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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 살해자가 될 운명이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연어럼블
작품등록일 :
2020.04.04 01:43
최근연재일 :
2020.05.08 20:52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1,080
추천수 :
0
글자수 :
121,467

작성
20.05.02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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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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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2.에드쉬-(5)

DUMMY

(5)


“으응···”

“어? 깼네. 꼬마야! 너 왜 여기서 자고 있니! 길을 잃은 거야?”

“······.”



그의 시야에 사람 대여섯이 들어왔다. 에드쉬가 ‘또인가’라고 생각하며 무의식적으로 칼을 넣어둔 곳으로 손을 가져다 대는데, 억센 손길이 다시 한 번 에드쉬의 어깨를 흔들었다.



“꼬마야! 일어나! 너 이러다가는 진짜 얼어 죽어. 어머! 이 열 좀 봐!”


‘하아···.’



호의를 베푸는 사람에게는 미안한 말이었지만 어깨를 흔들고 소리를 지르는 행위에 골이 울렸다. 에드쉬는 살포시 눈살을 찌푸리고는 요령 좋게 그들 사이를 빠져나왔다.


멍하니 소년이 하는 양을 보고 있던 여자가 정신을 차리고는 어서 돌아오라며 소리 질렀지만 그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사람들에게서 벗어난 에드쉬는 주위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는 모포를 하나 주워 몸에 걸치고는 거리로 나섰다. 햇빛이 눈이 부셨다.


사람들이 괴상한 차림새의 에드쉬를 힐끗거렸다. 사람들의 눈길을 느낀 소년은 길거리 가장자리를 따라 그저 발 가는 대로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멍하니 걷던 에드쉬의 눈에 낯익은 문양이 보였다.



“···!”



재빨리 가까운 골목 사이로 몸을 숨긴 에드쉬가 기억을 되새겼다. 갑옷에 새겨진 문양은 분명 연무장에서 질리도록 봐온 문양이었다.


후작가의 문양이 새겨진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떼거지로 거리를 활보할 만한 이유가 뭐가 있을까?


답은 간단히 나왔다.



‘날 찾기 위해?’



현실감이 없었다. 항상 없는 것처럼 무시해왔던 그를 찾기 위해 꾸려진 수색대라니.


집을 벗어나니 이런 관심도 받아본다. 헛웃음을 흘린 에드쉬가 이내 그들의 시야를 피해 어둠 깊숙이 몸을 숨겼다.




“읏차-“



장시간 동안 같은 자세로 앉아있어 잔뜩 뻐근해진 근육을 풀어주며 주위를 살핀 소년이 얕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눈엣가시로 여겼던 사생아가 사라졌으니 옳다구나 하고 자신을 내버려 둘 줄 알았다. 그래서 조금 느긋하게 행동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후작은 후환을 없애기 위해 죽여도 제 눈앞에서 죽이길 원했다.


이러한 후작의 속내까지는 모르는 에드쉬 였으나 잡히면 끝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렸다.


살기 위해서는 수도를 떠야 한다.



‘정보 길드에 가야 해.’



스베르디를 따라 들은 수업에서 교사들은 항상 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정보 길드라는 것이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순간이 분명히 오니 정보 길드를 찾는 방법과 의뢰하는 법 정도는 알아둬야 한다며 스베르디를 붙잡고 몇 번이나 내용을 반복하곤 했다.


그 내용을 반복적으로 들은 것은 스베르디뿐만이 아니었다.


에드쉬는 그때 교사의 말을 되새기며 천천히 움직였다.




에드쉬는 어느 가정집에서 눈을 떴다. 오랜만의 단잠은 너무나 달콤하여, 쫓기는 중인 것도 잊고 맹렬히도 잠을 탐했다.


그 탓일까.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잔뜩 몽롱한 상태로 눈을 뜬 에드쉬는 낯선 천장과 마주하고는 몸을 굳혔다. 자신이 언제 이 집에 들어왔고, 언제 잠이 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품을 뒤적여봤지만 자신의 손에 감겨와야 할 단검도 없었다. 에드쉬는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온몸이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제발 좀 쉬라고 여기저기서 비명을 질러댔다.


게다가 머리는 왜 이렇게 아픈지. 고열에 시달린 영향인지 관자놀이에서 찌르르 한 아픔이 전해져왔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있자니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깼다!”



보라색 눈을 깜빡이는 소녀가 제 몸만 한 것을 들고 서있었다. 소녀의 움직임에 따라 물이 출렁였다.


참으로 순진한 눈망울에 경계를 늦춘 에드쉬가 입을 열었다.



“여긴···.”



하도 말을 안 했기 때문인지 목소리가 처참했다. 이게 자기한테서 나오는 소리가 맞나 당황한 에드쉬가 두 손으로 목을 감쌌다. 그가 하는 양을 보고 있던 소녀가 눈치 좋게 잔을 채워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머뭇거리다 좀 더 가까이로 재차 뻗어진 손에서 물컵을 건네받은 에드쉬가 물끄러미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물이다. 확실히 물이다. 하지만 마셔도 되는 걸까. 혹시 이 소녀도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하지만 고민도 잠시. 에드쉬는 물 잔을 강하게 움켜쥐고는 천천히 입에 가져다 댔다.


이런 호의조차 의심해야 하는 삶이라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


다행히 에드쉬 일생일대의 도박은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에드쉬의 입가에 희미하게나마 미소가 서렸다.


물 두 컵을 더 얻어마시고 나니 정신이 조금 돌아오는 듯했다. 눈을 두어 번 느릿하게 깜빡인 에드쉬가 앞을 응시했다.


토옥-


에드쉬가 놓친 컵이 이불에 안착했다.


눈을 비비고 다시 앞을 보았지만, 그 행위가 무색하게도 멀뚱히 자신을 쳐다보는 소녀의 얼굴에 피가 겹쳐 보였다. 소녀의 얼굴에서 시작된 붉디붉은 피가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다행히도, 다시 눈을 깜빡였을 때 소녀의 얼굴은 깨끗했다.



“···.”



에드쉬는 속으로 쓰게 미소 지었다. 이게 상상으로 끝나면 참 좋을 테지만 자신이 이곳에 오래 머물수록 사실이 될 가능성이 컸다.


에드쉬는 다리에 힘을 줬다. 일어서려는 의도였지만 몸이 제대로 가누어지지가 않았다. 휘청거리는 에드쉬를 손으로 받친 리메르가 혀를 찼다.



“아직 일어서면 안 돼. 절대 안정이야.”



절대 안정이라니. 타인에게서 듣는 걱정은 아이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사소한 것에도 감동받는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지만 기분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 여기는,”

“우리 집이야. 어제 집 가는 길에 쓰러져 있길래.”

“아.”



정보 길드 간부가 사는 지역을 알아낸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의 기억은 안개가 낀 듯 희뿌옇게 가려져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해 떠올리려 하자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그래서, 이름은 뭐야?”



리메르를 멍하니 올려다본 에드쉬가 홀린 듯 자신의 이름을 내뱉었다.



“에드쉬···라고 합니다.”

“흐음. 에드쉬. 멋진 이름이네. 나는 리메르라고 해!”



낭랑한 목소리가 에드쉬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이것이 리메르와의 첫 만남. 자신과는 달리 존재 자체로 빛이 나는 소녀는 말 그대로 그에게 한 줄기 빛이 되었다.




에드쉬에게는 돌아갈 집이 생겼다. 본래의 성을 감추고 ‘에드쉬’라는 단출한 이름으로 살게 된 소년은 원래 그 집 가족인 양 자연스레 그들 틈에 스며들었다. 오죽하면 리메르에게 ‘우리 엄마야’라는 투덜거림을 듣기도 했다.



“응? 당연히 리메르의 엄마죠.”



맹하니 돌아오는 답에 리메르는 발까지 탕탕 굴리며 답답함을 표했다.



“아니! 그건 맞지만! 내 엄마라니까! 어어, 또 웃네. 나 지금 진지하다!”

“아하하. 미안해요. 화내지 마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에드쉬는 머리를 긁적이며 맑게도 웃었다. 그 모습이 리메르의 화를 돋우기는 했지만 ‘내가 한 행동’으로 인해 질투와 타박을 받는다는 사실이 못내 행복했다. 분명히 짜증 어린 말과 표정을 접했음에도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하하거리며 웃다가 결국 화를 참지 못한 리메르에게 정강이를 한 대 얻어맞긴 했지만.


정말이지, 소소한 삶이었다.


처음에는 후작가의 기사들에게 발각될까 봐 조심스럽게 다니던 에드쉬였으나 1주일이 넘게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자 경계를 늦추고 거리를 활보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리메르와 함께 이부자리를 정돈하고 물을 길러 갔다. 우물 앞에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다 보면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오늘도 왔냐며 말을 걸어왔다. 가끔 구운 감자나 옥수수 같은 것도 챙겨주셔서 한 손에는 음식, 한 손에는 물통을 든 채로 집에 돌아오기도 했다.


길어온 물로 대충 세안을 하고 집 뒤에 있는 작은 공간에서 리메르와 함께 아침 운동을 하다 보면 헤르시아가 아침밥 먹으라며 두 아이를 불렀다. 땀이 흐르는 얼굴을 수건으로 대충 문대며 들어가면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스튜가 아이들을 맞이했다.


스튜를 먹고 난 뒤의 뒤처리는 리메르와 에드쉬 둘이 번갈아가면서 했다. 에드쉬가 당번인 날에는 리메르가 옆에 붙어서 예전에 헤르시아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재잘거렸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준비를 마친 헤르시아가 후작가로 일 하러 나가고, 배웅을 끝낸 둘이 오늘은 뭐 하고 놀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식이었다.



“에드쉬. 엄마라 불러줘.”

“······어. 음. 어. 아, 죄송해요. 그러니까··· 하아, 입이 잘, 죄송해요. 잠시만요.”

“후후. 너무 급하게 하지 않아도 돼.”

“저는 괜찮아요. 어머··· 음, 어머, 니.”



에드쉬는 헤르시아의 말에 몇 번 머뭇거린 끝에 ‘어머니’라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었다. 잔뜩 더듬으며 하는 말에 헤르시아는 그저 방긋 웃었다.



리메르는··· 요리를 못했다. 저번에 한 번 헤르시아의 레시피 북을 보고 따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야채의 크기라던가 물의 양, 불을 조절하는 타이밍, 소스의 양 등이 엉망이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헤르시아는 미리 점심거리를 준비해놓고 나갔다. 그래서 점심은 데워먹기 쉬운 음식이 주를 이루었다.


에드쉬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느꼈고, 팔을 걷어붙였다. 에드쉬가 이 집에 온 지 정확히 3주째 되던 날이었다.


처음에 얼마나 잘하나 보자며 옆에서 잔뜩 시비조로 말을 걸던 리메르는 이내 조용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에드쉬는 생각보다 요리를 잘 했다. 사실 에드쉬 입장에서 요리는 별거 없었다. 그냥 칼을 사용하는 대상이 사람에서 음식으로 변한 것뿐이었다. 양념 또한 책을 보고 똑같이 하면 그만이었다.



“하? 칼질은 현란하네. 근데 과연 맛도 좋을까?”



조용히 바라보고 있던 리메르가 입을 씰룩거리더니 최후의 도발을 날렸다.


결과적으로, 리메르는 무릎을 꿇었다.



“먹을 만은··· 하네.”



리메르의 표정이 와작 구겨졌다. 반신반의하며 입에 넣은 스튜에서 엄마의 맛이 났다. 하지만 빙글빙글 웃는 표정이 ‘나 완전 자신있다’라는 표정으로 보였으므로 최소한 타협한 것이 저 말이었다. 진짜로.



“휴, 다행이네요. 입맛이 안 맞을까 걱정했어요.”



리메르는 안도감 어린 한숨을 길게 뱉어내는 에드쉬를 보며 완벽한 패배감을 느꼈다.


이 이후로 점심 담당은 에드쉬가 되었다. 리메르는 청소를 잘했기 때문에 헤르시아가 일을 나간 후의 집 청소는 리메르의 몫이 되었다.




Xxx년 x월 x일.


오늘은 리메르의 청소 솜씨에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그런데 청소 솜씨를 칭찬하자 리메르의 얼굴이 어두워졌습니다. 자치.. 생? 자치생이었으니까? 이런 말을 했는데 사실 앞 단어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자치생이 무엇일까요? 아주 가끔 ‘자치생을 얕보지 말라’라고 중얼거리는데 물어봐도 답을 안 해줍니다.


언젠가는 속 시원히 알 수 있을까요?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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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3.볼테르 백작(2) 20.05.07 24 0 9쪽
26 3.볼테르 백작(1) 20.05.06 25 0 9쪽
25 2.에드쉬-(9) 20.05.04 36 0 9쪽
24 2.에드쉬-(8) 20.05.03 26 0 8쪽
23 2.에드쉬-(7) 20.05.02 28 0 9쪽
22 2.에드쉬-(6) 20.05.02 28 0 9쪽
» 2.에드쉬-(5) 20.05.02 34 0 11쪽
20 2.에드쉬-(4) 20.04.27 26 0 10쪽
19 2.에드쉬-(3) 20.04.26 24 0 10쪽
18 2.에드쉬-(2) 20.04.24 32 0 10쪽
17 2.에드쉬-(1) 20.04.23 21 0 11쪽
16 1.5.트레비안 레디알-(2) 20.04.22 21 0 10쪽
15 1.5.트레비안 레디알-(1) 20.04.21 38 0 11쪽
14 1.5.황족이었습니다. 20.04.20 43 0 12쪽
13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2) 20.04.19 25 0 9쪽
12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1) 20.04.17 32 0 9쪽
11 1.공녀, 리메르-(10) 20.04.16 39 0 12쪽
10 1.공녀, 리메르-(9) 20.04.16 35 0 10쪽
9 1.공녀, 리메르-(8) 20.04.14 49 0 9쪽
8 1.공녀, 리메르-(7) 20.04.11 31 0 8쪽
7 1.공녀, 리메르-(6) 20.04.10 33 0 9쪽
6 1.공녀, 리메르-(5) 20.04.08 39 0 9쪽
5 1.공녀, 리메르-(4) 20.04.07 41 0 9쪽
4 1.공녀, 리메르-(3) 20.04.07 39 0 9쪽
3 1.공녀, 리메르-(2) 20.04.06 49 0 13쪽
2 1.공녀, 리메르-(1) 20.04.04 80 0 9쪽
1 0.프롤로그 20.04.04 157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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