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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 살해자가 될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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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작품등록일 :
2020.04.04 01:43
최근연재일 :
2020.05.08 20:52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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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6
추천수 :
0
글자수 :
121,467

작성
20.04.04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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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0.프롤로그

DUMMY

온 세상이 밝았다.


하늘에서 끝을 모르고 내려온 빛기둥이 제국의 가장 성스러운 곳에 둥지를 틀었다.


“아아······.”


기운을 느낀 직후 대신전의 광장 앞으로 이동한 교황이 감격에 찬 얼굴로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도 상체를 더욱 아래로 숙였다. 가지런히 모은 교황의 두 손 위로 주름진 이마가 살포시 놓여졌다. 그 경건한 행위에, 뒤늦게 달려온 사람들 또한 숨을 죽인 채 조심스레 무릎을 꿇었다.


“교황 성하, 무슨 일입니······까······.”


뒤늦게 달려온 황제가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눈을 크게 떴다. 날카롭게 주위를 맴돌던 그의 기운은 성스러운 기운에 덮인지 오래였다.


그는 얕게 달싹이던 입을 굳게 다물고 홀린 듯이 교황 옆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고귀한 무릎이 닿는 순간 여기저기서 두번째 신음이 터져 나왔으나 그 소리는 광장을 크게 휘몰아치는 신성한 태풍에 모두 흩어져 사라졌다.


그리고 그 틈을, 강렬한 기운이 채웠다.


“크윽···!”

“허억,”

“폐,폐하!”


정신이 버티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 둘 허물어졌다. 입 안쪽 여린 살을 깨물고 빛의 기둥을 응시하던 황제 또한 입가에 선혈을 흘리며 서서히 눈을 감았다.


“폐하!”


[아이야.]


“······!”


무릎걸음으로 황제에게 다가가던 교황이 천천히 뒤를 돌았다. 빛의 기둥 한가운데서 강력한 신성력이 느껴졌다. 강력하면서도, 따뜻한. 그리고 익숙한.


잘게 떨리는 두 눈을 마주한 존재가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아이야, 짙은 자안의 아이를 지켜보아라.]


----이 장면이 내 머리에 메다 꽂힌 것은 정확히 10살의 연극날 새벽이었다.


공기가 울고 있다고 느껴지는 그 공간에 우두커니 서 있던 나는 어떤 존재를 마주해야 했다. 백발과 흰 옷, 하얀 얼굴. 온통 흰 사람이 오직 눈만은 공허한 검은 빛이었다. 그 사람은 자신을 주신(主神)이라고 소개했다.


“어때요? 당신의 성대한 환영식이.”

“성대한······?”

“너무 멋있지 않아요? 힘도 없는 제가 강림까지 했으니 안 멋있을 수가 없지만.”


허, 참나. 잔뜩 깐족거리는 저 입을 닫아버릴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쓸데없는 짓을 하셨네요.”


머리를 쓸어넘기며 하는 말에 주신이 빙긋 웃어보였다. 나는 천천히 흘러 들어오는 과거 기억이 현재와 섞이지 않게 애쓰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솔직히 내가 이런 질문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네.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왜, 저를 10년전에 데려오셨으면서 지금에서야 기억을 돌려주셨나요?”


까득- 살벌하게 이를 갈아대는 내 모습에 주신이 ‘어이구, 무서워라!’라고 중얼거리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이마를 짚었다. 내가 사실은 다른 차원의 존재였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 괴리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를 것이다. 자신을 철저히 지우고 유희를 나간 드래곤들이 유희가 끝난 후 후유증 때문에 몇 백년동안 시름시름 앓는다고 들었을 때는 이해를 잘 못했었는데 겪어보니 이것은 연극 따위가 아니었다. 나는 한 사람이지만 하나의 자아가 더 생긴 것이라고 하면 조금 납득이 갈까.


‘···아니. 이건 절대 납득 못해. 이젠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겠어.’


나는 과거의 기억이 물밀 듯 들어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그 날의 일이 또렷하게 기억났다. 자신을 차원 제르하의 주신이라고 소개하던 파헤프라리아스는 대뜸 내 영혼을 아이 몸속에 집어넣어놓고 뒤늦게서야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 아이가 제게 아주 중요한 아이라서 이렇게 죽게 둘 수 없다면서.


“그럼 나는 죽게 놔둬도 괜찮았던 거에요?”

“그럴리가요.”


주신은 내 두서없는 말을 알아들은 모양인지 서둘러 고개를 저어보였다. 내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린 그는, 분노가 호기심으로 바뀔 즈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디보자···. 질문이 두개였죠. 먼저 첫 번째.”


나는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파프리카가 볼을 긁적였다.


“글쎄요···. 이번에는 조금 차별성을 두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차별성?”

“오늘 드디어 당신의 전생을 다 봤거든요. 그래서 궁금했어요. 당신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저는 당신의 광대일 뿐인가요?”


주신이 당치 않다는 듯 손사레를 쳤다.


“광대라뇨! 당치 않습니다. 저는 제 일을 했을 뿐이에요. 제가 아끼던 아이의 실수로 한 소녀의 영혼이 소멸되었는데 그 아이를 슬프게 하지 않기 위해 당신의 도움을 구했어요. 물론 당신이 꼭 필요하기도 했지만.”

“제가 필요하다고요?”

“네. 저는 지금 많이 약해진 상태여서 직접 차원을 관리할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제 사도로서 여러가지 일을 해줬으면 해요.”

“하?”


난 우선 한 걸음 물러났다. 어느새 잡혀있던 손도 쏙 빼내 등 뒤에 감췄다. 이건 정말로······.


‘사기꾼 패턴 아닌가?’


주신이 움칠 몸을 떨었다. 나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팔짱을 꼈다. 그러고 빤히 쳐다보자 주신이 작게 헛기침을 했다.


“아까는 그냥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궁금하다면서요.”

“아, 그렇긴 한데 이 아이는 제가 이번 대 사도로 뽑아 놓았던 아이여서.”

“다시 뽑으면 되잖아요.”

“한번 뽑으면 일정 기간동안 못 뽑거든요.”

“왜요?”


주신은 권능을 너무 남발해도 안 좋잖아요? 라면서 웃어보였다. 그 서글서글한 모습에 긴장이 풀린 나는 ‘그래서 당신이 이 아이 대신에 사도를 해야해요.’라는 말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야 말았다. 그게 어떤 신호가 되었는지 몸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역시 강제 사도행이구나.’


나는 낭패한 얼굴로 입술을 꾹 눌러 닫았다. 이토록 바보 같은 행동이 어디 있을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실낱 같은 희망을 가지고 입을 열었다.


“혹시 말이죠. 아니라고 믿고 싶긴 한데.”

“네. 말씀하세요.”

“혹시 차원 관리랍시고 누구를 죽이라거나··· 그런 건 없는 거죠?”


주신이 빙그레 웃음지었다. 이제는 그 웃음마저 의심스럽게 느껴져 나는 한발자국 더 뒤로 움직였다. 주신이 나를 보고 서운하다는 듯이 입을 삐죽였다.


“상상력이 지나치게 풍부하시네요. 뭐, 차원에 방해가 되면 누군가를 죽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런 일은 보통 잘 일어나지 않아요. 그래도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당신이 자기 몸 하나는 지킬 수 있게 축복을 내려줄게요.”


그렇게 말하며 주신이 어느 틈에 내 앞에 다가와 무릎을 굽혔다. 반짝, 생기 있게 빛나는 검은색 눈동자가 가려질 정도로 환하게 웃는 얼굴에 홀려 바라보고 있자니 따스한 것이 이마에 닿았다 떨어졌다.


“이건······?”

“그냥, 내 마음이에요. 나중에 때가 되면 다시 찾아올게요, 나의 사도.”


몸이 노곤해지는 느낌에 멍하니 있던 나는 아직 듣지 못한 말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악 물어 정신을 깨웠다.


“잠깐!”

“네?”


내게 천천히 손을 흔들어주던 주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그에게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요구했다. 그가 난감한 듯 웃으며 아주 작게 속삭였다.


“두 번째. 당신은 이미 죽은 상태였어요.”

“뭐······?”

“당신이 부디 그의 소중한 ··· ···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공녀.”


하지만 되물을 틈은 없었다. 나는 처음 이 아이 몸에 들어와 주신을 만났을 때처럼 끝없는 어둠에 빠져들었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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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3.볼테르 백작(1) 20.05.06 25 0 9쪽
25 2.에드쉬-(9) 20.05.04 36 0 9쪽
24 2.에드쉬-(8) 20.05.03 26 0 8쪽
23 2.에드쉬-(7) 20.05.02 28 0 9쪽
22 2.에드쉬-(6) 20.05.02 29 0 9쪽
21 2.에드쉬-(5) 20.05.02 34 0 11쪽
20 2.에드쉬-(4) 20.04.27 26 0 10쪽
19 2.에드쉬-(3) 20.04.26 24 0 10쪽
18 2.에드쉬-(2) 20.04.24 32 0 10쪽
17 2.에드쉬-(1) 20.04.23 21 0 11쪽
16 1.5.트레비안 레디알-(2) 20.04.22 21 0 10쪽
15 1.5.트레비안 레디알-(1) 20.04.21 38 0 11쪽
14 1.5.황족이었습니다. 20.04.20 43 0 12쪽
13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2) 20.04.19 26 0 9쪽
12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1) 20.04.17 32 0 9쪽
11 1.공녀, 리메르-(10) 20.04.16 39 0 12쪽
10 1.공녀, 리메르-(9) 20.04.16 35 0 10쪽
9 1.공녀, 리메르-(8) 20.04.14 49 0 9쪽
8 1.공녀, 리메르-(7) 20.04.11 31 0 8쪽
7 1.공녀, 리메르-(6) 20.04.10 33 0 9쪽
6 1.공녀, 리메르-(5) 20.04.08 39 0 9쪽
5 1.공녀, 리메르-(4) 20.04.07 41 0 9쪽
4 1.공녀, 리메르-(3) 20.04.07 40 0 9쪽
3 1.공녀, 리메르-(2) 20.04.06 49 0 13쪽
2 1.공녀, 리메르-(1) 20.04.04 81 0 9쪽
» 0.프롤로그 20.04.04 158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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