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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 살해자가 될 운명이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연어럼블
작품등록일 :
2020.04.04 01:43
최근연재일 :
2020.05.08 20:52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1,091
추천수 :
0
글자수 :
121,467

작성
20.04.2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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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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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1.5.트레비안 레디알-(1)

DUMMY

(1)


“어머니. 얼굴이 이상해요.”

“으응? 뭐가 이상해?”

“얼굴이요. 으응. 아니, 표정이 이상해.”

“아들, 이런 건 예쁘다고 하는 거야.”

“아니. 이상한데.”

“···도대체 누구야. 리비한테 이상한 거 가르친 게.”


어릴 때의 나는 어머니가 가끔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고 생각했다.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시종들이 말하는, 엄청나게 쓴 초콜릿을 먹을 때 저런 표정이 나오지 않을까.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저 표정을 볼 때마다 이유 없이 슬펐다.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그런가 싶어 나를 돌아보고 최대한 착한 아들이 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어머니의 얼굴에서 그 표정을 지울 수는 없었다.


즐겁다는 듯이 웃고 있던 어머니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그 표정이 자리할 때마다, 내 세상은 천천히 무너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천둥 번개가 저택을 부술 듯이 공격적으로 쳤다.

자다 깬 나는 귀를 찢어발기는 무시무시한 소리에 놀라 방문을 뛰쳐나왔다.


맨발이었지만 바닥이 차가운 줄도 몰랐고 뒤에서 시녀가 나를 부르는지도 몰랐다.

나는 나를 보호해줄 사람이 한 명 밖에 없다는 듯이 거침없이 달려가 방문을 열었다.


“어머니!”

“···.”


아무도 없었다. 내 세상이 조금 더 무너졌다.

내가 마주한 것은 따스한 어머니의 품이 아닌, 사람의 온기가 지워진 텅 빈 침실뿐이었다.


엄청난 외로움이 닥쳐와 양 팔로 힘껏 나를 안아도 찬 공기가 스며들었다.

더군다나 엄청난 굉음이 갑자기 나를 덮쳐왔다. 온 세상이 갑자기 하얘지고, 이 하얀 세상 안에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분명 옆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셔야 하는데.


그리고 문득 무서워졌다.

혹시 나를 두고 가버린 것은 아닐까. 나 같은 아이는 필요 없다고 나만 두고 훌쩍 떠나가 버리신 것은 아닐까.


세상이 꺼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 세상에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나. 이렇게 세 사람만이 존재한다는 듯이 굴었다.

나를 잡는 주위 손길들을 다 밀치고 미친 듯이 저택을 뛰어다녔다.

소란에 놀라 집무실에서 뛰쳐나온 아버지가 곧장 다가와 나를 안아들자 따스한 온기가 나를 훅 덮쳐왔다. 하지만 부족했다.


나는 절망스러운 얼굴로 아버지의 옷을 부여잡았다.


“아버지!”

“무슨 일이냐? 왜 맨발이야? 어디 다치진 않았느냐?”


아버지가 이리저리 내 몸을 살폈다. 그의 눈은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의 걱정과 애정 어린 손길을 받으면서도 진정할 수가 없어서, 옷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아버지!”

“···후우. 리비, 진정하거라. 천둥번개가 무서웠나 보구나.”

“그게 아니고! 어머니가! 어머니가 없어요!”

“···.”

“어머니가 없어요, 아버지······!”

“하아, 리비.”


툭-


머리에 올려진 큰 손이 허상이 아니란 것을 깨닫고 나자 긴장이 조금 풀렸다.

생명줄이라도 된다는 듯이 꽉 잡아오는 손길에 아버지는 아무 말없이 나를 더욱 꽉 안아줬다.


그제서야 내가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닥의 냉기도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제 존재감을 뽐냈다.


“어머니··· 어머니가 없어요. 아버지.”

“엄마는 집에 있어. 네가 걱정할 일은 하나도 없단다.”

“···.”


허공에서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한없이 따스한 손길과 눈길이었지만 나는 그 올곧은 눈을 보면서도 안심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를 보고 싶어요.”

“리비. 엄마는 지금 혼자 있고 싶어해.”

“어머니를 보기 전까지는 자지 않을 거에요.”

“리비···!”

“······보고싶어요. 어머니가.”


아버지의 질책 어린 시선이 날아들었다.

이렇게 화내시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불안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부터 어머니에 대한 집착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이고 있기를 수 분. 한숨 소리와 함께 아버지가 몸을 일으켰다.

순식간에 아버지의 얼굴이 멀어졌다.

혹시 나를 이대로 방으로 돌려보내려는 건가 싶어서 불안해진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몸을 웅크렸다.

그런 내 앞으로 커다란 손이 내밀어졌다.


물끄러미 그 손을 바라보고만 있자 아버지가 무릎을 굽혀 내 손을 살짝 그러쥐었다.

그 손길이 싫지 않아 그 손을 마주 잡았다가 아차,하는 마음에 눈에 힘을 줬다.


“저는 자러 가지 않을 거예요.”

“안 자면 키 안 크는데도?”

“안 커도 상관없어요.”

“엄마가 슬퍼할텐데?”

“···치사해.”


입만 벙긋거리다가 입을 삐죽 내밀자 작게 웃음을 흘린 아버지가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리비는 말이지. 아빠랑 엄마가 아프면 엄마한테 갈 거냐?”

“네.”

“아니, 그··· 즉답인거야?”


아버지가 우리 아들은 엄마만 좋아해서 섭섭하다며 잔뜩 서운함을 내비쳤다.

평소였으면 둘 다 좋아한다며 어떻게든 아버지를 달랬겠지만, 이 당시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손을 잡혔으니 이대로 침실로 끌려가야 하나. 그러면 다시 어떻게 빠져나오지. 어머니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와 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쳐서 다른 것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버지가 손을 잡아당겼지만 나는 버티는 것을 생각했다.

살짝살짝 당기던 아버지의 손이 축 늘어지고, 이내 한숨 섞인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엄마 보러 갈 거야”

“정말요?”

“그래. 그러니까 이리 와. 오랜만에 안고 가게.”


나는 얌전히 아버지에게 안겼다.

시야가 높아지고,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옆에서 담요를 들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유모와 시녀들, 어느새 나와 촛대로 우리의 얼굴을 비춰주고 있는 집사 할아버지.


갑자기 바람이 스며들어 아버지의 품에 더욱 파고들자 유모가 내 몸에 담요를 칭칭 둘러줬다.

나는 그렇게 담요에 파묻혀 얼굴만 내민 채로 저택의 깊은 곳으로 이동했다.

아직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모르는 곳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나를 덮쳐왔다.

도대체 어머니가 왜 이런 곳에 계시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얼른 이 길이 끝나기를, 그리고 그 끝에서 어머니를 만나기를 바라는 것뿐.


오래지 않아 길은 끝이 났다.

아버지는 복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방에서 다섯 걸음정도 떨어진 곳에서 멈춰 섰다.

나는 불빛과 함께 새어나오는 가느다란 목소리에 반응하여 몸을 뒤틀었다.


“내려주세요.”

“리비. 하나만 약속해.”

“약속할게요.”


즉각적으로 튀어나온 대답에 아버지가 김빠진 웃음 소리를 냈다.


“듣고 나서 결정해줬으면 좋겠구나.”

“뭔데요?”


바로 앞에 있는 것이 어머니일 수도 있는데 자꾸 잡는 아버지가 야속했다.

그래서 말이 새되게 흘러나왔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 아버지가 나를 내려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엄마를 슬프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렴.”


아버지의 눈은 고요했다. 진심인 듯했다.

하지만 질문이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었다.

내게는 어머니의 행복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행복하게 해드릴 거예요. 속도 안 썩히고 말 잘 듣고.”


확신에 찬 말에 아버지가 작게 웃었다.


“든든하구나. 이제 가보렴.”


끄덕-


나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 앞으로 튀어나갔다.

문 틈 사이로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애타게 찾던 어머니의 등장에 당장 문을 열어젖히려던 나는 문고리를 잡은 채로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액자를 들여다보면서 가끔 보여주던 그 이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액자를 조심스럽게 쓸어내리는 그 손길이, 그 눈빛이 굉장히 슬프게 느껴졌다.


“어머··· 어머니. 으아아앙.”

“어머, 리비?”


갑자기 슬픔이 북받쳐와, 이 감정을 참을 생각도 않고 목놓아 울었다.

울음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서 뛰어나온 어머니가 나를 품에 끌어당겼다.

나는 그 품 안에서 지쳐 잠들 때까지 울었다.



**



7살 때의 그 사건 이후로 알게 된 것이 있다.


일 년에 두 번씩 어머니가 유독 슬픈 날이 있다는 것.

그날 밤은 무조건 그 장소에 가신다는 것.

어머니가 가끔 보여주시는 이상한 표정의 정체가 그리움이라는 것.


언제 한 번은 아버지를 졸라 그 액자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한참을 망설이시던 아버지는 무언가 결심한 얼굴로, 엄마에게 비밀이라며 나를 그 방에 데려갔다.

자물쇠를 열어주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 아버지를 지나쳐 그 방을 들어서던 순간, 내가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이 방 안에는 오직 두 사람의 초상화만 자리했다.

아버지와 닮은 남자와 어머니가 들고 있던 액자 속의 여자.

그 여자는 밝은 금색 눈동자를 빛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마치 처음 보는 나에게 인사하듯이.


“아버지. 이 여자는 누구예요?”

“네 백모님이란다. 엄마의 오랜 친구이기도 하지.”

“백모님? 백모가 뭔데요?”

“아빠한테는 형이 있는데, 형에게 매우 소중한 사람이야. 그리고 아빠의 친구이기도 하단다.”

“아빠 형은 어디 갔어요? 그 백모란 사람은 좋은 사람이었어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아버지가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음. 형의 소중한 사람이랑 같이 있을 거야. 헤르시아는 너무 좋은 사람이었지. 우리에게 과분할 정도로.”


가슴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질문에 아버지도 어머니와 똑같은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투가 났다.

지금 어머니, 아버지와 살고 있는 것은 나인데도 불구하고 더 깊게 자리해 있는 것은 저 사람인 것 같아서.


“지금은 어디 있는데요?”

“글쎄······. 아마도 좋은 곳.”

“좋은 곳이요? 그게 어딘데요?”

“···그게, 그러게. 그곳이 어디일까.”


아버지는 한참을 뜸들이다가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보며 중얼거렸다.

나는 조용히 액자를 내려놓고 아버지의 팔을 잡아 끌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유치한 생각이었지만, 그 당시의 나는 더 이상 아버지가 이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를 바랐다.

우리를 보러 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 이상 궁금한 것도 없었다.


“아버지. 이제 그만 나가요.”

“다 봤니?”

“네에. 이제는 어머니 보러 갈래요.”

“그래. 그러자꾸나.”


픽 웃으며 나를 단단히 안아올린 아버지의 등에 기대서, 생각했다.


과거의 망령에게 부모님을 빼앗기지 않겠다- 라고.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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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3.볼테르 백작(3) 20.05.08 27 0 9쪽
27 3.볼테르 백작(2) 20.05.07 25 0 9쪽
26 3.볼테르 백작(1) 20.05.06 25 0 9쪽
25 2.에드쉬-(9) 20.05.04 36 0 9쪽
24 2.에드쉬-(8) 20.05.03 26 0 8쪽
23 2.에드쉬-(7) 20.05.02 28 0 9쪽
22 2.에드쉬-(6) 20.05.02 29 0 9쪽
21 2.에드쉬-(5) 20.05.02 34 0 11쪽
20 2.에드쉬-(4) 20.04.27 26 0 10쪽
19 2.에드쉬-(3) 20.04.26 24 0 10쪽
18 2.에드쉬-(2) 20.04.24 32 0 10쪽
17 2.에드쉬-(1) 20.04.23 22 0 11쪽
16 1.5.트레비안 레디알-(2) 20.04.22 22 0 10쪽
» 1.5.트레비안 레디알-(1) 20.04.21 39 0 11쪽
14 1.5.황족이었습니다. 20.04.20 44 0 12쪽
13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2) 20.04.19 26 0 9쪽
12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1) 20.04.17 32 0 9쪽
11 1.공녀, 리메르-(10) 20.04.16 39 0 12쪽
10 1.공녀, 리메르-(9) 20.04.16 35 0 10쪽
9 1.공녀, 리메르-(8) 20.04.14 49 0 9쪽
8 1.공녀, 리메르-(7) 20.04.11 31 0 8쪽
7 1.공녀, 리메르-(6) 20.04.10 33 0 9쪽
6 1.공녀, 리메르-(5) 20.04.08 39 0 9쪽
5 1.공녀, 리메르-(4) 20.04.07 41 0 9쪽
4 1.공녀, 리메르-(3) 20.04.07 40 0 9쪽
3 1.공녀, 리메르-(2) 20.04.06 49 0 13쪽
2 1.공녀, 리메르-(1) 20.04.04 81 0 9쪽
1 0.프롤로그 20.04.04 158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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