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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럼블 님의 서재입니다.

마왕 살해자가 될 운명이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판타지

연어럼블
작품등록일 :
2020.04.04 01:43
최근연재일 :
2020.05.08 20:52
연재수 :
28 회
조회수 :
1,088
추천수 :
0
글자수 :
121,467

작성
20.04.20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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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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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1.5.황족이었습니다.

DUMMY

타닥- 탁-


복도를 급히 지나치다 낯익은 사람을 발견한 소녀가 천천히 발걸음을 늦췄다.

그는 자신이 쳐들어갈 예정이었던 문 앞에 허리를 곧게 펴고 서있었다.

그보다 먼저 소녀의 존재를 눈치챈 기사 둘과 시종이 마치 구원자를 보는 듯한 눈으로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모조리 무시하고 소년에게 다가간 리나가 잔뜩 굳은 얼굴을 보고 작게 웃음을 흘렸다.


당장 다 뒤집어버릴 요량으로 찾아 왔더니만 저보다 더 화가 나서는 그 언짢음을 숨기지도 않는다.

살갗을 찔러오는 삐죽삐죽한 살기에 리나가 제 소매를 문지르며 눈을 도륵 굴렸다.

저 얼굴로 들어가면 십 중 십은 말도 몇 마디 못 나눠보고 화를 식히고 오라면서 쫓겨날 터였다.


“오라버니. 표정 좀 푸시죠? 쫓겨나게 생겼습니다.”


미간을 꾹꾹 펴주며 하는 말에 디안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리나. 넌 이 상황에서도 태연하구나.”

“그야, 저도 화가 나서 이곳으로 달려왔지요. 그런데 제 대신 집무실 책상을 엎어줄 사람이 여기 있군요.”


리나의 빈정대는 말에 디안이 어깨에서 힘을 뺐다.

리나의 말이 맞았다.

그는 지금 필요 이상으로 감정을 내보이고 있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상실을 느껴본 그로서는 지금의 자신을 통제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부터 만날 사람은 어린아이의 치기로 들이받는다고 들이 받혀줄 사람이 아니었다.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그대로 내비친다면 본전도 못 뽑을 것이 분명했다.

디안은 천천히 눈을 감고 감정을 다스렸다.


잠시 후 드러난 눈동자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평정을 되찾은 디안이 한숨을 내쉬었다.


“소식을 듣자 마자 온거야?”

“그렇죠 뭐. 솔직히 야속함뿐이네요.”


어깨를 으쓱이며 하는 말에 디안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그마치 3일이다, 3일.

리메르와 에드쉬, 시아 아주머니가 사라진지 3일.

심지어 리나와 디안은 집에 핏자국이 있다는 이유로 리메르의 집도 가보지 못한 상태였다.

집에는 핏자국이 있고 세 사람이 모두 3일간 실종이라니.

누군가는 고작 3일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가까운 사람이 3일이나 생사가 불분명하니 느는 것은 걱정과 초조함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듣고 싶었던 소식이 생뚱맞게도 공작가에서 들려왔다.

게다가 이 소문의 실체를 가장 먼저 접한 것이 아버지라고 했다.

그는 자신들이 얼마나 세 사람을 찾는지 알면서도 소식을 바로 전해주지 않았다.


으득- 이빨을 가는 소리가 살벌하게 울려 퍼졌다.

눈을 데구루루 굴리는 시종을 흘끗 본 리나가 손을 내밀었고, 말없이 지켜보던 디안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만 들어가는 게 어떨까요?”


굳은 표정의 그를 마주보던 리나가 픽 하니 웃고는 시종에게 눈짓을 했다.

드디어 이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에서 해방된다는 생각에, 시종이 냉큼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폐하, 리헤르디안 크세트 황태자 전하와 페르시아나 크세트 2황녀 전하 드십니다.”




집무실에 들어선 그들이 먼저 마주하게 된 것은 책장을 가득 채운 책들과 그 책 내음, 따뜻한 햇살, 그리고 서류에 파묻혀 정수리밖에 보이지 않는 아버지.


리나는 혈압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입술을 꽉 물었다가 표정을 풀었다.

입에서 아주 여상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바마마.”

“오, 왔느냐.”


그제서야 서류에서 고개를 든 황제가 빙긋 웃었다.

그는 깃펜을 펜촉에 꽂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소파 쪽으로 손을 뻗었다.


“우선 자리에 앉자꾸나.”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파 쪽으로 몸을 돌렸다.


디안은 앞에 놓여있는 찻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미 세 개의 찻잔이 준비되어 있었다.

마치 두 사람의 방문을 예상했다는 듯이 말이다.

그는 눈을 가늘게 좁힌 채 가장 상석에 앉는 황제를 바라보았다.


황제는 그 시선을 느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어깨를 통통 두드렸다.


“끄응, 아침부터 내리 일을 하려니 허리가 너무 아프구나. 어휴, 곧 디안에게 황위를 물려주든지 해야겠어.”


보통이었으면 그의 넉살에 두 사람 모두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흐음.”


전혀 반응이 없자, 다른 종류의 웃음을 짓고 있는 리나와 무표정한 얼굴로 찻잔만 노려보는 디안을 번갈아 바라보던 황제가 이마를 긁적이고는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차를 넣고 우리는 일련의 행위를 지켜보던 디안이 입을 열었다.


“아바마마. 저는 차나 마시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하냐? 무려 내가 타주는 거라고? 리나도 그렇게 생각하느냐?”


저가 지목받자 눈을 두어 번 깜빡인 리나가 방싯 웃었다.

리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황제에게 도도도 뛰어가 그의 품에 안겼다.

황제는 어이쿠, 소리를 내면서도 착실하게 그녀가 떨어지지 않게 단단히 안아 들었다.


디안이 차를 한 모금 머금고 눈을 감았다.

연극을 하듯 과장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바마마~”

“어이쿠, 리나가 안기다니 별일이 다 있구나.”

“그렇지요. 별일이지요~”


허허,하고 너털웃음을 짓던 황제가 기름칠을 덜 한 듯 삐걱거리는 고개를 내려 리나를 바라보았다.

토끼 같은 자식이 배부른 맹수와 같은 미소를 걸치고 있었다.

그는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뒤로 뺐다.

하지만 이미 리나가 목에 팔을 휘감은 상태라 얌전히 원위치 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리나의 입에서 잔뜩 애교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리나는, 정말 슬프답니다! 제 친구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더니! 집에는 핏자국이 있고! 이 제국의 최고라는 아바마마께 행적을 찾아달라고 요청한지가! 무려! 무려 3일째인데! 세상에, 리메르가 갑자기 델리상트 공녀라며 나타났어요!”

“으응···. 그렇지.”

“리나는! 리나느은! 아바마마를 정말 믿고 있었답니다! 그래서 제가 힘을 쓴다는 것을 말렸을 때에도 잠자코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이런 의문이 드네요오.”

“무, 무슨 의문이 들더냐···?”


리나의 물색 눈동자가 일순 붉게 빛났다.


“아바마마께서는··· 이미 리메르가 공작가에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 아닐까.... 하고요.”

“케, 켈룩! 큭.”


속삭이듯 내뱉은 목소리가 분노한 신의 손길처럼 차갑게 그의 목 언저리를 매만졌다.

구스타프는 차라리 디안처럼 차가 목에 걸려 기침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는 우선 이 살벌한 딸아이를 떼어내기로 결심했다.

리나를 구슬리고 또 구슬려 자기 자리로 돌아가게 만든 그는 우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향긋한 차 내음이 그의 심신을 안정시켰다.

차의 힘을 빌려 현기를 되찾은 황제가 두 아이를 눈에 담았다.


“먼저, 미리 알려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하지만 델리상트 공작가는 황제의 첫 번째 검. 아무리 나라고 해도 집안일까지 간섭할 수는 없는 일이란다.”

“하지만 지난 10년간 레디알 후작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리메르의 존재를 알면서도 집에 들이지 않은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 점은 나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단다, 디안. 정말 의문이 들어. 하지만 그쪽은 전혀 공녀의 존재를 몰랐다고 하더군.”


구스타프는 아침에 만났던 세 사람을 떠올렸다.

그들은 한결 밝아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왜 이제야 이름을 올리냐는 말에 단숨에 우울한 얼굴로 돌아가 자신들이 무지하여 리메르의 존재를 요 근래에서야 찾았다는 답을 돌려주었다.

회한이 가득한 얼굴에서 굳이 거짓을 캐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세 사람을 보지 못한 두 아이는 그에게 반발했다.


“어떻게 모를 수가 있습니까? 공작가의 자안은 유명합니다. 시장에 들르는 시녀들조차 자안에 대해 수군거렸습니다.”

“정보를 차단당한 듯하다.”

“정보를 차단 당했다라······. 그 델리상트 공작가가요? 지금껏 방치하고 있다가 주신의 사도라는 것을 알고 데려갔다는 것이 더 신빙성 있지 않습니까.”

“그럴 리는 없다.”

“어떻게 자신하십니까? 애초에 그렇게나 존재감이 뚜렷한 리메르를 이제껏 찾지 못했다는 것이 더 이상합니다.”


제 아버지의 계속된 확답에 리나가 미간을 좁혔다.


황실에 칼날을 세우지 않아 황제의 충실한 검으로 여겨진다지만 델리상트 공작가는 3대 공작가 중에서도 가장 힘이 강한 곳이었다.

그들의 정보력은 무시 못 할 것일진데, 자신들도 알고 있던 리메르의 존재를 그 공작이 몰랐다?

정말로 말이 되지 않았다.


“주신의 사도에 대해 아는 건 여전히 세 곳 뿐인가요?”

“그래.”


잠자코 두 사람의 설전을 듣고 있던 디안이 질문했다.

구스타프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더 알아도 곤란했다.


주신께서 신탁을 내리실 때 성녀로 삼지도 말라 하시고, 그저 지켜보라고만 하셨다.

어떤 의미로 그 아이를 사도라 칭했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그 소녀를 모든 시선의 중심에 두고 권력의 희생양으로 던져줄 수는 없었다.

결국, 황실에서도 아주 극소수의 인원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또한, 자안의 소녀라 하여 공작가의 새로운 공녀인가 싶었지만 신탁이 내려왔을 당시 공작가에는 여자 아이가 태어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주신의 뜻이라 생각하여 공작에게도 알리지 않았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구스타프가 머리를 긁적였다.

하인델의 선명한 자색 눈동자롤 보고 신탁을 떠올렸으나 말하지 않은 탓이었다.

물론 공작가 사람들이 그 소녀를 최전방에서 지키면 지켰지 해칠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보가 어디서 새어나갈지 모르니 최대한 조심하는 차원에서 말을 아꼈다.


구스타프는 역시 말할 걸 그랬나, 하고 고민하다가 리나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면 오히려 다행이네요. 나쁜 뜻으로 데려간 것은 아니어서.”

“글쎄······. 공작의 뜻은 나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사도가 공녀가 되어버렸구나. 지금처럼 편하게 지켜볼 수가 없게 되었어.”


리나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오히려 더 잘 지켜볼 수 있겠다 싶어 바로 입적을 허락하신 게 아닌가요?”


‘들켰군.’


찻잔을 들어 시선을 비낀 구스타프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제 딸이지만 무섭도록 눈치가 빨랐다.


“크흠. 그것도 있긴 하지. 무엇보다 공녀가 된다면 지금보다 안전해질 것 아니더냐. 이번처럼 잠깐 눈을 뗀 사이에 없어지는 일도 없을 테고.”

“그 납치의 범인이 공작가라고 들었습니다.”

“그건 또 어디서,”

“그래서, 리리는 지금 어떤 상태인데요?”


그는 임무를 시켜놨더니만 어느새 우정을 쌓고 돌아온 제 딸아이를 바라보았다.

맑은 물색 눈이 걱정을 가득 담고 있었다.

매사에 관심이 없던 아이에게서 이런 눈빛을 이끌어 내다니, 아버지로서 리메르라는 그 아이가 진심으로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별 일은 없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에드쉬라는 아이가 사라졌고 그걸 다 봐서 조금 힘들어 했다고···.”

“네? 에드쉬가 사라졌다고요? 결국 찾지 못한건가요?”

“거기까지는 듣지 못해서 말이다.”

“네르온··· 레디알 후작님이라고 했던가요?”

“흠.”


진한 웃음을 띤 리나를 한 번, 마찬가지로 살벌한 기세를 내뿜고 있는 제 아들을 한 번 바라본 황제가 어색하게 웃으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미안하네, 후작.’


“진정들 하거라. 만남을 주선해보도록 하마.”

“꼭 그래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아바마마.”


그제서야 표정을 푼 아이들이 방긋 웃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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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3.볼테르 백작(3) 20.05.08 27 0 9쪽
27 3.볼테르 백작(2) 20.05.07 25 0 9쪽
26 3.볼테르 백작(1) 20.05.06 25 0 9쪽
25 2.에드쉬-(9) 20.05.04 36 0 9쪽
24 2.에드쉬-(8) 20.05.03 26 0 8쪽
23 2.에드쉬-(7) 20.05.02 28 0 9쪽
22 2.에드쉬-(6) 20.05.02 29 0 9쪽
21 2.에드쉬-(5) 20.05.02 34 0 11쪽
20 2.에드쉬-(4) 20.04.27 26 0 10쪽
19 2.에드쉬-(3) 20.04.26 24 0 10쪽
18 2.에드쉬-(2) 20.04.24 32 0 10쪽
17 2.에드쉬-(1) 20.04.23 21 0 11쪽
16 1.5.트레비안 레디알-(2) 20.04.22 21 0 10쪽
15 1.5.트레비안 레디알-(1) 20.04.21 38 0 11쪽
» 1.5.황족이었습니다. 20.04.20 44 0 12쪽
13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2) 20.04.19 26 0 9쪽
12 1.5.사실 대마법사 제자였습니다-(1) 20.04.17 32 0 9쪽
11 1.공녀, 리메르-(10) 20.04.16 39 0 12쪽
10 1.공녀, 리메르-(9) 20.04.16 35 0 10쪽
9 1.공녀, 리메르-(8) 20.04.14 49 0 9쪽
8 1.공녀, 리메르-(7) 20.04.11 31 0 8쪽
7 1.공녀, 리메르-(6) 20.04.10 33 0 9쪽
6 1.공녀, 리메르-(5) 20.04.08 39 0 9쪽
5 1.공녀, 리메르-(4) 20.04.07 41 0 9쪽
4 1.공녀, 리메르-(3) 20.04.07 40 0 9쪽
3 1.공녀, 리메르-(2) 20.04.06 49 0 13쪽
2 1.공녀, 리메르-(1) 20.04.04 81 0 9쪽
1 0.프롤로그 20.04.04 158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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