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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확립

[디지몬] 무쌍 시리즈

웹소설 > 자유연재 > 팬픽·패러디, 판타지

완결

유오원후
작품등록일 :
2018.10.18 20:15
최근연재일 :
2021.01.19 23:21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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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7,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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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3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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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무쌍(無雙) Ⅱ - 17

DUMMY

네이처 스피릿츠(NSp)의 깊숙한 숲 속.

이곳에서 가이오몬 측과 올림푸스 12신이 이틀에 걸쳐서 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현재 전적은 5전 2승 2패 1무, 마지막 대결을 남겨둔 상황에서 지금까지 나서지 않았던 가이오몬과 유피테르몬이 앞으로 나섰다.

맞은편에 있는 상대를 응시하며 탐색전을 펼치던 두 디지몬은 자신의 무기인 쌍검 「국린」과 덤벨(아령)처럼 생긴 두 개의 해머를 각각 양손에 쥐었다. 상황을 봐서 공격을 할 생각인데, 먹구름으로 가득한 하늘에서 물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하자 무기를 거두고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잠시 의논을 하고 나서 다시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좋아, 기다리도록 하지.”


가이오몬은 유피테르몬의 양해를 얻은 후 일행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미네르바몬과의 대결에서 많은 힘을 소모했기에 지금은 깊이 잠들어버린 아스카와 철저히 방관을 고수하고 있는 후마를 제외하고 오라클, 노완동, 타오몬(도사몬), 레이븐(카라텐몬)과 대화를 나눴다.


“설마 했는데 진짜로 비가 내리려고 할 줄이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지금 상태로 싸운다면 유피테르몬의 번개에 맞아 십중팔구 감전사할 걸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모르는 것 같으니 설명을 해줘야겠구먼.”


오라클은 레이븐이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질문을 던지자 한숨을 내쉬면서 친절하게 답을 해줬다. 신체에 가해지는 충격의 크기는 전압의 크기보다 전류의 세기와 통로에 의해 정해진다. 그러므로 피부의 건조도와 전원에 접촉한 강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데, 피부가 건조하고 전원이 약하게 닿을 때는 전류가 거의 흐르지 않아서 큰 위험은 없다.

그러나 땀이나 물에는 이온(전기를 띤 원자 또는 원자단)이 있어서 전류가 잘 흐르기 때문에 피부가 젖어 있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운이 좋다면 살 수 있겠지만, 상대가 번개와 기상을 담당하는 천신(天神) 유피테르몬인지라 만에 하나 공격을 당한다면 살아남을 확률이 급격히 낮아진다.

그제야 가이오몬이 위험한 상황에 처할 뻔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레이븐은 창백하게 굳은 얼굴을 했다.


“일단 비가 그친 이후에 재대결을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흐음~ 어디 보자. ···아무래도 그 방법은 안 되겠네.”


“그 말씀은 비가 계속 내린다는 겁니까!?”


“그래, 방금 날씨를 확인해봤는데 비는 내일까지 내릴 걸세.”


오라클의 말이 쐐기가 되어 그들의 가슴에 박혀 들기가 무섭게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치더니 빗방울이 거세게 쏟아져 내렸다. 일단 방어막을 형성해 비를 막아냈는데, 이러한 상황이 얄궂다고 생각한 가이오몬과 다른 네 명은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대결을 내일로 미루자니 유피테르몬이 허락하지 않을 것 같고, 그렇다고 계속 속행하기에는 제대로 된 방비가 없었다. 이래저래 고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노완동이 손뼉을 치며 입을 열었다.


“누님! 가이오몬에게 보호 마법을 거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거 괜찮은 방법이구나.”


“오오!”


“저 역시 노완동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다만 유피테르몬이 그걸 인정해줄지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앞일을 걱정하는 타오몬의 염려를 덜어주기 위해 자신만만하게 말을 하는 노완동. 뭔가 믿는 게 있는지 호언장담을 하고 나서 유피테르몬을 바라봤다. 넵튠몬이 자신의 힘으로 만든 물로 이루어진 방어막 안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그는 노완동과 눈을 마주쳤다.

짧지만, 또 길다고 생각되는 시간 동안 눈빛으로 대화를 주고받은 후 노완동은 대답을 기다리는 듯이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유피테르몬은 시선을 옮겨 가이오몬을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행동을 묵인한다는 의미였고,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게 되자 오라클과 타오몬은 힘을 합쳐서 가이오몬에게 보호 마법을 걸었다.


“명심하게. 이걸로 감전은 막을 수 있지만, 다른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줄 수는 없네.”


“알겠습니다.”


“오라클의 보호 마법에 제 주술을 더하긴 했지만,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조심해서 싸우길 바랍니다.”


“유피테르몬이 올림푸스 12신이라고는 하지만, 자신감을 갖고 싸우도록 해!”


“힘내-!!!”


오라클과 타오몬이 주의를 주고, 노완동과 레이븐이 응원을 하자 가이오몬은 마음을 다잡고는 다시 앞으로 나섰다. 아까 전에 탐색전을 벌여 상대를 가늠했으니 이번에는 잠시 중단했던 대결을 다시 시작하면 된다.

수없이 많은 빗방울이 양측의 싸움으로 상처를 입은 대지를 적시고, 그 중에서 하나의 물방울이 사방으로 흩뿌려짐과 동시에 가이오몬이 재빠르게 움직여 「국린」을 휘둘렀다.


[챙-!]


“큭, 역시 통하지 않는 건가.”


두 자루의 검이 금색으로 빛나는 해머에 막히자 가이오몬은 튕기듯이 뒤로 물러났다. 물에 젖었고, 지금도 젖어 가는 땅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두 다리에 힘을 실어 버티면서 동시에 검을 휘둘러 두 개의 검기를 날렸다.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구불구불 움직이는 검기를 막으려고 유피테르몬은 오른손에 쥔 해머에서 자기장을 방출해 일종의 방어막을 형성했다. 혼신의 일격은 아니지만 나름 신경을 쓴 공격과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가 충돌을 일으켰다.

시간이 흘러서 검기는 마모되는 것처럼 서서히 소멸하다가 이내 깨끗이 사라졌고, 배리어는 공격당한 부위에 금이 갈 정도로 손상을 받았다.


“이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니··· 과연 알파몬의 제자답군!”


“스승님을 알고 계십니까?”


“예전에 몇 번 만난 적이 있지. 그 때, 네 이야기도 들었고 말이야.”


“···그래서 보호 마법을 거는 것을 묵인하고, 방어만 하는 거군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너는 날 이길 수 없다. 이를 부정할 수 있나?”


“아니요. 당신을 이길 수 있는 자는 오라클이나 노완동 같은 『그들』을 제외하면 소수에 불과하죠.”


여기서 언급되는 소수란 로얄 나이츠, 7대 마왕 같은 최상위급 디지몬 중에서 제일 강한··· 즉, 2년 전에 사망한 오메가몬과 디지털 월드를 떠돌고 있는 공백의 기사 알파몬, 봉인되어 유폐 중인 루체몬(풀다운 모드)을 의미한다.

3대 천사나 4성수의 경우 누가 강하고 누가 약한지가 정해져 있지 않으므로, 위의 예에서 제외한 것이다.


“허면 이대로 지지부진 대결을 계속하실 생각이십니까? 이도저도 아니게 될 겁니다.”


“다이나몬의 말이 옳네. 혹 자네에게 대안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있습니다! 아주 간단한 방법이지요.”


“무엇인지 말해주시겠습니까?”


“아까 전처럼 나는 방어를, 가이오몬은 공격을 계속하는 거지. 다만 방어하는 도중에 가끔씩 반격이 있을 거고, 가이오몬이 나에게 상처를 준다면 이번 대결은 그의 승리로 끝난다.”


유피테르몬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자, 그를 제외한 열한 명의 올림푸스 12신과 관객으로서 지켜보고 있던 네 명의 일행은 가이오몬의 입에서 나올 대답을 기다렸다. 1초, 2초, 3초···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고, 1분도 채 안 돼서 결단을 내린 가이오몬은 묵묵히 쌍검을 고쳐 잡았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뜻을 표했고, 그걸 본 유피테르몬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이오몬을 바라봤다. 이제 둘은 공격과 방어라는 위치를 고수하면서 치열한 싸움을 벌일 것이다.


「가이아 리액터」


「마볼트」


거세게 내리던 비가 서서히 줄어들자 두 디지몬은 각각 자신이 할 일을 실행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이오몬이 「국린」을 하나로 합쳐 활의 형태를 갖추고는 대기 중에 존재하는 에너지를 일점에 집중시켰고, 유피테르몬은 이를 막기 위해 두 팔을 들어 올려 작은 뇌운을 소환했다.

「국린」에 모인 에너지는 하나의 화살이 되었고, 이내 그의 손에서 떠났다. 목표를 노리고 날아온 화살은 뇌운에서 떨어진 번개에 가로막혀 그 자리에서 폭발했다. 연기가 피어오르며 순간 시야가 차단됐는데, 유피테르몬이 소환한 뇌운에서 내리친 번개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고 가이오몬을 노렸다.


「린화격」


수십 줄기의 번개 중 일부는 몸을 움직여 피하고, 나머지 번개와 그 근원인 뇌운을 파괴할 생각으로 「국린」에서 빛의 화살을 형성해 쏴 날린 가이오몬. 빛의 화살과 번개는 서로 부딪치면서 소멸해 버렸고, 마지막에 남은 뇌운도 한 발의 화살에 꿰뚫려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볼트를 분쇄해버렸나? 하지만 날 이기지 못한다면 몇 번이고 다시 나타날 거다.”


“알고 있습니다!”


뇌운이 사라진 것을 계기로 둘은 잠시 숨을 돌릴 시간을 얻어 말을 주고받았고, 관객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열한 명의 올림푸스 12신과 네 명의 일행도 앞으로의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우선적으로 저 자기장 방어막을 파괴해야만 가이오몬이 이길 확률이 높아져.”


“비록 방어막이 깨진다 하더라도 유피테르몬을 쉽게 쓰러트리진 못할 거야.”


“하지만······.”


“무엇을 걱정하는지 모르는 바는 아닐세. 허나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할 상황이지.”


“네가 하고 싶은 말은 알고 있어. 뭐, 운이 없거나 방심하지 않는 이상 패배할 일은 없을 거다.”


타오몬과 바커스몬이 상황을 지켜보면서 의견을 말하고, 레이븐과 불카누스몬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동시에 말하고, 오라클과 넵튠몬이 다른 이들을 납득시킬 만한 이유를 댐으로써 대화의 끝을 맺었다.

반면 당사자인 가이오몬과 유피테르몬은 아무 말 없이 다음 준비를 갖췄다. 「국린」에 자신의 고유한 기운을 담아 검게 빛나는 검신(劍身)을 드러냈고, 두 개의 해머에서 자기장을 방출해 손상된 부위를 메웠다.


“흠, 그냥 내버려뒀으면 좋았을 텐데.”


“그럴 수는 없지. 자, 와라!”


이미 예상은 했었지만 진짜로 이렇게 나오자 가이오몬은 투덜거리듯이 말하는데, 이에 유피테르몬은 어림없다는 어조로 대꾸하면서 공격을 유도했다. 애초에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으므로 그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앞으로 돌진했다.

방어막 앞에 도달하자 걸음을 멈출 새도 없이 몸을 움직여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묵직하게 쌍검을 휘둘렀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국린」에 담긴 기운이 서서히 사그라져 갔고, 자기장 방어막은 다시 한 번 금이 가버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용케 형태를 유지하고는 있는데, 뒤이어서 가이오몬이 발로 걷어차자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방어막이 부서져버렸다.


“결국 파괴해버렸군.”


“다음은 당신 차례입니다.”


“···할 수 있다면 말이지.”


방어막이 파괴된 이후, 가이오몬은 눈앞에 있는 유피테르몬에게 상처를 줄 의도로 곧바로 「국린」을 내리쳤다. 허나 유피테르몬은 오른손에 쥔 해머로 두 자루의 검을 막고, 다른 하나로 가이오몬의 복부를 찧었다.

엄청난 고통이 배에서 시작되어 몸 전체에 퍼져 나가자 그는 이를 악물며 참고 견뎠다. 땅바닥에 떨어져 부딪치는 순간 몸을 재빨리 일으켰는데 자신의 복부에 낙인이 새겨져 있자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뭐야, 이건?!”


“유피테르몬의 기술이로군.”


“집행을 시작한다.”


「퍼니쉬 져지」


진지하고 엄숙한, 신의 위엄을 드러내며 한 쌍의 해머를 맞부딪치는 유피테르몬. 무거워 보이는 외견과는 달리 맑은 소리가 사방으로 울렸고, 동시에 가이오몬의 복부에 새겨진 낙인에서 은은한 빛이 감돌았다.


“저 빛이 완전히 사라지는 그 순간, 너에게 형벌을 내려질 것이다.”


“···그렇다면 제한된 시간 내에 당신을 쓰러트리겠습니다.”


“할 수 있겠나?”


“해봐야 알겠죠.”


다급한 상황에서도 평온을 유지하며 유피테르몬과 대화를 나누던 가이오몬은 왼손에 쥐고 있는 검을 던졌다. 만약 유피테르몬이 검을 튕겨낸다면 땅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되받아서 공격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도 경험이 많기 때문에 가이오몬의 생각을 꿰뚫어 봤고, 반사적으로 몸을 살짝 돌려 검이 앞으로 지나가게 만들었다. 하다못해 땅에 꽂아줬으면 했지만 맘대로 안 되는 게 현실인지라 가이오몬은 한숨을 내쉬고는 왼손을 앞으로 뻗었다. 다섯 손가락을 쫙 펴고 정신을 집중하자 검이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더니 가이오몬의 손에 되돌아왔다.


“···이기어검(以氣御劍)의 경지에 이른 것인가?”


“아직은 회수밖에 못 하지만··· 지금까지 여행을 하면서 놀고먹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렇군. 너의 노력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지금 바로 형벌을 내리도록 하지.”


유피테르몬은 오른손에 쥔 해머를 내려놓고 비어있는 손을 들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낙인이 지워지면서 빛 또한 사라졌고, 동시에 하늘에서 천둥과 우레가 진동을 일으켰다.

현 상황이 심상치 않게 흘러간다고 생각한 가이오몬은 기를 한계치까지 끌어올려 「국린」에 주입했고, 상대가 먼저 공격하기를 기다렸다. 시간을 오래 끌수록 불리해지는 건 이쪽이기 때문에 내심 초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참고 견디는데, 마침 하늘에서 한 줄기의 번개가 번쩍였다. 강력한 기세를 품으며 아래로 내리꽂히듯이 떨어지자 가이오몬은 두 자루의 검을 휘둘러 용의 형상을 한 에너지파를 날렸다.


「흑룡파(黑龍波)」


상승하는 흑룡(黑龍)과 하강하는 번개가 충돌을 일으키는 순간, 사방으로 파장이 퍼져 나갔다.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파괴되어가는 와중에 오라클과 넵튠몬은 방어막에 힘을 실어 곁에 있는 일행을 보호했다.

가이오몬과 유피테르몬은 주력 결계, 고위급 기술을 사용할 때 술자를 감싸는 투명한 막 덕분에 직접적인 피해를 받지 않았다. 물론 더 이상 버티지 못한 두 기술이 섞이면서 폭발을 일으켰고, 그 여파에 휘말려 땅바닥에 나뒹굴었지만 유피테르몬은 한 바퀴, 가이오몬은 서너 바퀴 데굴데굴 구르다가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이것(퍼니쉬 져지)마저 막아냈나. 훌륭하다!”


“후우···.”


“지쳐 보이는군.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자세를 바로 잡은 유피테르몬이 몸에 묻은 진흙은 털어내고 짧게 말을 하자 가이오몬은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힘을 좀 과도하게 쓴 탓에 내부에서 불안정하게 흐르던 기가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이자 다시 보충하려고 했다.

아까보다 속도가 늦긴 했지만 힘을 모을 만큼 모은 가이오몬이 오의를 쓰려는 순간, 유피테르몬의 몸이 초고압의 플라즈마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헌데 그걸 본 오라클과 올림푸스 12신의 낯빛이 변하면서 기겁하는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나왔다.


“그 모습은-?!”


“이제 끝을 내도록 하지.”


“······어쩔 수 없군요.”


유피테르몬의 지금 모습을 보고 본능적으로 위험하다고 직감한 가이오몬은 그들이 보이는 반응을 보고 이를 확신하게 됐다. 허나 이제 와서 대결을 멈춘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승패의 결정을 짓겠다는 의미로 두 개의 검기를 쏘아 보냈다.

필살기나 오의가 아닌 일반적인 공격이라 위력은 약한 편이지만, 유피테르몬이 반격을 가해 공격을 분쇄시켜도 바로 행동에 들어가 몸을 보호할 생각이었다.


「와이드 프라즈먼트」


밝은 빛을 띠는 흑색의 검기가 빗물과 바람을 가르며 빠른 속도로 뻗어나가고, 이를 지켜보던 유피테르몬은 조용히 힘을 방출했다. 육체에서 뿜어져 나온 플라즈마로 인해 가이오몬의 검기가 간단하게 소멸했고, 주변의 모든 것이 깨끗하게 증발해버렸다.

설마 했지만 이렇게 강력한 필살기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자 가이오몬은 찰나 동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대로라면 살아있다는 의식이 육체와 함께 천벌(天罰)에 휩쓸려 사라지는 상당히 위험한 최악의 상황인데, 갑자기 머릿속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위로 피해요.’


‘···아스카?’


가이오몬은 다른 세계에서 온 인간으로 자신의 동료이자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이는 소녀가 뇌리에 떠올랐다. 물론 눈이 녹듯이 기억에서 지워져버렸지만 그 덕분에 시야가 트이고, 상황 판단이 가능하게 되자 음성의 주인이 알려준 기사회생의 방법을 쓰기 위해 「국린」을 대지에 찔러 넣었다.


“크아아아앗!”


「흑룡파(黑龍波)」


기합 소리와 함께 두 자루의 검을 통해 땅 속으로 흘러 들어간 에너지가 넓게 퍼지더니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유피테르몬의 필살기가 가이오몬과의 거리를 좁히며 다가오는 와중에 대지가 흔들리더니 발밑의 진흙이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처럼 솟구쳐 올랐다.

그 중심에 있던 가이오몬 역시 공중 위로 떠올랐고, 공격 대상을 잃은 천벌은 애꿎은 진흙을 소멸시키며 분화구가 된 땅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가이오몬 일행과 올림푸스 12신 양측은 예상외의 방법을 써서 와이드 프라즈먼트를 피한 그의 행동을 어이없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감탄해 마지않았다.


“설마 고육책(苦肉策)을 쓸 줄이야.”


“기상천외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확실한 수단입니다.”


“저기, 죄송한데 지금 한 말의 의미를 모르겠습니다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상대의 허를 찌를 수 있다는 거지.”


의식을 잃고 잠들어 있던 아스카가 노완동의 부축을 받아 일어서면서 입을 열었다. 올림푸스 12신이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음성으로 말하는데, 아직 기운을 차리지 못해 나른한 상태이기도 하고 상대가 이 사실을 늦게 알아차렸으면 하는 심정도 없지 않았다.


“재미있군. 정말 재미있어!”


“그나저나 어디까지 상승할 생각이지?”


『신』이 창조한 『그들』답게 유피테르몬의 필살기를 가볍게 막아낸 오라클과는 달리 힘을 거의 소모한 열 명의 신인형 디지몬은 비구름을 뚫고 위로 솟구치는 가이오몬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주력 결계 덕분에 큰 부상을 입지 않은 가이오몬은 속박 기술인 공령박(空靈縛)을 써서 몸을 잠시 고정시켰다. 유일한 흠이 있다면 제어 시간이 짧다는 건데, 그는 별로 개의치 않는지 알약을 꺼내 삼켰다.

약이 뱃속에서 녹으면서 효과를 발휘해 소모된 힘을 회복했고, 8할 정도 보강되었을 쯤에 공령박의 효력이 사라졌다. 이는 즉 속박이 풀렸다는 의미로 가이오몬은 상황을 인식하자마자 지상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가이오몬은 쉴 새 없이 불어대는 강풍에 맞아 얼굴이 흉하게 변하고 있지만 어떻게든 견디며 지상으로 향하고, 유피테르몬은 다시 한 번 비구름을 뚫으며 돌아오고 있는 그를 두 눈으로 확인하며 굵고 강렬한 한 줄기의 번개를 쏘아 올렸다.


“그렇게 나왔나? 좋아, 이게 내 마지막 일격이다-!!!”


「진 흑룡파(眞 黑龍波)」


유피테르몬이 날린 번개에 맞서기 위해 가이오몬은 「국린」에 모아둔 에너지를 모두 방출하여 자신의 몸에 둘렀다. 곧이어 한 마리의 흑룡(黑龍)으로 화하여 번개와 충돌을 일으켰고, 물어뜯거나 혹은 꿰뚫어버리는 방식의 싸움을 벌였다.

치열한 접전의 끝에 번개를 박살내버린 흑룡은 크게 포효를 내지르며 유피테르몬을 덮쳤다.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진흙이 섞인 먼지가 사방으로 휘날리면서 눈과 귀를 가렸고, 그로 인해 확인이 불가능했다. 관심이 없어 보이는 후마와 평소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아스카를 제외한 나머지는 초조해하며 결과를 기다렸다.


“으··· 으윽!”


“이것이 너의 일격인가?”


고통이 섞인 신음을 뱉어내는 가이오몬과 조금도 거칠어지지 않은 안정된 호흡으로 말을 하는 유피테르몬.

잠시 후, 진흙 먼지가 가라앉자 두 디지몬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가이오몬은 두 무릎을 꿇은 채 불안정한 숨을 토해내고, 유피테르몬은 두 다리로 서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 건가?”


“아니, 그가 이겼다.”


후마의 말이 모두의 귀에 도달하는 순간, 쩍하고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유피테르몬의 갑옷에 균열이 일어나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 있는 아스카와 후마처럼 디지몬이 아니거나, 오라클과 노완동처럼 디지몬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존재를 제외한 대다수의 디지몬들은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어리둥절하다가 뒤늦게 유피테르몬이 했던 약속을 떠올렸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다면 이번 대결은 가이오몬의 승리로 끝난다.”라고 했는데, 갑옷의 손상도 상처로 여겨지므로 대결은 자연히 종료됐고 승자는 가이오몬으로 결정되었다. 이것으로 가이오몬 일행의 전적은 6전 3승 2패 1무, 올림푸스 12신과의 대결에서 이겼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시련을 통과하게 된 것이다.


“수고했다.”


“아, 감사합니다.”


입에 올린 말은 반드시 지킨다는 걸 보여줌과 동시에 상대를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유피테르몬이 손을 내밀자 가이오몬은 그 손을 잡고 일어나 감사를 표시했다.

이제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 두 디지몬은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비가 멎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빗방울들이 허공에 그대로 멈춰선 채로 서 있었다. 어떤 건 땅바닥에 부딪쳐 사방으로 흩어지는 와중에 멈춰졌다.


“이, 이것은?!”


“내가 시간을 멈췄다.”


뒤쪽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모두들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아스카를 빼어 닮은 성인 여성이 유유히 걸어오고 있었다. 이번 대결을 주도한 장본인이자 네 번째 라운드에서 레이븐을 폭주시켜 오니스몬으로 강제 진화시킨 범인··· 그녀를 본 아스카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여긴 무슨 일로 온 거지?”


“수고했다는 칭찬과 다음 시련에 대해 알려주려고 왔다.”


“···지금 하라는 소리인가요?”


“굳이 바로 실행할 필요는 없어. 휴식 시간은 가져야 하니까.”


“그거 참 고맙군요.”


“그건 그렇고, 이 정도의 시간 정지라니. 당신은 도대체······.”


아스카가 비꼬듯이 말을 하고, 그녀는 철면피가 아닐까 할 정도로 태연히 듣는 와중에 오라클이 의문을 가지고 질문했다.


“비밀은 여자를 여자답게 만드는(A secret makes a woman woman) 법이지. 궁금하더라도 묻지 않는 게 좋아.”


“······.”


“뭐, 어찌됐든 시간을 계속 잡아둘 수는 없으니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하지.”


그녀는 오라클의 입을 다물게 만들고는 손가락을 튕겼다. 동시에 푸른 스파크가 일어나더니 본인을 비롯해서 가이오몬 일행과 올림푸스 12신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면서 비가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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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몬] 무쌍 시리즈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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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무쌍(無雙) Continue -04- 19.01.25 28 1 9쪽
98 무쌍(無雙) Continue -03- 19.01.24 32 1 8쪽
97 무쌍(無雙) Continue -02- 19.01.23 60 1 10쪽
96 무쌍(無雙) Continue -01- 19.01.22 37 1 6쪽
95 무쌍(無雙) Asuka Part.1 -05- 19.01.21 53 2 10쪽
94 무쌍(無雙) Asuka Part.1 -04- 19.01.20 56 1 6쪽
93 무쌍(無雙) Asuka Part.1 -03- 19.01.19 59 1 8쪽
92 무쌍(無雙) Asuka Part.1 -02- 19.01.18 29 1 6쪽
91 무쌍(無雙) Asuka Part.1 -01- 19.01.17 46 1 11쪽
90 무쌍(無雙) Ⅱ - 33 19.01.16 44 1 8쪽
89 무쌍(無雙) Ⅱ - 32 19.01.15 42 1 8쪽
88 무쌍(無雙) Ⅱ - 31 19.01.14 33 1 12쪽
87 무쌍(無雙) Ⅱ - 30 19.01.13 38 1 8쪽
86 무쌍(無雙) Ⅱ - 29 19.01.12 30 1 9쪽
85 무쌍(無雙) Ⅱ - 28 19.01.11 31 1 11쪽
84 무쌍(無雙) Ⅱ - 27 19.01.10 45 1 10쪽
83 무쌍(無雙) Ⅱ - 26 19.01.09 32 1 9쪽
82 무쌍(無雙) Ⅱ - 25 19.01.08 43 1 9쪽
81 무쌍(無雙) Ⅱ - 24 19.01.07 43 1 13쪽
80 무쌍(無雙) Ⅱ - 23 19.01.06 72 1 8쪽
79 무쌍(無雙) Ⅱ - 22 19.01.05 52 1 12쪽
78 무쌍(無雙) Ⅱ - 21 19.01.04 49 1 13쪽
77 무쌍(無雙) Ⅱ - 20 19.01.03 54 1 11쪽
76 무쌍(無雙) Ⅱ - 19 19.01.02 47 1 19쪽
75 무쌍(無雙) Ⅱ - 18 19.01.01 37 1 18쪽
» 무쌍(無雙) Ⅱ - 17 18.12.31 46 1 23쪽
73 무쌍(無雙) Ⅱ - 16 18.12.30 40 1 23쪽
72 무쌍(無雙) Ⅱ - 15 18.12.29 41 1 18쪽
71 무쌍(無雙) Ⅱ - 14 18.12.28 42 1 15쪽
70 무쌍(無雙) Ⅱ - 13 18.12.27 40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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