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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름

정의로운 배우님은 회귀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이나름
작품등록일 :
2022.05.21 03:27
최근연재일 :
2022.06.16 19:52
연재수 :
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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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2
글자수 :
193,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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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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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7. DNA (1)

DUMMY

최서연은 어린 시절부터 배우로 유명한 아버지가 존경스러웠다.

TV에선 항상 아버지가 나오는 것이 당연했고, 자신도 어느 순간부터는 아버지처럼 되고 싶기도 했다.


-‘전 아빠처럼 배우가 될 거예요! 엄청 유명한 배우요!’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웃으며 다정히 머리를 쓰다듬곤 했다.

기쁘면서도 씁쓸한 그 얼굴을 어린 서연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대충 집에 자주 오지 못하는 단점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 정도로 서연에겐 아버지는 우상이고 행복이었으며 장점도 없는 제게는 큰 장점이었다.


-‘딸, 아빠는 네 꿈을 응원해. 하지만··· 아빠는 네가 평범했으면 좋겠어.’


씁쓸한 얼굴로 다독이는 아버지의 말처럼 되는 난 꿈을 이루지 못했다.

조금씩 크면서 알게 된 진실은 자신에겐 배우로서의 재능은 하나도 타고나지 않았다.


-‘꼭 연기가 아니더라도 하고 싶은 건 다 하게 해줄 수 있어. 그러니까···.’


어느 날, 아버지는 내게 연기의 꿈을 접을 것을 권했다.

뭔가 보기라도 한 사람처럼 하얗게 질려서 말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던 서연은 불안한 만큼 큰소리를 쳤다.


-‘전 연기가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왜 꿈을 포기하라고만 하세요···? 제가 결정한 길이라고, 제가 하고 싶은 거라고 계속, 계속 말씀을··· 드렸잖아요.’


당연히 아버지처럼 클 거라고 꿈을 키웠던, 이젠 무너진 나의 꿈과 현실은 한계에 다다랐다.


나도 알고 있었다.

그저 아버지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 계속해서 붙잡고 있다는걸.

마음이라는 그릇은 시간이 갈수록 금이 가고 마음들이 새어 나왔다.


-‘널 위해서 그래, 충분히 너와 아내를 위해서 돈을 벌었으니 다른 길로 가는 것도···!’


오늘에서야 그릇이 완전히 깨져버려 줄줄 새어 나오는 마음을 난 더는 막아낼 수 없었다.

차곡차곡 모아뒀던 만큼 쏟아지는 마음은 상처를 낼 줄 알면서도 멈출 수 없다.


-‘아버지가, 아버지가 언제 가정에 충실하셨는데요? 항상··· 가족보다 연기가 중요하신 분이시잖아요. 그냥 아버지에겐··· 연기가 더 중요하시잖아요.’

-‘딸···.’


항상 바쁘고 피곤한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나가서 놀지도 못했던 아버지.

그래서 난 가끔은 아버지가 유명하지 않길 바랐던 나의 어린 시절들이 스쳐 지나갔다.


-‘더는! 더는··· 도와주지도 않을 거면서 돕는단 말 하지 마세요. 아버지는 그저 평소처럼 좋아하시는 연기 하시고 그렇게······ 평생 사세요. 저도 이젠 바라지도 않을 테니까.’


아버지는 내게 상처받았는지 고개를 숙인 채 내게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사실 피곤한 얼굴로 다른 진로를 권하던 아버지의 말은 결국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난 아버지의 말대로 실패자였고 결국 연기를 그만둬야만 했다.


-‘연기를··· 접으셨다고요?’


하지만 아버지는 갑작스럽게 나와 비슷한 시기 연기를 그만뒀다.

집안에 홀로 틀어박혀서 바깥을 잘 나가시지 않았고 나는 그런 아버지를 볼 때면 기분이 안 좋아 집을 나갔다.


그렇게 1년, 아버지는 잠깐 후배를 보겠다고 나가서 새벽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최상철 따님 맞으십니까? 사망 소식을 알려드리려고 연락드렸···.’


잠들었던 내게 온 전화에 핸드폰을 그만 놓치고 말았다.

떨어진 핸드폰에선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기의 천재라 불리던 아버지답게 촬영장에서 죽었단 말이 들려왔다.


배우 최상철의 인생을 내가 망쳤다.

내가 그만두라고 해서 죽은 거다.

차라리 연기를 하게 계속 뒀다면 죽지 않았을까?


-‘아이고, 죽기 직전에 연기가 하고 싶었나··· 왜 촬영장에서 죽었대?

-‘내가 어떻게 알어? 아비가 모아둔 돈도 있겠다. 모녀 둘이서 풍족하게 살겠지. 부럽네.’


까득-


손톱을 물어뜯는 소리가 방안에서 울렸다.

불안감은 날 갉아먹고 한국에선 내가 최상철 딸임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더 이상 이길 수 없는 아버지의 비교를 나는 견뎌낼 수 없었다.


그렇게 도망치듯이 한국을 떠난 내게 어떻게 생긴 가족인데, 다시 배우라니.


“벌을 이렇게 주시는 게 어딨어요···.”


아들을 계속 배우를 시키면 아버지처럼 될 것 같아서, 그렇다고 못하게 막으면 말라죽을 것만 같았다.

그런 내가 할 수 있는 결정은 애석하게도 피하는 방법이었다.


“아이에겐 이게 최악인 거 알면서도···.”


도저히 온정의 영상을 누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엄마가 되어서도 여전히 겁쟁이였다.



*



조용한 집안의 풍경, 홀로 거실 소파에 앉아서 독서를 이어가는 정의에게 아버지가 걸어온다.

어머니가 멀어진 만큼 가까워진 아버지는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었다.


“엄마가 오늘도···.”

“네, 바쁘다는 말 들었어요. 괜찮아요, 아빠.”


아버지의 씁쓸한 눈빛이 안쓰럽다며 머리를 쓰다듬는 그 손길에 나는 묻지 않았다.

어차피 온정의는 먼 미래에 연기를 하게 될 테니까,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연기를 위해 거쳐 가는 관문, 본래의 온정의도 겪은 일이다.


“안 그래도 이거 보여주려고 했는데···.”


아버지는 뒤에 숨겼던 것을 꺼내 내게 보였다.

대본으로 보이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날 어떻게 알고 대본이 들어올까.

아마 아버지가 보라고 구해서 온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감사합니다.”


아무렇지 않게 받으려고 내민 손이 멋쩍게 팔을 들어 올려 못 잡게 하는 아버지였다.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 눈을 깜빡인다.


“이거 유명한 감독이 꼭! 전해달라고 한 대본이야.”

“저한테 온··· 대본이요?”


그제야 눈에 들어온 대본이었다.

비록 영어로 가득한 대본이었다만, 모국어처럼 보이니 괜찮았다.

XIS 때부터 느낀 거지만, 몸의 기억으로 영어가 술술 읽히는 것이 신기했다.


“그래서 온정의가 그때도 영어는 잘했던 건가···.”


그러고 보니 새삼 온정의에 대한 과거가 알려진 것이 없다는 생각에 의아함을 품었다.

외국이 아니라 한국에서 쭉 살았다고 들었는데···.


“아들?”

“네??”

“말 하나도 못 들었나 보네. 같이 연기해보고 싶다고 대본을 보고 결정하라고 했어.”


새하얀 대본에 커다랗게 찍힌 잉크를 따라 손가락으로 훑었다.

‘Ghost’ 짧고 간단한 제목에 한 장을 넘긴다.

탄탄하게 짜인 영화라는 걸 알 수 있는 에피소드까지.


“···아빠, 내 역할로 추천한 게 혹시 케니인가요?”


내 입에서 나온 말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아버지의 고개가 끄덕였다.

씁쓸하게 케니의 이름이 적힌 부분을 만진다.


“전··· 당장 하고 싶어요.”


입꼬리를 올려 웃는 온정의 얼굴을 보던 아버지 온영호의 얼굴이 활짝 미소가 지어졌다.

온영호는 미국에서 나고 자랐지만,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의 사이에 태어났다.


그래서일까 온영호를 쏙 빼닮은 밝은 갈색 머리칼과 눈동자가 햇빛에 반짝였다.

피는 못 속인다고 해야 할지 안타깝기만 했다.


“근데··· 엄마가 허락할까요?”


그 말에 차마 다른 말을 못하고 입을 우물거리던 아버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하고 싶다는 걸 보여주면 허락할 거야.”

“···네.”


만지작거리는 대본이 간절한지 작은 손이 바르르 떨려오고 있었다.

그게 왠지 아내 최서연과 너무 많이 닮아있는 것 같아서 온영호는 애써 웃어 보였다.


“연기 분석할 우리 온정의 배우님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아야겠지?”

“네!”

“그럼 아빠는 우리 배우님의 연기를 응원하고 있을게.”


작은 머리통이 끄덕이며 나름대로 결심을 한 얼굴로 대본을 품에 안고 자기 방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은 온정의는 대본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의자에 앉는다.


“어떤 감독이 나한테 이걸 맡길 생각을 하겠어···.”


귀신을 자주 보는 주인공에게 처음으로 나타난 아이 케니는 항상 몸이 아팠고 그래서 집, 마당뿐인 곳에서 생활했다.

가끔 선로에서 놀기도 했지만, 그건 하나의 놀이였고 위험하다는 걸 인식했다.


“그 케니는 하나의 감동 에피소드로 사용될 주인공 서사의 시작일 뿐···.”


그렇다고 해도 아이가 하기엔 너무 감정이나 전달해야 하는 말들이 많았다.

대충 아이를 갖다 쓰기엔 도입부가 제대로 살아나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래서 나한테까지 왔구나.”


비록 내가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만···. 안타까운 일이었다.

생각보다 재밌는 영화인데, 어머니를 설득하지 못한다면 진짜 틀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 인생이 아니라고 막살아도 되는 건 아니니까.’


대본을 훑어본 나는 조용히 대본을 덮고 어두워지는 창밖 풍경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어머니와는 대화를 해봐야겠다고.


“엄···.”


탁-


쌩하고 누군가 들어가고 닫히는 방문의 소리가 들려온다.


“학교에서···!”

“미안, 엄마가 좀 바쁘네···.”


급하게 현관문 밖으로 뛰어나가는 어머니 최서연의 뒷모습이 보인다.


“시험 100점···.”

“엄마가 지금 급한 업무 통화라서··· 나중에 이야기할까?”


내쫓기듯이 나가자 닫히는 방문에 눈을 찌푸리고 조금 있다가 다시 들어가야겠다고 그 앞에서 서 있었다.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이 잠금 버튼이 눌리는 소리에 허탈하게 서서 문을 바라본다.


그렇게 어머니의 통화는 4시간이 지나도 끝이 나지 않았고 밤이 되어서야 열렸다.


“···엄마.”


그때까지 기다렸던 나를 보면서 급하게 또 발걸음을 이동하는 모습에 그만 눈을 찌푸렸다.

내가 무슨 전염병이라도 되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내일도 학교 가야 하는데, 일찍 자.”


바로 뒤돌아서 도망치는 어머니의 모습이 화장실 문이 닫히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유도 안 알려주는 건 뭐냐고.”


나는 다른 것보다 이게 제일 크게 남는 답답함이었다.

이건 내 일인데도, 온정의 어머니는 아직도 어린 온정의에게 말을 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어린이였다면 어땠을까.


‘속상했겠지···.’


그러다 자신을 피하는 엄마에게 관심받고 싶어서 온갖 짓을 다 했을 것 같았다.

어린 온정의는 실제로 그랬을지는 모르겠다.


“잠이 안 와?”

“아···.”


익숙한 아버지 목소리에 애써 아닌 척 웃었다.

준비가 안 된 건 처음부터 내가 아니라 어머니 최서연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그녀도 엄마는 처음일 테니까.


“아뇨, 그냥··· 목말라서요. 아빠.”


괜한 걱정하게 만드는 건 싫어서 냉장고로 향하는 온정의이었다.

그러자 고개를 돌려 화장실을 본 아버지의 표정이 어둡게 그늘이 내려앉았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해. 아빠가 해결할게.”


나는 아버지의 말이 이해되지 않아 눈을 깜빡인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다고 중얼거리는 아버지의 모습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뭔지 몰라도 도와준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



일주일 뒤 저녁, 평소와 달리 어머니는 식탁에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지금 시간대면 야근하겠다고 나갔어야 할 시간이었음에도 앉아있는 모습에 눈을 커다랗게 뜬다.


그런 정의를 보며 입꼬리를 올려 웃는다.

그건 아버지가 만족스러울 때 나오는 웃음이었다.


“···엄마 옆에 앉아있어, 오늘 요리는 아빠가 직접 해야만 하거든.”


은근슬쩍 어머니 쪽으로 미는 행동에 눈을 깜빡인다.

지금 어머니는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은 시한폭탄 같았다.


“···하.”


어머니의 한숨 소리와 함께 얼어붙은 분위기에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정의 행동에 서연은 느리게 감았다 뜨며 식탁 위에 대본 하나를 올린다.

온정의가 닳도록 읽고 또 분석하며 필기해둔 ‘Ghost’ 대본이었다.


“허락할 테니까 해···.”

“···진짜요?!”


당황한 나머지 벌떡 일어나 입을 틀어막은 정의는 두 뺨에 홍조를 띄웠다.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한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깨를 두드리는 사람은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너무 힘들거나 무리가 된다면 못하게 할 거야. 성적도 떨어지면 안 돼!”


반쪽짜리 허락이어도 연기가 하고 싶었던 나는 그것마저도 너무 기뻤다.


작가의말

예약한다는게 실수로 올려버렸습니다

급하게 한 편 더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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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5. 운명을 바꾸고 싶다 (1) +1 22.06.16 116 6 12쪽
34 33. 생존을 위하여 (5) +1 22.06.15 87 7 11쪽
33 33. 생존을 위하여 (4) +1 22.06.12 100 7 14쪽
32 32. 생존을 위하여 (3) +1 22.06.11 105 7 12쪽
31 31. 생존을 위하여 (2) +1 22.06.09 119 10 12쪽
30 30. 생존을 위하여 (1) +1 22.06.08 119 8 12쪽
29 29. 사랑받은 아이 (2) +2 22.06.07 118 12 12쪽
28 28. 사랑받은 아이 (1) +2 22.06.06 142 12 11쪽
27 27. 김성현 (2) +1 22.06.05 142 14 13쪽
26 26. 김성현 (1) +1 22.06.05 139 14 16쪽
25 25. 꿈 (2) +2 22.06.04 146 13 12쪽
24 24. 꿈 (1) +2 22.06.03 154 11 12쪽
23 23. 평범한 일상 (3) +2 22.06.02 145 15 11쪽
22 22. 평범한 일상 (2) +2 22.06.02 155 14 11쪽
21 21. 평범한 일상 (1) +1 22.06.01 162 13 11쪽
20 20. 미카엘 (3) +1 22.06.01 160 14 13쪽
19 19. 미카엘 (2) +2 22.05.31 164 15 12쪽
18 18. 미카엘 (1) +1 22.05.31 161 14 12쪽
17 17. 주인공 (3) +1 22.05.30 185 11 12쪽
16 16. 주인공 (2) +1 22.05.30 187 17 12쪽
15 15. 주인공 (1) +1 22.05.29 201 17 12쪽
14 14. 대본 그리고 배우 (2) +1 22.05.29 210 19 12쪽
13 13. 대본 그리고 배우 (1) +1 22.05.28 216 23 11쪽
12 12. 천재 소년 (4) 22.05.28 237 21 13쪽
11 11. 천재 소년 (3) 22.05.27 235 17 14쪽
10 10. 천재 소년 (2) 22.05.27 251 17 13쪽
9 09. 천재 소년 (1) +1 22.05.26 275 20 13쪽
8 08. DNA (2) +1 22.05.26 289 21 12쪽
» 07. DNA (1) 22.05.25 302 2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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