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연어럼블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 살해자가 될 운명이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연어럼블
작품등록일 :
2020.04.04 01:43
최근연재일 :
2020.05.08 20:52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1,093
추천수 :
0
글자수 :
121,467

작성
20.05.06 21:38
조회
25
추천
0
글자
9쪽

3.볼테르 백작(1)

DUMMY

(1)


“어이-“

“···.”

“아아-, 우리 사촌동생님은 정말 매정하기도 하시지. 이렇게 애타게 부르는데도 본 체도 안하고 말이야.”



또다. 리메르는 고개만 아래로 틀어 퉁퉁 부어있는 트레비안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휙 고개를 돌렸다. 리메르와 마주친 찰나의 순간 이를 드러내고 씩 웃어 보인 트레비안이 그 상태로 굳었다.


꽉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보며 뒤에 잠자코 서있던 유모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조용해진 듯하자 리메르가 다시 책으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가 조금 흔들리는 듯하더니 트레비안의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깜짝 놀란 리메르가 손에서 책을 놓쳤다. 책이 바닥에 곤두박질치며 큰 소리가 났다. 미간을 좁히고 책이 떨어진 곳을 내려다보던 리메르의 얼굴이 조금 더 구겨졌다. 잔디가 깔려있긴 했지만 책이 이상한 모양으로 접혀있는 것을 보니 내지 또한 망가진 게 분명했다.


리메르의 시선이 이윽고 방긋거리는 트레비안에게로 옮겨졌다. 차게 식은 표정에 한차례 움찔 몸을 떤 트레비안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아니. 그러니까 왜 사람을 무시하냐고.”

“저 책 아직 10장밖에 못 읽은···! 아니, 여기는 어떻게 올라오셨습니까.”



왈칵 짜증을 내다 무미건조하게 말을 뱉어내는 리메르를 신기하게 바라본 트레비안이 리메르 옆 가지쪽으로 손을 뻗으며 입을 열었다.



“맨날 도망 다니니까 나도 연습했지.”

“···나무 타는 연습이요.”

“응. 맞아.”



불안한 얼굴로 이를 지켜보던 리메르가 결국 트레비안이 옆 가지에 걸터 앉는 것을 도왔다. 리메르의 눈이 깊어졌다. 얼핏 봤을 때 팔과 종아리에 나무에 긁힌 듯한 생채기가 많긴 했다.



“바보입니까? 여기서 떨어지면 다리 못 쓸 수도 있어요.”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저는··· 좀 달라요.”

“뭐가 달라? 흠, 좀 다르긴 한가? 내가 너보다 키도 크고 운동도 많이 했으니까. 아니, 그러면 네가 더 위험한 거잖아? 내가 너한테 뭐라 해야겠네!”

“···.”

“뭐야. 너 왜 나를 그렇게 봐? 눈은 왜 피하는 건데?”



응. 너도 뇌가 참 청순한 것 같다고.


아니, 이게 이 나이대 어린아이들의 순수함인가.


유난히 맑게 웃고, 화내고, 울먹거리는 등 자신의 감정에 누구보다 솔직했던 파비안과 시르가 떠올랐다. 그리움에 잠긴 리메르를 눈에 담은 트레비안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뭐가 달라?”

“네?”

“너는 되고 난 안된다며.”

“그야···.”

“그야?”



이 나무는 저택의 2층 높이 정도의 나무로, 가지에 기대 저택을 바라보면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것과 높이가 비슷했다. 그리고 사실 리메르는 이미 몇 번 나무 위에서 멍 때리다가 떨어진 적이 있었다.


리메르는 제 손을 들어 눈에 담았다. 처음 떨어졌을 때 허둥거리다가 등부터 떨어져서 이젠 진짜 끝났나 싶었는데 일어났을 때 아무렇지도 않았다. 누가 짓이긴듯한 아픔은 있었지만 적어도 몸은 멀쩡했다. 심지어 나무에서 훌쩍 뛰어내려도 조금 다리에서 찌르르 한 아픔이 느껴졌을 뿐, 그 후에는 괜찮았다.


하지만 이건 일반적인 아이는 물론 성인에게도 해당되지 않겠지. 리메르는 오랜 고민 끝에 이런 튼튼한 몸이 주신이 말했던 재능 중에 하나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그야 저는 오래도록 나무를 탔으니까요.”



나무에 등을 기대면서 하는 말에 트레비안도 조심스레 나무에 등을 기댔다. 밑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유모와 호위기사를 향해 씩 웃어준 트레비안이 발장구를 쳤다.



“흐음···. 저번에 말했던 그 친구들과?”



나른하게 중얼거리는 말에 리메르의 시선이 트레비안을 훑었다. 소년은 나무 위가 의외로 아늑하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고 바람을 즐겼다. 시원한 바람이 볼을 훑고 간 뒤에 포근한 햇살이 소년의 눈꺼풀을 톡톡 두드렸다. 슬그머니 눈을 뜨니 시야에 너른 하늘이 가득 채워졌다.


가끔은 이런 것도 좋네. 작게 중얼거린 트레비안의 표정이 이내 씁쓸해졌다.


리메르는 가끔이 아니라 매일 이 나무에 걸터앉아 하늘을 보고 있었다. 주변을 보지 않고. 그녀가 고개를 조금만 내리면 백모님과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자신이 있는데도 그랬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볼 때면 주위를 인식하지도 못했다. 나무 아래에 비스듬히 서서 본 리메르의 표정은 공허하기 그지없었다.



“아뇨. 친구들과는 잘··· 아, 그네를 만들 때 올라가긴 했었네요.”

“그네?”

“네. 나무에 줄을 걸고 맨 밑 부분에는 판자 같은 것을 대서 타는 기구예요. 튼튼한 나무에 매달아서 타면 꽤 재미있어요.”

“그거 재미있나 봐? 여기에도 걸 수 있을까?”

“전에 걸었던 나무는 더 작았으니까, 가능하지 않을까요? 위험할까 걱정되지만.”



리메르가 싱긋 웃음 지었다. 고개만 돌려 리메르를 바라보고 있던 트레비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무 기둥에 찰싹 달라붙었다. 아래에서 들리는 비명에 살짝 눈을 찡그린 리메르가 조금 뒤로 물러났다.



“부담스럽거든요. 위험하고요.”

“아니, 근데 너 방금 웃었어.”



걱정 섞인 리메르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할 말 다 한 트레비안이 한 손을 들어 입꼬리에 손을 넣어 끌어올렸다. 이렇게-라며 호들갑을 떠는 트레비안을 보는 리메르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뭐, 저도 웃을 수도 있는 거죠.”


‘하지만 너 요사이에 전혀 웃지 않았잖아.’



한 마디 하려던 트레비안이 입만 벙긋거리다 이내 입을 완전히 다물었다. 아직 둘 사이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었고, 방금 그는 선을 지켰다. 적어도 트레비안은 그렇게 생각했다.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아차.’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던 트레비안이 이내 제 팔을 꼬집었다. 참 바보 같게도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깜빡 잊고 있었다. 흥-하고 작게 콧바람을 내뿜은 트레비안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틀었다. 멍하니 정문으로 통하는 길을 바라보는 리메르의 시선이 흐릿했다.


매번 잔소리는 자기 몫이라며 작게 투덜거린 트레비안이 눈에 힘을 줬다.



“너 오늘도 땡땡이지?”

“네에. 땡땡이중이네요.”



너무나 시원스레 나온 답변에 소년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너. 백모님이나 부모님이 아무 말 안 하신다고 막 나가는 모양인데, 나는 너 그런 거 못 본다고. 차기 공작이면 공부를 해야 할거 아냐. 난 바보 상관 싫다고.”

“···.”

“아, 그리고 오늘도 황실에서 사람 보내왔어. 백모님이 매번 아프다며 돌려보내긴 하시는데, 벌써 4주째야. 너 황실 상대로 간이 너무 크다?”

“알게 뭡니까.”



트레비안이 살포시 눈을 감았다. 요즘은 이렇게 혈압 뻗치는 일이 많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입가를 간신히 진정시킨 트레비안이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깊게 끌어올렸다.



“알게 뭐냐니. 황실이라니까? 황녀 전하와 황태자 전하께서 널 보고 싶어 하신다고. 너 아직도 황실 모독으로 안 끌려간 게 기적이야.”

“하아, 트레비안님. 그만하시죠. 그냥 끌려가게 내버려 두세요.”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트레비안의 동공이 잘게 흔들렸다. 너무 심했나 싶어 뭐라고 사과해야 하나 말을 고르고 있는데 리메르의 귓가로 툴툴거리는 트레비안의 목소리가 콕 박혀왔다.



“오라버니.”

“네?”

“트레비안님이 뭐야. 오라버니라고 불러.”

“···.”

“왜? 싫어?”



그거였습니까.


이번엔 진짜 화난 줄 알고 가슴 졸였던 리메르가 잔뜩 굳은 어깨에서 힘을 뺐다. 곧추세웠던 몸을 다시 느슨히 기댄 리메르가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트레비안이 그 모습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트레비안이 놀라거나 말거나 자신의 간지러움을 해결한 리메르가 만족스럽다는 듯 손을 털었다.



“리비.”

“뭐야. 갑자기 뭔가 엄청 짧아졌는데?”



뭔가 억울한 표정의 트레비안을 빤히 바라본 리메르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아. 그런가요. 죄송하네요.”



목소리가 차갑다. 이상하게 리메르에게는 맥을 못 추겠다고 생각하며 트레비안이 눈썹을 축 늘어뜨렸다.



“아니, 그게 아니라-“

“저보다 무우려어 12일이나! 먼저 태어나신, 지고지순한 오라버니의 애칭을 제가 감히.”

“꼭 그런 것은···”

“아아- 저는 황실 모독죄에 더해 혈육에게 버릇없다는 죄도 씌워졌네요. 이것 참. 이제부턴 자중하고 오라버니라고 부르겠···”

“아니! 잠깐!”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던 트레비안이 황급히 소리쳤다. 얼마나 급했던지 한 손을 리메르에게 쭉 뻗은 상태였다. 리메르가 트레비안의 둥근 정수리를 잠자코 응시했다.


힐끗 고개를 들었다가 무표정한 리메르와 마주한 트레비안이 재차 고개를 숙였다. 이내 기어가는듯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네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 나쁘지 않아.”



리메르가 턱을 쓰다듬었다. 흐응-하는 콧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트레비안을 보고 리메르가 눈을 빛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마왕 살해자가 될 운명이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8 3.볼테르 백작(3) 20.05.08 27 0 9쪽
27 3.볼테르 백작(2) 20.05.07 25 0 9쪽
» 3.볼테르 백작(1) 20.05.06 26 0 9쪽
25 2.에드쉬-(9) 20.05.04 36 0 9쪽
24 2.에드쉬-(8) 20.05.03 26 0 8쪽
23 2.에드쉬-(7) 20.05.02 28 0 9쪽
22 2.에드쉬-(6) 20.05.02 29 0 9쪽
21 2.에드쉬-(5) 20.05.02 34 0 11쪽
20 2.에드쉬-(4) 20.04.27 26 0 10쪽
19 2.에드쉬-(3) 20.04.26 24 0 10쪽
18 2.에드쉬-(2) 20.04.24 32 0 10쪽
17 2.에드쉬-(1) 20.04.23 22 0 11쪽
16 1.5.트레비안 레디알-(2) 20.04.22 22 0 10쪽
15 1.5.트레비안 레디알-(1) 20.04.21 39 0 11쪽
14 1.5.황족이었습니다. 20.04.20 44 0 12쪽
13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2) 20.04.19 26 0 9쪽
12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1) 20.04.17 32 0 9쪽
11 1.공녀, 리메르-(10) 20.04.16 39 0 12쪽
10 1.공녀, 리메르-(9) 20.04.16 35 0 10쪽
9 1.공녀, 리메르-(8) 20.04.14 49 0 9쪽
8 1.공녀, 리메르-(7) 20.04.11 31 0 8쪽
7 1.공녀, 리메르-(6) 20.04.10 33 0 9쪽
6 1.공녀, 리메르-(5) 20.04.08 40 0 9쪽
5 1.공녀, 리메르-(4) 20.04.07 41 0 9쪽
4 1.공녀, 리메르-(3) 20.04.07 40 0 9쪽
3 1.공녀, 리메르-(2) 20.04.06 49 0 13쪽
2 1.공녀, 리메르-(1) 20.04.04 81 0 9쪽
1 0.프롤로그 20.04.04 158 0 8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