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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름

정의로운 배우님은 회귀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이나름
작품등록일 :
2022.05.21 03:27
최근연재일 :
2022.06.16 19:52
연재수 :
35 회
조회수 :
7,753
추천수 :
632
글자수 :
193,589

작성
22.06.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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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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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글자
13쪽

20. 미카엘 (3)

DUMMY

오늘따라 날씨도 좋아서 이젠 겨울이라는 것도 잊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감기 걸리면 큰일 난다며 목도리에 코트 차림이었다만, 지금 나에겐 너무 더웠다.


“와, 11월 말에 그렇게 입은 사람은 드물 것 같은데.”


메튜는 보자마자 눈사람이 된 나를 보며 웃었다.

차마 아니라고 말을 하지는 못하고 목도리를 풀었다.

아무래도 실내에서 촬영하니까 벗어도 되지 않을까.


“겹치는 촬영분이 없어서 오랜만에 보는데, 소식은 들었어.”

“무슨 소식이요?”


눈을 깜빡이며 메튜를 보자 어깨는 으쓱이며 눈썹을 자유분방하게 씰룩인다.

생긴 것과 다르게 과한 리액션이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네가 이제 감을 잡았는지 그냥 막 연기를 씹어 먹는다던데?”

“제가요?”

“그래, 네가!”


감사하다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모습에 머쓱하게 머리를 쓸어 넘긴다.

작은 애가 90도 인사를 하는 모습이 영 낯설었다.

잘한다고 했으면 그냥 나 잘한다고 뻔뻔하게 할 수도 있을 텐데, 한 번을 넘어가지 않는다.


“이때까지 내가 본 애들은 다 그랬는데···.”


인사를 하겠다며 돌아다니는 정의를 보며 눈을 살짝 찌푸렸다.

이때껏 만나왔던 아이들은 잘한다고 하면 안다며 자기의 역량보다 부풀리는 것이 당연한 거였다.


이 바닥이 쉽게 굴러가는 것도 아니고 약간의 거짓과 허세는 다들 치는 거니까.


“희한하단 말이지···. 한국인은 다 저런가?”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며 돌아서는 메튜였다.



*



미카엘의 제일 중요한 장면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정의는 숨을 고르며 카메라 뒤에 섰다.

그러자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한 아이가 눈을 굴리며 옆에 선다.


웃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고개만 까딱이며 다시 입술을 깨무는 아이였다.


“···.”


인사는 했으니 됐겠다 싶어서 고개를 돌렸는데도 은근하게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린다.

눈이 마주치자 놀라서 고개를 돌리는 아이가 보였다.


의도적으로 어린아이를 구해왔는지 같이 서 있는 정의가 작은 편인데도 옆에 같이 서니 아이가 더 작아 보였다.


“···저기.”


너무 오래 봤던 탓인지 말을 걸어오는 아이는 조심스러웠다.

마치 연예인을 만난 것 같은 소녀 팬과 같은 모습이 보였다.


“혹시 그 나중에 사인받아도 돼요···?”

“사인이요?”


갑작스러운 사인 부탁에 눈을 깜빡이자 거절로 알았는지 입술을 꾹 깨문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생각해본 사인이 없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월드 스타인 메튜의 사인은 필요가 없나?”


때마침 장난기가 넘치는 메튜의 목소리에 옆에 있던 아이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잡상인의 등장도 지금보다 나을 것 같은 얼굴로 보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머리에 손을 얹는다.


“내 사인은 꽤나 받기 어려운 거라고.”

“···벌써 사인만 5번 하셨는데요.”


퉁명스러운 아이의 목소리에 잊었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어색하게 웃는다.

상황을 보면 작품에서 많이 마주쳤지만, 기억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도와주려다가 오히려 역효과로 비호감을 산 메튜였다.


“미카엘, 이안 촬영 준비해주세요!”


그 말과 동시에 다른 성인 남자도 몸을 움직였다.

촬영 내내 말없이 아이 옆에 앉아서 있었던 남자는 피폐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시선이 가는 그의 얼굴을 보며 아이를 본다.

그러자 말없이 서 있던 나이 든 남자가 온정의를 향해 돌아보며 눈을 마주친다.


“···.”

“준비 끝났으면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현장에 서 있는 동안 그에게서 어쩐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었다.

꼭 어디선가 본 것만 같은···.


“스탠바이!”


분명 저런 눈빛을 가지고 있던 사람을 나는 본 적이 있었다.


“액션!”


그래, 내가 아는 그 사람이었다.



*



어디선가 고통에 앓는 소리가 울음에 젖어서 들려온다.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고개를 드는 아이는 고통스럽게 신을 찾았다.


“신, 신이··· 있다면··· 제발, 나타나 주세요.”


귀엽기만 한 아이의 두 눈엔 세상의 무게를 짊어진 것처럼 절망이 가득했다.

목이 찢어져라 소리치는 아이는 신을 찾고 또 찾았다.

처음엔 기도와 애원을 해보고 후엔 악만 남아 소리를 질렀다.


“나타나라고! 내 말이 들리지도 않아?! 나와, 나오라고!”


잠깐 사이에 많은 감정이 오가며 아이는 찾는 신은 날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인정했다.

그걸 인정할 때쯤에야 빛이 쏟아져 내리자 기쁨보다 원망만이 머릿속에 가득 찬다.


“왜, 이제야 오신 거예요? 그랬다면 내가 이렇게 불행할 리가 없었을 텐데!”


원망을 담은 눈이 성스러운 빛과 때가 묻지 않은 하얀 옷을 입은 미카엘에게 향했다.

사탄을 처단하는 미카엘이 온 것은 의아했으나 어찌 되었건 신이 온 것이었다.


비록 귀여운 아이의 모습으로 성스러운 빛이 감싸는데,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얼굴이 괴리감이 느껴진다.

마치 인간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것처럼.


“불행··· 이라.”


그저 자신을 부르던 아이의 눈을 맞추며 비소를 흘린다.

무언가 꿰뚫어 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으나 아이는 멈출 수가 없었다.

이건 다시 오지 않을 기회였음으로.


“네가 말하는 불행은 무엇이지?”


미카엘은 아이가 쉽게 내뱉는 불행을 입에 담으며 물었다.

그의 눈빛에는 엉망이 된 아이를 보는데도 작은 동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빛···.’


오히려 조용히 되묻는 미카엘에게서 그에게만 허락된 빛이 쏟아져 내린다.

단 하나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음에도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그에 침을 꿀꺽 삼키는 아이는 자신의 불행을 말하기 위해 자세를 고쳐 잡았다.

설명하기 위해 허둥대는 손과 눈물이 고인 두 눈으로 빛을 담기 위해 미카엘을 담았다.


“저, 저는 어린 시절 부모를 잃어요. 그 이후 잘했던 공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친척의 집에서 눈치 보며··· 살았어야 했어요.”


미카엘은 말이 없었다.

그러자 조금 더 자신감이 생긴 아이는 더 큰 목소리로 불행을 고했다.


“그러다 절 도와준 친척마저도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사람 죽이는 놈이라고 욕을 먹어야만 했어요!”


기구한 삶이었다.

오로지 빛 하나 없는 암흑 속에 행복 따위는 주지 않겠다는 듯이 연이은 불행은 아이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아이는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비틀었다.


“그래, 그렇게 어린 나이에 사회에 뛰어들었겠지.”


미카엘은 중얼거리며 그의 삶을 이어서 말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는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인생이 너무 불행했다.


“저는 그러다가 코인을 알게 됐고···.”


그 코인은 지인의 말대로 순식간에 돈을 벌게 해줬다.

정말 희망이라는 게 있다고 들 정도로.


생각해본 적도 없던 많은 돈이 수중에 들어오는 삶.

겨우 붙은 중소 회사 그만두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이젠 내 인생에 불행 끝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 잃었겠지.”


그때는 그랬었다.


“저도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서러웠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도 내게 빛 한 줄기도 허락해주지 않는 신이 미웠고 살기 위해 악착같이 버텼다.


“왜···, 왜! 나만 이렇게 불행해야만 하죠?”


한참을 서럽게 울던 아이는 이상함에 고개를 들었다.

숨 막히는 정적과 비이상적으로 감정이 결여된 얼굴이 보였다.

지금쯤이면 어떤 답이라도 동정 섞인 말이라도 나와야 했다.


“···.”


신은 말이 없었다.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제야 숨이 막혀오며 몸이 경직된 것을 느꼈다.


“···그래, 넌 불행만 했구나. 같은 동정을 듣고 싶었나?”


말해야만 했다.

동정이 아니라 나는 정말 불행하기만 했었다고.

정말로 살면서 고통뿐인 삶은 언제나 원망스러웠다고 말해야만 했다.


근데 어째서인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신은 언제나 그만한 행복과 불행을 주었다.”


언제나 신은 똑같은 말만을 했다.

인간에겐 행복과 불행을 같이 주었노라고.

하지만 인간이 이겨내지 못할 불행을 준 것은 신이었다.


창조해냈다면 정확히 버틸 만큼의 불행을 줬어야만 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넌 아주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화목한 가정에 경제적으로도 풍족했다.

모든 것이 당연한 행복 속에서 사랑이 넘치는 부모님 아래에 사랑을 잔뜩 받으면서 살 줄 알았다.


“하지만, 네 나이 14살에 부모님이 사망했고 넌 불행이라고 생각했겠지.”


그렇게 좋은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셔야만 했다.

왜 우리 부모님을 데려가야만 했을까.

몸이 굳어버린 건지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어 눈물이 고였다.


“아버지는 널 지키기 위해 자신 쪽으로 핸들을 틀었고 어머니는 사랑하는 널 끌어안았다. 널 감싸지 않았더라면 두 분은 살았을 거다. 대신··· 네가 죽었겠지.”


자신의 잊었던 기억의 파편이었다.

고통스러워서 내가 정말 부모님을 죽인 것만 같아서.

그래서 지웠었다.

이겨내는 것이 아닌 회피를 선택했던 나의 과거는 여전히 숨이 막혔다.


“그래, 친척이라고 했나. 네가 살았던 친척의 집은 가난했었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었지.”


아무도 어린 날 데려가려고 하지 않았던 친척 중에 유일하게 데려가겠다고 했었다.

날 보면 자식을 죽인 손자라며 고개를 돌린 친가, 외가를 대신해서 거둬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친척이 죽은 건 널 부모 없는 자식으로 키우기 싫어서였다. 제 자식처럼 키우고자 했고.”


그녀는 가난하지만, 공평하게 키우고 싶었다.

눈치를 보지 않길 바라며 조금 더 편하게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무리하기 시작했다.

또래답게, 철없이 살았으면 했었다.


“네가 갖고 싶어 했던 노트북을 사주려면 잠을 줄여야 했겠지.”


그러다 사고를 쳐서 합의금을 물어줘야 했을 때 가장 먼저 뛰어온 사람이 친척 아주머니였다.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해 다크서클이 내려오고 엉망인 아주머니의 모습이었다.

그저 날 위해 고개를 숙였고 없는 돈을 탈탈 털어서 합의금을 내야만 했다.


“넌 생일 선물로 노트북을 받았고 그 대가로 죽음이 앞당겨졌다. 잠을 안 자고 밥을 줄이면서 쉬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겠지.”


그런데도 생일이라며 선물을 줬다.

웃으면서 이제 곧 대학 갈 텐데, 필요할 거라고.


“널 사람 죽이는 놈이라고 했다던가. 그래서 넌 그들이 준 돈을 안 받았나?”


나른한 목소리가 날이 선 것처럼 들려왔다.

명백하게 드러나는 진실에 이가 떨려왔다.


그 돈으로 철없이 술을 마셨다.

제정신이 아닌 시간이 더 많을 정도로 마시고 또 마셨다.


“운 좋게 중소회사에 취업했으나 지인이 코인을 투자하라고 해서 잠깐은 많이 벌었겠지.”


하지만 벌고 나니 욕심이 생겼다.

어쩌면 부자가 될 기회라고 전 재산을 다 부었다.


“신은 끝없이 네게 행복을 주었고 또 기회를 주었다.”


말을 잃은 아이는 미카엘의 눈에 주름진 얼굴과 손, 생기를 잃은 눈으로 고개를 숙였다.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나 널 살리는 부모가 네 첫 번째 행운이었으며.”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굳었던 몸이 힘이 풀려 무너진다.


“널 공평하게 아껴주며 키워주던 친척이 두 번째 행운이었고.”


막혔던 숨이 트인다.


“많은 돈을 쥐여준 것이 세 번째 행운이었다. 네 행복을 위해 많은 기회가 네게는 존재했다.”


마지막 흐르지 못하고 고였던 감정들이 무너졌다.

모든 것이 내가 불행으로 이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의 탓이라도 해야 살아갈 수 있었던 지난 시간이 해일처럼 덮쳐왔다.


“넌 아직도 불행했다고만 할 것인가? 행복도 없었고 기회조차 없었던 불행한 삶이었다고?”


나이가 들어 주름지고 굽은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하는 이가 소리를 내 울음을 토해냈다.

날 과분할 정도로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 놓쳤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넌 불행하지 않았다. 넌 그들을 살릴 수 있었고 행복해질 수 있었어. 네가 놓친 것뿐.”


피하고 싶었고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진실을 알렸다.

돌아서서 가는 그의 뒤로 핏물이 바닥을 적셨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인간의 모습이었다.


“···.”


하나의 사탄이 죽은 모습을 보며 미카엘은 고개를 돌렸다.

인간은 스스로 정화를 선택했을 뿐이었다.

그러니 이런 일에 동요할 필요는 없었다.


미카엘은··· 그런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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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5. 운명을 바꾸고 싶다 (1) +1 22.06.16 116 6 12쪽
34 33. 생존을 위하여 (5) +1 22.06.15 87 7 11쪽
33 33. 생존을 위하여 (4) +1 22.06.12 100 7 14쪽
32 32. 생존을 위하여 (3) +1 22.06.11 105 7 12쪽
31 31. 생존을 위하여 (2) +1 22.06.09 119 10 12쪽
30 30. 생존을 위하여 (1) +1 22.06.08 119 8 12쪽
29 29. 사랑받은 아이 (2) +2 22.06.07 118 12 12쪽
28 28. 사랑받은 아이 (1) +2 22.06.06 142 12 11쪽
27 27. 김성현 (2) +1 22.06.05 142 14 13쪽
26 26. 김성현 (1) +1 22.06.05 139 14 16쪽
25 25. 꿈 (2) +2 22.06.04 146 13 12쪽
24 24. 꿈 (1) +2 22.06.03 154 11 12쪽
23 23. 평범한 일상 (3) +2 22.06.02 145 15 11쪽
22 22. 평범한 일상 (2) +2 22.06.02 155 14 11쪽
21 21. 평범한 일상 (1) +1 22.06.01 162 13 11쪽
» 20. 미카엘 (3) +1 22.06.01 161 14 13쪽
19 19. 미카엘 (2) +2 22.05.31 164 15 12쪽
18 18. 미카엘 (1) +1 22.05.31 161 14 12쪽
17 17. 주인공 (3) +1 22.05.30 185 11 12쪽
16 16. 주인공 (2) +1 22.05.30 187 17 12쪽
15 15. 주인공 (1) +1 22.05.29 201 17 12쪽
14 14. 대본 그리고 배우 (2) +1 22.05.29 210 19 12쪽
13 13. 대본 그리고 배우 (1) +1 22.05.28 216 23 11쪽
12 12. 천재 소년 (4) 22.05.28 237 21 13쪽
11 11. 천재 소년 (3) 22.05.27 235 17 14쪽
10 10. 천재 소년 (2) 22.05.27 251 17 13쪽
9 09. 천재 소년 (1) +1 22.05.26 275 20 13쪽
8 08. DNA (2) +1 22.05.26 289 21 12쪽
7 07. DNA (1) 22.05.25 302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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