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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 살해자가 될 운명이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연어럼블
작품등록일 :
2020.04.04 01:43
최근연재일 :
2020.05.08 20:52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1,083
추천수 :
0
글자수 :
121,467

작성
20.04.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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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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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2)

DUMMY

(2)


“집안일이 아니더냐.”


애타는 얼굴로 도르딘의 말을 기다리던 세실이 입꼬리를 비뚜룸하게 올렸다.


“집안일이요? 그 핏자국도 집안일에 속하는 거랍니까? 리나가 말하길 에드쉬는 실종이라던데요!”


점점 감정이 격양되어가는 세실을 물끄러미 바라본 도르딘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평민인 우리가 귀족을 상대로 뭘 하겠느냐.”


멈칫-


‘평민···.’


세실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의 얼굴이 한껏 일그러졌다.


“평민이요···? 그래도 나름 사도의 감시자잖아요. 게다가 도르딘님은 황제 폐하와 직속 통신까지 하시고, 귀족이시고······.”

“나는 이름뿐인 귀족이라는 것을 잊었느냐. 게다가 네가 평민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아.”

“···.”


‘언제 이렇게 멀어진거야. 리메르.’


세실이 입술을 까득, 짓씹었다.

강해져야 한다.

강해져서 이딴 소리를 듣지 않을 만한 위치로 올라가야 한다.


도르딘은 차를 한 모금 더 홀짝이며 세실을 곁눈질했다.

기가 팍 상한 것 같아 미안하긴 했지만, 지금은 이렇게라도 관심을 떼어놓는 것이 나았다.


사실 마법사, 정령사와 같은 특수능력자들이 귀한 세상에서 황제마저 한 수 접어준다는 저가 공작가에 그 소녀를 보여줄 것을 요청한다면 공작가는 어쩔 수 없이 리메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렇게 리메르를 본 후에는?

그쪽의 의중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소녀를 만났다가 더 깊은 곳에 감춰버리면 더는 손 쓸 방법이 없었다.


만약 표면적인 이유처럼 잃어버린 소공작을 드디어 찾은 것이라고 한들, 이미 세실과 리메르 간에는 신분이라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겨 버렸다.


결국 무엇 하나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황제야 이 나라의 황제니까 허용되는 것이 많다지만 이쪽은 잃을 것도, 뚫어야 할 벽도 너무나 많았다.


‘어쩔 수 없군.’


아무래도 오브아덴이라도 털어봐야 할 것 같았다.

도르딘이 그 시끄러운 작자를 만날 생각에 한숨을 쉬는 사이, 세실이 자리에 앉아 도르딘의 시선을 끌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으응?”

“어떻게 하면 리메르를 만날 수 있냐고요.”


깜짝 놀란 그가 표정을 굳혔다.


정말이지, 그 소녀가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나 괴로운 표정을 짓는 건지······.


‘호오? 가만 있어봐라.’


하지만 안타까워하기도 잠시. 그는 그의 오래되지 않은 염원이 떠올랐다.

잘 이용하면 세실의 소망도 이루고 자신의 소망도 이룰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속으로 히죽 웃고는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티를 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저절로 은근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세실이 혼이 나간 상태가 아니었으면 들키고도 남을 정도로.


“크흠···.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

“정말요? 그게 무엇이죠?”


고개를 번쩍 들고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예비 제자에게 이런 식으로 제 소망을 드러내는 것이 조금 양심에 찔리긴 했으나, 그는 마음을 다잡고 최대한 인자하게 웃어 보였다.


“그 뭐냐, 네가 내 제자가 되면 된다.”

“···하.”


세실의 얼굴이 단번에 차게 식었다.


“그걸 지금 방법이라고 내놓으신 건가요? 내가 더러워서 진짜! 다시는 안 와!”


세실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쿵쾅거리며 문으로 향했다.

다급해진 도르딘이 황급히 허리를 곧추세웠다.


“자, 잠깐 기다려보거라!”

“됐다고요! 방법은 내가 찾을거야!”

“어허! 기다려 보래도! 귀족들은! 의무적으로 아카데미를 간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멈칫-


“···그런데요?”


급한대로 쏟아 놓는 말에 세실이 발걸음을 멈췄다.

소녀는 아직 의심이 간다는 얼굴로 도르딘을 바라보았다.

도르딘은 정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거기에 평민들도 갈 수 있다는 것은 아느냐.”

“···알고 있긴 하죠.”


‘하. 또 이렇게 홀리는 건가.’


세실이 머리를 벅벅 문지르며 도로 의자를 찾아 앉았다.

끼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에 제대로 몸을 붙이고 앉은 예비 제자를 보며 도르딘이 씩 웃었다.


“사도··· 아니, 이젠 공녀라고 불러야지. 공녀도 분명 아카데미에 입학할 테니 너도 그곳에 입학을 하면 만날 수 있지.”

“아니, 잠깐만요. 좋은 생각이긴 한데요···. 근데 그건 몇 년 후잖아요? 아카데미 입학 가능 나이가 되려면 좀 멀었는데! 언제 기다려요 그걸!”


도르딘이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지. 하지만 나는 공작가에 가서 공녀를 만나게 해달라고 할 빌미가 없지.”

“···.”

“그건 너도 없고.”

“아이씨.”

“어허, 입 거친 것 보게.”


도르딘의 타박을 뒤로하고 세실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제일 실현 가능성이 높은 방법이긴 했다.

지금처럼 넋 놓고 친구를 빼앗길 바에야 아무도 넘보지 못할 정도로 강해지고 싶기도 했고.


‘결국 돌고 돌아 이렇게 되는 건가.’


세실은 자조적으로 웃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렇게 마법사가 되기 싫어서 피했는데 결국 이 영감탱이를 스승으로 받들고 마법 공부를 할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찔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도르딘이 말하는 그 아카데미는 시험을 쳐서 들어간다.

성적보다는 재능을 주로 보지만 마법사나 정령사에게 그 재능은 곧 실력이었다.

세실은 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가 없어 겁이 났다.

완전히 자격 미달은 아닐까 하여.

한참 고민하던 세실이 자신 없는 어조로 말했다.


“저기, 대마법사 제자로 추천 입학은 안 되나요?”

“아니, 왜?”

“합격 못하면 어떻게 해요.”


도르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명 너는 천재라고, 너 같은 인재를 썩히면 이 세상에 죄를 범하는 거라고 귀에 딱지가 얹을 정도로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모조리 다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는 갑자기 자신감이 쪼그라든 세실에게 자신감을 북돋아 주려고 하다가 크흠, 헛기침을 했다.


세실이 도르딘의 팔을 잡고 늘어졌다.


“아, 제발요!”

“스승님이라고 부르면 생각은 해보마.”

“이익!”

“어허, 얼른?”


그녀는 입을 일자로 다물고 도르딘을 힘껏 노려보았다.


내가 과연 잘하는 짓일까?

황제 폐하가 믿고 일을 맡긴다는 것은 알겠는데 모두 과거의 영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 맨날 마법진이나 그리고 저한테 제자가 되라면서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는 저 할아버지한테 무언가 배울 것이 있긴 할까?


특히, 저렇게 꿍꿍이가 있는 듯한 미소를 지으면 더더욱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 밖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달리 좋은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던 세실은 결심을 하고 눈을 부릅떴다.


‘그냥 눈 딱 감고 하는 거야. 나중에 리메르를 만나게 되면 수치스러워서 죽을 뻔했던 일에 대한 보상을 받아야지.’


“스···!”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저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세실은 바닥을 도르딘인 양 노려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매도 일찍 맞는 것이 낫다고, 이런 쓸데없는 일은 후딱 끝내 버리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입이 잘 안 떨어진다.

세실은 한참을 제 입과 씨름하다가 결국 빽 소리 질렀다.


“으으··· 젠장. 스, 스승님!”

“오호라! 드디어 말해줬구먼!”


세실은 질린 눈으로 손뼉까지 치며 기뻐하는 도르딘을 바라보았다.


자, 이제 괴로운 시간은 다 지났어.

눈을 부릅뜬 세실이 긴 숨을 내쉬며 도르딘의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세실의 눈이 번뜩였다.


“자, 이제는 추천 입학.”


도르딘이 방긋 웃음 지었다.


“대마법사의 제자가 추천 입학이라니, 말도 안 되지. 암, 그렇고 말고.”

“···뭐요?”


세실의 표정이 와작 구겨진 것은 보이지도 않는지 도르딘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내가 누누히 말했잖느냐. 넌 천재라고. 너 정도면 충분히 제 실력으로 입학할 수 있다. 대충 해도합격일 걸? 물론 방심하면 불합격 가능성도 좀 있겠지만 넌 열심히 할 거 다 안다.”

“···.”

“그러니, 이왕 아카데미에 갈 거 당당하게 입학을 거머쥐거라. 그 아이를 위해 강해지고 싶은 게 아니··· 켁!”

“진짜 못 들어주겠네. 이 망할 영감탱이가!”


노기 어린 외침에 손속을 두지 않는 멱살 잡기까지.

그야말로 하극상의 끝이었지만 세실은 그런 것 따위는 상관없었다.

그냥 이 영감탱이를 무덤으로 보내버려야 속이 후련해질 것 같았다.


이미 늙을 대로 늙어 열 살 남짓의 여자아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한 도르딘은 세실과 눈을 마주치고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순간 오싹 소름이 돋은 도르딘이 소리쳤다.

아주, 간절하게.


“아이고! 도르딘 죽는다! 제자야! 스승 죽는다아악!”

“죽어! 그냥 죽어어어어!”

“제자야! 제자...켁!”


그날, 도르딘은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할 때까지 세실에게 짤짤 흔들렸다.

뒤늦게 달려온 세실의 아버지는 다 늙은 할아버지를 이렇게 대하는 게 아니라며 세실을 혼냈지만 그녀는 도르딘에게 절대 사과하지 않았다.


그리고 먼 훗날, 이 날은 대마법사 세실이 탄생한 날로 알려지게 된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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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3.볼테르 백작(1) 20.05.06 25 0 9쪽
25 2.에드쉬-(9) 20.05.04 36 0 9쪽
24 2.에드쉬-(8) 20.05.03 26 0 8쪽
23 2.에드쉬-(7) 20.05.02 28 0 9쪽
22 2.에드쉬-(6) 20.05.02 29 0 9쪽
21 2.에드쉬-(5) 20.05.02 34 0 11쪽
20 2.에드쉬-(4) 20.04.27 26 0 10쪽
19 2.에드쉬-(3) 20.04.26 2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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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트레비안 레디알-(1) 20.04.21 38 0 11쪽
14 1.5.황족이었습니다. 20.04.20 43 0 12쪽
»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2) 20.04.19 26 0 9쪽
12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1) 20.04.17 32 0 9쪽
11 1.공녀, 리메르-(10) 20.04.16 39 0 12쪽
10 1.공녀, 리메르-(9) 20.04.16 35 0 10쪽
9 1.공녀, 리메르-(8) 20.04.14 49 0 9쪽
8 1.공녀, 리메르-(7) 20.04.11 31 0 8쪽
7 1.공녀, 리메르-(6) 20.04.10 33 0 9쪽
6 1.공녀, 리메르-(5) 20.04.08 39 0 9쪽
5 1.공녀, 리메르-(4) 20.04.07 41 0 9쪽
4 1.공녀, 리메르-(3) 20.04.07 39 0 9쪽
3 1.공녀, 리메르-(2) 20.04.06 49 0 13쪽
2 1.공녀, 리메르-(1) 20.04.04 80 0 9쪽
1 0.프롤로그 20.04.04 157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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