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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 살해자가 될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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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작품등록일 :
2020.04.04 01:43
최근연재일 :
2020.05.08 20:52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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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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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1,467

작성
20.04.07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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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공녀, 리메르-(4)

DUMMY

(4)


시아는 잘게 떨리는 리메르의 몸을 고쳐 안으며 전방을 주시했다. 잘 따돌렸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따라 잡힌 것을 보면 10년간의 간극이 크긴 큰 모양이었다.


“헤르시아님···.”


기사 한 명이 시아를 향해 한 발자국 다가왔다. 시아는 저 얼굴을 알고 있었다. 분명 예전에는 볼살 통통한 꼬맹이였는데 어느새 어엿한 기사가 되어 있구나. 저도 모르게 웃음이 번져 나갔다. 기사는 시아가 저를 기억한다는 것을 깨닫고 표정을 환하게 밝히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러나 시아는 기사가 한 발자국 채 내딛기도 전에 웃음기를 지우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빼 그 기사 앞으로 겨누었다.


“더 이상 다가오지 마.”

“헤르시아님···!”


기사가 망연한 얼굴을 했다. 그는 동료들의 만류에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내 기사가 눈물을 글썽이며 울먹였다.


“도대체 왜 도망가시려는 건가요? 아시잖아요. 저희 모두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헤르시아의 칼 끝이 잘게 떨렸다. 심장 박동이 너무 빨라, 품에 안겨 그 변화를 고스란히 느낀 리메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들어 헤르시아를 살폈다.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나마 잘 읽히는 감정은 고통. 한 번도 엄마에게서 이런 표정을 본 적이 없었던 리메르가 따끔거리는 가슴을 두 손으로 감쌌다.


헤르시아는 그런 리메르를 곁눈질하고는 그에게 선언하듯 말했다.


“...기다리지 마. 그냥 조용히 살게 해줘. 난 절대로 가지 않을 거야.”

“그렇지만······!”


주황 머리의 기사가 잔뜩 격양된 목소리로 한 발을 내딛었다. 그런 남자를 막아서는 손길이 있었다.


“단장님······.”

“리드비, 너는 물러나 있어.”


리드비라고 불린 기사가 무언가 할 말이 많은 듯 연신 입술을 달싹였다. 하나 단장의 서늘한 눈빛을 마주하고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리드비가 완전히 제 뒤로 물러선 것을 확인한 게레인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저도 모르게 꽉 붙잡고 있던 검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보란듯이 뒤로 한 발 물러섰다. 그리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입니다. 헤르시아님.”

“······.”

“그런데··· 하나만 물어도 되겠습니까.”

“제가 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감정이 울컥 올라오는 바람에 입을 꾹 다물고 있던 헤르시아가 대답했다. 쉰소리가 났다.


고개를 올려 헤르시아의 상태를 확인한 게레인이 눈을 크게 떴다가 옅게 웃음지었다. 그 웃음은 슬퍼 보이기도 했고, 기뻐 보이기도 했다. 그 묘한 표정을 보고 어떤 질문이 날아올지 예상한 헤르시아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품 속의 아이는··· 공녀님이십니까?”


품 속에 가만히 안겨 있던 리메르가 눈을 부릅떴다. 뭐야, 갑자기. 공녀라니.


게레인이 재차 질문했다. 어딘가 다급해 보이는 몸짓이었다.


“네이디르 님의 따님이 맞습니까?”

“···경.”

“제 또 다른 주인님이 맞으십니까?”


점차 격양된 목소리가 리메르의 귀를 때렸다. 정황상 ‘네이디르’라는 사람의 딸이자 공녀냐고 묻는 것 같은데 리메르가 알기로 공녀, 네이디르라는 두 단어가 맞춰질만한 사람은 오늘 ‘델리상트의 연인’에서 자신이 연기했던 네이디르 델리상트 공작밖에 없었다.


리메르는 갑자기 드는 불안감에 코를 찡긋거렸다. 엄마 이름은 시아이다. 그런데 공작 부인의 애칭도 시아였으며, 저 사람들은 엄마를 헤르시아라고 부른다. 헤르시아······ 풀네임 헤르시아 볼테르 델리상트. 그녀는 델리상트 공작가의 실종된 공작부인이었다.


무언가 거짓말같이 딱딱 맞춰지는 퍼즐조각에 리메르가 얼굴을 굳혔다. 바르작거리며 헤르시아의 어깨를 단단히 부여잡은 소녀가 입을 꾹 닫고 있는 헤르시아를 올려다보았다.


무슨 말이라도, 이왕이면 아니라고 말해주길 바랐다. 하지만 헤르시아는 말없이 게레인과 눈을 맞출 뿐이었다.


그때, 밝은 금발의 남자가 무서운 기세로 옆 지붕에서 넘어왔다. 그의 존재를 알아챈 기사들이 양 옆으로 물러나 길을 만들었다. 남자는 헤르시아와 리메르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그 길을 지나왔다. 강하게 옥죄어오는 살기에 헤르시아가 입술을 짓씹었다.


한쪽 입꼬리만 비뚜름하게 올린 네르온이 낮게 읊조렸다.


“게레인. 질문이 잘못되었지 않나.”

“후작님.”

“저 선명한 보라색 눈을 가지고 어떻게 숨어 다녔는지 묻는 편이 좋겠어.”



**



“네르온.”

“다행히 나를 까먹지는 않은 모양이군.”


짙은 자안을 번뜩이며 비꼬는 말에 헤르시아가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욕이 날아올 거라는 생각으로 다음 말을 생각해 놓고 있던 네르온이 눈썹을 들어올렸다. 옛 친구를 드디어 찾았다는 기쁨은 아주 잠시뿐이었다. 지독히도 낮은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헤르시아.”

“···.”

“도대체 왜 공작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거냐. 아니, 그전에 왜 돌아오지 않았지? 너는 공작 부인이잖아.”

“그건,”

“네가 없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어. 왜 살아있으면서도 나타나지 않는 건지.”


살아있다고 생각했다는 말에 헤르시아가 몸을 경직시켰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 느낌에 리메르가 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뒤틀었다. 그런 리메르를 달래 단단하게 안은 헤르시아가 눈을 내리깔고 칼집을 만지작거렸다.


“어떻게 확신했던 거지?”

“뭐를?”

“10년동안 나타나지 않았다면 죽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

“그건······.”


네르온이 곤란한 듯 입술을 두어 번 달싹였다. 그의 시선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기사들을 향했다. 까맣게 죽은 눈으로 그가 하는 양을 바라보고 있던 헤르시아가 입을 열었다.


“그냥 죽었다고 생각하지 그랬어. 어떻게 그렇게 확신을 해.”

“너, 그걸 말이라고···!”


실로 건조하기 짝이 없는 말에 이를 악물고 화를 참아낸 네르온이 답답한 듯 거칠게 머리를 쓸어올렸다.


“···그건 공작가에 돌아가서 말하는 편이 낫겠군. 어떻게 알게 된 건지.”

“그럼 질문을 바꾸지. 너는 10년 동안 우리를 찾지 않았어. 그렇다면 내가 왜 돌아가지 않는지도 생각해 봤을 거잖아. 근데 왜 이제 와서 나를 잡으려고 하는 거야? 그냥 없는 셈 치고 사는 편이 서로에게 좋을 것 같은데. 공작위도 물려 받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헤르시아.”

“혹시 아이때문에 그래? 근데 나는 지켜줄 사람 하나 없는 곳에 이 아이를 밀어 넣고 싶지 않아.”

“지켜줄 사람이 왜 없어. 나랑 뤼르가 있는데!”


네르온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소리쳤다. 헤르시아는 아무 말없이 슬픈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디가 없잖아. 이디는 죽었어. 그 날, 숲의 결계에 막혀 마나 서클이 부서져서. 그래서 돌아갈 수가 없어.”


그 말에 네르온이 다시금 입술을 달싹였다. 하나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그는 진실을 말할지 고민하다가 답답함에 입술을 까득 깨물었다. 악문 잇새 사이로 분노가 새어나왔다.


“···그러면 왜 아예 제국을 떠나지 않았지?”


이번에는 헤르시아가 말문이 막힌 표정으로 웅얼거렸다.


“그건,”

“본가로는 왜 가지 않았어? 볼테르 백작은 아직도 너를 찾고 있어.”


나 또한. 이라고 중얼거린 네르온이 머리를 쓸어넘겼다.


“근데 왜 여기에 있지? 일말의 미련이 남아서 그런 거 아냐? 형이 돌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그런 거 아니냐고.”

“그만.”

“아직 말 안 끝났어. 만약 진짜로 형님이 돌아가셨다고 해도 네 말대로 저 아이는 공작가의 핏줄이야. 너는 공작부인이고. 너는 지켜줄 사람이 없다고 했지만 나랑 뤼르, 기사단 놈들, 부모님, 볼테르 백작이 있고. 돌아올 이유로 부족한가?”

“응. 부족해. 그러니까 제발 신경 꺼.”


제 심장을 난도질하는 말에 네르온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헤르시아. 너··· 이렇게 약한 사람 아니잖아.”

“네가··· 네가 도대체 뭘 안다고······!”


헤르시아가 리메르를 안아 든 손에 힘을 줬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에드쉬는 단검을 쥔 채로 헤르시아 옆에 바짝 붙어 섰다. 곁눈질로 아이가 자세를 잡은 것을 확인한 헤르시아가 소리쳤다.


“에드쉬. 뛰어!”


헤르시아가 네르온에게 칼집을 휘두르며 얕게 도약했다. 잠시 주춤한 네르온이 고함을 지르기도 전에 기사들이 헤르시아를 향해 뛰어들었고 그녀는 그 틈을 타 바닥에 착지해 지붕을 굴렀다. 끄트머리에 다 왔을 무렵 다리 몇 쌍이 헤르시아를 둘러쌌다. 헤르시아는 칼집을 휘둘러 기사 둘을 지붕 밑으로 떨구고 있는 힘껏 미리 봐 놨던 골목으로 들어섰다.


용케 잘 빠져나온 에드쉬가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헤르시아는 계속 달렸다. 이 골목을 지나 수로에 들어설 수만 있다면 네르온에게서 벗어나는 것도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 생각으로 골목을 돌아 나왔을 때, 헤르시아는 앞을 막아선 것들을 보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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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3.볼테르 백작(3) 20.05.08 26 0 9쪽
27 3.볼테르 백작(2) 20.05.07 24 0 9쪽
26 3.볼테르 백작(1) 20.05.06 25 0 9쪽
25 2.에드쉬-(9) 20.05.04 35 0 9쪽
24 2.에드쉬-(8) 20.05.03 25 0 8쪽
23 2.에드쉬-(7) 20.05.02 27 0 9쪽
22 2.에드쉬-(6) 20.05.02 28 0 9쪽
21 2.에드쉬-(5) 20.05.02 33 0 11쪽
20 2.에드쉬-(4) 20.04.27 25 0 10쪽
19 2.에드쉬-(3) 20.04.26 23 0 10쪽
18 2.에드쉬-(2) 20.04.24 31 0 10쪽
17 2.에드쉬-(1) 20.04.23 21 0 11쪽
16 1.5.트레비안 레디알-(2) 20.04.22 21 0 10쪽
15 1.5.트레비안 레디알-(1) 20.04.21 38 0 11쪽
14 1.5.황족이었습니다. 20.04.20 43 0 12쪽
13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2) 20.04.19 25 0 9쪽
12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1) 20.04.17 31 0 9쪽
11 1.공녀, 리메르-(10) 20.04.16 39 0 12쪽
10 1.공녀, 리메르-(9) 20.04.16 34 0 10쪽
9 1.공녀, 리메르-(8) 20.04.14 48 0 9쪽
8 1.공녀, 리메르-(7) 20.04.11 30 0 8쪽
7 1.공녀, 리메르-(6) 20.04.10 32 0 9쪽
6 1.공녀, 리메르-(5) 20.04.08 39 0 9쪽
» 1.공녀, 리메르-(4) 20.04.07 41 0 9쪽
4 1.공녀, 리메르-(3) 20.04.07 39 0 9쪽
3 1.공녀, 리메르-(2) 20.04.06 48 0 13쪽
2 1.공녀, 리메르-(1) 20.04.04 80 0 9쪽
1 0.프롤로그 20.04.04 157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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