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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 살해자가 될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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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작품등록일 :
2020.04.04 01:43
최근연재일 :
2020.05.08 20:52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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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8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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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1,467

작성
20.04.27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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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2.에드쉬-(4)

DUMMY

(4)


“집중···교육이요? 하루만 다녀가셔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거지. 후작님은 그림자로 키우자고 하셨다지만 공작님은 아예 치워버리고 싶으신 모양이라.”

“···.”

“쯧. 도련님만 안되셨지. 그 어린애가 뭔 잘못이 있다고···.”


말하다 보니 둘째 도련님에 대한 가여움이 폭발해 이러저러한 말을 이어가는 아버지였지만, 데르한은 그 말을 제정신으로 들을 수가 없었다.


공작이 하루만 다녀가도 에드쉬는 기본 이틀을 앓았다. 그런데 한동안 집중 교육을 하신다니. 이건 에드쉬를 쥐잡듯이 잡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버텼다지만 에드쉬가 공작이 작정하고 행하는 교육에 멀쩡히 버틸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진짜로, 에드쉬가 다 죽어가는 꼴을 봐야 할지도 몰랐다.


“아아- 공작님이 오시는군요. 그래서 장식을... 아! 아버지. 그 장식은 저쪽 상자에 있을 거예요.”

“어? 왜 여기 있지? 진즉 말하지 그랬냐.”

“하하. 지금 생각나서요. 음···. 시간이 늦었네요. 아버지는 얼른 주무세요. 내일 일찍 일어나셔야 하잖아요. 뒷정리는 제가 할게요.”

“어어···? 아냐. 내가 할게.”

“아닙니다. 이럴 때 아들 써먹으십시오. 얼른 들어가세요.”


처음에는 거절했던 기사단장은 데르한의 마지막 말에 설핏 웃고는 아들에게 떠밀려 방으로 들어갔다.


빠르게 상자를 정리한 데르한이 아버지의 방에서 더 이상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급히 연고와 돈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지금.


데르한은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자 마음이 급해졌다. 눈을 꾹 감고 마음을 진정시킨 데르한이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에드쉬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에드쉬. 잘 들어. 어쩌면 너는 이후에 나를 원망할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네가 살기 위해서는 여기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

“나 도망쳐야 하는구나···. 그러면 어머니는,”

“네가 없어지면, 무사하실거야.”


아이에게는 잔인한 말이었지만 사실이기도 했다. 이 저택에 흐르는 살벌한 기운은 모두 그의 존재로부터 비롯되었으므로.


“내가 없어지면···.”


아이가 고개를 숙였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공허했다.


머리가 핑 돌았다. 온몸이 뜨거워서 미칠 것 같았다. 그는 주머니를 꽉 쥐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파르르 떨리는 입가가 애처로워 보였다.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해?”

“주방에 가면 로렌 아주머니가 계실 거야. 아주머니가 열어주는 통로를 따라 나가면 저택 밖으로 나가게 돼. 그쪽에도 기사 아저씨들이 있는 것으로 알아. 시간이 없어서 아저씨들을 설득하지는 못했어. 미안하다.”


결국 운이라는 소리였다.


성공하면 탈출에 성공하는 거고, 실패하면 앞으로 더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에드쉬는 손에서 느껴지는 울퉁불퉁한 것의 촉감에 방긋 웃음 지었다. 항상 데르한이 몰래 연고를 발라주러 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고마웠건만.


“형. 고마워. 주방에는 나 혼자 갈게.”

“같이 가.”


다급한 데르한의 말에 에드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 혼자 갈게. 더 이상 위험한 일을 시킬 수는 없어. 형은 의심받기 전에 얼른 돌아가.”


잠시 고민하던 데르한은 결국 고개를 숙였다. 미안함보다는 걸렸을 때의 두려움이 더 큰 것이 사실이었기에.


“······으윽! 미안하다. 같이 가주지 못해서.”

“괜찮으니까 얼른 돌아가.”

“너! 꼭 나가야 해! 내일 남아있으면 내가 흠씬 두들겨 패 줄 거야!”

“하하. 알겠어.”

“꼭이야!”


데르한은 방문을 나서는 순간까지 에드쉬에게 꼭 나가서 살아남으라며 신신당부를 하고는 떠났다.


에드쉬는 멍하니 창밖을 쳐다봤다. 달이 이렇게 밝고, 저의 방은 이렇게 넓고 쾌적하다. 저택도 고요하기 짝이 없는데 정작 자신이 있을 곳은 없다.


스윽-


마음을 정리한 에드쉬가 천천히 방 밖을 나섰다.


깊은 새벽이란 것을 알려주듯 주방으로 가는 동안 마주친 사용인은 한 명도 없었다. 에드쉬는 복도를 씁쓸한 표정으로 훑으며 주방으로 나아갔다.


데르한의 말대로 주방에는 어떤 인상 좋은 아주머니가 계셨다. 불안한 듯 주방을 서성이던 로렌이 에드쉬를 발견하고는 사용인 통로 앞으로 그를 이끌었다.


문 앞에 펼쳐진 작은 통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에드쉬가 주머니에서 잡히는 것 하나를 꺼냈다. 금화였다.


“감사해요. 로렌 아주머니. 이건 아주머니 가지시고 나머지는 데르한 형에게 돌려주세요. 부탁할게요.”

“도련님···.”


한사코 사양하다 에드쉬가 건네주는 것들을 받은 로렌이 눈물을 글썽였다. 에드쉬는 그녀를 보고 피식 웃음 지었다.


아직 나를 위해 울어주는 사람도 있구나.


이럴 때서야 알게 되다니, 참 야속할 노릇이었다.


에드쉬는 서둘러 로렌에게 인사하고는 통로 안으로 들어섰다. 등 뒤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열쇠를 걸어 잠그는 소리가 들려왔다.


꼭 살아남으시라는, 나가서는 행복하시라는 말도 얼핏 들었던 것 같다. 환청일 수도 있지만.


멈칫-


이제는 진짜 돌아갈 수 없다.


뒤늦게도 이 사실을 깨달은 에드쉬가 품에 갈무리시킨 작은 단검을 꽉 움켜쥐고는 통로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걸었을까. 서서히 달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신중하게 걸음을 옮긴 에드쉬는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서둘러 밖으로 나와 가장 가까운 수풀로 몸을 숨겼다. 주변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수풀 사이에 가까이 붙은 에드쉬의 몸이 굳었다.


제 머리 위를 단검이 날카롭게 훑고 지나갔다. 새가 푸드덕하며 날아올랐다.


“뭐야, 왜?”

“아니. 뭔가 있던 것 같아서.”

“새잖아?”

“그러게. 에라이, 이놈의 후작가. 때려치우던가 해야지. 이젠 헛것을 다 보네.”

“그렇게 싫으면 때려치우면 되잖나?”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쯧. 솔직하지 못해서는.”


시시덕 거리는 소리가 점차 멀어져 갔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킨 에드쉬가 하얀 입김을 뿜으며 후작저에서 멀어져 갔다. 에드쉬의 뒤로 소복한 눈이 쌓여갔다.


****


‘···어디로 가야 하지.’


에드쉬는 갈림길에 멈춰 섰다.


한참을 달려온 것 같다. 뒤를 돌아보니 전투적으로 내리는 눈 덕분에 에드쉬의 발자취가 빠른 속도로 지워지고 있었다.


그 말은 즉,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었다. 어느 길이 후작가로 이어지는 길인지 알 수 없었으므로.


분명 아쉬워야 하는데 의외로 홀가분했다.


그는 길의 변두리에 쪼그려앉아 한결 편해진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얗디하얀 눈송이들이 그의 얼굴에서 허망하게 사라져갔다. 한참 동안 얼굴에 닿는 차가운 기운을 만끽하던 에드쉬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평소 스베르디와 외출하며 봤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마차들이 지나다닐 만큼 넓은 길은 있었지만 길 사이사이 건물들은 스베르디의 방 크기만 한 것이 꼭 장난감 같았다.


장난감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 같은 풍경을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쳐다보던 에드쉬가 이내 퍼뜩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은 후작가를 도망쳐 나왔다. 이렇게 여유를 부릴 틈은 없다.


“도망···.”


무심코 그 단어를 입에 담은 에드쉬가 얼굴을 굳혔다. 그 단어가 가져오는 파장은 굉장했다. 이미 저택을 무단으로 나온 이상 평생 후작가를 피해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 무겁게도 다가왔다.

소년은 벌떡 일어나 앞을 응시했다. 가운데 길은 넓었고 양옆 길은 상대적으로 좁았다. 특히 왼쪽은 희미하게 악취가 났다.


“역시 이쪽이겠지.”


고민은 짧았다. 에드쉬는 발걸음도 씩씩하게 왼쪽 갈림길로 걸음을 옮겼다. 자신은 도망자니까 가장 어두울만한 곳으로 간다는 것이 이유였다.


“꼬마야, 너 좋은 옷 입고 있네?”


에드쉬는 얼마 가지 않아 빈민가를 어슬렁거리던 불량배들을 맞닥뜨렸다. 남자 여섯은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옷을 입고 있는 소년에게서 돈 냄새를 맡았다. 몸값이나 받아내자며 에드쉬를 빙 둘러싼 남자들이었으나 전문적으로 그림자로 키워진 아이에게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동료들의 피를 본 남자들이 도망가는 양을 지켜보던 에드쉬는 열이 오르는 몸을 이끌고 안쪽으로 좀 더 이동했다.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양옆으로 모포 같은 것을 두른 채 눈을 감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죽음의 냄새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소년은 적당한 곳에서 쉬기로 했던 계획을 철회하고는 옷깃을 단단히 여몄다. 이곳에서 얼어 죽느니 차라리 정처 없이, 마음 가는 대로 걸음을 옮기는 것이 나을 듯싶었다.


멋모르는 어린아이의 판단과 행동이었지만 다행히도 걸음을 옮길수록 길은 깨끗해졌고 눈과 바람을 피할 수 있는 판자들도 군데군데 발견할 수 있었다. 에드쉬는 새벽 동이 어스름이 틀 무렵에야 그의 몸을 뉠 곳을 정하고는 조심스럽게 잠을 청했다.


에드쉬가 정신을 차린 것은 늦은 오후였다. 자의로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감기가 심해져 정신을 차리기 힘든 와중에 누군가가 우악스럽게 어깨를 흔들었다. 목이 꺾이는 듯한 느낌에 그는 가까스로 눈을 떴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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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3.볼테르 백작(2) 20.05.07 24 0 9쪽
26 3.볼테르 백작(1) 20.05.06 25 0 9쪽
25 2.에드쉬-(9) 20.05.04 35 0 9쪽
24 2.에드쉬-(8) 20.05.03 25 0 8쪽
23 2.에드쉬-(7) 20.05.02 27 0 9쪽
22 2.에드쉬-(6) 20.05.02 28 0 9쪽
21 2.에드쉬-(5) 20.05.02 33 0 11쪽
» 2.에드쉬-(4) 20.04.27 26 0 10쪽
19 2.에드쉬-(3) 20.04.26 23 0 10쪽
18 2.에드쉬-(2) 20.04.24 31 0 10쪽
17 2.에드쉬-(1) 20.04.23 21 0 11쪽
16 1.5.트레비안 레디알-(2) 20.04.22 21 0 10쪽
15 1.5.트레비안 레디알-(1) 20.04.21 38 0 11쪽
14 1.5.황족이었습니다. 20.04.20 43 0 12쪽
13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2) 20.04.19 25 0 9쪽
12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1) 20.04.17 31 0 9쪽
11 1.공녀, 리메르-(10) 20.04.16 39 0 12쪽
10 1.공녀, 리메르-(9) 20.04.16 34 0 10쪽
9 1.공녀, 리메르-(8) 20.04.14 48 0 9쪽
8 1.공녀, 리메르-(7) 20.04.11 30 0 8쪽
7 1.공녀, 리메르-(6) 20.04.10 32 0 9쪽
6 1.공녀, 리메르-(5) 20.04.08 39 0 9쪽
5 1.공녀, 리메르-(4) 20.04.07 41 0 9쪽
4 1.공녀, 리메르-(3) 20.04.07 39 0 9쪽
3 1.공녀, 리메르-(2) 20.04.06 48 0 13쪽
2 1.공녀, 리메르-(1) 20.04.04 80 0 9쪽
1 0.프롤로그 20.04.04 157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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