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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 살해자가 될 운명이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연어럼블
작품등록일 :
2020.04.04 01:43
최근연재일 :
2020.05.08 20:52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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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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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1,467

작성
20.05.07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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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3.볼테르 백작(2)

DUMMY

(2)


“나쁘지 않다는 건 좋지도 않다는 거죠. 아, 역시 12일의 차이는 크네요. 어쩔 수 없죠. 트레비안 오라버니.”

“으음.”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자신이 원한 것인데, 왜 이렇게 아쉬운 거지? 트레비안은 알쏭달쏭한 느낌에 맹렬히 고민하다가 이내 한가지 답을 냈다. 뭔가 나중에 후회할 것 같긴 한데 지금이 아니면 리메르와 가까워질 기회가 영영 없을 것도 같았다.


트레비안이 고개를 들었다. 표정이 결연했다. 당황-고뇌-결심. 일련의 표정 변화를 끝까지 지켜본 리메르가 터져 나오려고 하는 웃음을 애써 무표정 뒤에 숨겼다. 트레비안이 입을 일(一)자로 다물었다가 입을 뗐다.



“리비라고 불러! 아까처럼 편하게 대해줘!”

“응. 알았어. 리비. 이렇게?”

“어···? 으응. 그래. 그렇게.”



즉답에 잠시 멈칫했다가 맹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트레비안을 보며 리메르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또다시 웃었다. 요 한 달 사이에 거의 보지 못했던 웃음을 하루 동안 두 번이나 봤다. 가슴이 간질거리는 느낌에 트레비안이 벌어져 있는 입을 다물 생각도 못하고 사촌동생을 바라보았다.


리메르가 시선을 피했다.



“입에 벌레 들어가겠어.”

“어. 으응.”

“바보야. 그렇게 입 벌리고 있으면 벌레 먹는다니까.”

“으응. 알았어.”



가까스로 입을 다문 것을 확인한 리메르가 시선을 돌렸다. 하늘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예전에 친구들과 언덕에서 바라봤던 것처럼 알록달록한 하늘.


저택에 들어온 지 한 달 째임에도 불구하고 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친구들이 생각났다. 음식을 봐도, 대화를 하다가도, 하늘을 보다가도, 꽃을 보다가도. 심지어 또래인 트레비안과 이야기를 할 때조차. 그만큼 친구들은 리메르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너 근데. 요즘 왜 그렇게 수업을 빠지는 거야.”



점점 가라앉아가던 리메르의 의식을 트레비안이 끌어올렸다. 지겨운 주제에 리메르가 설핏 눈가를 찡그렸다. 표정 변화에 잠시 망설였던 트레비안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네가 힘든 시기를 겪었던 것은 알아. 근데 왜 다 포기한 것처럼 굴어?”

“···.”

“왜 그렇게 봐?”



작게 ‘내 얼굴 뚫어지겠다’라고 중얼거린 트레비안이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아니. 진짜 모르는 건가 싶어서.”

“···모를 리가 없잖아. 물론 네가 친구들을 못 찾은 것은 알아.”

“잘 알고 있네. 물론 어른들과 너는 내가 유난 떤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근데 나한테는 정말 소중한 사람들이야. 근데 몇 번이나 찾아갔는데도 못 찾았다고. 어디에서도.”



리메르의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트레비안이 멍하니 그 눈동자에 빨려 들어갔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바다가 저런 느낌일까. 사람들은 바다를 ‘한 번 빠지면 끌어올리기 힘든 곳’이라고 설명해주곤 했다. 리메르의 눈은 그것을 닮아있었다. 저 아이를 누가 건져올릴 수 있을까.


리메르는 소공작이 된 다음날부터 후계자 수업을 시작했다. 기초 공부에 어느 정도 적응하면 친구들을 만나러 갈 수 있다는 말에 일주일간 정말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여 나들이에 대한 허락을 받아냈다.


떨리는 마음을 안고 원래 살았던 집을 찾아간 리메르는 그날 절망을 맛봤다. 집안의 핏자국은 지워졌지만 사람의 흔적이 없었다. 시르네 집에 찾아가 봤지만 얼마 전부터 보이지 않았다는 이웃집의 말만 돌아왔을 뿐이었다. 시장도, 언덕도 가봤지만 친구들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설레는 마음으로 저택을 나섰던 리메르는 저녁 늦게서야 지친 몸을 이끌고 저택에 귀환했다. 귀가가 늦어져 친구들을 만나 회포를 풀고 있다고 여겼던 헤르시아는 저택에 들어선 리메르의 얼굴을 보고 예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딸을 수행한 기사들의 말은 헤르시아의 표정을 어둡게 하기에 충분했다. 리메르는 친구들이 있을 만한 모든 곳을 다 찾아다녔다. 3시쯤 지쳐 주저앉은 리메르에게 기사가 귀가를 제안했지만 그를 뿌리치고 지금까지 하염없이 길거리를 헤매다가 온 것이 그녀였다.


그날 밤, 리메르는 헤르시아를 찾아왔다. 헤르시아는 일주일 전 리메르가 에드쉬의 행방불명을 들었을 때처럼 밤새 그녀를 안고 토닥였다.


그 후에도 리메르는 포기하지 않았다. 여행을 간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는 그 다음날, 그리고 다음날, 그 다음날···. 그 후에는 어디 멀리 갔나 싶어 일주일을 참다가 찾아갔다. 그런 식으로 지난 3주간 10번이나 황도를 뒤졌으나 리메르의 친구라던 6명 중 단 한 명도 발견하지 못했다.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들인지 의문이 갈 지경이었다. 그리고, 내일이 리메르의 외출 날이었다.


트레비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리메르는 입을 꾹 다물고 앞에 펼쳐진 잔가지들만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서 더 말한다면 애써 지켜왔던 그 선을 넘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 중 아무도 리메르에게 말해주지 않으니 자신이라도 말해줘야겠다 싶었다.


그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네가 지금 여기서 이렇게 멍 때릴 것이 아니고.”

“트레비안.”



나지막이 읊조린 목소리가 ‘여기까지만 해라’라고 말하는 듯했다. 감정이 실린 눈이 그를 잡아먹을 듯이 빛났다. 하지만 트레비안은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이렇게 멍 때릴 것이 아니고 그 애들을 찾기 위해서 힘을 길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그만.”



서릿발 같은 목소리가 트레비안을 옥죄었다. 차마 얼굴 쪽으로는 시선을 돌리지도 못했다. 허공에 시선을 둔 채 트레비안이 재차 입을 열었다. 결심을 하긴 했으나 목소리가 떨리는 것까지는 어찌할 수 없었다.



“너 벌써 열 손가락만큼 친구들 찾으러 갔었지. 흔적이라도 찾았어?”

“아니.”

“갈만한 장소는 다 찾아본 거잖아.”

“···혹시 몰라. 애들이 위험을 느끼고 어딘가에 숨어있을지.”



트레비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말이긴 했다. 하지만 만약 리메르의 친구들이 진짜로 위험을 느끼고 아이들만 아는 장소에 숨어있다면, 지금의 리메르가 찾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리메르는 기사들을 끌고 다니니까.


예전의 리메르는 혼자 다녔겠지만 미래의 공작 위를 이을 후계자를 호위 하나 없이 내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에 네르온은 리메르를 내보내는 것을 아예 반대했다. 리메르에게 더 미움 받기 싫어서 기사들을 왕창 보내는 것으로 타협하긴 했으나.


그랬기 때문에 리메르는 예전 집까지 외출할 때 가문의 문양을 숨기긴 했지만 고급스러운 마차를 타고 이동했고, 곁에는 항상 넷 이상의 기사들이 붙어있었다. 안 보이는 곳에는 더 많았다. 운 좋게 친구들이 소문의 ‘수상한 귀족 아가씨’가 리메르인 것을 깨달으면 금방 찾을 수 있겠지만 그런 소문을 들을 수도 없게 꽁꽁 숨어버렸으면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딘가에 숨어있으면 어떻게 찾을 건데?”

“···.”

“얘들아! 나 여기 있어! 라고 소리칠 거야?”

“그만해.”

“네가 할 것은 이렇게 멍하니 있을 것이 아니고···”

“그만하라고!”



리메르의 눈동자에 불이 있다-고 트레비안은 생각했다. 순간 정말로 잡아먹히는 줄 알았다. 너무 놀라 다리에서 힘이 빠졌다. 기우뚱거리는 몸을 애써 나무에 고정시킨 트레비안이 가쁘게 뛰어대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켰다.


밑에서 안절부절못하며 ‘도련님’하고 애타게 불러오는 유모와 기사를 흘끗 바라본 소년이 한숨을 내쉬었다. 리메르는 잔뜩 화가 나 아직도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렇게 화만 낼 것이 아니고··· 나중에 좋은 방법이 떠올라도 그걸 실행시킬 힘이 없으면 소용없는 거잖아. 네 편을 만들라고. 지금 네가 하고 있는 행동들은 멍청한 방법이야.”



리메르가 입술을 깨물었다. 물론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밑빠진 독에 물 붓는 행위라는 것은 그녀 또한 알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10년간 헛 산 것이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도저히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친구들 앞에서는 항상 여유롭게 상황을 봤던 리메르였지만 지금은 아이들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라 그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누군가에게 영혼이라도 팔아 아이들을 찾고 싶었다.



“··· . .. .. 겠어.”

“응? 뭐라고?”



웅얼거리는 목소리에 트레비안이 고개를 길게 뺐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

“솔직히 지금 너무 무서워. 애들이 다 잘못되었을까 봐. ···나 때문에.”



트레비안은 조금 놀랐다. 만난 지 한 달이 되었지만 그녀의 속마음을 듣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어느 정도 의지할 존재가 된 걸까? 분명 심각한 상황임에도 기쁜 마음에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입술을 깨물어 자신을 진정시킨 트레비안이 심각하게 얼굴을 굳히고 입을 열었다.



“너 너무 자신감 넘치는 거 아냐?”

“뭐?”



생뚱맞은 말에 리메르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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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3.볼테르 백작(3) 20.05.08 27 0 9쪽
» 3.볼테르 백작(2) 20.05.07 25 0 9쪽
26 3.볼테르 백작(1) 20.05.06 25 0 9쪽
25 2.에드쉬-(9) 20.05.04 36 0 9쪽
24 2.에드쉬-(8) 20.05.03 26 0 8쪽
23 2.에드쉬-(7) 20.05.02 28 0 9쪽
22 2.에드쉬-(6) 20.05.02 29 0 9쪽
21 2.에드쉬-(5) 20.05.02 34 0 11쪽
20 2.에드쉬-(4) 20.04.27 26 0 10쪽
19 2.에드쉬-(3) 20.04.26 24 0 10쪽
18 2.에드쉬-(2) 20.04.24 32 0 10쪽
17 2.에드쉬-(1) 20.04.23 21 0 11쪽
16 1.5.트레비안 레디알-(2) 20.04.22 21 0 10쪽
15 1.5.트레비안 레디알-(1) 20.04.21 38 0 11쪽
14 1.5.황족이었습니다. 20.04.20 43 0 12쪽
13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2) 20.04.19 26 0 9쪽
12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1) 20.04.17 32 0 9쪽
11 1.공녀, 리메르-(10) 20.04.16 39 0 12쪽
10 1.공녀, 리메르-(9) 20.04.16 35 0 10쪽
9 1.공녀, 리메르-(8) 20.04.14 49 0 9쪽
8 1.공녀, 리메르-(7) 20.04.11 31 0 8쪽
7 1.공녀, 리메르-(6) 20.04.10 33 0 9쪽
6 1.공녀, 리메르-(5) 20.04.08 39 0 9쪽
5 1.공녀, 리메르-(4) 20.04.07 41 0 9쪽
4 1.공녀, 리메르-(3) 20.04.07 40 0 9쪽
3 1.공녀, 리메르-(2) 20.04.06 49 0 13쪽
2 1.공녀, 리메르-(1) 20.04.04 81 0 9쪽
1 0.프롤로그 20.04.04 158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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