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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 살해자가 될 운명이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연어럼블
작품등록일 :
2020.04.04 01:43
최근연재일 :
2020.05.08 20:52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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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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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1,467

작성
20.04.22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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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1.5.트레비안 레디알-(2)

DUMMY

(2)



나는 부모님 눈에 들기 위해 꽤나 노력했다.


명문 검가(家)의 후계자로서 검술을 익혔으며, 학문적 가르침에도 성실히 임했다.

아버지와 가끔 하는 검술 대련은 즐거웠고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말을 들을 때면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학문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칭찬을 그렇게 하더라며 나를 보며 환히 웃는 어머니의 눈동자가 올곧게 나를 향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더욱 열심히 공부했다.

평소에도 상냥하신 두 분이긴 했지만 다른 누군가가 들어올 틈새조차도 허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두 분의 가슴 한편에는 항상 백부님과 백모님이 존재했다.

어머니가 그 방을 찾아가는 주기는 점점 짧아졌고, 씁쓸한 표정은 의식하지 않아도 자주 보였다.


분명 잘 대해 주시는데도 갈증이 났다.

어쩌면 이기적이라고 나를 욕할 수도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우선순위에서 두 사람에게 밀렸다.

지금은 없어서 최우선으로 보인다지만 언제라도 둘이 돌아오면 나는 밀릴 것이라고 감히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런 마음은 조바심으로 변했다.

점점 두 사람의 사랑을 갈구하고··· 그러기 위해 나를 더욱 몰아붙여 공부하고.

그런 위태로운 생활을 하던 때였다.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머니는 두 분의 실종날과 백모님의 생일날이 다가올 즈음에 굉장히 힘들어하시곤 했는데 이번에는 백모님의 생일이 근처로 다가와 있었다.


여느 때처럼 검술 수련이 끝내자 마자 어머니를 찾아가기 위해 발을 놀리던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멈췄다.

선객이 있었다.

조금 뜸을 들이다가, 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기대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아버지에게 걸음을 옮겼다.


아버지는 내가 옆구리를 쿡 찌른 후에야 나를 발견하고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고개를 살짝 젓고는 아버지 옆에 조용히 등을 기댔다.


“안 들어갈 거야?”

“···.”


그러게요. 제가 저기 들어가도 되는 걸까요.


···저 곳은 어머니만의 성지가 아닌가요.


의식하지 않아도 아버지의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멍하니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 우리와 같이 사는 걸까요?”

“뭐?”


아, 큰일 났다. 생각만 한다는 게 본심을 입 밖으로 말해 버렸어


나는 낭패한 얼굴로 입술을 꾹 다물었다.

수습을 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아버지는 몸을 반쯤 일으킨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하던 도중 허탈하게 웃었다.

내가 도대체 왜 이런 일로 고민해야 하는 거야. 두 사람의 아들은 난데.

백모님은 피가 섞이지도 않았잖아.


저절로 말이 퉁명스럽게 나갔다.


“그야 그렇잖아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저보다 백부님과 백모님을 더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물론 사랑받고 있다는 것은 알아요. 하지만 만약에 백모님이 돌아오셨을 때도 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실···.”

“트레비안!”


나는 눈을 꽉 감았다.

아버지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맞을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아버지는 나를 꽉 끌어안았다.


몸이 떨렸다.

아니, 아버지가 몸을 떨고 있었다.

가느다랗게 떨리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아득하게 들려왔다.


“미안하다.”

“···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실지. 저는 뭘까요? 가끔 어머니는 저를 보면서도 다른 분을 생각하고 계신 것 같아요.”

“···미안하다.”

“뭐가 미안하세요?”

“네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것. 그리고 부정하지 못하는 것. 네가 이렇게 아픈 표정을 짓게 만든 것.”

“···.”


나는 천천히 팔을 들어 아버지의 몸을 마주 안았다.

언제나 듬직한 아버지의 등이지만, 오늘은 왠지 쓰다듬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등을 쓸고 체온을 느끼며 품에 얼굴을 묻었다.

쿵쿵,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기분 좋게 다가왔다.


“저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그리고 사랑받고 싶어요. 지금보다 더······. 이런 제 마음을 알아 달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요.”

“물론이다. 그리고 하나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네가 최우선이 아니었던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거야. 지금도 너는 우리의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보물이다.”

“······.”


참 이상도 하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부모님이 너무 야속하기만 했는데 이 따뜻한 포옹 한 번, 내가 최고라는 말 한 마디에 지금까지 했던 부정적인 생각들이 다 부질없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아버지도 나를 보듬어 안고, 나도 마주 안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했다.


눈을 꼭 감고 그 순간을 즐기고 있다 보니 방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발랄한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뭐야뭐야? 왜 시커먼 남자 둘이서 끌어안고 있어?”

“어머니?”

“나 빼고 이러기야? 당연히 가운데는 나지!”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아버지와 내 사이로 끼어들었다.

어머니 특유의 포근한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나를 사이에 두고 투닥거리는 부모님을 보며 나는 오랜만에 정말 시원하게 웃었다.

엄마의 포옹이 그렇게 좋았냐며 눈물을 닦아주고 볼을 꼬집는 손길에 지금까지의 고생이 다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등 뒤에 액자가 느껴졌다. 처음에 나를 안을 때만 해도 액자를 들고 있던 어머니는 내 눈물을 닦아주면서 손에서 액자를 놓았다.

아직도 과거의 망령에서 어머니를 벗어나게 하고 싶다고 느끼는 나였지만, 내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당신 손에서 액자를 놓았기 때문에 이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아버지와 어머니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머니가 그 방에 가는 횟수는 눈에 띄게 줄었고, 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늘어났다.

행복했고,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 위해서 더욱 노력했다.




그리고, 축제날 밤에 부모님이 백모님과 사촌 동생을 찾아서 데려왔다.

1층이 소란스러워 계단을 내려가던 나는 기절한 상태의 세 사람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그 중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 아이의 응급처치를 지시한 후 나머지 두 사람의 상태를 살폈다.

눈이 감겨 있어도 알 수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저렇게 반응하는 갈색 머리 여자는 백모님밖에 없으니까.


그날 밤, 극도의 불안감을 느낀 나는 잠을 설쳤다.

정말 두 사람이 백모님을 더 사랑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 날, 부모님은 한결같이 나에게 사랑을 보여주셨고 나는 안도했다.


그 기세를 몰아 내 사촌 동생이라는 여자애가 자고 있는 방으로 찾아갔다.

긴장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실제로 어머니와 백모님이 한 공간에 있을 때 그 눈빛을 보고 내가 충격을 받으면 어쩌나, 내가 과연 그걸 견딜 수 있을까 얼마나 고민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내가 괜한 걱정을 했음을 깨달았다.


“안녕, 리비?”


그 분은 내 두 손을 꼭 잡고 상냥하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후후. 너랑 네르온을 정말 닮았네.”

“그치? 하나 아쉬운 건 이 머리카락. 네르온의 금발을 닮았으면 했는데.”


어머니가 아쉬운 듯 붉고 탐스러운 머리칼을 손으로 빙빙 돌렸다.

나는 그 말에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이 머리색이 얼마나 예쁜데요, 어머니.”

“어머나. 들어봐, 뤼르. 네 아들 말이 맞아. 머리색 정말 예쁜걸?”

“역시 우리 아들밖에 없네! 리비, 이리 오렴.”


나는 얌전히 어머니 옆에 앉았다.


방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속이 뒤틀리는 것만 같았다.

그냥 조용히 살지 왜 나타나서 여기까지 왔냐고 몰아붙이며 쫓아내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얼마나 속앓이를 해왔는지 알았기에 그냥 그들이 원할 만한 대답을 해주고 적당히 거리를 두자고 생각했다.


그러나 백모님은, 그리고 사촌동생은 내가 질투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가족이었다. 백모님의 눈을 보고 왜 부모님이 그토록 그리워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분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분이었고, 이미 나는 그분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마 사촌 동생도 햇살 같이 빛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나는 땀이 송골송골 맺힌 수척한 사촌동생의 얼굴을 한참동안 들여다보았다.

얼른 나와 같은 보라색 눈동자를 마주하고 싶었다.


**


요사이, 백모님과 사촌동생을 받아들인 것과는 별개로 불만이 하나 생겼다.

백모님은 아름답고 상냥하시고, 사촌동생도 퉁명스럽긴 하지만 존재만으로도 귀엽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따스하지만은 않다.


사촌동생은 성인식을 치루자 마자 공작위를 물려받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배워야 할 것이 산더미인 녀석이 공부를 쥐뿔도 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저택에 같이 왔던 에드쉬라는 아이가 사라지고 나서 충격이 컸던 것은 안다.

하지만 내가 부모님만큼 아끼는 것이 이 가문인데 가주가 될 사촌동생님이 이렇게 공부를 안 해서야 정말이지 곤란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앞으로 가신으로서 이 가문을 섬겨야 하는데 멍청이가 실시간으로 말아먹는 가문을 혼을 갈아 지키는 역할만큼은 정말이지 사양이었다.


그래서 내가 지금 뭘 하는 중이냐고?


어디서 배워온 건지 농땡이 피우는 법은 기막히게 아는 사촌동생님을 잡으러 간다.


‘마침 저기에 있네.’


나는 나무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곳에 멈춰 서서 위를 올려다 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나무를 베어버리거나 발로 차서 떨어트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짓을 했다간 어머니가 내 기행에 슬퍼하실테니까.


저벅저벅-


최대한 큰 소리를 내며 다가가자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그리고 그 눈을 정면으로 마주친 나는 갑자기 북받치는 슬픔에 시선을 피하고 마는 것이다.

저 죽은 눈은 어딘가 과거의 어머니를 닮았다.

저 아이도 소중한 존재를 잃었다고 했던가.

그래서 더 가만히 놔둘 수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저 나락에 빠지면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어느새 나무 기둥까지 도달해 고개를 드니 리메르는 이미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누구던가.

나는 부모님에게 사랑받기 위해 쌓아온 근성을 발휘하여 어제와 같이 입꼬리를 천천히 끌어올렸다.


“오늘 공부량 못 채우면 네 푸딩은 내거야.”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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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에드쉬-(7) 20.05.02 28 0 9쪽
22 2.에드쉬-(6) 20.05.02 29 0 9쪽
21 2.에드쉬-(5) 20.05.02 34 0 11쪽
20 2.에드쉬-(4) 20.04.27 26 0 10쪽
19 2.에드쉬-(3) 20.04.26 24 0 10쪽
18 2.에드쉬-(2) 20.04.24 32 0 10쪽
17 2.에드쉬-(1) 20.04.23 22 0 11쪽
» 1.5.트레비안 레디알-(2) 20.04.22 22 0 10쪽
15 1.5.트레비안 레디알-(1) 20.04.21 38 0 11쪽
14 1.5.황족이었습니다. 20.04.20 44 0 12쪽
13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2) 20.04.19 26 0 9쪽
12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1) 20.04.17 32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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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공녀, 리메르-(9) 20.04.16 35 0 10쪽
9 1.공녀, 리메르-(8) 20.04.14 49 0 9쪽
8 1.공녀, 리메르-(7) 20.04.11 31 0 8쪽
7 1.공녀, 리메르-(6) 20.04.10 33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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