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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 살해자가 될 운명이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연어럼블
작품등록일 :
2020.04.04 01:43
최근연재일 :
2020.05.08 20:52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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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5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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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1,467

작성
20.04.14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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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1.공녀, 리메르-(8)

DUMMY

(8)


네르온은 울다가 실신한 리메르를 도착한 신관에게 보이고 놀란 헤르시아와 뤼르시엔을 달랬다.

그 두 사람이 리메르의 곁을 한 시도 떨어지려고 하지 않아 안심하고 방문을 나설 수 있었다.

그는 저택 내부와 외부 수색 상황 보고를 들으며 에드쉬가 치료를 받던 방 문고리를 잡았다.


뒤에 있던 게레인이 입을 열었다.


“후작님. 방 문은 제가 열겠습니다.”

“문제 있나?”

“가루를 아직 담지 않았기 때문에 바람에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음. 조심스럽게 열겠네.”


두어 번의 다짐을 더 받은 네르온이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돌렸다.

방문을 열자마자 비릿한 혈향이 훅 끼쳐왔다.

그 자그마한 어린아이에게 이렇게 짙은 혈향이 나올 정도로 피가 나왔다니.

네르온은 제 아들과 비슷한 또래의 에드쉬를 떠올리며 비통하게 입술을 짓씹었다.


한차례 마음을 진정시킨 그가 천천히 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침대 근처에 피가 흥건하게 묻어있는 수건과 붉게 물든 물이 담겨있는 대야, 핏자국이 곳곳에 묻어있는 베개와 이불이 보였다.

조금 더 고개를 내리자 바닥에 이질적으로 흩어져 있는 가루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천천히 무릎을 굽혀 손으로 그 가루를 쓸었다.

손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마력을 보니 정말로 제 손으로 직접 아이 발에 달아 놓은 마나 구속구였다.


“게레인.”

“네.”

“자네는 이 마나 구속구를 파훼 할 수 있나?”

“이렇게 가루로 만들 정도로 말입니까.”

“그래.”


네르온이 마법 보관 주머니를 들고 대기하던 마법사를 시켜 마나 구속구의 잔해를 담게 한 뒤 몸을 일으켰다.

그가 손에 남은 마나 구속구의 잔해를 손으로 문지르며 입을 열었다.


“적어도··· 나는 하지 못하네. 칼로 끊어내라 하면 어떻게든 끊어 보겠지만 단시간에는 힘들어. 가루로는 아예 불가능하지.”

“저도 그렇습니다.”


네르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나 구속구는 말 그대로 착용 시 대상의 마나를 무효화시켜 어떤 힘의 조작도 못 하게 하는 도구로 물리적인 힘의 구속 기능도 일반 구속구를 웃돌았다.

사지 멀쩡한 실력 좋은 기사도 못 한 일을 피투성이인 남자아이가 한다?

그 남자아이가 심지어 한 걸음도 제대로 옮기기 힘든 마나 구속구를 한 채로 허공에 떴다?

실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일이었다.


애초에 마나 구속구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해제 방법도 간단하게 말하긴 했으나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소년······.’


네르온이 차분히 머리를 쓸어올렸다.

처음에는 헤르시아와 리메르에게 가려 존재감조차 없던 소년.

리메르와 비슷한 체구의 아이는 실력은 꽤 있었으나 견제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평가는 오전에 있었던 일로 전면 수정되었다.

적어도 상식적인 선에서 수긍하고 넘어갈 수 있을 만한 존재는 아니었다.


···그 소년은 위험하다.


하지만, 그 소년은 제 조카와 헤르시아에게 피해를 준 것도 없으며 제 능력을 자신들과 싸울 때 쓴 적도 없었다.

그가 예상하기에 분명 그 힘을 제대로 썼다면 바닥에 나뒹굴었던 것은 소년이 아니라 자신들이었을 것이었다.


“···.”


그런 가정을 하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어떡한다······.’


그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더 이상 엮여서 좋을 일은 없다.


‘그러나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다지.’


기사가 달달 떨며 옮긴 말을 떠올린 네르온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히 위험한 존재는 맞는데 그 존재는 조카에게 우호적이고, 조카는 이 에드쉬란 아이를 많이 아낀다.

소년이 정말로 돌아온다면 분명 제 옆에 끼고 있으려고 하겠지.

그렇다면 차라리 상대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 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결정을 끝낸 네르온이 구속구의 잔해를 담은 주머니를 건네 받으며 입을 열었다.


“게레인은 내일까지 소년의 행방을 계속 조사해보도록.”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헤르센은 에드쉬라는 소년에 대해 조사를 좀 해줬으면 좋겠네. 헤르시아는 뭔가 아는 눈치니 도움을 받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 구속구는 어떻게 할까요.”


네르온의 얼굴이 구겨졌다. 갑자기 가야할 곳이 생각난 탓이었다.


“마탑에 성분 조사 의뢰를 맡기려고.”

“직접 가십니까?”

“···그래.”


헤르센이 안타깝다는 듯 탄식을 흘렸다.

네르온은 그 모습에 약간의 위안을 얻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분들이라면 이미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헤르시아와 리메르를 찾았다는 것을 알릴 겸.”

“네. 알겠습니다. 바로 가십니까?”

“응. 잠시 다녀올 테니 나머지 일들을 잘 부탁하네.”

“네. 걱정 마시고 다녀오시지요.”



**



소녀는 긴 꿈을 꿨다.

아니, 꾸는 중이었다.

아이들과 헤어지고 나서 엄마가 데리러 오고, 지붕으로 도망가고, 갑자기 기사들이 칼을 들이밀고,

엄마도 칼을 휘두르다가 저를 안고 수로쪽으로 도망치고. 따돌렸나 싶었더니 습격자들은 수로 앞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어떤 기사와 검을 맞대고,

에드쉬가 엄마를 저에게 밀친 뒤 그 기사를 상대하고···

그러다가, 그러다가 에드쉬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그 에드쉬는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허억!”


리메르가 숨을 힘겹게 내쉬며 몸을 떨었다.

그 몸을 감싸오는 손길이 있었다.

다정스레 리메르를 껴안은 주신이 등을 토닥였다.


“그만 봐요. 이런 괴로운 기억은. 저까지 외우겠다구요.”


거칠게 숨을 내쉬던 리메르가 침대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온통 까만 공간에서 리메르가 앉아 있는 침대만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어제와 같은 풍경이었다. 그래, 주신의 공간.


리메르의 까맣게 죽은 눈이 주신을 향했다.

그 눈을 안쓰럽다는 듯이 쓸어주며, 주신이 하얗게 웃었다.


“그럼 어제에 이어 이야기를 계속해볼까요.”

“그 전에···. 도대체 어떻게 아셨어요?”

“네? 뭐가요?”


리메르가 입술을 꾹 눌러 닫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꼈지만 저 인간, 아니 신은 정말 음침한 존재이다.

뻔히 뭘 말하는지 알면서도 저렇게 시치미를 떼는 꼴이라니.

리메르는 정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메마른 입이 벌어지며 입술이 조금 따끔거렸다.


“당신, 어제도 날 여기로 데려 왔었잖아요.”

“그랬죠.”


리메르를 품에서 떼어내 마주 본 주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어제 내게 그랬었죠. 나는 공녀인데 사정이 있어서 헤어지게 된 것이고 엄마의 장단에 맞춰 주기 위해 우리의 존재감을 흐릿하게 해주는 힘을 쓰고 있었다고. 그런데 연극을 할 때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다 인연의 힘이 깊어 들키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고. 미안하다고······.”


울먹이며 말을 끝마친 리메르가 분한 얼굴로 눈을 내리깔았다.

이 모든 일이 자신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고, 견딜 수 없었다.

주신은 입술을 깨물려고 하는 리메르의 행동을 제지하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소녀의 오른쪽 눈에서 눈물이 한방울 툭, 떨어져 내렸다.


“···그랬죠.”


리메르는 주신을 올려다보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주신이 조심스레 눈물을 닦아주는 동안에도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런데 다음 말을 하기 직전에, 당신은 ‘그가 곧 갈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손을 튕겼죠. 그 후에 머리가 인도하는 대로 움직이니 에드쉬가 가기 직전이었어요.”

“그랬나요.”

“그랬어요. 도대체 어떻게 아셨죠? 에드쉬와 당신은 무슨 관계죠?”

“글쎄요······. 주신으로서 모든 만물을 다 사랑해야 하지만 유독 그를 더 사랑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주신이 또다시 빙긋 웃음지었다.


또다시 어쭙잖은 말로 넘어가려는 주신에게 화가 난 리메르가 주신의 손을 탁 쳐내고 소리쳤다.


“그런 가면은 집어 치워요! 내가 도와주길 바란다면 적어도 1%의 진심은 보여 주란 말이에요!”

“리리. 맹세코 전 거짓말은···.”

“···.”


무언가 더 말을 이어가려던 주신이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현재 리메르는 아끼던 이를 잃었다는 생각에 많이 흥분한 상태로, 자신이 어떤 말을 해도 못 믿을 것 같았다.

어쩌면 저도 모르게 그녀를 자극하여 더 괴롭게 할수도.


한숨을 푹 내쉰 주신이 리메르에게 치유 마법을 걸어주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경계하는 리메르에게 안심하라는 듯 뒷걸음을 쳐 다섯걸음 떨어진 곳에서 멈춰섰다.


리메르가 달달 떨며 제 몸을 감싼 이불을 꽉 붙잡고 몸을 웅크렸다.

주신은 안타깝다는 듯이 리메르를 응시하다가 힘겹게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만들어진 발랄한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아이참! 우리 꼬마아가씨가 오늘은 좀 힘들어 보이니 나중에 다시 올게요. 그래도 리메르, 저를 그렇게 바로 써먹다니 제법이던데요? 사실 이걸 먼저 칭찬해주고 싶었는데 말이 꼬여 지금에서야 말을 해주네요.”

“···.”

“그리고, 저 공작가 사람들.”


리메르가 몸을 움찔거렸다.


“리메르. 제가 얼마전에 당신에게 ‘공녀’라고 말했던 것 기억나요?”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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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3.볼테르 백작(3) 20.05.08 26 0 9쪽
27 3.볼테르 백작(2) 20.05.07 24 0 9쪽
26 3.볼테르 백작(1) 20.05.06 25 0 9쪽
25 2.에드쉬-(9) 20.05.04 36 0 9쪽
24 2.에드쉬-(8) 20.05.03 26 0 8쪽
23 2.에드쉬-(7) 20.05.02 27 0 9쪽
22 2.에드쉬-(6) 20.05.02 28 0 9쪽
21 2.에드쉬-(5) 20.05.02 33 0 11쪽
20 2.에드쉬-(4) 20.04.27 26 0 10쪽
19 2.에드쉬-(3) 20.04.26 23 0 10쪽
18 2.에드쉬-(2) 20.04.24 32 0 10쪽
17 2.에드쉬-(1) 20.04.23 21 0 11쪽
16 1.5.트레비안 레디알-(2) 20.04.22 21 0 10쪽
15 1.5.트레비안 레디알-(1) 20.04.21 38 0 11쪽
14 1.5.황족이었습니다. 20.04.20 43 0 12쪽
13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2) 20.04.19 25 0 9쪽
12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1) 20.04.17 31 0 9쪽
11 1.공녀, 리메르-(10) 20.04.16 39 0 12쪽
10 1.공녀, 리메르-(9) 20.04.16 35 0 10쪽
» 1.공녀, 리메르-(8) 20.04.14 49 0 9쪽
8 1.공녀, 리메르-(7) 20.04.11 30 0 8쪽
7 1.공녀, 리메르-(6) 20.04.10 33 0 9쪽
6 1.공녀, 리메르-(5) 20.04.08 39 0 9쪽
5 1.공녀, 리메르-(4) 20.04.07 41 0 9쪽
4 1.공녀, 리메르-(3) 20.04.07 39 0 9쪽
3 1.공녀, 리메르-(2) 20.04.06 49 0 13쪽
2 1.공녀, 리메르-(1) 20.04.04 80 0 9쪽
1 0.프롤로그 20.04.04 157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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