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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 살해자가 될 운명이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연어럼블
작품등록일 :
2020.04.04 01:43
최근연재일 :
2020.05.08 20:52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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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1,467

작성
20.04.16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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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공녀, 리메르-(10)

DUMMY

(10)



리메르는 어색한 분위기에 눌려 괜히 차만 홀짝거렸다.

엄마와 눈물의 포옹을 한 중년 부부가 양 쪽에서 자꾸 먹을 것을 내밀었다.

어색하게 웃으며 한 입 크기의 쿠키를 두 손으로 받은 리메르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전에 엄마가 이 두 분을 아버지의 부모님이라고 소개했다지만 리메르에게 있어서 두 사람은 만난지 30분밖에 안 된 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마치 자신을 오래도록 알아왔던 양 친근하게 굴고 있었다.


이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을 데리고 가려고 했던 남자도, 계속 침대에 붙어있던 여자도, 심지어 자신을 못난이라고 불렀던 남자애마저 자신을 이미 가족으로 받아들인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리메르는 바로 저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으니 진심을 받아들일 여유도 없었다.


애초에 사방에서 ‘너는 공녀란다’라고 말을 해줘도 리메르에게 있어서 제 신분은 시장을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평민이었다.

아버지가 공작인 귀족 여성이 아니라.


“아직 많이 혼란스럽지?”

“···네. 좀.”


혼란스러운 심정이 얼굴에 드러난 모양인지, 눈을 빛내며 어떤 색의 드레스를 지어줄지 고민하던 로이네가 리메르의 손을 잡아왔다.

움찔, 과한 긴장에 작은 손이 점점 온기를 잃어갔다.

로이네는 10년간의 간극을 아쉬워하며 완전히 차가워진 손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상냥한 목소리가 귀에 콕 박혀왔다.


“우리는 오래도록 헤르시아와 네이디르를 찾아왔어. 네이디르는 너의 아버지란다.”

“네.”

“어느 날 갑자기 둘이 사라졌어. 네르온의 생일날이었는데 처음에는 신혼이라 그렇구나,하고 넘겼지 뭐니.”


로이네가 눈을 찡그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리메르는 탁하게 가라앉은 영롱한 회색 눈동자를 멍하니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반대쪽 손을 로이네 손등에 덮었다.

로이네는 고맙다는 듯이 제 이마를 리메르 이마에 비비고 말을 계속 했다.


“그런데 두 사람은 돌아오지 않았어. 심지어 마나 추적을 했는데 어떤 단서도 찾을 수가 없었어.”

“···.”


로이네는 그때가 떠오르는지 작게 목울대를 울렸다. 어느새 목소리도 물기를 담고 있었다.


“그래도 정말 다행이었단다. 두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 심지어 네이디르가 가지고 있는 공작가의 가보도 회수되지 않았지. 왜 그 아이가 못 돌아오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해. 어디선가 살아 있어. 그리고 반드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거야. 너와 시아가 우리 곁에 왔듯이.”


그렇게 말하며 로이네가 조심스럽게 리메르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녀의 손길은 아주 고귀한 것을만지듯 경건했다.

은연중에 한 순간에 허상처럼 날아가버리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든 탓이었다.

2일 전, 사막에 있는 오아시스를 뒤졌을 때와 전혀 다른 감정이 저를 채우고 있었다.


그 손길을 피하지도 못하고 고스란히 받고 있던 리메르가 헤르시아 쪽을 곁눈질했다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헤르시아는 울고 있었다.

있는 힘껏 입술을 깨물어 울음 소리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고 있던 탓에 알아채지 못한 것이었다.

그 옆에서 뤼르시엔이 눈물을 글썽이며 헤르시아를 달랬다.


리메르의 시선을 따라갔다가 그 모습을 발견한 로이네가 여태껏 아무 말도 없이 두 사람을 바라보던 하인델을 향해 눈짓했다.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진 하인델이 고개를 끄덕였고, 로이네는 눈에 힘을 주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그녀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운 좋게 시아와 리메르를 찾게 되었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디를 찾을 거란다. 분명이 방법이 있을거야. 그러니까 헤르시아, 리메르. 우리를 믿고 이곳에서 이디를 기다려 주겠니?”


우리와 같이. 그 말을 하며 로이네가 리메르의 손을 꽉 쥐었다.

리메르는 그녀의 간절한 얼굴을 멍하니 응시하다가 고개를 돌려 네르온과 트레비안, 뤼르시엔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인델을 봤을 때, 저와 똑같은 보라색 눈에 비친 자신을 보고 홀린 듯이 손을 뻗었다.


하인델은 그 손길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만지기 쉽게 고개를 내려주었다. 엄지로 그의 눈가를 어루만진 리메르가 작게 속삭였다.


“저를 가족으로 확신하시는 이유는 이 보라색 눈인가요?”

“···그래. 공작가의 직계한테만 나타나는 특징이란다. 그래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어.”


하지만 이게 아니었더라도 바로 알아봤을 거야. 두 사람과 너무 닮았거든. 이 말과 함께 하인델이 씩 웃어보였다.


리메르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어제 헤르시아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헤르시아는 뤼르시엔이 일을 보러 간 사이를 틈타 이제 결정을 해야 할 순간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리메르는 주신과의 대화로 인해 그들에 대한 경계심이 어느정도 옅어진 상태였기에 처음 만났을 때보다 꽤나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지만, 엄마가 10년동안 숨어 다녔던 이유가 궁금해 질문을 했다.

질문을 받고 한참을 머뭇거리던 헤르시아는 천천히 제 속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는 도저히 우리의 추억이 가득한 곳으로 돌아갈 용기가 없었어. 아무리 좋은 것을 봐도 그이가 죽어가는 모습이 덧씌워질 것 같아서. 그런데 차마 떠나지도 못했어.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돌아올까봐. 그때 엄마가 곁에 없으면 너무 슬플 것 같아서.’


엄마 너무 멍청하지? 라고 덧붙이며 자조적으로 웃는 얼굴이 너무 슬퍼보였다.

그리고 이때 확신했다.

헤르시아는 내심 가족들과 함께 살고 싶어한다는 것을.


리메르가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근데 혹시, 혹시 말이에요······.”

“그래.”


질질 끄는 말꼬리에 하인델이 어서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싫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거에요?”


하인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건 순전히 리메르의 변덕이었다.

이미 같이 살 마음 만만이었지만 혹시 내가 이들을 끝까지 거부했을 때 어떻게 할까? 라는 의문에서 나온 변덕.

여기서 돌변한다면 진짜로 도망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제대로 도망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음···?’


잠시 딴 생각을 하던 리메르가 점차 촉촉해지는 제 손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입을 벌렸다.

하인델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려 리메르의 손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리메르가 무언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으나, 하인델이 더 빨랐다.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아가야, 가끔씩은 얼굴을 보러 가도 괜찮겠니? 직접 이곳에 오겠다면 마차를 보내주마. 각지를 여행하니 신기한 것이 많아. 다양한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단다. 그리고 믿을 만한 마법사 몇을 보내주마. 또, 여기에서 살지는 않더라도 학비를 지원해줄 테니 아카데미에 다니는 것은 어떠하냐? 네가 뭘 해도 난 다 좋아. 그리고···.”

“자, 잠깐만요!”


리메르가 반대쪽 손을 파닥거리며 소리쳤다.


“그게 말이에요···. 그냥 물어본 거였어요. 혹시 제가 다른 선택을 하면 어떨까, 궁금해서.”


리메르의 말에 조마조마하게 두 사람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엉덩이를 들썩였다.

네르온이 한쪽 눈썹을 까딱였다.


“그 말은 긍정적인 답이라고 받아들여도 될까?”


소녀는 괜히 부끄러운 느낌이 들어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자 마자 머리가 개운해지는 향이 훅 풍겨왔다.

리메르의 연갈색 머리에 깨끗한 백은발이 얽혔다.

로이네는 리메르를 품에 안고 토닥이며 연신 고맙다고 중얼거렸다.


허공에서 움찔거리던 손을 들어 로이네의 허리를 끌어안은 리메르가 그 품에 얼굴을 묻고 중얼거렸다.


“다 상관없지만 두 가지는 양보 못해요.”

“그래. 말해보렴.”

“친구들을 만나게 해주세요. 그리고 집 나간 제 친구가 돌아오면 같이 살거에요.”

“물론이지. 모든 것은 다 네 뜻대로 될 거야.”




공작가 식솔들은 오랜만에 활발한 저택 분위기에 바쁜 와중에도 연신 즐겁게 웃었다.

주방장도 혼신의 힘을 다해 음식을 만들어 올렸다.

너무 많이 만들어 헤르센이 그만 좀 만들라며 제지하러 찾아올 정도였다.

하지만 꾸중에도 주방장은 좋은 날인데 뭐 어떻냐고 껄껄거리고 웃었다.

헤르센도 그 분위기에 감염되어 그냥 웃고 말았다.


식당에서는 오랜만에 웃음 소리가 가득했다.

평소 어머니와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식사를 했던 트레비안은 처음으로 식탁에서 꽥꽥 소리지르며 리메르와 투닥거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이런 순간이 너무나 소중했기 때문에.



*



“엄마.”

“응?”


리메르는 헤르시아의 품 속으로 파고들었다.

리메르는 후계자의 방, 헤르시아는 공작 부부의 방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지만 매일 한 방에서 셋이 잤던 리메르는 한 침대에서 혼자 자는 게 영 어색하고 외로웠다.

그 빈 자리만큼 슬픔이 들어차는 것만 같았다.


어느새 눈물이 고인 리메르가 헤르시아를 올려다보았다.


“에드쉬 피 진짜 많이 흘렸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도 침대랑 베개랑 이불이랑 대야랑··· 온통 빨갰어.”


토닥-


“그 바보. 도대체 어디에 가버린 거야···. 그래도 돌아오겠다고 했으니 돌아오겠지?”

“분명 돌아올거야. 리리는 에드쉬가 거짓말하는 거 본 적 있어?”


리메르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헤르시아가 작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지? 에드쉬는 살아 있을거야. 그리고 계속 찾고 있다니까 조금 더 소식을 기다려보자. 분명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헤르시아는 연신 리메르의 등을 쓸었다.

고른 숨소리가 들리고, 밤이 깊어질 때까지.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괜찮다고 다독이긴 했지만 피를 그렇게 흘린 아이가 치료 없이 살아있을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갑자기 사라져서 아예 흔적이 지워진 것도 그렇고 보통 아이는 아닌 듯했지만 과연 그 능력이 생명 부지에도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였다.


헤르시아는 불안한 마음을 다잡으며 간절히 빌었다.

살아만 있어주렴. 이라고.



**


다음 날, 네르온과 로이네, 하인델은 아침 일찍 입궁하여 황제에게 알현을 요청했다.

황제는 두문불출하던 마탑주와 부마탑주의 등장에 놀라워하면서도 세 사람을 환대했다.

그에 감사 인사를 보낸 하인델은 황제에게 공작가의 계보 열람을 요청했다.

또한 새로 공작가 계보에 올라갈 리메르 로시에나 델리상트가 성년이 될 때까지 네르온이 그녀의 후견인이 될 것을 알렸다.


황제가 증인으로 있는 자리에서 마나로 이름을 새긴 하인델이 떨리는 손으로 병에 담아온 리메르의 피 몇 방울을 그 위에 떨어뜨렸다.

피가 치지직 소리를 내며 계보도에 스며들었다.

이내 우웅- 소리와 함께 리메르의 이름이 환하게 빛났다.

한 걸음 떨어져서 헤르시아와 네이디르, 리메르의 이름을 한 눈에 담은 하인델이 기쁘다는 듯이 웃었다.

하인델을 따라하듯 그의 양 옆에 서서 계보도를 바라본 네르온과 로이네도 환히 미소 지었다.


마탑주와 부마탑주의 등장과 헤르시아 볼테르 델리상트 공작 부인의 귀환, 공작가의 계보에 이름을 올린 새로운 소공작에 대한 소식은 사교계에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그들은 황궁을 떠나며 최대한 조용히 지나가게 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안타깝게도 델리상트 공작가는 명실상부 제국의 3대 공작가 중 으뜸으로 여겨지는 곳.

모두의 시선이 그들을 향한 와중에 황실에서 그 시선을 모두 가려주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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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3.볼테르 백작(1) 20.05.06 26 0 9쪽
25 2.에드쉬-(9) 20.05.04 36 0 9쪽
24 2.에드쉬-(8) 20.05.03 26 0 8쪽
23 2.에드쉬-(7) 20.05.02 28 0 9쪽
22 2.에드쉬-(6) 20.05.02 29 0 9쪽
21 2.에드쉬-(5) 20.05.02 34 0 11쪽
20 2.에드쉬-(4) 20.04.27 26 0 10쪽
19 2.에드쉬-(3) 20.04.26 24 0 10쪽
18 2.에드쉬-(2) 20.04.24 32 0 10쪽
17 2.에드쉬-(1) 20.04.23 22 0 11쪽
16 1.5.트레비안 레디알-(2) 20.04.22 22 0 10쪽
15 1.5.트레비안 레디알-(1) 20.04.21 39 0 11쪽
14 1.5.황족이었습니다. 20.04.20 44 0 12쪽
13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2) 20.04.19 26 0 9쪽
12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1) 20.04.17 32 0 9쪽
» 1.공녀, 리메르-(10) 20.04.16 40 0 12쪽
10 1.공녀, 리메르-(9) 20.04.16 35 0 10쪽
9 1.공녀, 리메르-(8) 20.04.14 49 0 9쪽
8 1.공녀, 리메르-(7) 20.04.11 31 0 8쪽
7 1.공녀, 리메르-(6) 20.04.10 33 0 9쪽
6 1.공녀, 리메르-(5) 20.04.08 40 0 9쪽
5 1.공녀, 리메르-(4) 20.04.07 41 0 9쪽
4 1.공녀, 리메르-(3) 20.04.07 40 0 9쪽
3 1.공녀, 리메르-(2) 20.04.06 49 0 13쪽
2 1.공녀, 리메르-(1) 20.04.04 81 0 9쪽
1 0.프롤로그 20.04.04 158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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