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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름

정의로운 배우님은 회귀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이나름
작품등록일 :
2022.05.21 03:27
최근연재일 :
2022.06.16 19:52
연재수 :
35 회
조회수 :
7,764
추천수 :
632
글자수 :
193,589

작성
22.05.2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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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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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3. 대본 그리고 배우 (1)

DUMMY

컷 사인과 함께 난입한 사람이 있었다.

정말 정신이 없는 모습으로 뛰어서 들어오는 남자는 감독 데릭의 멱살을 잡으며 말한다.


“데릭! 대본, 아니··· 내 시놉을 뒤집어야겠어.”

“갑자기? 원래 절대 뒤집지 않을 거라고···.”

“어, 근데 생각이 바뀌었어. 아주 좋은 대본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


신이 난 사람처럼 입꼬리를 씨익 올려서 웃는 그의 모습에 데릭이 눈을 찌푸렸다.

아무리 자신의 분야에 진심인 에드윈이 이렇게까지 한다는 건 정말 좋은 생각이 떠오른 것이었다.


“···배우를 불러주세요.”


감독 데릭의 당황스러울 법한 말에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이었다.

어리둥절하게 걸어오는 정의와 달리 싱글벙글한 표정의 윌리엄, 여유로운 다니엘이었다.


“당황스럽겠지만, 대본을 바꾸려고 합니다. 그렇게 많이 바뀌진 않아요.”


당당한 에드윈의 말에 고개를 들은 정의였다.

하지만 다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거나 웃는다.


“케니의 분량과 젠의 분량 조정이 될 것 같아요.”


입꼬리를 올려 웃는 에드윈을 보며 윌리엄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옆에서 지켜보는 온정의만 지금 이런 상황이 적응이 안 되고 있었다.


“몇몇 부분이 고쳐지긴 하겠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어요.”


눈을 반짝이는 에드윈은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온정의를 보며 말한다.

“적어도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을 당신이 해낼 거고, 사람들은 살아있는 케니를 보게 되겠죠.”


어떻게 그런 영화가 망할 수가 있겠어요. 케니.



*



급작스러운 대본 변동에 바빠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당연히 내가 나와야 할 분량은 족히 2배는 넘었다.

그 말은 내가 더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다.


“윌리엄.”

“형! 내 분량 봐라? 나 진짜 많아졌어! 형 덕분이야!”


가대본을 보여주는 윌리엄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사랑스러운 광대가 드러났다.

눈으로 봐도 많아진 분량도 그렇고 진짜 어쩌려고 이렇게까지 분량을 뽑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나저나 아까 작가님이랑 감독님 말 많이 하던데, 괜찮은··· 건가?”


물론 대본이 더 재밌어진 건 맞긴 하지만, 걱정은 걱정이니까.

저 멀리서 이야기를 끝낸 듯 자리를 옮기는 감독 데릭의 모습에 시선을 뗐다.


“케니 들어갈게요!”

“네!”


대본을 내려놓고 뛰어가는 나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바람에 의해 팔락이며 넘어가는 대본에는 케니라고 적힌 이름에 그어진 형광펜들이 보인다.


꽤 많은 페이지가 지나가고 이내 멈춰버린 곳엔 케니의 마지막 말이 적혀있다.


“컷! 수고했습니다, 케니···.”


감독 데릭의 말과 함께 조용했던 촬영장에 활기가 돌았다.

눈물을 흘리던 배우마저도 고개를 들며 자신의 눈물을 닦아낸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감정에 어떤 배우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퇴근합시다!”

“고생했어요! 정!”

“형! 바로 집에 가는 거야?”

“어? 응, 가야지···.”


나 역시도 케니라는 감정을 아직 벗어나지 못했음을.

애써 웃으며 돌아본 곳엔 조명이 꺼지고 사람이 떠나가는 촬영장이 보인다.

여기에 케니의 집이 있었던 것이라곤 상상도 못할 정도로.


“음··· 그럼 번호 줘! 난 형이랑 계속 친하게 지낼 거니까.”


그에 비해 완전히 벗어나서 활짝 웃는 윌리엄이었다.

번호를 받아낸 윌리엄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촬영장에 나타난 자신의 어머니를 향해 뛰었다.


“엄마! 나 오늘 끝났는데, NG를 한 번도 안 냈어요! 아무래도 형 덕분에···.”


어두운 표정을 짓는 윌리엄의 어머니는 말없이 윌리엄의 손을 잡았다.


“오늘 촬영하는 거 다 봤는데, 연기가 많이 묻히더라. 이참에 선생을 바꿔야겠더라. 윌리엄.”

“···네, 엄마. 하지만···, 아니에요.”


윌리엄에게 있었던 미소가 어디로 갔는지 그림자가 져서 어두워진다.

고개를 돌리려다가 제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찍어 보낸다.


“어?”


그러자 뒤돌아보는 윌리엄의 입가에 미소가 가득하다.

아주 기분이 좋은 걸 본 것처럼.


‘약속한 거다?’


엄마에게 혼날까 입 모양으로 말하며 뛰어가는 윌리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직도 핸드폰에 남아있는 보낸 문자를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나중에 같이 밥이라도 먹자. 맛있는 거 형이 사줄게.]


유교 보이 어디 안 가는 건지 같이 밥 먹자는 말밖에 생각이 안 난다.

상대가 웃었으면 된 거라며 애써 고개를 돌리자 아버지가 웃으며 서 있다.


“촬영 잘 봤어. 우리 아들, 진짜 연기 잘하던데?”


엄지까지 치켜세우는 아버지의 모습에 괜히 웃음이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집으로 가요.”

“밥도 안 먹고 연기하더니 이제 좀 배고파?”


그제야 배고팠는지 울리는 배에서 들리는 꼬르륵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던 건 처음이라 당황스러워 얼굴이 붉어진다.


“서연이랑 똑같네.”

“네? 엄마요?”


끄덕이는 아버지의 고개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요즘 따라 보이는 정의 모습에서 서연이 자꾸만 보였다.


-‘사람 우는 거 처음 봐요?’

-‘아뇨, 매번 연극 포스트를 보시면서 우니까 걱정이 되어서···.’


눈물을 소매로 닦으며 포스트에서 눈을 떼고 영호를 보는 서연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때 맞춰서 나오는 연극배우의 모습에 그 시선마저도 빼앗겼다.

그들을 보는 서연의 눈빛에는 감추지 못하는 연기에 대한 열망과 그리움이 묻어났다.


-‘···연극 좋아해요?’


가벼운 데이트 신청에 그녀는 배고픔도 잊고 연극을 보던 모습이 떠올라 피식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결국 그 연극배우들과 친해진 건 물론이고 잠깐 무대 연습할 때 올라가서 조용히 연기하는 모습이 어땠던가.


‘반짝반짝 빛나는 게 배우 하라고 그랬었지.’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정말 단 한 번의 생각조차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나는 재능이 없어. 그냥··· 연기를 좋아할 뿐이지.’

-‘그리고 더는 연기를 하고 싶지도 않고 이젠 그만두고 싶어서···.’


그렇게 서연이 포기한 연기였다.

서글펐던 그 표정에도 많은 사연이 있는 건 결혼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럴 줄 알았다면 절대 배우가 되라고 말을 하지도 않았을 텐데.


그렇게 결혼해서 낳은 아들인 정의는 서연을 닮은 걸 보면 피는 못 속이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왔어? 안 힘들었고?”


맞이해주는 서연을 보며 영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자다 깬 모습이 여전히 사랑스러웠던 탓이었다.

오늘따라 옛날 생각이 나기도 하고.


“자기를 닮아서 연기를 너무 잘해서 칭찬받았지. 자기도 워낙 연기를 잘했잖아.”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마음속에 담아둔 말을 전했다.

하지만 자기 말에 기분 좋게 웃어넘기는 서연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둘 다 재능이 있는데도 믿지 못하는 걸 보면 어떻게 안 닮았다고 말할 수가 있을지.


“우리 아들은 연기를 잘하고 또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될 거야.”


괜히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는 영호였다.

그 말에 의문을 가진 정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한다.


“제가요? 저는 아직 한참 모자란걸요. 그냥··· 연기가 좋아요.”


어떻게 저렇게 똑같을 수 있는지.

가끔은 서연이 아이였다면 저런 느낌일까 들어서 아이를 폭 끌어안았다.


내가 사랑하는 아내가 낳은 아이는 그만큼 소중하고 행복하길 바랐다.

부디 아픔 없이 잘 컸으면 해서 괜히 끌어안고서 머리를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아빠?”

“갑자기 안아보고 싶어서. 많이 불편할까?”

“아뇨! 그냥··· 좋아서요. 아빠.”


당황한 아들이 꼼지락거리는 행동에도 피식 웃으며 더 꽉 끌어안았다.

한껏 철없이 굴고 욕심부려도 좋으니 너무 일찍 커버리지 않길 바라면서.


“고마워, 우리 아들.”

“···저도요, 아빠.”


혹시나 기분이 안 좋은 건지 슬픈 일이라도 있는 건지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어린 아들이었다.

이미 너무 많이 커버린 것은 아닐까, 조금은 슬퍼졌다.



*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온다.

평소라면 오지도 않을 장소였던 만큼 어머니의 손을 잡은 정의는 눈을 깜빡이며 걸었다.


“엄마···?”

“응?”


설명도 없이 걸어가는 어머니의 고개가 자신을 향했다.

어느 누가 보아도 영화 포스트가 가득 붙어있는 이곳은 분명 영화관이었다.

근데 자신이 왜 영화관에 온다는 말인가?


“여긴 왜···.”

“배우는 자기가 어떻게 연기했는지 분석하는 것도 일이야.”


마치 오랜 시간 감췄던 열망을 보여주는 듯이 두 눈이 반짝였다.

갑작스러운 일에 굴러가지 않는 머리를 굴리려 눈을 굴린다.


“한 약속은 지키는 거야. 엄마는 약속을 지켰다?”


나도 잊었던 약속에 입을 벌렸다.

그러고 보니 영화 촬영이 끝난 지도 꽤 되었다.

그 뒤론 하고 싶은 작품도 없기에 쉬었더니 그새 다가온 개봉일을 잊어버렸다.


‘나도 제정신이 아니지··· 그걸 까먹고.’


절대 잊으면 안 되는 걸 잊어가는 것에 당황스러웠다.


진짜 어린아이라도 된 것처럼 이런 걸 잊을 수가 있을까 싶어서.


“연기만 보는 게 아니라 주변도 한번 보렴.”


그런 나를 꾸짖기보다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나씩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진짜 내 어머니와 달리 더 다정하게.

그럴수록 내가 원래 김성현일 때의 부모 얼굴이 흐려지고 있었다.


“그러면 왜 엄마가 널 여기를 데려왔는지 알 테니까.”


맑게 웃는 어머니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들어간 곳에 처음 보는 주황빛의 1인 소파와 사람들이 앉아서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가죽색의 소파에 다리 부분을 빼내어 반쯤 누워있는 사람부터 그냥 앉아있는 사람들까지.


“우와···.”


한국 영화관과는 다른 풍경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자리에 앉아서도 주변을 살펴보며 사람들을 구경하는 날 보며 어머니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엄마가 영화관에선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지?”

“조용히 그리고 장난 안 치고 앉아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 말에 화답이라도 하는 것처럼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야가 어두워지고 밝아지는 순간,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Ghost


짧은 영화 제목과 함께 제작사의 이름이 떠오르고.


-‘아저씨.’

-‘케니···?’


짧은 케니의 목소리와 함께 헤른의 당황한 두 눈이 마주친다.

희미한 미소와 함께 가루처럼 사라지는 케니를 보며 눈을 크게 뜨는 순간 침대 위에서 눈을 뜨는 헤른이었다.


-‘젠장···.’


익숙한 그 꿈, 그리고 보이는 혼자 사는 자신의 방에 누군가 서 있는 모습까지.


-‘···현실이네.’


이제는 익숙해진 나의 현실이었다.

더는 돌아갈 수 없는 꿈같은 세상에 내가 남은 마지막 미련을 잊어야만 했다.


-‘그래서 넌 누구지?’


그를 찾아오는 건 이제 죽은 사람뿐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헤른이었으니까.


작가의말

죄송합니다, 급히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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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배우님은 회귀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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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5. 운명을 바꾸고 싶다 (1) +1 22.06.16 116 6 12쪽
34 33. 생존을 위하여 (5) +1 22.06.15 87 7 11쪽
33 33. 생존을 위하여 (4) +1 22.06.12 100 7 14쪽
32 32. 생존을 위하여 (3) +1 22.06.11 106 7 12쪽
31 31. 생존을 위하여 (2) +1 22.06.09 119 10 12쪽
30 30. 생존을 위하여 (1) +1 22.06.08 120 8 12쪽
29 29. 사랑받은 아이 (2) +2 22.06.07 118 12 12쪽
28 28. 사랑받은 아이 (1) +2 22.06.06 143 12 11쪽
27 27. 김성현 (2) +1 22.06.05 142 14 13쪽
26 26. 김성현 (1) +1 22.06.05 139 14 16쪽
25 25. 꿈 (2) +2 22.06.04 146 13 12쪽
24 24. 꿈 (1) +2 22.06.03 155 11 12쪽
23 23. 평범한 일상 (3) +2 22.06.02 145 15 11쪽
22 22. 평범한 일상 (2) +2 22.06.02 156 14 11쪽
21 21. 평범한 일상 (1) +1 22.06.01 162 13 11쪽
20 20. 미카엘 (3) +1 22.06.01 161 14 13쪽
19 19. 미카엘 (2) +2 22.05.31 165 15 12쪽
18 18. 미카엘 (1) +1 22.05.31 161 14 12쪽
17 17. 주인공 (3) +1 22.05.30 185 11 12쪽
16 16. 주인공 (2) +1 22.05.30 187 17 12쪽
15 15. 주인공 (1) +1 22.05.29 202 17 12쪽
14 14. 대본 그리고 배우 (2) +1 22.05.29 210 19 12쪽
» 13. 대본 그리고 배우 (1) +1 22.05.28 217 23 11쪽
12 12. 천재 소년 (4) 22.05.28 237 21 13쪽
11 11. 천재 소년 (3) 22.05.27 236 17 14쪽
10 10. 천재 소년 (2) 22.05.27 251 17 13쪽
9 09. 천재 소년 (1) +1 22.05.26 276 20 13쪽
8 08. DNA (2) +1 22.05.26 289 21 12쪽
7 07. DNA (1) 22.05.25 302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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