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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엠 님의 서재입니다.

신이 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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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엠
그림/삽화
라비보엠
작품등록일 :
2020.11.03 18:05
최근연재일 :
2021.02.04 17:50
연재수 :
39 회
조회수 :
1,641
추천수 :
165
글자수 :
172,717

작성
21.01.05 08:32
조회
27
추천
3
글자
9쪽

[ 시즌 1 ] 25회 위태로운 평화

DUMMY

따사로운 오후 햇살


비단의 보드라운 촉감.


응? 비단?


해수는 자신을 감싸는 이상할만치로 나른한 분위기에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선다.


재력가의 기와집이라도 되는듯 화려한 가구와 정교한 창틀로 장식되어 있는 말끔한 분위기의 방이 눈에 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옥사에서 고신을 당하다 지쳐 잠이 들었었는데, 대체 무슨 일일까.


게다가 이상한 것은 단지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가지런히 정리 되어 허리 밑까지 길게 늘어뜨린 곱슬머리부터 은빛이 도는 푸른색 두루마기까지.


차림이 마치 반가의 도령 같아 보였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세워, 발을 내딛어 본다.


어느때보다 몸이 가벼운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삐걱거리는 문을 열고 방을 나서보니, 눈부시게 아름다운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굽이진 소나무부터 팔뚝만한 금빛 잉어가 헤엄치는 연못, 가득 피어난 꽃송이들까지. 마치 무릉도원에 와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순간, 해수는 내심 직감할 수 있었다.


지금 자신은 사후세계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밤새 옥사에서 얼어죽거나 한 것이 분명했다.


비록 아주 서서히 봄이 다가오는 시점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아홉 살짜리 꼬마가 변변찮은 외투도 없이 홀로 버티기에는 힘든 날씨이니 말이다.


살아있을때는 마냥 죽음이 두려웠는데, 차라리 잘되었다.


이곳에 오고 나니 더이상 모진 고문을 이기지 않아도, 외면하는 사람들 속에서 상처받거나, 굶주리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제법 착하게 살아왔으니 하늘이 축복을 내려준 것이 분명했다.


그 순간, 낯선 인물 하나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날카로운 눈매와 백지장같은 피부, 그리고 왠지 모르게 차가우면서도 따뜻함이 공존하는 듯한 낯빛까지. 언뜻 보아하니,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다름 아닌 해수, 자기 자신과 아주 많이 닮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자주색 비단 두루마기와 답호, 그리고 두건을 보아 꽤나 신분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데.


저승의 염라대왕 이래도 되는 것일까?


아니면···


혹시 아버지?


강손은 물론이고 승냥까지, 누구도 해수에게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는 이는 없었다.


그저 그가 아주 어렸을 적 어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사실, 그것 뿐이었다.


아버지에 관해서는 아는 이가 누구도 없었다.


그저 태화루나 천민촌의 사내일 것이라 짐작할 뿐이었다.


그런데 정말, 그저 상상처럼, 해수의 아버지는 아주 귀한 사람이고, 아들의 존재를 모른 채, 일찍이 이 세상을 뜨게 되었다면, 해서 지금에서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아닐까?


물론 터무니없는 상상이었지만, 지금은 저승이 아닌가.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더라도 혹시 이곳에서는 몰랐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해수의 예상을 전혀 벗어나 있었다.


“이제 깨어난 게냐?”


해수는 아무렇지 않게 얼굴을 내밀고 마치 친밀한 듯 다가오는 그에게 당황해서 뒷걸음 친다.


“나 죽은 거에요?”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해수에게 그는 우습다는 듯 피식 웃는다.


“그럴리가 있나. 무사히 살아있으니, 이곳에 오게 된 거 아니겠어?”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말은 이러했다.


해수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 앞에 갑작스럽게 다가온 자는 다름 아닌 강승희 대감의 밑에서 일하는 장연호란 이름의 관리였다. 알고보니,해수가 탈출시킨 아이들 틈에서 자기가 아끼던 어린 종 하나가 있었는데, 그를 구해준 해수의 은혜를 그만 잊을 수 없어, 대감에게 간청한 결과, 무사히 옥사를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다지 믿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애초에 철해부 관리란 사람이 종놈을 소중히 여기는 것 부터 이상했다. 게다가 고작 종놈 하나 살려준 댓가로 감히 자신의 상사에게 부당한 부탁을 하다니.


자신 같으면 절대로 선택하지 않을 길이었다.


강승희 대감은 물론이고 주변 귀족들에게까지 웃음거리가 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해수는, 마냥 자신에게 살갑게 대해주고, 감히 비단옷과 맛있는 쌀밥까지 주는 그를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었다.


거짓말이면 뭐 어떤가.


마치 제 자식인양 부드러운 손길을 건네주는 그는 평생동안 외롭게 자라온 해수에게 마약과도 같았다.


그저 행복에 취해 평소처럼 진위를 파악할 새도 없었다.


겉으로 보기엔 마냥 좋은 사람 같아 보였다.


그날, 비로소 해수는 난생처음 다른 아이들처럼 하루종일 나른하게 따뜻한 온돌방에 누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아마 어른이 된 후에 되돌아봐도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 단언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해수는 몰랐다.


평화는, 고요는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거라고. 또 새로운 세상과 아픔이 그의 앞에 열릴 것이라고.


*


“아이는, 괜찮습니까? 며칠씩이나 고신을 당한지라 몸이 말이 아닐 터인데.”


해수를 재우고 밤산책을 나온 성휘에게 형선이 다가온다.


“멀쩡하더라. 어려서 그런지 회복이 빠른 듯 해.”


쌀쌀한 새벽 바람을 맞으며 밤하늘을 바라보니, 기분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근 몇년간, 반 쯤 정신이 나간 채로 매일을 보내다 보니, 하늘을 바라본 것도 참 오랜만이다.

진작에 이렇게 먼곳을 바라보며 여유를 가질 걸 그랬다.


이리 좋은 것을, 지금 처음 알았다.


이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어서 그런가, 만사가 아름다워 보인다.


“단둘이, 시간은 잘 보내셨답니까?”


궁금했는지, 속사포로 질문을 내뱉는 동무에, 성휘는 피식 웃는다.


“얘가 명석하더라, 말하는 게 보통이 아니야... 나를 닮아서 그런가.”


“에이! 아니죠~ 주희 낭자를 닮아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다. 저하를 닮았다면 명석할 리가 없죠.”


하여튼, 농담은.


형선 이 자식, 남자 답지 않게 찌질하고 속이 좁은 데다가 눈치도 없기는 해도, 사람을 즐겁게 하는 요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놈과 함께 한다면 마음 속에 가지고 있던 모든 걱정, 근심들이 말끔히 사라지는 느낌이랄까?



“이 자식이! 지금 세자를 음해하려는 게냐?”


둘은 오랜만에 배꼽이 터질 듯, 마음을 놓고 웃기 시작한다.


철든 후로는, 이렇게 편안한 적도 없었던것 같은데, 해수란 아이는 정말이지, 성휘에게는 축복을 불러오는 존재임이 틀림 없다.


그러곤 잠시후, 형선이 망설이며, 갑자기 진지하게 묻기 시작했다.


“아버지라는 것은 밝히셨습니까? 세자 신분이라는 것도..? 알게되면 적잖이 당황할 터인데, 자신을 버려둔 것은 아닐까, 원망할 지도 모르고요. 설사 제 어미가 그리 저하를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세자는 다시 피식, 웃으며 답한다.


“해수는 아직 아무것도 몰라. 혹시 나를 알고 있을 지 모르니 이름까지 거짓으로 밝혔는걸.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그 애한테는 이로워. 궁은 무서운 곳이잖아. 권력을 위해 제 형제들에게 칼을 겨누는...그 순진한 꼬마를 핏기 가득한 그곳에서 키우고 싶지는 않다. 그저 평생, 이렇게 사가에서 평화롭게 살아가게 하고 싶어.”


성휘가 만약 다시 태어난 다면 단 한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평범한 백성의 신분으로 태어나는 것이었다.


꼭 귀한 집이 아니더라도, 가난에 허덕이며 굶어 죽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곳에 돌아오고 싶지는 않았다.


세상 곳곳을 떠돌며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었다.


저 하늘의 새처럼, 이 산 저 산 정신 없이 뛰어다니는 노루처럼.


그래서 차마, 해수를 자신과 같은 처지로 만들 수는 없었다.


하지만 형선은 그런 세자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저하께서 왕위에 오르시면, 어찌 할 수 없게 되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왕족으로 자라면 평생 과거 시험 이나 입고 먹을 걱정 따위는 안해도 될 텐데, 얼마나 좋습니까? 가끔 저하께선 타고난 처지를 과하게 탓하는 성향이 있어요. 금수저 물고 태어나셨으면서 뭐,”


“네가 뭘 알겠냐, 눈치 없는 놈. 하여튼 입 조심해. 해수가 내 정체를 알게 된 순간, 네 목숨도 날아가는 거다.”


그러자, 성휘는 입을 삐죽 삐죽 내밀며 토라진다.


“만날 나만 가지고 그러시더라, 하여튼 외로우신거야, 그래. 내가 참아야지.”


형선의 장난섞인 비이냥에 성휘는 내심 눈을 부라릴 뿐이다.


그러곤 하늘을 다시 바라보며 나즈막히 덧붙인다.


“그리고, 난 왕위따위 오르지 않을 거야. 내가 꼭 나서지 않아도 강대감이 어떻게 하던가 하겠지. 그 복잡한 정치판에 들어갈 생각만 해도 짜증이 치밀어 올라. 그냥 난 이렇게 유유자적 고운 것만 누리며 살거다.”


물론, 그런 성휘의 바램과는 다르게, 그들 앞에 주어진 미래는 지독하게도 잔인했지만.


적어도 그들 모두, 지금 이순간만큼은 행복할 수 있었다.


곧 깨져버릴 잠시간의 마약과도 같은 휴식이었지만, 달콤했고, 다음 걸음을 내디을 힘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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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17 레츄
    작성일
    21.01.05 08:56
    No. 1

    이었다 - 있었다 오타 하나 있네요 '-' 평온한 날도 좀 있으면 좋을텐데 느낌에 가차없이.... ㅋㅋ 사건에 휘말릴 느낌이네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3 보엠
    작성일
    21.01.05 12:13
    No. 2

    앞으로도 여러가지 사건이 소세지 처럼 줄줄히 쏟아져 나올 예정입니당!! 기대해주세요^^ 오타지적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다오랑
    작성일
    21.01.05 12:53
    No. 3

    ^^ 작가님 좋은 글 즐독하고 갑니다 추천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3 보엠
    작성일
    21.01.05 14:34
    No. 4

    추천 감사합니당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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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시즌 1 ] 14회 번식기 +6 20.12.10 37 4 9쪽
14 [ 시즌 1 ] 13회 평판 +8 20.12.08 38 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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