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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 살해자가 될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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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작품등록일 :
2020.04.04 01:43
최근연재일 :
2020.05.08 20:52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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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0
추천수 :
0
글자수 :
121,467

작성
20.04.10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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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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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1.공녀, 리메르-(6)

DUMMY

(6)


“에드, 에드쉬······.”


괴로운 악몽을 꾸는 모양인지 연신 앓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헤르시아는 아이의 붉어진 눈가를 살살 어루만지며 반대 손으로 리메르의 손을 잡았다. 처음에 움찔거리며 피하던 손이 익숙하게 검지를 감아왔다. 그 모습에 울컥한 헤르시아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똑똑-


“헤르시아님. 들어가도 될까요?”

“어, 그, 그게···. 들어오세요.”


빠르게 얼굴을 정리한 헤르시아가 목을 가다듬고 허리를 곧게 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온 시녀는 헤르시아를 보고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괜히 죄스러운 마음에 단정히 포개어 잡은 두 손에 힘을 주며 더욱 공손히 머리를 조아렸다.


“괜찮으시다면 응접실에서 뵙고 싶다는 후작님, 후작부인의 전언입니다.”

“지금이요?”

“네. 그런데 오늘 일도 많이 겪으셨으니 내일도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헤르시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리메르를 살폈다. 아이는 여전히 끙끙거리며 연신 뒤척이고 있었다. 이 아이를 두고 어디를 갈 수 있을까.


물론 10년이나 숨어 살았던 만큼 끊어내려면 하루라도 빨리 제 입장을 전하고 끊어내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지금은 리메르와 에드쉬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치료는 이제 시작이었고, 치료가 일찍 끝난다 해도 밤이 늦어 오늘 밤은 어쩔 수 없이 이곳에서 묵어야 했다.


마음을 정한 헤르시아가 시녀를 향해 고개를 저어보였다.



*



다음날, 헤르시아는 마지막으로 리메르와 에드쉬의 상태를 확인한 뒤 방을 나섰다. 응접실에 앉아 초조하게 헤르시아를 기다리던 뤼르시엔과 네르온이 문이 열리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테이블이 덜컹, 소리를 냈다. 안그래도 긴장하고 있던 헤르시아는 그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몸을 흠칫 굳혔다.


헤르시아가 오기 전까지 그녀를 금방 설득할 수 있을 거라고 희망적인 대화를 나누었던 두 사람은 그 반응에 입을 꾹 다물었다. 보다 못한 집사가 갈 곳을 잃고 서있는 헤르시아에게 맞은 편 소파 자리를 권하고 따뜻한 레몬차를 앞에 내려놓았다.


헤르시아가 따뜻한 찻잔을 감싸고 살짝 웃어보였다.


“고마워요.”


집사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물러갔다. 이제 응접실에는 과거 친우였던 세 사람만이 남게 되었다.


그녀가 오기 전까지 모든 것을 다 말할 기세로 이것도 말하자, 저것도 말하자 상의했던 그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연신 헤르시아의 눈치를 봤다. 헤르시아도 지난 10년간 한 것이 있으니 조용히 차나 홀짝였다.


지독히도 무거운 적막이 응접실을 감싸 안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헤르시아였다. 달칵 소리나게 찻잔을 내려놓은 그녀가 두 사람과 눈을 맞췄다. 나지막하게 흘러나온 음성에 두 사람이 고개를 팍 들어올렸다.


“리메르와 에드쉬를 치료해주는 것은 고마워. 그런데 지난 10년간 그래왔던 것처럼 서로 잊고 살자. 애들이 일어나면 바로 떠날게.”

“잠깐! 시아, 잠깐만. 10년간 널 모른 척한 것이 아니야. 진짜 못 찾고 있다가 어제 갑자기 찾을 수 있었어.”

“그럼 어제 했던 질문을 다시 할게. 10년이나 안 나타난 나를 왜 계속 찾고 있었어? 보통은··· 죽었다고 생각하잖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뒷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뱉을 수가 없었다. 입 맛이 썼다. 헤르시아는 달콤한 향이 올라오는 레몬차를 한 모금 머금고 네르온을 응시했다. 네르온은 어제와 같이 곤란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헤르시아가 몸을 일으키자 다급히 입을 열었다.


“공작가, 공작가의 계보도를 보면 생사 여부를 알 수 있어!”

“뭐···?”


네르온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러한 델리상트 공작가의 계보도 특성은 오직 당대의 공작과 공작 후계자에게만 전해지는 극비 정보였다. 계보도에 특별한 마나 시스템이 적용되어 있다는 것과 계보도에 이름을 올린 일족의 생사를 모두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는 꺼림칙함 때문이었다.


네르온도 네이디르 공작 부부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을 정보였다. 전 공작은 황궁에 네르온을 데리고 가 계보도의 특성에 대해 알리고 계보도의 ‘제 3열람자’로 네르온 델리상트를 지정했다. 그렇게 확인한 정보는 놀라웠다. 네이디르와 헤르시아의 이름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조금 사그러 들었을 뿐, 여전히 글자를 밝게 비추고 있었던 것이다.


2개월 전에 가서 조회해 봤을 때도 그들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그랬기에, 네르온은 두 사람의 생존을 확신하고 계속 찾아 나설 수 있었다. 게다가 네이디르가 소유하고 있던 가보 역시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네르온에게 이야기를 들은 헤르시아는 입을 틀어막았다. 방금, 방금 분명······. 달달 떨리는 입술 사이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르온. 너 방금··· 이디가 살아있다고 했어?”


그가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었다. 이미 대답은 되었다. 하지만 직접 그 입으로 네이디르의 생존을 확인받고 싶었던 헤르시아는 간절하게 네르온의 입을 응시했다. 네르온은 기꺼이 그 요구에 응했다.


그가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형님은 살아계셔.”

“아아···!”


헤르시아가 상체를 앞으로 수그리며 제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드디어, 실마리를 잡았다. 심지어 죽었을 거라 생각한 네이디르는 살아있다. 어디에 있길래 10년동안 단서조차 못 찾은 건지, 그런 것은 중요치 않았다. 아니, 중요하긴 했지만 지금 당장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뤼르시엔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를 들썩이는 헤르시아의 곁에 앉아 어깨를 감싸 안았다. 익숙한 사람의 온기에 둘러싸인 탓일까. 완전히 긴장이 풀린 그녀는 뤼르시엔의 품에서 한참을 흐느꼈다.


한참동안 헤르시아의 등을 토닥이던 뤼르시엔이 헤르시아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웅얼거렸다.


“시아.”

“으응.”

“너에게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건 조금 염치가 없을 지도 몰라.”

“···.”

“그런데, 이렇게 네 경계가 조금 풀린 틈을 타서라도 말하고 싶은 게 있어.”

“말해봐.”


헤르시아가 고개를 들고 뤼르시엔과 눈을 맞췄다. 그 투명한 황금색 눈동자를 보고 울컥하는 것을 애써 눌러 담은 뤼르시엔이 그녀의 허락이 떨어짐과 동시에 입을 열었다.


“우리의 공작 부인으로 돌아와 줘. 같이 네이디르 님을 찾자. 리메르도 공작가의 후계자로 키우고.”

“···.”


헤르시아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런 제안을 받을 것 같아서 오기 전까지 고민했고,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하지만 ‘네이디르가 살아있다’는 변수가 나타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물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도를 못 떠나긴 했지만 사실 희망보다는 미련이라는 단어에 더 가까운 행동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헤르시아가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 고민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닌지라 뤼르시엔이 살짝 웃으며 등을 토닥였다.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여졌다.


“괜찮아. 큰 일을 겪었으니까 아이들이 회복할 때까지 고민해줘. 물론 우리는 너희 세 사람이 다 남아줬으면 좋겠어. 에드쉬까지.”

“에드쉬까지. 그래도 돼? 정말로?”

“당연하지. 너의 가족인 걸. 리메르도 그 아이를 각별히 아끼는 듯하고.”


헤르시아가 한결 밝아진 얼굴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보다 큰 등을 말없이 토닥거리던 뤼르시엔이 오랜만에 느끼는 평화에 행복한 얼굴을 했다. 뤼르시엔 못지 않게 이 분위기를 즐기던 네르온이 제 몫의 차를 홀짝이다 말고 눈을 크게 떴다.


“아! 그러고보니 사도라니, 그건 무슨 말이야?”

“응?”

“리메르가 분명 내게 자신이 주신의 사도라면서 주신에게 맹세할 것을 요구했었지.”


맞나? 당시 상황이 하도 급박했던 터라 정신없이 요구에 응했던 네르온이 머리를 긁적였다. 네르온과 같이 기억을 더듬던 헤르시아도 얼굴을 미묘하게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처음 듣는 일이야.”

“그래? 나도 어제 이것 관련해서 조사해봤는데 뭐 나오는 게 없더라고. 그 아이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던데······.”


네르온이 어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턱을 쓰다듬었다. 하나씩 더듬어 올라가다보니 현재 생사의 고비를 넘기고 있는 남자아이가 만들었던 검은 막까지 생각이 옮겨갔다. 그 불길한 기운이 스멀스멀 불쾌한 기분을 유발했다.


‘뭐였지, 그건.’


그리고 그때였다.


“에드쉬ㅡ!”


소녀의 절규에 세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분명 리메르의 목소리였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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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3.볼테르 백작(3) 20.05.08 26 0 9쪽
27 3.볼테르 백작(2) 20.05.07 24 0 9쪽
26 3.볼테르 백작(1) 20.05.06 25 0 9쪽
25 2.에드쉬-(9) 20.05.04 35 0 9쪽
24 2.에드쉬-(8) 20.05.03 25 0 8쪽
23 2.에드쉬-(7) 20.05.02 27 0 9쪽
22 2.에드쉬-(6) 20.05.02 28 0 9쪽
21 2.에드쉬-(5) 20.05.02 33 0 11쪽
20 2.에드쉬-(4) 20.04.27 26 0 10쪽
19 2.에드쉬-(3) 20.04.26 23 0 10쪽
18 2.에드쉬-(2) 20.04.24 31 0 10쪽
17 2.에드쉬-(1) 20.04.23 21 0 11쪽
16 1.5.트레비안 레디알-(2) 20.04.22 21 0 10쪽
15 1.5.트레비안 레디알-(1) 20.04.21 38 0 11쪽
14 1.5.황족이었습니다. 20.04.20 43 0 12쪽
13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2) 20.04.19 25 0 9쪽
12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1) 20.04.17 31 0 9쪽
11 1.공녀, 리메르-(10) 20.04.16 39 0 12쪽
10 1.공녀, 리메르-(9) 20.04.16 34 0 10쪽
9 1.공녀, 리메르-(8) 20.04.14 48 0 9쪽
8 1.공녀, 리메르-(7) 20.04.11 30 0 8쪽
» 1.공녀, 리메르-(6) 20.04.10 33 0 9쪽
6 1.공녀, 리메르-(5) 20.04.08 39 0 9쪽
5 1.공녀, 리메르-(4) 20.04.07 41 0 9쪽
4 1.공녀, 리메르-(3) 20.04.07 39 0 9쪽
3 1.공녀, 리메르-(2) 20.04.06 49 0 13쪽
2 1.공녀, 리메르-(1) 20.04.04 80 0 9쪽
1 0.프롤로그 20.04.04 157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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