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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름

정의로운 배우님은 회귀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이나름
작품등록일 :
2022.05.21 03:27
최근연재일 :
2022.06.16 19:52
연재수 :
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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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47
추천수 :
632
글자수 :
193,589

작성
22.05.30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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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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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7. 주인공 (3)

DUMMY

가끔 있을 수 없는 걸 해내는 사람이 있었다.

천재임에도 본인이 천재라는 걸 몰라서 해낼 수 없는 것을 해내고도 뭔지 잘 모르는 사람이 꼭 나오기 마련이었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들어보기만 했기에 말을 들었을 땐 그저 먼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신을 의심하는 것은 반역이라는 것을 아직 모르는가. 신께서는···.”


어린아이의 몸에서 나올 수 없는 무게가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신나서 발을 구르던 아이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앞에 앉아있는 건 순수한 아이의 얼굴을 하고서 피부로 느껴질 만큼 차가웠다.


“···사탄을 용서하지 않기로 선택하셨다.”


지독하게 무정한 신의 얼굴을 하고서.


“죽어서도 고통을 느끼며 사탄으로서 살았던 과오를 깨닫게 될 것이다.”


아이는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듯이 말을 하지만 반대로 입가가 바르르 떨려오고 있었다.

공허한 눈과 반대된 느껴지는 분노가 한순간에 가라앉자 무거웠던 공기가 풀어진다.

절로 같이 숨을 내뱉을 만큼 편안하게 연기를 하는 아이를 보며 그는 알 수 있었다.


‘저 아이는··· 천재다.’


그렇게 선배들이 부러워하고 좌절하고 은퇴를 고민했던 건 남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자신은 재능이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감정을 어떻게 저렇게 어린아이에게 느낄 수가 있을까.


“후···.”


주변에서 절로 나오는 한숨과 긴장된 표정에 그 생각은 본인만 한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더 해주었다.

저 아이는 지금 팽팽하게 제 앞에 있는 주인공의 대사가 묻힐 만큼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다.


겨우 11살짜리 어린아이가.


“오.”


요즘 가장 바쁘다던 메튜는 곡소리를 내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그의 녹안이 정의를 분석하려는 듯 바쁘게 움직였다.


“···좀 하는데?”


그러면서 자신이 순간 밀릴 뻔했다는 사실에 조금 어이가 없는지 잿빛이 도는 금색의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평소 인기가 많고 실력파라고 소문난 그에게서 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꼬마, 너 연기 잘한다?”

“네?”

“완전 연기로 날 잡아먹을 기세던데? 어떻게 저런 체구에서 저런 연기가 나오는 거지?”


메튜는 신기하다며 눈을 반짝였다.

그러면서도 알 수 없는 승부욕에 지어지는 미소가 감추지 못하고 흘러나왔다.


“너 저번 작품에 같이 한 사람 이름 기억해?”

“네, 다니엘 씨 아세요?”

“알지, 걔가 뭐래? 너 연기 좀 친다고 안 해?”


갑작스러운 친근한 척이 당황스러워 눈을 데굴 굴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다니엘이 했던 말을 떠올려 보았지만,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음, 없었어요.”


그저 평소에 내게 웃으면서 케니라고 장난스럽게 불렀던 것만 빼면 딱히 문제도 없었다.


“다니엘, 그 자식은 나한테 이렇게 재밌는 상황을 안 알려주고 있었다는 거지?”


혼자 열심히 중얼거리던 메튜는 흥미로움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훑었다.

그 눈빛이 무언가 불길한 느낌에 절로 눈이 찌푸려졌지만, 상대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꼬마, 너 이름이 뭐야?”


뻔히 이름표가 테이블 위에 놓여있음에도 이름을 묻는 메튜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온정의요.”

“윽, 발음하기 힘들겠는데? 옹정···.”


혀가 꼬인다는 듯 웅얼거리는 메튜는 혀가 쥐가 나는지 미간에 주름이 졌다.


“온이나 정이라고 부르세요.”

“그래! 훨씬 부르기 편하네. 애칭 같고 좋은데?”


손을 뻗는 메튜의 밝은 얼굴에 손을 마주 잡자 기다렸다는 듯이 꽉 잡는다.

작은 손이 그의 커다란 손이 겹쳐지자 자신이 아주 어리다는 걸 알 수 있게 만들었다.


“꼬마, 현장에서 기대할게. 나도 절대 안 밀릴 테니까!”


잡은 손을 물끄러미 보던 정의도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빼내었다.

어찌나 보는 눈빛이 불에 타오르던지 누가 보면 경쟁자로 보는 줄 알았다.


“자, 집에 가자.”


어머니의 손을 잡고 걸어가다 말고 고개를 돌려서 바라본 메튜의 눈빛이 여전히 열정이 느껴진다.

뭔가 진짜 경쟁자로 보는 것 같은 순수한 연기에 욕심이 느껴졌다.


‘나도 저렇게 열정적이었던 때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당시에는 저런 시선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그런 열정을 불태우며 이기고자 했던 기억뿐이었다.

그래도 혹시, 혹시라도 내가 그에게 경쟁자로 느낄 만큼 연기를 잘했다면.


“···에이, 설마.”


나는 아직 어린아이의 몸에 연기도 그렇게 잘하지 못하는데, 그럴 리가 없었다.

고개를 돌려 걸어가는 내내 건물에 있는 거울로 어린 온정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럴 일은 없다.

자신은 온정의에 비해 연기는 한참 떨어지는 수준이었음을 알았다.


“우리 아들, 연기 되게 잘하던데?”

“아직 한참 모자라요. 다 이길 때까지 열심히 할 거예요!”


애써 웃으며 어머니에게 어린아이다운 답을 내보였다.

그러자 당연히 웃으면서 노력하라고 답해야 할 어머니의 표정이 조금 굳었음을 느꼈다.


“···그래, 열심히 이기자! 오늘도 집에서 연기 연습할 거지?”

“네!”


고개를 끄덕이는 내 얼굴을 만지던 어머니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분명 밝게 말하지만, 왜인지 자신을 보는 눈빛이 안쓰러워하는 것도 같았다.

이렇게까지 지원해주고 연기를 하는 내게 그런 시선을 보낼 필요가 없는데도.


“정의는··· 정말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되겠다.”


잠깐이지만 눈물이 보였던 것 같았다.

잘못 봤겠지만, 만약 울었다면 왜 우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연기를 하면서 아들이 행복해하는데, 대체 왜 우는 건지.


‘혹시 열정에 비해서 연기를 못해서 그런가?’


나는 집으로 가는 내내 어머니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해서 연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럴 때마다 애써 감정을 참는 얼굴을 마주했다.

도저히 오늘은 어머니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



찰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소란스럽게 들려오는 웅성임과 동시에 플래시가 터진다.

포스트 촬영에 처음 나와 본 온정의는 주변을 살피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항상 엑스트라에 비중 없는 조연만 맡다 보니 이렇게 올 일도 없었다.


“아, 온정의 따라온 적은 많긴 했네.”


워낙 연기를 잘하고 인기도 많은 온정의였기에 포스트 촬영은 항상 있었던 일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자신이 비중 있는 배역을 맡아서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절로 신이 나서 발걸음이 빨라지고 통통 뛰면서 걷게 된다.


“왔어?”

“아, 메튜.”


메튜는 한껏 치장한 탓인지 리딩 때와는 다르게 진짜 배우라는 느낌이었다.

약간 흐트러진 머리, 메이크업 탓인지 가려졌던 퇴폐적인 느낌도 나는 오묘한 매력이 있었다.


“되게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야 하는 주인공이라면서 이렇게 해놨다니까?”


제멋대로이며 자유로운 듯한 그의 느낌은 평소와는 전혀 달랐다.

평소의 메튜라면 절대 입지 않을 스타일이었다.

셔츠만 입는 메튜의 항공 점퍼가 이상한 듯 조금 어색하게 움직인다.


“와인이나 먹을 것 같은 사람에게 이런 복장이라니···.”


복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표정을 구기다가도 눈을 마주치면 웃는 메튜였다.

사람이 좋다고 해야 할지 이상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백금발에 흰색인 정은 또 느낌이 다르긴 하네.”


메튜는 정의를 내려다보며 신기하다고 말하는 중이었다.

안 그래도 자신에게 입혀진 하얀 정장 차림에 백금발이 어색하긴 했다.


“···어린애가 어른을 따라 하는 것 같지 않아요?”


그 말대로 어린아이가 어른을 따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순수한 어린아이가 모티브라며 죽어도 이렇게 입어야 한다는 말에 따라 입긴 했는데.


“미카엘이라고 생각도 못 할 정도로 귀여운데?”


머리를 쓰다듬으며 귀엽다고 말하는 그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카엘의 이미지는 귀엽기만 해서는 안 됐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내 모습은 어느 누가 봐도 무해해 보였다.


“의아하죠? 왜 그렇게 입는지?”


익숙한 한국어에 고개를 돌린다.

자연스럽게 스튜디오를 활보하는 박정찬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보인다.


“어린 제가 생각하던 미카엘은 그런 모습이었어요. 뭔가 서구적일 것 같지만, 사실상 동양인 같았고 순수함과 귀여움이 묻어났거든요.”


과거를 떠올리는 것처럼 입가에 은은한 웃음기를 감추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주변의 시선을 피해서 고개를 숙여 작게 속삭인다.


“처음은 그냥 가벼운 날 투영했고 또 흔하지 않은 동양인 꼬마였으면 좋겠단 생각했죠.”


단지 그것뿐이었어요.

내 어린 시절 꿈의 시작은.

그렇게 말한 박정찬은 사진 잘 찍어달라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응원의 말만 던지고 걸어갔다.


“바로 다음 차례가 꼬마 네 차례래.”


메튜는 흐트러진 머리가 눈 앞을 가리는지 머리를 쓸어 넘기며 걸어온다.

그런 메튜를 향해 나는 돌아보며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물었다.


“메튜, 이 작품이 한국에도 알려질까요?”


박정찬 감독은 한국에서 유명한 감독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도 이 영화가 알려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성공하고 싶었던 한국에 가지 않고도 뜰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너무 큰 기대인가···.’


메튜는 한참을 말없이 서서 바라보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메튜답게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로 내 질문에 답을 한다.


“알려지긴 하겠지. 그래도 한국에서는 그렇게 인기 있진 않을 거야.”


난 이유를 메튜에게서 듣지 않았음에도 무슨 말인지 이해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에서 잘 나가던 감독이 갑자기 미국으로 향해서 작품을 찍는다.


‘충분히 그럴 수 있지.’


그것도 원래라면 좀 훗날에 찍었어야 했고 외국에서 성공했던 작품도 이 작품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불확실했지만, 그의 말과 성공했던 미래를 믿었다.


“나야 워낙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기도 하지만···.”


대답이 없는 정의를 위해 눈을 굴리며 좋은 말을 해주려 말을 흐리는 메튜였다.

서툴고 머뭇거리면서도 열심히 기분을 나쁘지 않게 하기 위해 말을 잇던 메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널 보면 한국인들은 연기를 잘할 것 같은 느낌도 들긴 하지.”


그동안 다니엘을 만나기 위해 정말 바쁘게 뛰어다녔다.

워낙에 만나기 어려운 배우여서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사실 연기 연습보다 다니엘 찾는 것에 더 노력했다면 누가 믿을까.


“어째서요?”

“뭐, 그거야···.”


저렇게 어린 꼬마가 궁금해서 같이 연기를 했던 배우를 찾는다는 게 솔직히 말이 안 됐다.

하지만 그 결과 다니엘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이 남는다.


-‘···걔는 천재가 아니야.’


정의는 지금도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순진한 얼굴과 어린 외형과 달리 많은 생각과 생각에서 이어지는 행동, 연기는 절대 어린아이의 것이 아니다.


“···한국인은 성실하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아니까?”


거기에 대고 면전 앞에서 너 이상하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정, 너는 뜰 거야. 그 연기를 그대로 실전에서도 담아낸다면 말이지.”

“그때보다 훨씬 더 잘해야 하는데···.”


답답한 심정에 고개를 푹 숙이고 포스트 촬영을 위해 걸어가는 온정의 뒤를 보며 한숨을 내쉰다.

정말 다니엘의 말대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본인이 천재라는 건··· 그래, 모를 수도 있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본인 스스로가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모를 수 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가 천재가 아니라고 했다.


-‘연기를 위해 살아난 사람처럼 연기를 해. 근데··· 그게 연기하는 상대 입장에서도 현실처럼 느껴지게 만들어.’


다니엘은 아직도 자기가 헤른인 것 같기도 하다며 웃었다.

가끔 케니가 아른거린다며.


“아직 어리고 실전 경험이 모자라니까···.”


자신은 질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천재라도 막상 현실과 이론의 차이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래, 그게 정상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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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배우님은 회귀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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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5. 운명을 바꾸고 싶다 (1) +1 22.06.16 115 6 12쪽
34 33. 생존을 위하여 (5) +1 22.06.15 87 7 11쪽
33 33. 생존을 위하여 (4) +1 22.06.12 100 7 14쪽
32 32. 생존을 위하여 (3) +1 22.06.11 105 7 12쪽
31 31. 생존을 위하여 (2) +1 22.06.09 118 10 12쪽
30 30. 생존을 위하여 (1) +1 22.06.08 119 8 12쪽
29 29. 사랑받은 아이 (2) +2 22.06.07 118 12 12쪽
28 28. 사랑받은 아이 (1) +2 22.06.06 142 12 11쪽
27 27. 김성현 (2) +1 22.06.05 142 14 13쪽
26 26. 김성현 (1) +1 22.06.05 139 14 16쪽
25 25. 꿈 (2) +2 22.06.04 146 13 12쪽
24 24. 꿈 (1) +2 22.06.03 154 11 12쪽
23 23. 평범한 일상 (3) +2 22.06.02 145 15 11쪽
22 22. 평범한 일상 (2) +2 22.06.02 155 14 11쪽
21 21. 평범한 일상 (1) +1 22.06.01 161 13 11쪽
20 20. 미카엘 (3) +1 22.06.01 160 14 13쪽
19 19. 미카엘 (2) +2 22.05.31 164 15 12쪽
18 18. 미카엘 (1) +1 22.05.31 161 14 12쪽
» 17. 주인공 (3) +1 22.05.30 185 11 12쪽
16 16. 주인공 (2) +1 22.05.30 187 17 12쪽
15 15. 주인공 (1) +1 22.05.29 201 17 12쪽
14 14. 대본 그리고 배우 (2) +1 22.05.29 210 19 12쪽
13 13. 대본 그리고 배우 (1) +1 22.05.28 216 23 11쪽
12 12. 천재 소년 (4) 22.05.28 237 21 13쪽
11 11. 천재 소년 (3) 22.05.27 235 17 14쪽
10 10. 천재 소년 (2) 22.05.27 251 17 13쪽
9 09. 천재 소년 (1) +1 22.05.26 275 20 13쪽
8 08. DNA (2) +1 22.05.26 288 21 12쪽
7 07. DNA (1) 22.05.25 301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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