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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 살해자가 될 운명이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연어럼블
작품등록일 :
2020.04.04 01:43
최근연재일 :
2020.05.08 20:52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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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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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1,467

작성
20.04.2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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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에드쉬-(1)

DUMMY

(1)


“에드쉬!”

“형님.”


맑은 녹색 눈동자가 총명하게 빛났다.

소년이 밝은 얼굴로 팔을 붕붕 흔들다가 욱신거리는 통증에 살짝 움츠러들었다.

그 변화를 기민하게 눈치챈 스베르디가 들고 있던 책을 내팽개치고 달려가 남색 머리 소년의 손을 덥석 잡았다.


“에드쉬. 이 손등······.”

“으음.”

“···아프지.”

“그냥 좀 따끔한 정도에요.”


곤란하다는 듯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리던 소년이 슬그머니 손등을 뒤로 감췄다.

하지만 걱정 어린 스베르디의 눈동자는 에드쉬의 손등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손등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이기심으로 인해 이 아이가 대신 상처받고 있다는 사실은 그도 아프도록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소년은 끝내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형님. 고개를 들어주세요.”

“매번 네가 대신 맞는 것을 알면서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형님.”

“더 공부를 잘 하지 못해서 미안해.”

“···형님. 전 진짜 괜찮아요.”


에드쉬는 곤란하다는 듯 미소 지었다.


솔직히 안 아픈 것은 아니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죽을 정도로 아팠다.

홧홧한 통증이 계속해서 올라와서 속이 매슥거릴 정도였다.

이제 익숙해질 때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몸은 매번 아프다고 비명을 질러댔다.


게다가 이 통증은 모두 형인 스베르디의 실수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에드쉬는 스베르디와 수업을 같이 들었다.

스베르디는 후계자로서, 에드쉬는 휘핑 보이(whipping boy)로서.

티나게 에드쉬를 스베르디의 뒤에 세워놓는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어린아이들도 알 정도로 에드쉬에 대한 취급은 박했다.

단지 에드쉬가 첩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교사는 스베르디에게만 질문을 했고, 그가 바로 대답하지 못하면 조금의 지체도 없이 에드쉬에게 매를 들었다.

에드쉬가 맞지 않는 날은 수업이 없는 날 뿐이었다.


조금은 원망스럽기도 했다.

조금만 더 열심히 공부하시지. 조금만, 조금만··· 진짜 조금만 더 생각하고 말하시지. 그리고 조금만 더 빨리 대답하시지.


하지만 소년은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그 교사는 자신을 때릴 구실을 찾고 있다는 것을.

제 형이 답할 최소한의 틈도 주지 않고 매를 드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결국, 에드쉬도 스베르디도 전혀 잘못한 것이 없었다.

잘못한 것은, 아니. 잘못된 것은 오로지 그의 한미한 출생뿐이었다.


스베르디는 언제나와 같이 죄책감이 어리다 못해 흘러넘치는 얼굴로 에드쉬를 쳐다봤다.

애처로이 저를 응시하는 형을 한 번, 그 뒤에 조용히 서 있는 유모를 한 번 흘긋거린 에드쉬가 화제를 전환시킬만한 주제를 찾았다.


“오늘 후작 부인은 잘 만나고 오셨나요?”


스베르디는 언제 시무룩해 있었다는 양 에드쉬의 말에 입술을 삐죽였다.


“어머니는 잔소리뿐이야. 항상 공부 열심히 하라고만 하셔. 이 세상에 얼마나 놀게 많은데. 승마랑 체스, 재밌잖아. 안 그래?”


잠자코 고개를 주억거리던 에드쉬가 뒤에서 빙그레 웃고 있는 유모를 스치듯 바라보고는 한 가지제안 했다.


“지금은 어때요?”

“응? 뭐를?”

“놀이요, 놀이.”

“놀이? 지금 놀이?”

“네. 아직 날이 밝으니까요.”


스베르디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그는 뒤에 서 있는 유모와 기사들을 아주 살짝 바라보고는 에드쉬에게 붙어서 속삭였다.


“에드쉬. 오늘은 안 바빠?”

“그럼요. 제가 하는 일이 뭐가 있다고요.”

“그래도 검술 배우잖아···?”


스베르디가 조마조마한 얼굴로 에드쉬의 얼굴을 훑었다.

속내가 뻔히 보이는 행동에 에드쉬가 웃음을 꾹 눌러 참으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괜찮아요. 형님이 갔다 오신 동안 끝낸걸요.”


긍정적인 대답에 색소 옅은 에메랄드 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유모가 안쓰럽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스베르디는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그는 후작가의 후계자로서 적당한 재능을 보였다. 검도 그럭저럭 다뤘으며 타고난 머리가 있어 공부도 그럭저럭 했다.

뭘 해도 평균은 했기에 적당히 남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면서 즐겁게 사는 것이 목표였다.

이런 그의 가치관이 바뀐 것은 10살 때 아버지를 따라 나섰던 사냥 대회였다.


“브랜! 오늘따라 후작님 앞이라고 너무 힘주는 거 아냐?”

“에이, 그게 아니라···. 사냥감이 이렇게 많은데 지나칠 수가 있나. 뭐야. 자네도 많이 잡았구만.”


기사들의 즐거운 웃음소리. 빠르게 날아가는 화살. 쫓기고 또 쫓기다가 단발마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눈을 부릅뜬 채 천천히 몸이 식어가는 동물들······.


“아버지. 저게, 저게 무슨···.”

“응? 왜 그러느냐? 너도 해보고 싶어?”

“아니, 그게 아니라···, 동물들이 죽어가잖아요.”

“스베르디. 이건 그걸 위한 대회야.”

“······.”


사람을 지키는 고귀한 기사의 모습을 동경하며 검을 들었던 어린아이의 눈앞에서 토끼, 새, 여우와 같은 가엾은 동물들이 힘없이 죽어갔다.

잔뜩 설레는 마음으로 후작 앞에 기대 앉아있던 스베르디는 동물들이 절명하는 모습을, 살기 위해 처절하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모조리 눈에 담았다.

살기 위해서 발악하는 동물들을 무자비하게 도륙하는 기사들의 모습 또한 가슴에 새겼다.


열 살의 소년은 충격에 2주를 앓아누웠다.

눈을 감으면 화살에 목이 꿰뚫린 토끼가 피를 흘리며 그를 바라봤으며 잠에 들면 사냥에 희생된 동물들이 그에게 매달려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


소년은 침대에서 일어난 이후 검을 놓고 책을 잡았다.


후작가에서는 난리가 났다. 후작은 이름 높은 기사였고 아들이 검의 길을 가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사냥대회 또한 하나의 여흥일 뿐이었다.

후작은 새로운 경험을 시켜주고자 데려갔던 사냥대회에서 도리어 충격받아 검을 놓아버린 아들의 나약한 심성에 분노했다.

그는 좋은 아버지의 모습을 버리고 아들에게 강제로 검을 쥐여주었다.


“이런 나약한 녀석! 그깟 동물들이 뭐라고 지레 겁을 먹어서 웅크리고 있단 말이냐! 당장 일어나서 검을 잡지 않는다면 뒷산 동물들의 씨를 말려 버리겠다!”

“아, 안돼 그것만은···!”

“그럼 어서 일어나서 검을 잡아라.”

“아버지, 죄송해요. 죄송해요······. 도저히, 도저히 저는,”

“거기! 당장 사냥대를 꾸려라!”

“아악! 잠시만요! 잠시만요 아버지! 잡겠습니다! 지금 당장 잡겠어요!”


후작의 강경한 모습에 스베르디도 처음에는 검을 잡았다.

하지만 검을 잡을 때마다 눈 앞이 피로 물들어서 구토가 일었고, 악몽은 계속되었다.

결국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대로 검을 잡을 바에야 굶어 죽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단식투쟁을 하겠다? 어디 해보거라! 이 아이가 먼저 요청하기 전까지 절대 아무것도 주지 말아라! 주는 것이 발각된 순간 누가 되었든 벌을 내릴 것이다.”


하지만, 열 살의 어린아이가 뭐 얼마나 버틸까 싶어 어디 해보라며 윽박질렀던 후작은 일주일이나 계속되는 단식투쟁에 결국 두 손 두 발을 들고 말았다.

검이 아쉽긴 했지만 하나뿐인 정통 후계자를 굶겨 죽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스베르디가 검을 놓은 이후로 검술은 에드쉬의 몫이 되었다.

후계자가 검을 놓은 이상 누군가는 검술의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렇게 6살의 에드쉬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검을 들었다.


에드쉬는 두 가지의 검술을 배웠다.

표면적으로는 그가 검에 흥미가 있어서 배우는 것이었으므로 날이 밝을 때는 후작가의 검술을, 저녁 식사 후에는 스베르디의 그림자가 되기 위해 살수를 배웠다.

오직 스베르디를 지키기 위해서.


“쯧. 저 재능이 스베르디에게 있었더라면.”


후작은 에드쉬가 검을 휘두르는 것을 볼 때면 혀를 차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에드쉬의 검술은 그가 사생아인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모든 기사들을 압도했다.

심지어 에드쉬는 유약한 성정에 비해 대련에서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맺고 끊음이 무섭도록 정확했다.


“하아, 하아······. 저 더 이상은 못 하겠습니다.”

“아직 더 할 수 있잖습니까. 어서 일어나세요.”

“정말 더는,”

“이렇게 무르게 해서는 스베르디 님을 지키지 못할 겁니다. 그래도 괜찮습니까?”

“···일어나겠습니다.”


에드쉬의 재능을 빨리도 알아챈 그의 검술 선생과 후작은 그를 한계까지 몰아붙였다.

그의 훈련 강도는 날이 갈수록 높아져만 갔고, 훈련량이 많아지다 보니 자유시간은 눈에 띄게 줄어들어갔다.


같은 아버지를 두고서도 취급이 다르다는 것은 에드쉬도 알고 있었다.

평생토록 스베르디를 위해 검을 휘두르다 생을 마감할 것 또한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매번 제 형의 실수로 인해 맞으면서도, 그렇게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도 에드쉬는 스베르디를 좋아했다.

그를 ‘에드쉬 바할’ 그대로 봐줬기 때문이다.


“저 왔어요.”

“이리오렴, 소중한 에드쉬. 이런, 오늘도 잔뜩 다쳐왔구나.”

“어머니, 어머니···. 저 너무 힘들어요. 너무 힘들어요 어머니.”

“우리 착한 아가···. 하지만 네가 잘 해내야 우리 둘 다 살 수 있단다.”

“···.”

“알고 있지? 우리 착한 아가.”

“···그럼요. 그렇고 말고요, 어머니.”


친어머니는 그를 생명줄로 봤다.

그에게 자신의 목숨이 달려있는 양, 그가 구세주인 양 굴었다.

에드쉬를 후작가의 일원으로 온전하게 봐준 것은 오로지 스베르디 뿐이었다.

죄책감이 바탕이 된 행위였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는 매번 자신을 똑바로 바라봐 주었고, 맛있는 것을 먹게 되면 함께 먹고 좋은 것을 발견하면 반드시 함께 보고자 했다.

거기에 더해 후작부인과의 티타임에도 참석시키곤 했다.

후작부인이 하도 심하게 굴어 점점 안 가게 되었지만.


스베르디가 그를 형제로 봐주는 한 이 충성은 계속될 것이다.

그의 최우선은 후작가가 아닌 ‘스베르디 바할’이라는 이름을 가진 자신의 형님이었다.

그렇기에 형님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고, 같이 놀고 싶었다.


이는 후작의 의지이기도 했다.

어렸을 때의 충격으로 괴로운 와중에도 장남이 절대 놓지 않은 것이 에드쉬였다.

그랬기에 스베르디와 관계된 일이 있으면 훈련 시간을 어겨도 눈감아주었다.


“어어, 그러면 뭐하고 놀지? 뭐하고 놀아야 하지? 유모! 뭘 해야 할까?”

“후후, 글쎄요. 뭐가 있을까요.”

“아아! 해가 저물어 가잖아! 에드쉬!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으음.”

“먹고 싶은 건? 말은 어때? 아니, 탈 수 있나? 내 앞에 타는 건 어떨까? 아니면 케이크 먹을래? 쿠키? 아니다! 너는 푸딩을 좋아했었지?”


이른 오후, 찬란한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눈부시게 부서졌다.

에드쉬는 햇살을 등지고 빙긋 웃어보였다.


“형님과 하는 거라면 다 좋아요.”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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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3.볼테르 백작(1) 20.05.06 25 0 9쪽
25 2.에드쉬-(9) 20.05.04 36 0 9쪽
24 2.에드쉬-(8) 20.05.03 26 0 8쪽
23 2.에드쉬-(7) 20.05.02 28 0 9쪽
22 2.에드쉬-(6) 20.05.02 29 0 9쪽
21 2.에드쉬-(5) 20.05.02 34 0 11쪽
20 2.에드쉬-(4) 20.04.27 26 0 10쪽
19 2.에드쉬-(3) 20.04.26 24 0 10쪽
18 2.에드쉬-(2) 20.04.24 32 0 10쪽
» 2.에드쉬-(1) 20.04.23 22 0 11쪽
16 1.5.트레비안 레디알-(2) 20.04.22 21 0 10쪽
15 1.5.트레비안 레디알-(1) 20.04.21 38 0 11쪽
14 1.5.황족이었습니다. 20.04.20 44 0 12쪽
13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2) 20.04.19 26 0 9쪽
12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1) 20.04.17 32 0 9쪽
11 1.공녀, 리메르-(10) 20.04.16 39 0 12쪽
10 1.공녀, 리메르-(9) 20.04.16 35 0 10쪽
9 1.공녀, 리메르-(8) 20.04.14 49 0 9쪽
8 1.공녀, 리메르-(7) 20.04.11 31 0 8쪽
7 1.공녀, 리메르-(6) 20.04.10 33 0 9쪽
6 1.공녀, 리메르-(5) 20.04.08 39 0 9쪽
5 1.공녀, 리메르-(4) 20.04.07 41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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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공녀, 리메르-(1) 20.04.04 81 0 9쪽
1 0.프롤로그 20.04.04 158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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