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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 살해자가 될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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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작품등록일 :
2020.04.04 01:43
최근연재일 :
2020.05.08 20:52
연재수 :
2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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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8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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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21,467

작성
20.05.0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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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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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2.에드쉬-(7)

DUMMY

(7)


그는 눈동자만 굴려 에드쉬와 눈을 맞추려고 애쓰며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도련님! 변하셨습니다!”

“변했다고요?”



무기질 한 눈이 기사를 훑었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말이라니, 괜히 아버님의 기사는 아니다 싶었다.


에드쉬는 그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을 정정해주기로 했다.



“변한 것이 아닙니다.”

“변한 것이 아니시라면 왜 무모한 일에 목숨을 거십니까! 게다가 왜 사람에게 칼 겨누는 것에 망설임이 없으십니까! 제가 알던 도련님은 항상 사람에게 칼 겨누는 것도···!”

“무서워했다고요.”

“예! 그러셨습니다.”



에드쉬가 하얗게 웃었다. 달빛에 비친 그의 얼굴이 더욱 싸늘하게 빛났다.



“도대체 언제 적 일인지.”



형님을 위해서 어릴 때부터 칼을 쥐었다. 처음에는 무서웠다. 휘두르지 않으면 남이 휘두른 칼에 내가 다친다는 사실이 못내 잔인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어른들은 칼을 쥐고 달달 떠는 에드쉬를 절벽 끝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그 절벽 끝으로 내몰던 사람 중에 이 남자도 있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너 자신의 죽음도, 타인의 죽음도.”

“···.”

“네가 두려워할 것은 스베르디의 죽음뿐이다.”



에드쉬가 남자의 어깨를 축 삼아 상체를 비틀었다. 불쑥 튀어나온 얼굴에 남자가 흠칫 몸을 떨었다. 에드쉬가 단검을 살짝 뒤로 뺐다.



“움직이시면 안 돼요. 아프잖아요.”



미쳤다. 이 소년은 미쳤다.


어릴 때 너무 많은 일을 겪어서 미쳐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남자는 무서운 말과 달리 해맑게 빛나는 에드쉬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몸을 뒤로 뺐다. 단검이 딸려와 남자의 목을 다시금 꾹 눌렀다.



“어디까지 말했었죠? 아. 네가 두려워할 것은 스베르디의 죽음뿐이다.”

“···.”

“아버님이 제게 해주셨던 말입니다. 이 말이 어찌나 가슴에 콕 박히던지.”



남자와 눈을 맞추며 말을 끝낸 에드쉬가 씁쓸하게 웃었다.


물론 자신은 형을 좋아했고, 그도 잘해줬기에 형을 위해서 기꺼이 죽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후작가의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이 어찌 되든 상관없었고, 후작가를 위해서 뭘 할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탈출에 성공했을 때 내심 자유를 얻었다는 생각에 기뻤다. 자신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어머니와 리메르를 만나고 나서는 너무 행복해서 미칠 것 같았다. 이 행복이 계속되길 바랐다. 끝이 이렇게 될 것을 알면서도.


그래서 두 사람을 걸고넘어지는 이 남자와 그리고 후작가에 더 분노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에드쉬가 상체를 조금 뒤로 빼 남자의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다시 말하지만, 두 사람은 건들지 말아주세요. 그러면 돌아갈 테니까.”

“···이미 늦었습니다.”

“네?”



고개를 가웃 거리는 에드쉬를 한차례 흘깃거린 기사가 오른손을 들어 에드쉬를 밀쳐냈다. 자세가 흐트러진 소년이 쉽게 뒤로 밀렸다.


눈을 빛내며 땅을 박차 오른 소년이 남자 쪽으로 단검을 휘둘렀다. 혀를 내두르며 이를 피한 기사가 한 걸음 물러섰지만 어느새 그의 갑옷 사이로 단검이 박혀 있었다.


재능이 있다더니 사람들이 허투루 내뱉는 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챙강-


허리에서 뽑아낸 단검이 바닥에서 요란한 소리를 냈다.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서 두어 걸음 더 물러난 기사가 입을 열었다.


억눌린 신음소리가 그 사이로 새어 나왔다.



“도련님께서 이를 거절하시면, 앞으로는 그자들이 찾아올 겁니다.”


타앗-


“그렇네요.”



머리를 높게 올려 묶은 존재가 기사의 앞에 내려선 것은 그때였다.



“어리석은 선택을 하셨네요. 도련님.”



나긋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가에 파고들었다.


“라지에···.”

“아니, 당신이 어떻게···?”



기사가 눈을 부릅떴다.


에드쉬에게 눈을 고정시킨 라지에가 입꼬리만 끌어올려 웃음 지었다.



“보반. 당신의 임무는 끝났습니다. 이만 돌아가십시오.”

“···저,”

“돌아가십시오.”



안절부절못하며 그의 등만 바라보고 있던 기사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제 임무였지··· 않습니까.”

“그래서,”



작게 한숨을 내쉬며 보반쪽으로 몸을 돌린 라지에가 고개를 기울이며 그를 응시했다. 여전히 입은 웃고 있었으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뭘 하시려고요?”



젠장, 오늘은 빌어먹게도 재수가 없는 날이다.


저 남자와 마주치지 않는다 하여 안심하고 임무를 나왔더니만 기어코 만나다니, 이렇게 운이 나쁠 수가 없었다.


보반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도 겉으로는 고개를 조금 돌려 라지에의 눈을 피했다. 그의 입에서 궁색한 변명이 튀어나왔다.



“아니, 뭘 더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은 오늘 임무를 받지 않았다고 들었는데요. 설마 오늘 죽이기라도 하실 생각이십···흐익.”



말하다 보니 그럴듯했다.


오늘 임무 수행자는 보반이었기 때문에 만약 자신이 물러난 후 에드쉬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다면, 이에 더해 오늘 밤에 온 것이 라지에의 단독 행동이라면 그 뒷수습은 보반이 죄다 뒤집어쓸 가능성이 컸다.


그런 이유로 제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 보반은 당당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마주했다. 온기 하나 없는 싸늘한 눈을.


꿀꺽- 목울대를 울리는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느껴졌다. 보반은 자신이 뒷걸음치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뒤로 발을 옮기다 라지에가 유난히도 멀어 보인다고 생각하며 자리에 멈춰 섰다.


그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천천히 뒤돈 보반이 있는 힘껏 뛰어 자리를 벗어났다. 그가 라지에의 눈을 마주하고 느낀 것은 오로지 죽음의 공포뿐이었으므로.


남자의 기척이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라지에가 에드쉬를 찬찬히 훑었다. 그가 해사하게 웃었다.



“도련님은 멍청하십니다.”

“···.”



꽤나 모욕적인 언사임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은 에드쉬가 조용히 자세를 잡았다. 단검은 없었지만 순순히 죽어줄 생각은 없었다.


그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던 라지에가 한숨을 포옥 내쉬며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저는 그저 일이 어떻게 되었나 확인하러 온 것일 뿐입니다. 죽일 생각은 없어요.”



에드쉬가 입술을 씰룩였다.


정말이지 가증스럽다. 저 넉살 좋은 모습이.


에드쉬도 처음에는 라지에의 선한 인상과 넉살에 속아 그에게 호감을 보였더랬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뿐.


그는 후작가에서도 요주의해야 할 인물이었다.



“손가락 사이에 있는 암기나 숨기고 말 하시지요.”

“···이것 참. 제자님 시력이 언제부터 이렇게 좋았을까.”



라지에가 사납게 웃었다. 에드쉬도 덩달아 이를 보이며 웃었다.



“설마 했는데 진짜였네요.”



에드쉬의 말에 그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이내 웃는 얼굴로 돌아온 라지에가 어깨를 으쓱이며 재밌다는 듯 말했다.



“떠보기도 하고 제법 성장하셨네요. 그런데 어쩌나. 곧 죽을 텐데.”

“···.”



라지에는 조금 기대가 됐다. 항상 따분하기만 하던 도련님이 이번에는 어떻게 반응할까-하고.


묘하게 눈을 반짝이는 제 스승을 물끄러미 바라본 에드쉬가 입을 꾹 다물고는 천천히 자리에 꿇어앉았다.



“옛정을 봐서라도 빠르게 부탁드립니다.”



조용히 읊조린 에드쉬가 살짝 고개를 숙인 채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라지에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으며 머리를 쓸어올렸다.


역시나 도련님은 재미가 없네. 킥킥거리며 웃는 그의 어깨가 두어 번 들썩였다.


오래지 않아 웃음소리가 멎었다. 라지에가 빙글거리며 웃는 얼굴로 꿇어앉은 에드쉬에게서 한 발자국 물러났다.



“농담도 마시지요. 주제에 편하게 죽으시려고요?”

“안 되나요?”

“안되죠. 무엇보다 죽을 날은 오늘이 아닙니다.”

“오늘이 아니라면···?”



약간 희망이 생긴 에드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표정 변화를 목격한 라지에가 속으로 혀를 찼다. 또, 또 저 표정이다. 살인병기 주제에-


그가 바닥에 흩뿌려진 핏자국들을 지우며 작게 말했다.



“저인들 후작님의 뜻을 알겠나요. 오늘은 의향만 묻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죽이는 것은 나중에.”

“···.”

“하지만- 그게 내일일 수도 있는 거죠. 실제로도 그렇고.”



탁탁-


무릎을 털고 일어나며 그가 눈꼬리를 접어 웃었다.



“뭐, 저는 좀 아쉽긴 합니다만. 당장 당신의 목에 칼을 박아 넣고 싶었거든요. 솔직히 지금도 참느라 좀 힘듭니다.”

“···.”

“하하. 뭘 그리 굳어 계십니까. 명색이 제 제자님인데, 이런 일에 무서워하면 쓰나.”

“라지에···.”



잔뜩 굳은 에드쉬를 보며 킥킥거린 라지에가 작은 도약도 없이 가까이 있던 지붕 위로 훌쩍 뛰어올라갔다. 톡-하는 작은 소리가 라지에가 밟은 곳을 중심으로 퍼졌다가 이내 사라졌다.


읏차-하며 지붕에 쭈그려앉은 라지에가 살랑살랑 손을 흔들었다.



“그럼, 다음번에는 제대로 죽여드리지요.”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저녁 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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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3.볼테르 백작(3) 20.05.08 26 0 9쪽
27 3.볼테르 백작(2) 20.05.07 24 0 9쪽
26 3.볼테르 백작(1) 20.05.06 25 0 9쪽
25 2.에드쉬-(9) 20.05.04 36 0 9쪽
24 2.에드쉬-(8) 20.05.03 26 0 8쪽
» 2.에드쉬-(7) 20.05.02 28 0 9쪽
22 2.에드쉬-(6) 20.05.02 28 0 9쪽
21 2.에드쉬-(5) 20.05.02 33 0 11쪽
20 2.에드쉬-(4) 20.04.27 26 0 10쪽
19 2.에드쉬-(3) 20.04.26 24 0 10쪽
18 2.에드쉬-(2) 20.04.24 32 0 10쪽
17 2.에드쉬-(1) 20.04.23 21 0 11쪽
16 1.5.트레비안 레디알-(2) 20.04.22 21 0 10쪽
15 1.5.트레비안 레디알-(1) 20.04.21 38 0 11쪽
14 1.5.황족이었습니다. 20.04.20 43 0 12쪽
13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2) 20.04.19 25 0 9쪽
12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1) 20.04.17 32 0 9쪽
11 1.공녀, 리메르-(10) 20.04.16 39 0 12쪽
10 1.공녀, 리메르-(9) 20.04.16 35 0 10쪽
9 1.공녀, 리메르-(8) 20.04.14 49 0 9쪽
8 1.공녀, 리메르-(7) 20.04.11 30 0 8쪽
7 1.공녀, 리메르-(6) 20.04.10 33 0 9쪽
6 1.공녀, 리메르-(5) 20.04.08 39 0 9쪽
5 1.공녀, 리메르-(4) 20.04.07 41 0 9쪽
4 1.공녀, 리메르-(3) 20.04.07 39 0 9쪽
3 1.공녀, 리메르-(2) 20.04.06 49 0 13쪽
2 1.공녀, 리메르-(1) 20.04.04 80 0 9쪽
1 0.프롤로그 20.04.04 157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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