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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름

정의로운 배우님은 회귀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이나름
작품등록일 :
2022.05.21 03:27
최근연재일 :
2022.06.16 19:52
연재수 :
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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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65
추천수 :
632
글자수 :
193,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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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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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6. 주인공 (2)

DUMMY

‘Esper’. 천사와 악마, 신들의 전쟁에 인간은 살아남고 싶었다.

초능력을 가진 이들을 에스퍼라 부르며 우리의 미래라고 불렀다.


비록 그 능력마저도 천사와 악마에게서 흘러나온 것이라고 한들 중요치 않았다.

그게 재앙이 된다고 해도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하나였다.


‘우리가 다 죽거나 신을 죽이는 것.’


그중에 미카엘은 예외였다.

신의 대행자로서 사탄과 싸워 처단하는 것이 미카엘의 주된 임무여서였을까.

인간은 누구보다도 미카엘을 믿었다.


사탄을 처단하고 인간의 편을 들고 우리를 구원해줄 거라고.


“신을 닮은 자라고 불리던 대천사 미카엘이시여.”


그런 마음을 품은 건 금발의 미소년이었던 그의 외향도 한몫했다.

갑옷으로 몸을 감싸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등에는 하얀 날개를 펄럭이며 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그리고 오른손에는 검을, 왼손에는 저울을 들고 용으로 화한 사탄을 짓밟는 그를 어떻게 믿지 않을 수가 있을까.


“부디 사탄을 물리쳐 주시옵고 이 지옥을 끝나길 바라오니···.”


악한 자들을 물리칠 수 있도록 축복을 내려주십시오.


“···그들은 참 웃기지. 어찌 신의 뜻을 이해하지 않는지.”

“미카엘.”

“내 역할은 그저 사탄과 싸워 처단하는 것임을 어떻게 이리 몰라줄까.”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미소를 가진 미카엘은 환히 웃으며 사탄의 흔적이 남는 것이 불쾌한지 발로 부수자 붉은 피가 가득 온몸을 적셨다.

역겨운 피 냄새에 웃으며 그런 흔적들을 훑는 미카엘의 아름다운 금색의 머리칼에 붉은 피가 떨어져 새하얀 바닥을 더럽혔다.


“이 전쟁의 끝은 선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것이··· 신의 뜻이니.”

“나 하나로도 모자랐던가, 미카엘.”

“루시퍼. 그 오만한 입을 조심하도록.”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가 무서울 만큼 상냥하고 따스해서 루시퍼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원래 천사란 그런 존재였다.

정확히는 미카엘은 그런 존재였다.


“···인간만이 모를 뿐.”


그런 천사들을 찬양하는 인간들의 멍청함에 루시퍼는 감탄했다.

자신을 오만의 상징이라고 부르며 막상 제 앞의 적 하나도 알아보지 못하는지.

오늘도 신도 한 명의 절박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신이시여, 제발 우리에게 자비를 주시옵고 고통을 끊어주시길 간절히 비나이다.”


환한 미소를 짓는 미카엘과 비어버린 천사의 신전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들의 바람대로 자비를 위해 사탄의 처단이 시작되었다.

그 자비가 본인이 될 줄도 모르고서 떠드는 꼴이라곤 정말.


“못 봐주겠군.”



*



대본을 덮고 조용히 주변의 시끄러움에 고개를 돌린다.

수군거리는 소리와 함께 말려지는 머리카락, 두피가 따끔거리는 감각이 이상했다.


“엄마는 우리 아들이 다른 아들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어우, 기분이 너무 묘하다.”


온정의 어머니 서연은 조용히 거울 속에 미치는 모습을 한참을 본다.

어릴 때부터 괜찮게 생긴 얼굴인 탓인지 이상하진 않았다.

오히려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백금발과 밝은 갈색 눈동자가 절묘하게 어울렸다.

애초에 백금발이었던 것처럼 잘 어울려서 한참을 만지던 정의는 어색하게 웃었다.


“···원래라면 날라리로 보였을 것 같은데.”


온정의 얼굴은 새삼 대단한 것이 아닐까.


“오늘 리딩 가는 날인데, 따로 떨리진 않고?”


끄덕이는 고개와 함께 리딩을 하러 떠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차에 놓인 대본을 다시 들어서 읽었다.

감독은 얼마 안 지나서 대본을 건네주는 걸 보면 어지간히 빨리 찍고 싶은 것 같다.


“연기는 따로 말 안 해도 되겠지? 엄청 열심히 연습했잖아.”


서연의 말에 정의는 눈을 데구루루 굴리며 어색한 웃음을 흘린다.

안 그래도 정말 열심히 분석하고 잠을 줄여가며 공부했다.


“근데 아들, 바로 촬영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염색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서연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하는 바였다.

리딩을 가는 건데, 머리까지 하고 올 이유가 있느냐는 말에 사실은 할 필요가 없긴 했다.

한 이유는 단순하게도 자신이 남들이 보기엔 낙하산 같아 보인다는 거였다.


“엄마가 배우는 처음이 중요하다고 했잖아요!”


감독은 연기를 보지도 않고 낙점해서 자신을 미카엘로 올렸다.

그렇다 보니까 다른 배우들의 입장에선 연기도 보지 않고 어린아이라서 패스한 인물로 보일 것 같았다.


매번 연기 테스트라도 보겠다는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는 말했다.


-“아뇨, 이미 충분합니다.”


불안함에 더 몰두한 탓인지 밥을 충분히 챙겨 먹었음에도 살이 빠졌다.

본래라면 찌울까도 생각했지만, 오히려 지금의 몸 상태가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착했어, 내리자.”

“네, 엄마.”


내려서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감독의 얼굴엔 기대감이 묻어있었다.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찾는 것 같아서 그를 보며 준비해왔던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당황한 표정과 함께 눈을 비비는 모습에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편안한 한국어에 박정찬 감독은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마주 잡자 짓는 미소와 훑는 그 시선이 무언가 할 말이 많아 보였다.


“혹시 미카엘이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제 이름은 온정의라서요.”


장난스럽게 받아치는 정의를 보며 놀란 눈을 감추지 못했다.

마치 방금은 11살 아이가 아니라 성인 남자처럼 보여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안녕하세요.”


다른 말을 하기도 전에 들어오는 배우들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들의 손을 잡았다.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가서 앉자 꽤 높은 의자의 높이에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어린이 몸은 꽤 고달프네···.”


예전엔 의자에 앉으면 발이 바닥에 닿았던 기억 탓일까.

다리가 붕 떠 있는 감각이 1년 가까이 있었음에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자꾸만 휘적거리는 다리와 함께 그 모습을 귀엽게 보고 있는 어머니 서연과 눈이 마주쳤다.


“···아.”


그제야 자신이 어린아이처럼 행동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다리를 멈췄다.

급하게 자신 앞에 놓인 대본을 펼치며 시작될 리딩을 진지하게 기다렸다.


“다 모이신 것 같네요.”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니 외국인들 사이에서 새삼 자신은 어떻게 연기했나 싶었다.

금방 리딩이 시작되고 집중한 분위기 속에 입맛을 다시며 대본을 펼쳤다.


“대본 리딩 시작하겠습니다.”


미카엘의 차례가 다가온다. 조용히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눈을 천천히 뜨며 바로 자신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남자를 향해 무해한 얼굴로 웃으며 묻는다.


“날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가.”

“영혼의 무게를 재고자 합니다. 천사 미카엘이시여.”


미카엘은 웃던 입매를 싸늘하게 굳히며 자신보다 훨씬 큰 남자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왼손의 저울을 들어 올려 남자와 번갈아 가며 쳐다보는 미카엘의 눈매가 휘어진다.


“최후의 심판을 진정 원하는가.”

“예.”


입가에 미소를 짓는 미카엘은 저울을 들어 올리자 신성한 빛이 뻗어져 나왔다.

자연스럽게 기우는 저울과 동시에 무감한 눈빛은 저울에서 남자로 향했다.


“···저런.”


완벽하게 기울어버린 저울을 보며 고개를 살짝 빼곤 그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신께서는 너를 꾸짖으시기를 바라시는구나.”


그 순간 바닥이 붉게 변하며 기울어지는 몸이 자꾸만 바닥으로 끌어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악한 말 대신에 검을 들어 올린 미카엘의 시선에 그가 비쳤다.


“깊이,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그것 역시 신이 네게 주신 축복이니.”


무너지는 신전, 바닥없이도 새하얀 날개가 펄럭이며 고고하게 서 있는 금발의 미소년이 보인다.

그의 주변은 온통 하얗고 금빛으로 가득 찬 것은 가히 아름답다는 말로 설명이 되지 않았다.


-“인간이여, 무엇이 그리 두려운가.”


처음 들려왔던 목소리도 성스러웠고 전율을 일으킬 정도로 정신을 쏙 빼놓았다.

그렇게 등장한 미카엘의 모습은 저리 아름답지 않았었다.


-“나는 신의 사도이자 네게 축복을 내려주고자 왔으니···.”


그래, 분명 저렇게 아름다울 리가 없었다.

아래로 수없이 떨어지며 보였던 미카엘의 아름다운 외형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기괴하게 펼쳐진 2장의 하얀 날개와 눈과 팔과 다리가 가득한 몸체의 기형적인 천사의 모습이 보였다.


-“나를 두려워하지 말거라.”


기괴한 괴물로 보였던 우리가 천사라고 믿고 미남자라고 믿어왔던 그들의 실제 모습이었다.


“안타까운 인간이여, 너는 지금 내게서 무엇을 보았는가.”


처음으로 보는 웃는 얼굴이 아닌 다른 표정과 마주했다.

떨어지는 동안 쳐다만 보던 미카엘은 같이 떨어지는 속도에 맞춰 날았다.


떨어지는 도중에도 여유롭게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미카엘의 눈을 마주 본다.

그리고 똑똑히 들으라는 것처럼 꾹꾹 누르는 목소리로 답했다.


“당신의 추악한 얼굴을 보았습니다. 천사 미카엘이시여.”


미세하게 금이 가는 얼굴을 보며 엿이나 먹으라고 중간 손가락을 올리며 웃었다.

미카엘의 얼굴에 더는 웃음기라곤 찾아볼 수 없이 매섭게 쳐다본다.

미카엘의 아름다웠던 얼굴은 더는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기에 시원하게 웃었다.


“지옥의 지배자를 형으로 둔 대천사는 왜 신의 편에 섰으면서 루시퍼를 죽이지 못했을까.”


루시퍼를 죽이면 끝날 텐데, 지금까지 싸우고만 있을까.

지옥 같은 전쟁에 수많은 인간과 천사와 악마가 죽어 나가고 있었다.


“당신의 말대로라면 사탄을 처벌하는 것이 당신의 임무일 텐데.”


그렇게 깨끗하고 선으로 가득 채울 세상이라면 가장 먼저 죽여야 할 이는 루시퍼였다.

매서운 눈빛에 이어 얼굴에 미세한 떨림이 눈에 보였다.

여유롭게 바닥이 보이지 않는 추락을 하면서도 입꼬리를 끌어올려 얍삽하게 웃었다.


“이것도 신의 뜻입니까? 아니지···, 신의 뜻이라고 하실 겁니까?”


알량한 마음을 가진 미카엘을 비웃었다.

그는 그저 자기 형을 죽일 수 없는 거였다.

하지만 그의 감정의 동요가 확실히 드러나고 있어서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천사마저도 전부 신의 뜻이라고 말하는 인간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이윽고 말이 없던 미카엘의 굳게 닫혔던 입술이 벌어진다.

눈을 깜빡이지 않는 그의 위화감이 드는 행동에 이어 느리게 말이 이어진다.


“신을 의심하는 것은 반역이라는 것을 아직 모르는가. 신께서는···.”

“저런, 이걸 어떡하나. 난 무교인데.”


혀를 내밀며 얄밉게 표정을 짓던 남자는 그대로 눈을 감고 추락을 선택했다.

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영역에서 어떻게 될 줄도 모르면서 대담하고도 나약한 인간의 도발이었다.


“···사탄을 용서하지 않기로 선택하셨다.”


신성한 하얀 빛이 쏟아지는 검을 올려 그대로 베어버리는 미카엘은 평온했다.

죽음 이후의 관할은 당연히 신의 몫이므로.


“죽어서도 고통을 느끼며 사탄으로서 살았던 과오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에게 있어선 안 되는 낮고 살기를 띤 눈으로 검에 흐르는 피를 허공에 흩뿌렸다.

떨어지는 인간을 보며 감정이 조절되지 않아 입가는 분노에 바들거렸고 눈에 살기가 걷히지 않는다.


사탄을 죽이는 것에 감정을 갖는 것은 불경한 일이었다.

비록 그가 인간이었다고 하더라도.


‘신의 대리인으로서 한 행동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감정을 지울 수 있었다.

본래의 자애로운 대천사 미카엘의 얼굴로 곧게 허리를 펴며 환하게 웃는다.

얼굴에 튄 핏자국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미카엘은 천천히 걸었다.

검에서 떨어지는 핏방울이 그의 발걸음에 흔적을 더해줄 뿐.



*



마지막 대사까지 말하고 나서야 겨우 끝난 리딩에 깊은숨을 토해냈다.

그렇게 별로였나 싶어서 고개를 돌리자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정찬 감독의 올라간 입꼬리가 보였다.


“당신, 진짜···.”


이미 그의 모습에서 내 연기는 합격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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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5. 운명을 바꾸고 싶다 (1) +1 22.06.16 116 6 12쪽
34 33. 생존을 위하여 (5) +1 22.06.15 87 7 11쪽
33 33. 생존을 위하여 (4) +1 22.06.12 100 7 14쪽
32 32. 생존을 위하여 (3) +1 22.06.11 106 7 12쪽
31 31. 생존을 위하여 (2) +1 22.06.09 119 10 12쪽
30 30. 생존을 위하여 (1) +1 22.06.08 120 8 12쪽
29 29. 사랑받은 아이 (2) +2 22.06.07 118 12 12쪽
28 28. 사랑받은 아이 (1) +2 22.06.06 143 12 11쪽
27 27. 김성현 (2) +1 22.06.05 142 14 13쪽
26 26. 김성현 (1) +1 22.06.05 139 14 16쪽
25 25. 꿈 (2) +2 22.06.04 146 13 12쪽
24 24. 꿈 (1) +2 22.06.03 155 11 12쪽
23 23. 평범한 일상 (3) +2 22.06.02 145 15 11쪽
22 22. 평범한 일상 (2) +2 22.06.02 156 14 11쪽
21 21. 평범한 일상 (1) +1 22.06.01 162 13 11쪽
20 20. 미카엘 (3) +1 22.06.01 161 14 13쪽
19 19. 미카엘 (2) +2 22.05.31 165 15 12쪽
18 18. 미카엘 (1) +1 22.05.31 161 14 12쪽
17 17. 주인공 (3) +1 22.05.30 185 11 12쪽
» 16. 주인공 (2) +1 22.05.30 188 17 12쪽
15 15. 주인공 (1) +1 22.05.29 202 17 12쪽
14 14. 대본 그리고 배우 (2) +1 22.05.29 210 19 12쪽
13 13. 대본 그리고 배우 (1) +1 22.05.28 217 23 11쪽
12 12. 천재 소년 (4) 22.05.28 237 21 13쪽
11 11. 천재 소년 (3) 22.05.27 236 17 14쪽
10 10. 천재 소년 (2) 22.05.27 251 17 13쪽
9 09. 천재 소년 (1) +1 22.05.26 276 20 13쪽
8 08. DNA (2) +1 22.05.26 289 21 12쪽
7 07. DNA (1) 22.05.25 302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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