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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 살해자가 될 운명이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연어럼블
작품등록일 :
2020.04.04 01:43
최근연재일 :
2020.05.08 20:52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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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2
추천수 :
0
글자수 :
121,467

작성
20.04.16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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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1.공녀, 리메르-(9)

DUMMY

(9)


“···네.”


소녀가 무릎 사이에 얼굴을 깊게 묻었다.

그때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는데도 주신이 장난친 거겠거니, 넘긴 자신에게 화가 났다.

리메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흘러 들어온 정보를 통해 깨달은 주신은 목구멍까지 넘어온 위로의 말을 도로 삼켰다.

이 말을 내뱉으면 또다시 같은 상태가 반복될 거니까.


“예전에, 당신 어머니가 당신을 가지고 있었을 때 저는 그녀를 치료하면서 축복을 내렸어요. 그때 사도의 표식이 당신에게 가게 되었지요. 굳이 말하자면 당신이 들어오기 전에 살아있던 진짜 리메르에게 간 것이었지만, 그 아이는 안타깝게도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영혼이 떠나게 되어서요.”

“···.”


그가 아무리 간곡하게 돌려 말한다고 한들, 알아들을 수밖에 없었다.

헤르시아는 진짜 아이를 유산한 적이 있는 것이다.

리메르는 미동도 없이 그가 해주는 이야기를 들었다.


주신은 그런 리메르를 보고 살짝 미소지었다.

이건 정말로 진짜 웃음.

이토록 사랑스러운 아이를 어찌 안 사랑할 수 있을까.


“그때부터 당신을 지켜보게 되었어요. 당신이 공작가의 핏줄이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당신 어머니가 원하지 않는데 제가 당신을 위한답시고 공작가에 집어넣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숨겨줬어요. 하지만 리메르.”

“···.”

“공작가의 아이들은 다 착해요. 따스하고, 인정이 넘치죠. 그들을 너무 미워하지 말고 믿어줘요. 잘못을 빌면 무조건 쳐내지 말고 이야기를 들어준 뒤에 당신이 결정해요. 물론 당신이 용서해주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되면 당신도, 당신의 어머니도, 그 아이들도 모두 행복할 테니까.”

“···.”

“리메르?”

“···알겠어요.”


리메르가 작게 중얼거렸다.

리메르조차 잘 들리지 않아 다시 말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사이, 주신이 잘 했다면서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리메르.”


저를 살뜰히 챙기던 네르온과 뤼르시엔, 시녀들을 떠올리던 리메르가 고개를 들었다.


“혹시 묻고 싶은 것이 있지는 않나요? 빠르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요. 너무 오래 자면 안 좋으니까.”


마침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리메르는 어쩐지 주신이 알고 있을 것만 같은 기대를 품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에드쉬···.”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주신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리메르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쯤, 어느 틈에 곁으로 다가온 주신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아이는 무사해요. 약속대로 만나러 올 거예요. 이곳에서 기다리면 되겠네요.”

“아! 다행이다···!”


소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단숨에 밝아진 작은 종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주신이 천천히, 아주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 아이를 너무 믿지 말아요.”

“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제는 진짜 갈 시간이네요. 당분간 힘든 일이 많겠지만 부디 잘 이겨내길 바라요. 나의 사도.”


중얼거림이 너무 작았다.

무언가 중요한 말이 지나갔다고 느낀 리메르가 재차 말해달라는 듯 주신의 입을 끈덕지게 바라봤으나 그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을 설렁설렁 흔들어 보이고는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사락, 결 좋은 머리가 앞으로 쏟아지며 리메르의 볼을 간질였다.


그가 이마에 입을 맞춤과 동시에 검은 공간이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낯선 천장이었다.


“리리······!”

“어머! 깨어났습니다! 아가씨께서 깨어나셨어요!”


리메르의 손을 붙잡고 있던 헤르시아가 조심스럽게 리메르를 품에 안았다.

소녀는 잘 올라가지 않는 팔을 들어 엄마를 마주 안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고여 있던 눈물이 베갯잇을 적셨다.



**



리메르가 깨어나고 2일 동안, 헤르시아는 리메르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뤼르시엔 또한 외부에서 방문한 부인들과의 티타임과 서류 업무 시간 외에는 이 방에서 오래 머물렀는데, 마침 지금은 그녀의 쉬는 시간이었다.,


헤르시아도 밀어낸 채 리메르 옆에 딱 붙어서 보들보들한 손을 만지작거리던 뤼르시엔이 리메르의 시선을 느끼고 싱긋 웃어보였다.


리메르는 ‘안 돼! 오늘만은 혼자 처리해, 집사!’라고 외치며 집무실에 끌려갔다가, 몇 시간만에 지친 얼굴로 돌아와 헤르시아를 밀어내던 뤼르시엔의 모습을 떠올리며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뤼르시엔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반짝거림이 심히 부담스러워진 리메르가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고 고개를 돌렸다.


처음에야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증오스러웠지만 주신에게 들은 것도 있고 연신 밀어내기만 하는 자신에게 넘치도록 잘해줘서 처음 일을 당했을 때의 분노는 거의 다 씻겨 내려간 후였다.

게다가 엄마가 너무 편안해 보였고.


이런 리메르의 심적 변화를 기민하게 눈치 챈 헤르시아는 덕분에 한숨 돌리고 뤼르시엔과의 해후를 즐길 수 있었다.


똑똑-


“거기 못생긴 동생 있습니까~”


‘또 왔네.’


리메르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소녀가 불청객이라고 이름 붙인 소년이 대답도 듣지 않고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연한 나무색 문과 대조되어 붉은 머리칼이 몹시 강렬했다.

소년은 저를 멀뚱히 바라보는 세 사람과 차례차례 눈을 맞추며 씨익 웃어 보였다.


“동생아. 잘 있었니?”


‘쟤는 왜 또 친한 척이야.’


리메르가 뚱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명백한 대화 거절에 트레비안이 보라색 눈을 깜빡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민하던 그가 총총거리며 다가와 뤼르시엔 뒤에 매달렸다.


“어머나.”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은 뤼르시엔이 트레비안의 손을 잡아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니, 이것보세요. 사촌동생은 저를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아.”

“허어?”


리메르가 기가 찬 듯 탄식과도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


트레비안은 제 손을 잡고 토닥이는 손길에도 불구하고 뤼르시엔에게 얼굴을 묻으며 웅얼거렸다


“제가 오빠인데 오빠라고 불러주지도 않고, 인사도 안 받아주고······. 이렇게는 못 살겠습니다. 어머니.”


리메르는 ‘네가 먼저 처음부터 못난이라고 불렀잖아!’라고 쏘아붙이려다가 천천히 화를 눌렀다.

예전이었으면 바로 치고 받고 했겠지만 어째 전생의 기억이 떠오른 후부터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리메르가 이를 악물고 방긋 웃었다.

고개를 살짝 들어올리던 트레비안이 시선을 마주하고 몸을 움칠 떨었다.

그 모습에 약간 화가 풀린 리메르가 한결 가벼운 얼굴로 침대에 등을 기댔다.


“겨우 한 달 정도 일찍 태어난 것 가지고 유세 떨기는. 그래서 여긴 왜 온건데?”

“나는 여기 오면 안 되냐? 여기에 어머님도 계시고, 백모님도 계시고, 너도 있는데!”

“우리가 얼마나 오래 봤다고.”

“···.”


‘재미없어.’


뤼르시엔의 어깨에 턱을 올려놓고 있던 트레비안이 매정한 사촌동생이라고 중얼거리며 입을 삐죽였다.

뤼르시엔이 작게 중얼거리는 말을 알아듣고 작게 웃었다.

제 어머니가 웃는 것을 보고 덩달아 미소 짓던 소년이 제게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상기하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가 잠깐 좀 보자고 하시는데.”

“그래? 엄마, 뤼르시엔님. 잘 다녀오세요.”


리메르가 한결 홀가분한 얼굴로 냉큼 손을 흔들어 보였다.

마침 기억이 돌아오고나서 일이 많았던 탓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던 참이었다.

그래서 어른들을 보내고 생각을 좀 정리하려고 했는데······.

리메르가 침대에서 일어나기만 할 뿐 움직이지 않는 세 사람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안 가세요?”


트레비안이 작게 혀를 찼다.

‘저 꼬맹이가···!’라며 반발심이 들었지만 리메르는 저를 기다리는 듯한 사람들의 모양새에 더 눈이 갔다.


‘가만, 생각해보니 아무리 버릇이 없어도 엄마나 뤼르시엔님한테 대뜸 반말을 할 리가 없잖아?’


소녀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혹시 나도 가?”

“너를 꼭 데리고 오래.”


이런, 그냥 같이 가는 것도 아니고 꼭 데리고 오라고 했다니.

올게 왔다는 느낌에 리메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문 앞에 선 리메르가 작게 심호흡을 했다.


어찌저찌 문 앞까지 찾아오긴 했는데. 너무 극적인 가족 상봉을 한 터라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실 내색은 안 하고 있었지만, 심지어 그의 아내인 뤼르시엔님조차 전혀 내색을 안 하셨다지만 후작이라 불리던 사람의 목에 칼을 들이밀고 신의 맹세를 종용했던 것은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살짝 찔렀던 것도 같은데.’


고개를 숙인 리메르가 문고리를 잡은 손에서 힘을 뺐다.


그렇게 5분이 지났다.

5분은, 생각보다 긴 시간이다.

그 시간동안 리메르가 움직이길 기다리던 트레비안이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바로 하고 문고리를 집은 손에 제 손을 겹쳤다.

뒤의 두 사람은 끝까지 기다려줄 셈인 것 같았지만, 그가 보기에 외부의 도움이 없다면 이 문은 오늘안에 열리지 않을 것 같았다.


사정도 들었으니 평소라면 기다려줬을 것이다.

하지만 문 안쪽에는 기다리게 하면 안될 분들이 계셨다.

그는 손이 튀어 미끄러지려는 것을 단단히 붙잡고 반대 손을 들어올렸다.


“그럼 문 연다.”

“어? 잠깐······!”


똑똑-


눈을 동그랗게 뜬 리메르가 뒤늦게 말렸지만 이미 노크는 했고, 문고리는 끝까지 내려간 후였다.

당황한 리메르가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기도 전에 문이 열렸고, 그 문 틈 사이로 제 팔을 잡아오는 손길이 있었다.


향긋한 차 내음과 함께 나타난 중년의 부인이 떨리는 눈꼬리를 접어 웃었다.


“어서오렴. 시아, 리메르.”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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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3.볼테르 백작(1) 20.05.06 25 0 9쪽
25 2.에드쉬-(9) 20.05.04 35 0 9쪽
24 2.에드쉬-(8) 20.05.03 25 0 8쪽
23 2.에드쉬-(7) 20.05.02 27 0 9쪽
22 2.에드쉬-(6) 20.05.02 28 0 9쪽
21 2.에드쉬-(5) 20.05.02 33 0 11쪽
20 2.에드쉬-(4) 20.04.27 26 0 10쪽
19 2.에드쉬-(3) 20.04.26 23 0 10쪽
18 2.에드쉬-(2) 20.04.24 32 0 10쪽
17 2.에드쉬-(1) 20.04.23 21 0 11쪽
16 1.5.트레비안 레디알-(2) 20.04.22 21 0 10쪽
15 1.5.트레비안 레디알-(1) 20.04.21 38 0 11쪽
14 1.5.황족이었습니다. 20.04.20 43 0 12쪽
13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2) 20.04.19 25 0 9쪽
12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1) 20.04.17 31 0 9쪽
11 1.공녀, 리메르-(10) 20.04.16 39 0 12쪽
» 1.공녀, 리메르-(9) 20.04.16 35 0 10쪽
9 1.공녀, 리메르-(8) 20.04.14 48 0 9쪽
8 1.공녀, 리메르-(7) 20.04.11 30 0 8쪽
7 1.공녀, 리메르-(6) 20.04.10 33 0 9쪽
6 1.공녀, 리메르-(5) 20.04.08 39 0 9쪽
5 1.공녀, 리메르-(4) 20.04.07 41 0 9쪽
4 1.공녀, 리메르-(3) 20.04.07 39 0 9쪽
3 1.공녀, 리메르-(2) 20.04.06 49 0 13쪽
2 1.공녀, 리메르-(1) 20.04.04 80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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