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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 살해자가 될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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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작품등록일 :
2020.04.04 01:43
최근연재일 :
2020.05.08 20:52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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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0
글자수 :
121,467

작성
20.05.03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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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2.에드쉬-(8)

DUMMY

(8)


라지에가 완전히 떠나고, 떨리는 몸을 감싸 안은 에드쉬가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었다. 조금 마음이 안정되는 듯했다.


작은 몸이 간헐적으로 들썩이고, 옷이 조금씩 젖어들어갔다.



“어떻게 하지···.”



물기 어린 목소리가 아무도 없는 공간을 훑었다.


에드쉬는 눈물로 잔뜩 흐려진 눈을 들어 리메르의 집을 바라보았다. 용케도 그 기사가 이 집까지는 안 건드려서 다행이었다.


기사를 생각하던 에드쉬가 입술을 깨물었다. 기사를 볼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무섭지 않았는데.


갑자기 나타난 라지에가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


무엇보다 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 에드쉬를 두렵게 했다. 그 같은 괴물이 마음만 먹으면 에드쉬는 물론이고 리메르와 헤르시아는 한순간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아니, 그의 앞에서 그들은 파리 목숨이다.


떠나야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과연 자신이 떠난다 해서 라지에가 두 사람을 가만히 둘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만약 자신이 없어진 것을 알고 추궁을 핑계로 두 사람을 괴롭히면······, 그렇게 두 사람이 자신을 원망하게 되면? 원망을 넘어 두 사람의 존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그러면 내가 사는 것에 의미가 있나?



“도대체 어떻게 해야 돼···? 형. 내가 지금 돌아가면 아버지가 용서해줄까······?”



에드쉬는 이 세상에서 제 전부였던 사람을 떠올렸다. 상냥하게 웃으며 제게 손을 내밀어 주던 스베르디가 또다시 제게 손을 내밀어 주고 있었다.



‘내게 돌아와, 에드쉬.’

‘네가 지금 돌아오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귓가에 속삭여지는 상냥한 목소리에, 에드쉬는 무릎 사이에 고개를 더욱 깊게 파묻었다.



“하지만··· 가기 싫어. 거긴 지옥이었는걸······.”



에드쉬의 고민은 밤새 깊어져만 갔다.



***



에드쉬는 그날 잠 못 이루고 계속해서 고민했다. 두 사람을 생각하면 떠나는 게 맞았지만 한편으로는 두 사람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결국 해 뜨는 것까지 보고 말았다. 창밖이 서서히 환해지는 과정을 눈에 새기며, 그는 하루만 더 고민해보자며 결정을 미뤘다.


하지만 신은 후작의 편인 모양이었다.


그날, 또다시 전문적인 무인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들은 보란 듯이 살기를 흘리고 있었다. 하필이면 친구들과 함께 나와있는 낮에.


에드쉬는 잠시 놓고 온 것을 가지고 오겠다며 자리를 피했다. 묘하게 굳어있는 리안의 시선이 따라붙었지만, 에드쉬는 그냥 살짝 웃고는 그를 지나쳐갔다.


그를 초대하듯 내뿜어지는 살기를 따라 걷자 외딴 골목이 나왔다. 살기는 좀 더 깊은 곳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체념한 듯, 앞으로 나아가는 에드쉬의 걸음에 망설임이란 없었다.


에드쉬가 골목 모퉁이를 돌자마자 검 한 자루가 에드쉬의 머리로 뻗어져 나왔다. 칼이 에드쉬의 미간 앞에 아슬아슬하게 멈춰 잘게 흔들렸다. 무표정한 얼굴로 검을 바라본 에드쉬의 시선이 검의 주인에게로 옮겨졌다.


보반이었다. 상당히 긴장한 듯한 표정에 에드쉬가 피식 짧은 웃음소리를 냈다.



“도련님.”

“또 왔네요. 보반.”

“네. 오늘은 다른 명령입니다.”



다른 명령.


그게 뭘 뜻하는지는 명백했다. 보반을 비롯해 그의 곁에 서있는 기사 둘의 기세도 심상치 않았으므로.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당장 라지에나 그 휘하의 암살자들이 올 줄 알았기 때문인지 후작가의 기사들이 반갑기까지 했다.



“다른 사람들이 올 줄 알았는데요.”

“저도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명령하시군요.”



에드쉬는 고개를 끄덕였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품에서 단검을 꺼내 손에 쥐었다. 나머지 기사들도 덩달아 칼을 뽑았다.


장정 셋과 어린아이 한 명이 대치하는 모습은 과히 보기 좋진 않았지만, 에드쉬의 실력을 알고 있는 기사들은 긴장을 놓지 않았다.


한참 동안 대치상태가 이어졌다. 그리고 한 줄기 바람이 에드쉬의 뺨을 쓰다듬고 갈 무렵, 에드쉬가 앞으로 달려들었다.


골목이 좁았기 때문에 보반과 기사 한 명이 에드쉬와 검을 맞댔다. 오래지 않아 에드쉬의 검신이 떨리며 서서히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살짝 뒤를 돌아본 에드쉬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어딜!”



보반이 놓치지 않겠다는 듯 에드쉬에게 바짝 따라붙었다. 일 대 일 승부가 되었지만 곤란한 것은 에드쉬였다. 무게를 실은 공격이 마치 커다란 돌덩이로 자신을 짓누르는 듯했다. 팔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질러댔다.


다리와 팔을 비틀어 자세를 유지하던 에드쉬가 한순간 주저앉아 보반의 자세를 흐트러뜨리고는 뒤로 물러났다.



‘언제 포위를···!’



에드쉬의 등 뒤에 서있던 기사가 그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등에서 따끔한 아픔이 느껴졌다. 포위된 상황에 놀라 잠시 서있던 에드쉬가 이내 칼을 길게 휘둘러오는 기사 쪽으로 몸을 던졌다.


기사의 칼이 또다시 에드쉬의 등에 상처를 냈다. 이를 악물고 더욱 기사에게 파고든 에드쉬가 상체를 숙여 기사의 가랑이 사이로 몸을 빼내고는 재빨리 도움닫기 후 땅을 박찼다.


남자가 땅에 칼을 늘어뜨리고 있는 상태라 상대적으로 높이가 낮았다. 최대한 높게 뛰어오른 에드쉬가 그의 허리께에 걸터앉아 있는 힘껏 목뒤를 내리쳤다. 남자가 서서히 허물어졌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에드쉬가 그 남자의 오른쪽 가슴 부근을 칼로 찌르고는 뒤로 물러났다.


한순간이었다.


동료가 당하는 꼴을 멍청히 바라보던 보반과 기사가 이를 빠득 갈며 칼을 고쳐잡았다.



“그런 천박한 방법을···!”


‘천박? 이게 당신 주인이 원하는 겁니다.’



픽 웃으며 기사에게 꽂혀있던 검을 회수한 에드쉬가 똑같이 자세를 고쳐 잡았다. 기사들이 눈이 벌게져서는 에드쉬를 향해 달려들었다.


한 걸음 뒤로 물러난 에드쉬의 등에 벽이 느껴졌다. 한 명을 해치우긴 했지만 상황은 더 안 좋아진 듯했다. 한숨을 깊게 내쉰 에드쉬가 짐승같이 달려드는 두 사람의 모습을 아로새길 때였다.


“으악!”

“이, 이건 뭐야···!”



살벌한 바람이 기사 세 사람을 중심으로 휘몰아쳤다. 그냥 바람이라기엔 이상했다. 수 백 개의 칼날같이 날카로운 바람이 기사 세 명을 자비 없이 훑고 지나갔다. 반복적인 행위에 기사들의 몸은 시간이 갈수록 넝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갑옷마저 종잇조각처럼 잘려나갔다.


눈을 부릅뜨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에드쉬에게로 소용돌이에서 삐져나온 피가 튀었다. 뺨에서 느껴지는 미지근한 느낌에 에드쉬가 손을 들어 제 뺨을 쓸었다. 에드쉬의 뺨에 피가 번져나갔다.


덜덜 떨리는 손을 제 눈앞으로 가져간 소년이 몸 전체를 사시나무마냥 떨기 시작했다. 세 기사의 몸은 차마 눈뜨고 봐줄 수 없을 정도로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에드쉬가 털썩 주저앉는 것과 동시에 그 칼바람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듯 사라졌다. 에드쉬는 무릎부터 축축하게 젖어오는 느낌에 떨리는 눈을 들어 제 무릎을 응시했다.



“아······. 이건 내가 한 것이···.”



발치에 검붉은 웅덩이가 생겨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쯧-하는 혀 차는 소리와 함께 불어온 안개 바람이 이번에는 기사 셋과 그들의 흔적을 가지고 사라졌다. 이제 그 골목에는 멍하니 주저앉아있는 에드쉬만 존재할 뿐이었다.


꿈이었던 건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멍하니 손바닥만 쳐다보고 있는 에드쉬의 머리 위로 큰 손 하나가 올려지는 듯싶더니 청량한 느낌과 함께 그의 머리와 손, 얼굴에서 핏자국이 씻겨나갔다.


깨끗해진 손을 보자 안도감이 든 에드쉬가 제 옷과 얼굴에도 핏자국이 사라졌는지 확인했다. 옷에는 그대로였지만 얼굴에서는 핏자국이 사라진 듯했다.



“꿈은··· 아니었던 건가···.”

“꿈일 리가 있나.”

“···!”



낮게 울리는 목소리에 놀란 에드쉬가 벌떡 일어나 제 뒤편을 응시했다. 하지만 뒤에는 벽뿐이었다.



“분명··· 목소리가.”



멍하니 벽만 바라보는 에드쉬의 머리 위로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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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3.볼테르 백작(3) 20.05.08 26 0 9쪽
27 3.볼테르 백작(2) 20.05.07 24 0 9쪽
26 3.볼테르 백작(1) 20.05.06 25 0 9쪽
25 2.에드쉬-(9) 20.05.04 36 0 9쪽
» 2.에드쉬-(8) 20.05.03 26 0 8쪽
23 2.에드쉬-(7) 20.05.02 27 0 9쪽
22 2.에드쉬-(6) 20.05.02 28 0 9쪽
21 2.에드쉬-(5) 20.05.02 33 0 11쪽
20 2.에드쉬-(4) 20.04.27 26 0 10쪽
19 2.에드쉬-(3) 20.04.26 23 0 10쪽
18 2.에드쉬-(2) 20.04.24 32 0 10쪽
17 2.에드쉬-(1) 20.04.23 21 0 11쪽
16 1.5.트레비안 레디알-(2) 20.04.22 21 0 10쪽
15 1.5.트레비안 레디알-(1) 20.04.21 38 0 11쪽
14 1.5.황족이었습니다. 20.04.20 43 0 12쪽
13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2) 20.04.19 25 0 9쪽
12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1) 20.04.17 31 0 9쪽
11 1.공녀, 리메르-(10) 20.04.16 39 0 12쪽
10 1.공녀, 리메르-(9) 20.04.16 35 0 10쪽
9 1.공녀, 리메르-(8) 20.04.14 48 0 9쪽
8 1.공녀, 리메르-(7) 20.04.11 30 0 8쪽
7 1.공녀, 리메르-(6) 20.04.10 33 0 9쪽
6 1.공녀, 리메르-(5) 20.04.08 39 0 9쪽
5 1.공녀, 리메르-(4) 20.04.07 41 0 9쪽
4 1.공녀, 리메르-(3) 20.04.07 39 0 9쪽
3 1.공녀, 리메르-(2) 20.04.06 49 0 13쪽
2 1.공녀, 리메르-(1) 20.04.04 80 0 9쪽
1 0.프롤로그 20.04.04 157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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