고 있죠?”


걱정스러운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내 필모는 문제가 없을 예정이었다.

내가 알기로 박정찬 감독은 타지에서도 빛나는 사람이었기도 했다.


“정말··· 열악한 환경일 거예요. 이때까지 완전 다른 스타일의 연기를 해야 할 거고요.”

“그게 재밌겠다는 거예요!”


이해하지 못한 선생님을 향해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정말 나는 괜찮았다.

난 원래 한국 사람이었고 한국에서 배우를 했었다.


“전 나중에 커서 한국에서 배우 생활을 할 거거든요.”


그러니 괜찮다는 의미로 활짝 웃어 보였다.

입을 벌리고서 아무런 말을 잇지 못하는 선생님의 손을 잡는다.

당황스러움에 입을 닫지 못하고 쳐다보고 있는 선생님은 급히 정신을 차리며 소리쳤다.


“당신은 기회가 많은 이곳이 적합해요. 한국은 사실상 너무······.”


차마 다른 말을 못 하겠는지 우물거리는 선생님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알고 있었다.

어쩌면 기회가 더 많은 이곳이 내가 배우 생활하는데, 꿈을 이루는 것에 도움을 줄 거란 걸.


‘하지만 난 한국 사람이고 한국에서 꿈을 이뤄보고 싶어.’


내가 실패했던 그곳에서 다시 한번만 더 도전하고 싶었다.

애초에 이유는 모르겠지만, 온정의도 원래 한국에서 활동했으니까 가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한국으로 꼭 가겠다는 눈빛이네요. 처음으로 내 제자를 곁에 둘 수 있다고 생각했건만···.”


아쉽다고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엄마에겐 비밀이라며 헤실거리며 웃는 온정의는 건네준 시놉을 읽기 바빴다.

연기 수업은 여기서 끝났지만, 어째서인지 이제 시작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안녕히 가세요. 선생님!”


건네준 대본이 정의 품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저렇게 온종일 공부하고 노력하니까 저 어린 나이에 저렇게 연기를 잘하는 걸까.


“흠.”


현관문을 나서서 한참을 걷다 멈춘 그녀는 입 안이 썼다.

잘하는 애가 노력까지 하며 잘못된 점을 고쳐나간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연기를 할 제자는 얼마나 커져 있을까.


“어디 가서··· 제자라고 말도 못하겠는데?”


적어도 지금보다 더 완벽한 연기를 하고 있을 텐데, 스승이라는 사람은 이대로 멈춰있겠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은 한계에 도달했고 정의는 이제 시작이었다.

부러움에 괜히 울적해지는 순간이었다.



*



박정찬 감독은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었다.

눈을 뜨고 말을 하던 순간부터 자신이 미국에서 살았으니 처음엔 자신은 미국인이라고 믿었다.


“오늘부터 위탁될 가정이니까 잘 지내길 바란다. 너도 꼭 좋은 곳으로 입양이 될 거야.”


비록 태어나자마자 버려지고 외형이 달라도 태어나고 살아간 곳은 미국이었으니 말이다.


“제이콥,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도 집이란 것이 생겼다고 한때는 기뻐했다.

하지만 위탁된 가정에서 아주머니는 그렇게 제이콥, 아니··· 정찬을 좋아하지 않았다.

8살인 정찬에게 물을 엎질렀다고 화를 내고 어떤 날은 손찌검이 날아오기도 했으니까.


“위탁되었으면 적어도 사고는 치지 말아야지! 이래서 버려진 애는 문제라니까?”


위탁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구박당하는 삶이란 꽤 고달팠다.

그래도 혼자서 춥고 배고픈 것보단 낫지 않겠냐는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서러웠다.


외식만 하면 아주머니 가족과 달리 금액마저도 제한당하는 삶이 8살에게는 가혹했다.


“매달 나오는 돈도 부족해 죽겠는데, 사고까지 치면 어쩌라는 거야! 뭐 이런 애를 받아서···.”


날 받아줬던 이유는 오직 돈이었다.

항상 눈치를 보며 커야만 했던 어린 시절에 나는 꽤 불행했던 것 같다.

방 밖으로 나가기만 해도 잔소리에 째려보는 시선이 느껴지니 자연스레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제이콥, 지금 밖에서 논다고 말하려고 나온 건 아니지?”


저 밖에선 뛰어노는 어린아이들이 보였다. 그건 이 집의 아이들이었다.

자유롭고 사랑을 듬뿍 받아서 볼이 통통하게 오르고 머릿결도 윤기가 흐르는 잘 자란 아이들이 부러웠다.


“아뇨···, 화장실을 가려고요.”

“뭐든지 아껴 쓰렴. 알잖니, 우리 집은 너무 가난해서 너 하나 보살피기 힘든 거. 넌 워낙 흥청망청 쓰는 버릇을 보면 못 고칠 것 같다만.”


그래서 할 수 있는 건 상상하고 그런 걸 허공에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자신에게는 주어진 스케치북은 한 장이 소중했으니 마음대로 쓸 수는 없었다.


“정식 입양된 거 축하해.”


갑작스럽게 정식 입양이 될 때는 어땠더라, 벗어난다는 기쁨과 가족이 생긴 것에 기뻤었던 것 같다.

적어도 이때까지 당했던 불합리한 일은 당하지 않을 거라고.

그래, 그땐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저 한국에서 꿈을 키우고 싶어요.”


하지만 나는 결국 못 버텼다.

그때 나이가 19살이었다.


나는 한국으로 갈 것이고 그곳에서 영화감독이 될 거라고 통보했다.

이유도 모르는 양부모님은 당황스러웠을 일이었다.


그렇게 무작정 떠난 한국에서 소식도 전할 생각도 없이 영화에 몰두했다.

가끔 오는 연락에도 언젠간 가겠다는 말만 반복이었다.


“다녀왔니?”

“네, 20년 만이네요. ···어머니.”


도망치듯이 떠난 미국에 나는 20년 만에 미국 땅을 다시 밟았다.

가끔 미국인이 아닌 한국인으로 다시 밟은 땅은 색다른 기분이 들 거라고 생각하곤 했었다.


막상 그날이 오니까 아무렇지 않았고 돌아온 이유에 더 머리가 아플 뿐.


“왜 굳이 한국인이 여기에서 영화 제작을 하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다들 이해 못하는 미국에서 영화를 제작한다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는 해결해야만 했다.


“그 배우를 데려와야 할 텐데···.”


우연한 기회로 본 영화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생겨버린 직업병은 영화를 볼 때면 항상 연출과 카메라 앵글에 대해서 생각하기 바빴다.


-“기다릴게요, 아저씨.”


하지만 케니가 나오고 활짝 웃는 순간 모든 걸 잊었다.

그래, 저 작은 아이의 연기는 감독이 아니라 날 하나의 관객으로 만든 거였다.


‘결국은 배우 하나를 섭외하겠다고 내가 미뤘던 미국에 왔고···.’


온정의, 그 작은 아이가 하는 연기에는 어릴 적부터 그려왔던 인물을 표현해줄 사람이었다.

존재만으로 선이면서도 동시에 악인 남자.


“···미카엘.”


그를 나는 꼭 데려와서 나의 미카엘을 완성해야만 했다.



*



“안녕하세요, 온정의 배우님.”


익숙하고 편안한 한국어가 박정찬이라는 걸 짐작하게 했다.

홀로 앉아서 오래 기다렸는지 이미 마신 커피잔들이 보인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어머니의 손을 잡고 온 모습에 평범한 어린이처럼 환하게 웃는 정의였다.

냉큼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자 긴장이 되는지 손바닥을 허벅지에 쓸었다.


“시놉이 마음에··· 드셨습니까?”


식은땀을 흘리는 박정찬 감독을 보며 정의는 눈을 도르륵 굴렸다.

정의 어머니는 옆에 앉아서 아무런 말도 없이 아들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듯 차를 마실 뿐이었다.


“일정은 그렇게 빠듯하지도 않을 거고 투자처도 이미 정해진 상태라 그리 부담되진···.”

“왜 저예요?”


온정의는 그게 너무 궁금했다.

대체 왜 이 작품을 들고 왔으며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나 큰 작품을 골라왔는지가 궁금해서 물었다.

원래라면 나오지 않았을 작품을 가져온 이유가 뭐냐고.


“···.”


말이 없는 그는 조용히 제 앞에 놓인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삼킨다.

입맛을 다시던 감독은 조용히 고개를 들었고 정의는 그의 말을 조용히 들었다.

다 듣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이던 정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정의로운 배우님은 회귀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13화가 수정되었습니다. +1 22.05.29 132 0 -
35 35. 운명을 바꾸고 싶다 (1) +1 22.06.16 116 6 12쪽
34 33. 생존을 위하여 (5) +1 22.06.15 87 7 11쪽
33 33. 생존을 위하여 (4) +1 22.06.12 100 7 14쪽
32 32. 생존을 위하여 (3) +1 22.06.11 105 7 12쪽
31 31. 생존을 위하여 (2) +1 22.06.09 119 10 12쪽
30 30. 생존을 위하여 (1) +1 22.06.08 120 8 12쪽
29 29. 사랑받은 아이 (2) +2 22.06.07 118 12 12쪽
28 28. 사랑받은 아이 (1) +2 22.06.06 142 12 11쪽
27 27. 김성현 (2) +1 22.06.05 142 14 13쪽
26 26. 김성현 (1) +1 22.06.05 139 14 16쪽
25 25. 꿈 (2) +2 22.06.04 146 13 12쪽
24 24. 꿈 (1) +2 22.06.03 154 11 12쪽
23 23. 평범한 일상 (3) +2 22.06.02 145 15 11쪽
22 22. 평범한 일상 (2) +2 22.06.02 156 14 11쪽
21 21. 평범한 일상 (1) +1 22.06.01 162 13 11쪽
20 20. 미카엘 (3) +1 22.06.01 161 14 13쪽
19 19. 미카엘 (2) +2 22.05.31 165 15 12쪽
18 18. 미카엘 (1) +1 22.05.31 161 14 12쪽
17 17. 주인공 (3) +1 22.05.30 185 11 12쪽
16 16. 주인공 (2) +1 22.05.30 187 17 12쪽
» 15. 주인공 (1) +1 22.05.29 202 17 12쪽
14 14. 대본 그리고 배우 (2) +1 22.05.29 210 19 12쪽
13 13. 대본 그리고 배우 (1) +1 22.05.28 216 23 11쪽
12 12. 천재 소년 (4) 22.05.28 237 21 13쪽
11 11. 천재 소년 (3) 22.05.27 235 17 14쪽
10 10. 천재 소년 (2) 22.05.27 251 17 13쪽
9 09. 천재 소년 (1) +1 22.05.26 275 20 13쪽
8 08. DNA (2) +1 22.05.26 289 21 12쪽
7 07. DNA (1) 22.05.25 302 2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