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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 살해자가 될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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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작품등록일 :
2020.04.04 01:43
최근연재일 :
2020.05.08 20:52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1,092
추천수 :
0
글자수 :
121,467

작성
20.04.08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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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1.공녀, 리메르-(5)

DUMMY

(5)


이미 뒤쪽도 기사들에게 막힌 상태였다.


“엄마···.”

“리리. 괜찮아.”


리메르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춘 헤르시아가 아이를 내려놓고 몸을 곧추세웠다. 네르온이 미묘한 얼굴로 다가와 허리띠에서 칼을 끌러냈다.


“헤르시아. 말로 하자. 왜 귀를 막고 있는 거야.”

“···.”

“너를 죽인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저택에서 같이 살자는 거야. 아직 너에게 못한 말이 많아.”

“···.”

“믿어줘. 정말이야.”


네르온은 울 것 같은 얼굴로 헤르시아에게 애원했다. 헤르시아도 알고 있었다. 이 저항은 무의미한 것이며, 네르온이 저와 아이들을 해치려고 하는 것이 아님을. 하지만 도저히 제 정신으로 이디의 흔적이 가득한 저택에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최후의 발악을 선택했다. 뒤에 서 있는 에드쉬 쪽으로 리메르를 밀친 헤르시아가 앞으로 달려나갔다. 네르온이 기우뚱 하는 리메르를 보고 멈칫했다가 훅 들어온 헤르시아를 보고 눈을 부릅떴다. 칼집을 잡은 손이 움찔거렸지만 네르온은 끝내 칼을 뽑지 않았다.


“후작님!”


네르온과 헤르시아를 반 원으로 감싸고 있던 기사들이 황급히 네르온 곁으로 모여들었다. 헤르시아는 시선을 완전히 모을 요량으로 검을 높이 들어올렸다.


챙-


머리 근처에서 멈추려고 했던 검은 그것보다 더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 멈춰섰다. 게레인과 검을 맞대게 된 헤르시아가 찌르르 몰려오는 아픔에 얼굴을 찡그렸다. 게레인은 그것보다 더 괴로운 얼굴로 제발 후작님의 말을 들어 달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그녀가 게레인에게 밀려 두 발자국 뒤로 물러섰을 때, 틈을 보고 있던 에드쉬가 헤르시아를 힘껏 끌어당겼다.


엉겁결에 리메르를 안고 주저앉게 된 헤르시아가 당황한 얼굴로 에드쉬를 찾았다. 헤르시아 바로 뒤쪽에 서있던 에드쉬는 헤르시아와 리메르를 감싸는 검은 막을 형성하고 튀어나가 날아오는 게레인의 검을 짧게 흘려냈다.


빠르게 자세를 바로 한 게레인이 어두운 기운이 넘실거리는 검은색 막을 굳은 눈으로 바라보며 칼에 마나를 둘렀다. 네르온 주위에 몰려서 서있던 기사들이 아연실색하여 소리쳤다.


“단장님!”

“지금 어린 아이를 상대로······!”

“옳지 않습니다!”

“닥쳐라!”


게레인의 일갈에 주위가 일순 조용해졌다.


“게레인! 당장 멈춰!”


네르온 또한 어린아이에게 검을 들이미는 게레인을 보고 눈을 부릅떴다. 제 앞을 막아선 기사를 밀치고 제게 다가오는 네르온을 짧게 응시한 게레인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후작님. 이 아이는 위험합니다. 이 이상의 위협이 없도록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그는 말리는 네르온을 뒤로 하고 제 앞에서 단검을 늘어뜨린 소년에게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그가 검을 들어올리기 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소년의 단검에 둘러진 검은색 마나였다.


두 사람이 검을 맞대자마자 커다란 마나폭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정신력이 약한 기사들은 그대로 허물어 내렸고, 버틴 기사들은 붉은 기운과 검은 기운이 대치하며 내는 소름 끼치는 소리에 귀를 부여잡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마물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고, 누군가가 철을 사정없이 긁는 소리 같기도 했다.


툭, 툭- 에드쉬가 디디고 선 바닥 위로 점점이 붉은색 원이 쌓였다. 검은색 막 안에서 멍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던 리메르가 벌떡 일어나 막을 두드렸다.


“에드쉬! 이것 좀 풀어줘! 에드쉬!”


게레인의 입가에도 선혈이 흘러내렸다. 입가에 고인 피를 뱉어낸 게레인이 마나를 좀 더 끌어올렸다. 그에 대응해 에드쉬 또한 마나를 한계치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던 중, 헛숨을 삼킨 에드쉬가 피를 왈칵 쏟아냈다.


소년의 자세가 흐트러짐과 동시에 검은색 마나가 날뛰기 시작했다. 게레인은 간신히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에드쉬 뒤로 돌아가 목을 쳐 기절시키고 소년을 안아 들었다. 그와 동시에 아무리 쳐도 미동도 없던 검은색 막이 공중에서 챙강, 소리를 내며 부서져 내렸다.


“에, 에드쉬!”


한 순간에 이뤄진 일에 멍하니 서있던 리메르가 만신창이가 된 에드쉬를 보고 서둘러 뛰어나왔다. 무릎을 꿇고 소년의 상태를 살피던 게레인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공녀님.”

“지금 당장, 당장 내려놔요!”

“많이 다쳤습니다. 치료해야 합니다.”

“지금··· 이렇게 다치게 해놓고 치료해 준다는 말을 믿으라는 건가요?”

“믿으십시오. 지금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벌은 이후에 받겠습니다.”

“그럴거면··· 그럴 거면 진심으로 상대하지 말던가······!”


리메르의 절규에 헤르시아를 부축한 채로 다가오던 네르온이 멈칫했다. 그는 옆에서 연신 ‘에드쉬’만 중얼거리는 헤르시아를 부단장에게 맡기고 천천히 리메르에게 다가갔다.


그는 리메르 앞에 꿇어앉아 눈을 맞췄다. 공허한 보라색 눈이 네르온을 향했다.


“얼른 치료해야 해. 공작저로 돌아가자꾸나.”

“···돌아간다고.”


소녀가 픽 웃으며 뒷걸음쳤다. 네르온이 안타깝다는 얼굴로 손을 들어올렸다.


“···리메르.”

“내 이름 부르지 마!


손을 탁 쳐낸 리메르가 악에 받친 듯 소리치고 품에서 단검을 꺼내들었다. 당장이라도 제 목을 뚫을 듯 바짝 들이밀어진 단검을 흘끗 바라본 네르온이 여기저기서 칼을 뽑아 드는 기사들에게 손짓을 했다. 주춤거리며 망설이던 기사들은 재차 이어지는 손짓에 하는 수 없이 검을 집어넣고 검 손잡이를 그러쥐었다.


그가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작은 손을 감싸 안았다. 떨림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도대체 일이 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구나. 내가 다 미안하다.”

“애초에··· 데리러 왔다면서! 데리러 왔다면서 무장하고 오는 게 어디 있어······.”

“미안하다···. 도망갈까 봐 두려웠어.”

“그렇다고··· 그렇다고······.”


한가득 고인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 눈물을 닦아주지도 못하고 손만 움찔거리던 네르온이 먹먹한 얼굴로 울음을 삼켰다. 정말 바라고 또 바랐던 만남인데 이런 꼴이라니. 가슴이 조여왔다.


“저 소년을 구해주마. 그러니 집으로 돌아가자.”

“집은 알아서 가요.”

“나는 네 아버지, 델리상트 공작의 동생이야. 공작가에는 훌륭한 의원이 상시 대기하고 있어. 못 믿겠으면 내 이름을 거마.”


그 사이, 에드쉬가 한 번 더 핏덩어리를 토해냈다. 생각이 꼬인 상태에서 달달 떨리는 손을 잡아준 것은 헤르시아였다. 리메르의 몸을 끌어당겨 안은 헤르시아가 간신히 울음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리리. 우선 에드쉬를 살리고 보자. 살린 뒤에 이야기하자. 응?”

“엄마······.”

“그래. 엄마야. 엄마가 약속할게. 한 번만 믿어보자······.”


···그렇게 도망 다닌 게 누구였는데. 원망 어린 말이 저절로 떠올랐다.


말없이 몸을 떨던 리메르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나는··· 킁, 나는 주신의 사도에요.”

“···.”

“맹세하세요. 당신이 한 말이 한 치의 거짓도 없으며··· 앞으로도 절대로 저와 엄마, 에드쉬를 해치지 않겠다고 주신에게 맹세하세요.”

“맹세하마. 네르온 레디알의 이름으로 주신께 맹세하마.”


가장 가까이에 있던 게레인이 먼저 “후작님!”하고 목소리를 키웠다. 리메르는 그 반응을 보고서야 마음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때,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인영이 있었다. 여자가 곧장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을 본 리메르가 다시 단검을 세게 움켜쥐었다.


“시아!”


그 붉은 머리의 여자는 헤르시아를 보자마자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다가 품에서 주섬주섬 물건들을 꺼내 들었다.


“내, 내가 너무 늦어서 미안해. 일단 저택으로 가자. 다쳤다고 들어서 마법 스크롤을 가져왔어.”

“뤼르···.”

“얼른! 네르온 뭐해, 얼른 오란 말이야!”


비명과도 같은 소리에 네르온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게레인 품에서 에드쉬를 옮겨 받았다. 살짝 넋이 나간 리메르를 헤르시아가 챙기고, 네르온과 뤼르시엔이 동그랗게 모여 섰다. 모두가 접촉한 것을 확인한 뤼르시엔이 게레인에게 스크롤 세 개를 던져준 뒤 스크롤을 찢었다. 환한 빛이 다섯명을 감싸고, 빛이 사라진 자리에는 핏자국만 남았다.


환한 빛에 눈을 꾹 감았던 리메르가 살며시 눈을 떴다. 눈 앞에 고풍스러운 저택이 보였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사가 에드쉬를 들 것에 옮기고 상태를 살핀 뒤 회복 포션을 들이부었다. 놀랍게도 계속 들려오던 기침 소리가 잦아들었다. 더 이상 피냄새가 진해지지도 않았다.


리메르는 그 모습에 우습게도 안심을 했다. 아니, 더 이상 정신을 붙잡고 있을 수가 없어서 억지로 안심을 한 걸지도 몰랐다. 힘이 탁 풀리자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비틀거리는 리메르를 단단히 붙잡은 헤르시아가 뭐라고 소리쳤으나, 리메르에게는 물이 가득 찬 수조 안에서 소리치는 것처럼 웅웅거리는 소리로만 들렸다.


“진짜구나······.”

“뭐가 진짜라는··· 아이야!”

“에드쉬··· 부탁,”


소녀는, 그렇게 긴 잠에 들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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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3.볼테르 백작(3) 20.05.08 27 0 9쪽
27 3.볼테르 백작(2) 20.05.07 25 0 9쪽
26 3.볼테르 백작(1) 20.05.06 25 0 9쪽
25 2.에드쉬-(9) 20.05.04 36 0 9쪽
24 2.에드쉬-(8) 20.05.03 26 0 8쪽
23 2.에드쉬-(7) 20.05.02 28 0 9쪽
22 2.에드쉬-(6) 20.05.02 29 0 9쪽
21 2.에드쉬-(5) 20.05.02 34 0 11쪽
20 2.에드쉬-(4) 20.04.27 26 0 10쪽
19 2.에드쉬-(3) 20.04.26 24 0 10쪽
18 2.에드쉬-(2) 20.04.24 32 0 10쪽
17 2.에드쉬-(1) 20.04.23 22 0 11쪽
16 1.5.트레비안 레디알-(2) 20.04.22 22 0 10쪽
15 1.5.트레비안 레디알-(1) 20.04.21 39 0 11쪽
14 1.5.황족이었습니다. 20.04.20 44 0 12쪽
13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2) 20.04.19 26 0 9쪽
12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1) 20.04.17 32 0 9쪽
11 1.공녀, 리메르-(10) 20.04.16 39 0 12쪽
10 1.공녀, 리메르-(9) 20.04.16 35 0 10쪽
9 1.공녀, 리메르-(8) 20.04.14 49 0 9쪽
8 1.공녀, 리메르-(7) 20.04.11 31 0 8쪽
7 1.공녀, 리메르-(6) 20.04.10 33 0 9쪽
» 1.공녀, 리메르-(5) 20.04.08 40 0 9쪽
5 1.공녀, 리메르-(4) 20.04.07 41 0 9쪽
4 1.공녀, 리메르-(3) 20.04.07 40 0 9쪽
3 1.공녀, 리메르-(2) 20.04.06 49 0 13쪽
2 1.공녀, 리메르-(1) 20.04.04 81 0 9쪽
1 0.프롤로그 20.04.04 158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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