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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 살해자가 될 운명이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연어럼블
작품등록일 :
2020.04.04 01:43
최근연재일 :
2020.05.08 20:52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1,077
추천수 :
0
글자수 :
121,467

작성
20.04.17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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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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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1)

DUMMY

(1)


쾅-


“도르딘 님!”

“나 귀 안 먹었다.”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마법진을 그리고 있던 도르딘이 황급히 깃펜을 들어올렸다.

손에 힘이 들어가기 전에 펜을 들어올린 터라 마력이 집중되거나 구멍난 곳은 없었다.

천만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 올린 도르딘이 양피지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그가 책상 위에 있던 마법 도구들을 안전한 곳으로 치우는 동안 세실이 씩씩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차 주전자를 데워 컵에 따른 도르딘이 잔뜩 성난 표정의 세실에게 컵 하나를 밀어주었다.

세실이 컵을 양 손에 쥔 채로 빠득, 이를 갈았다.


‘저 성질머리는 그 아이를 만나도 그대로구나.’


호록- 제 몫의 차를 마시며 세실을 곁눈질하던 도르딘이 슬쩍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갓난아기 때부터 그의 수염을 당기고 놀았던 아이는 정말 일관성 있게 자라주었다.


길을 지나가다 마법을 배우고 싶다며 로브 자락을 잡고 늘어지는 순박한 꼬마 하나를 주워다 키운지 어언 이십여 년.

그 사이에 꼬마가 장성하여 어엿한 마법사가 되고, 제 짝을 찾아 아이를 낳을지 누가 알았을까?

그리고 그 아이가 제 아비를 능가하는 마법 재능을 가지고 있을 확률은?


손녀같이 예뻐하던 아이에게서 발현된 마법적 재능은 꺼져가던 그의 열정을 다시금 뜨겁게 타오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세실은 대마법사의 제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아빠가 연구실에 틀어박혀 연구하느라 엄마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많았기에, 자신이라도 엄마 곁을 지켜야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세실은 외로웠던 어린 기억 때문에 아버지를 빼앗아간 도르딘을 미워했고, 제 여린 부분을 감추는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웠다.

그 콧대 높고 제 또래를 바보로 알던 세실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자 신의 사도 감시 임무에 파견시킨 것이 도르딘이었다.

시시하다며 당장에 돌아올 줄 알았던 세실은 소녀를 만난 후 점점 표정이 밝아졌다.

이따금씩 친구들에 대해 말할 때 나오는 미소는 도르딘과 세실의 부모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설레는 표정으로 마법진을 나섰던 세실이 잔뜩 험악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어리둥절해서 왜 벌써 들어오느냐 묻는 도르딘에게 위태로운 시선이 날아들었다.


‘리메르가 사라졌어요!’

‘사라져?’

‘집에 핏자국이······!’


도르딘의 표정이 굳었다.

그냥 사라진 것도 아니고 핏자국이라니.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당장 일의 전말을 알아봐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 도르딘이 팔을 들어 문을 가리켰다.


‘일단은 아빠에게 가 있거라.’


단호한 도르딘의 말에 세실은 차마 제 안에서 갈무리하지 못한 분노를 토해냈다.


‘하지만!’

‘폐하께 연락해 볼 것이다.’


잔뜩 흥분한 세실의 외침을 끊은 도르딘이 굳은 표정으로 그녀의 눈을 맞췄다.

세실은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으나, 도르딘이 통신구를 꺼내자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 없어 한참동안 입만 벙긋거렸다.

마침내 잔뜩 분노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던 소녀가 분한 듯 몸을 휙 돌렸다.


하지만 한 마디 보태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억누른 분노가 새된 목소리를 통해 흘러나왔다.


‘꼭, 알려주셔야 해요!’

‘알겠다.’

‘숨길 생각일랑 하지 마요!’

‘알았다니까 그러네. 지금 네가 잘 잡고 있는 동안에도 그 아이는···.’


쾅-


‘거 녀석.’


혀를 찬 그는 진지한 얼굴로 황제 직통 통신구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지지직거리기도 잠시, 구슬에 은은한 빛이 어림과 동시에 또렷한 목소리가 통신구를 통해 흘러나왔다.


‘그래.’

‘소식, 들으셨습니까. 저는 아무런 것도 알지 못합니다.’

‘잠깐 황녀와 황자가 귀가하는 사이에 일이 터졌네. 지금 흔적을 거슬러 올라가는 중이긴 하다만 확실하게 나온 것은 아무것도 없어. 허나······.’

‘···.’

‘감히 어떤 것들이 이런 짓을 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도에게 어떤 위해라도 입혔다간 곱게 죽일 생각은 없네.’


으르렁 거리는 듯한 황제의 목소리에 도르딘은 움찔 몸을 떨었다.

숨길 생각도 없어 보이는 분노가 그에게로 향하자 죽을 맛이었다.


‘끄응. 진정 하십시오. 이 일은 폐하께 달려있습니다. 주신의 사도가 납치된 것을 주신이 알게 되시면 크게 노하실 수도 있습니다. 사도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위치를 파악해야 합니다.”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범인들이 얼마나 깨끗하게 흔적을 지워놨는지···.’

‘정보 길드에는 연락 해보셨습니까?’

‘그 쪽까지 포함해서 말한 거야.’

‘···.’


도르딘이 침음을 흘렸다. 통신구에서도 기나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황제도 속이 타는 듯했다.


기나긴 정적이 흘렀다.

저가 할 일을 생각하며 황제의 다음 말을 기다리던 도르딘이 세 번째 리스트를 작성해 나가던 깃펜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십 년은 늙은 듯한 황제의 목소리가 통신구를 통해 흘러나왔다.


‘사도의 행적을 쫓는 것도 일이지만 날뛰는 황녀와 황자를 진정시키는 것도 쉽지가 않군.’

‘어이쿠. 황녀님 달래기가 여간 힘드시겠군요.’

‘자네라도 알아줘서 다행이야. 자꾸 힘을 쓰겠다고 해서 말리는 것이 고역이었네. 하···. 자네 쪽도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 최선을 다해 행적을 쫓고 있으니 연락을 기다려주게.’

‘알겠습니다. 저도 제 손 닿는 선에서 조사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 후 듣게 된 소식은 예상 밖이었다.


실종 사건의 범인은 델리상트 공작가의 차남, 레디알 후작이었다.

황제는 크게 분노했다.

감히 주신이 친히 보살피라 말한 소녀를 납치해간 그에게 당장이라도 기사단을 보낼 것처럼 굴었다.

하지만 영상구 속의 공녀와 후작이 묘하게 닮아 그는 잠시 선택을 보류하기로 했다.

갑자기 자안이 신경 쓰인 탓이다.


도르딘은 그 의견을 반대했다.

아무리 닮았다고 한들 레디알 후작이 작은 소녀를 납치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그 과정에서 피를 봤다.

이런 이유를 들어 도르딘은 당장 공작가에서 사도를 데려와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따졌지만 황제는 이 일의 함구를 명했다.


그는 일을 이렇게 넘기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황제의 말대로 결정적인 것이 부족했다.

그는 결국 세실에게 황실조차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기다린 보람이 있었던 건지, 소식을 접한 다음날 델리상트 공작가에서 먼저 황제를 찾아왔다.

그들은 공작가의 계보에 리메르를 올리며, 정식으로 그 소녀를 델리상트 공작의 하나뿐인 딸이라고 공표했다.


“그래서, 말씀해 보시지요. 도르딘 님.”

“흐음. 무얼 말이냐?”


도르딘이 여상스럽게 대꾸하자, 세실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시치미 떼셔봐야 소용없습니다. 알고 계셨던 거죠. 도르딘님은.”


그는 퍽이나 태연하게, 그리고 느긋하게 따뜻한 차를 한 모금 홀짝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실의 속이 부글부글 끌었다.


저 영감탱이는 3일간 저가 얼마나 리메르를 찾고 또 찾았는지 알면 저렇게 차만 홀짝이면 안 되었다.

그녀는 평생 저 인간의 제자 따위는 하지 않을 거라고 속으로 굳게 다짐하며 탁자를 양 손으로 내리쳤다.


쾅-


도르딘이 시선을 올려 저를 죽일 듯이 내려보고 있는 세실을 마주 보았다.

세실이 꽥 소리쳤다.


“도르딘 님!”

“아이고, 귀 안 먹었대도!”


덜컹- 덜컹-


제멋대로 흔들리는 테이블에서 정신 사나운 소리가 났다.

미리 컵을 들어올렸던 도르딘이 지지 않고 눈을 치켜 떴다.

흔들리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의 대치가 이어졌다.

하지만 결국 먼저 백기를 든 것은 도르딘이었다.

그는 연신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을 골랐다.


“알고 있었다.”

“역시!”


세실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다.


“그러나.”

“그러나?”


그는 잠시 망설였다.


이번 일은 그다지 단순하지 않았다.

지금 델리상트 공작가는 가주만 없고 공작부인과 후계자만 돌아온 아주 이상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듣기로 레디알 후작은 델리상트 공작이 되어달라는 가신들의 청도 마다 않고 공작위를 공석으로 비워뒀다던데··· 설마 진짜로 전부 넘겨주려고?

물론 저가 아는 마탑주와 부마탑주라면 후작과 똑같은 선택을 했겠지만 그래도 죽었다는 가정이 더 현실성 있는 공작을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영 납득되지 않았다.


쯧. 그 양반들을 조금만 더 알았다면 추측이라도 해보는 건데.


도르딘은 결국 앓는 듯한 신음소리를 목구멍에서 겨우겨우 삼키고 입을 열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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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3.볼테르 백작(2) 20.05.07 24 0 9쪽
26 3.볼테르 백작(1) 20.05.06 25 0 9쪽
25 2.에드쉬-(9) 20.05.04 36 0 9쪽
24 2.에드쉬-(8) 20.05.03 26 0 8쪽
23 2.에드쉬-(7) 20.05.02 27 0 9쪽
22 2.에드쉬-(6) 20.05.02 28 0 9쪽
21 2.에드쉬-(5) 20.05.02 33 0 11쪽
20 2.에드쉬-(4) 20.04.27 26 0 10쪽
19 2.에드쉬-(3) 20.04.26 24 0 10쪽
18 2.에드쉬-(2) 20.04.24 32 0 10쪽
17 2.에드쉬-(1) 20.04.23 21 0 11쪽
16 1.5.트레비안 레디알-(2) 20.04.22 21 0 10쪽
15 1.5.트레비안 레디알-(1) 20.04.21 38 0 11쪽
14 1.5.황족이었습니다. 20.04.20 43 0 12쪽
13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2) 20.04.19 25 0 9쪽
»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1) 20.04.17 32 0 9쪽
11 1.공녀, 리메르-(10) 20.04.16 39 0 12쪽
10 1.공녀, 리메르-(9) 20.04.16 35 0 10쪽
9 1.공녀, 리메르-(8) 20.04.14 49 0 9쪽
8 1.공녀, 리메르-(7) 20.04.11 30 0 8쪽
7 1.공녀, 리메르-(6) 20.04.10 33 0 9쪽
6 1.공녀, 리메르-(5) 20.04.08 39 0 9쪽
5 1.공녀, 리메르-(4) 20.04.07 41 0 9쪽
4 1.공녀, 리메르-(3) 20.04.07 39 0 9쪽
3 1.공녀, 리메르-(2) 20.04.06 49 0 13쪽
2 1.공녀, 리메르-(1) 20.04.04 80 0 9쪽
1 0.프롤로그 20.04.04 157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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