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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도황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이화영
작품등록일 :
2023.07.31 18:04
최근연재일 :
2023.12.30 10:43
연재수 :
9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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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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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9,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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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3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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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종말의 혈화문(6)

DUMMY

한폭의 수묵화를 보는 것만 같았다.

장원으로 향하는 눈 덮인 밤나무 숲길, 그 한복판에서 칠흑처럼 검은 마차 한 대가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마부석이 공석이었음에도 말들은 절대 길을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모용균, 채인하가 어찌해야할 지 지상을 돌아본 순간 지상이 마상에서 솟구쳤다.

그가 허공 위에서 검강으로 친친 휘감긴 쌍두사의 검자루를 드세게 움켜잡더니 궁신탄영(弓身彈影)의 수법을 펼쳐 저 멀리 마차까지 단숨에 도약했다.

촤아아악―

눈발을 허옇게 흩뿌리며 착지한 지상이 핏빛 검강으로 휘감긴 쌍두사를 검집에서 뽑아냈다.

차가운 금속성이 귀를 찢었다.

몸을 외로 세워든 지상이 짓쳐드는 네 마리 말 사이를 비집고 들어감과 동시에 그가 쏘아낸 검의 강기가 마차를 세로로 반듯하게 갈랐다.

말들이 두 개로 분리된 마차를 이끌고 십 수 장을 더 달리다 끝내 길 옆으로 미끄러지며 몸을 고꾸라트렸다.

버둥거리는 말들의 울음소리가 눈밭 가득 울려퍼졌다.

삽시간 공중으로 솟구쳤던 눈송이들이 후두둑 지상과 그 앞에 서 있는 흐릿한 그림자 위로 내려앉았다.

철커덕, 지상이 마주선 두 개의 그림자를 싸늘하게 바라보며 쌍두사를 검집에 집어넣었다.

좁고 가느다란 어깨 위로 살굿빛 삼베 옷을 치렁치렁 늘어뜨린 상장로 이춘수와 그에게 기댄채로 미동도 없는 늙은 집사가 떨어져내리는 눈송이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모용균과 채인하가 지상의 한혈마와 함께 지상 곁에 도착했다.

이춘수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지상이 두 사람에게 당부했다.

“먼저 가. 금방 뒤따라갈테니.”

“응.”

채인하와 모용균이 고삐를 당겨 곁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순간 이춘수에게 머리를 기대고 있던 늙은 집사의 몸뚱이가 우측 어깨에서부터 사선으로 쩍쩍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두 동강난 채로 눈밭에 스러졌다.

지상이 시체를 쳐다도 보지 않은 채로 우수를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춘수를 향해 품에서 꺼낸 몇 가지 물건을 툭 내던졌다.

은이화에게서 받은 천산화와 진가엽 대장이 준 천룡회 회장의 신물 용두단장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춘수가 몸을 구부정 수구리더니 눈속에 파묻힌 두 가지 물건을 소중히 주워들었다.

그가 용두단장을 겨드랑이에 꽂은 채로 찬 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그리곤 한참이나 손에 든 천산화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붉디붉은 천산화를 보고 있자니, 그간의 수많은 추억들이 이춘수의 뇌리를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먼저는 아들이 죽었다. 다음은 아내였다.

특별히 병이 나서 죽은 게 아니었다.

둘 다 먹지 못해 죽었다.

사도(死都).

그 저주받은 도시는 굶어죽는 게 일상인 곳이었다.

하나 남은 딸까지 잃을 수는 없었다.

도시를 탈출해야 했다.

하지만 당시 사도는 무림맹이 개미새끼 한 마리 나오지 못하게 철통같이 통제하던 시기였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그 지옥같은 곳을 탈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때 이춘수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원래부터 사도 사람은 아니었다.

어딘가에서 바람같이 나타난 그 사람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병을 치료하고 마른 하늘에서 비를 내리게 하는 등 불가사의한 기적을 일으켰다.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그를 교주라 부르며 따르기 시작했다.

이춘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 신비한 사람이 개창한 천마신교에 입교했다.

많은 세월이 흐른 뒤···

그가 다시 이춘수 앞에 나타났다.

죽은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 옛날 딸과 자신을 사도 그 지옥 속에서 구해준 구원자가 예전 모습 그대로 나타나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이춘수는 차마 그 사람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은 춘수에게 도움만 요청한 게 아니라 거절하기 힘든 제안도 함께 하였다.

그가 춘수에게 제안한 것은 고통 속에 죽어간 딸을 부활시켜준다는 것이었다.

지난날 춘수는 그가 행한 기적을 바로 지척에서 목도한 적이 있었다.

때문에 그의 말을 의심치 않았다.

그것이 춘수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다만 걱정이 하나 있었다.

사도를 탈출했지만, 딸은 성장기에 겪은 심각한 영양결핍으로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했다.

키가 성인 여성의 절반도 안 되었다.

잔병치레도 끊이지 않았다.

딸의 목숨을 앗아간 병은 겨울 감기였다.

죽기 전 딸아이는 감기조차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몸이 쇠약해 있었다.

그런 딸아이의 유일한 소원은 단 하루만이라도 여느 평범한 소녀들처럼 밖에 나가 사람들 속에서 뛰어노는 것이었다.

아비는 항상 그것이 평생의 응어리로 남아 있었다.

때문에 부활은 시작에 불과했다.

결국엔 딸아이의 용모를 평범하게 바꿀 수 있어야 했다.

천산화! 그것은 역용술을 통해 딸의 용모를 정상적인 모습으로 바꾸는 데 필요한 일급 재료였다.

그래서 천산화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춘수의 생각이 바뀌었다.

얼마 전 꿈을 꾸었다.

꿈속에 딸이 나타나서 그에게 속삭였다.

남의 목숨을 제물로 해서 부활할 순 없다며 딸아이가 아비에게 눈물로 간절히 애원했다.

아버지, 제발 정신차리라는 아이의 처절한 절규가 그간 이춘수를 사로잡았던 심마의 껍질을 한꺼풀 벗겨냈다.

춘수는 그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바람결에 문득 살기가 느껴졌다.

이춘수가 불편한 허리를 곧추세우고 눈부시도록 찬란한 태양을 등지고 선 지상을 바라봤다.

십여 년 전, 당홍설의 손을 잡고 자신에게 인사하러 왔던 코흘리개 꼬마녀석이 그야말로 멋진 사내가 되어 지금 눈앞에 서 있었다.

지상이 이춘수를 향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끝냅시다.”

지상의 싸늘한 눈빛 속에서 그의 마음을 헤아린 이춘수가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그래, 이만 끝낼 때도 됐지.”

잠시 뒤 옷깃을 여민 늙은 호랑이가 단전에 힘을 잔뜩 모으고 맹렬한 기세로 전방을 향해 나아갔다.

살굿빛 장포가 바람에 날아갔다.

복부의 상처를 감싼 복대가 투두둑 터지면서 뜨거운 핏방울이 찬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지상의 쌍두사도 다시금 검집을 빠져나왔다.

처음엔 일직선, 다음엔 사선, 마지막엔 머리 위로 짧은 호를 그려낸 검붉은 검날이 늙은이의 살과 뼈를 냉혹히 파헤친 후 핏물과 함께 허리 아래로 떨어졌다.

“커헉···.”

비틀비틀 발을 내딛은 이춘수가 매가리 하나 없는 쌍수로 지상의 가슴을 더듬듯 내리친 뒤 쓰러지지 않기 위해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지상은 말없이 전방 어딘가를 응시했다.

이춘수가 지상의 흑포를 붙잡은 채로 신음하듯 속삭였다.

“···지, 지상아, 우리집 대청에 있는 앵두나무 아래··· 네게 줄 선물을 묻어놨다. 처, 천마를 상대하기 전에 꼭 찾아서 열어봐라. 그, 그리고··· 제, 제갈승이 마심아를 쫓고 있다.”

순간 지상이 두 눈을 치켜떴다.

그가 허리 아래가 동강난 채 스러지는 이춘수를 양손으로 꽉 붙잡았다.

이춘수가 젖은 눈망울로 지상을 올려다보며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처, 천마는 한 사람이 아니다. 하, 한 사람이 아니야. 기, 기억해라. 지상아, 그, 그리고··· 너한텐 정말로 미, 미안했다. 하아아아아···.”



*



상춘각 2층 지붕 위에서 둥둥 북소리가 울려퍼졌다.

전각 아래서 펼쳐지는 지옥같은 아수라장 속에서도 북소리는 절대 끊어지는 법이 없었다.

한참 앳되 보이는 황군 병사가 용고(龍鼓)를 무릎 사이로 끼운 채로 북채를 정신없이 두들겼다.

병사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었고, 눈가는 눈물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괴수들과 싸우며 죽어나가는 동료들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북을 쳐서 병사들의 사기를 돋구는 것이었다.

방금 전까지 곁을 지키며 활을 쏘던 사람들도 지금은 기척이 사라진 상태였다.

무서워서 눈을 감았지만 도망치긴 싫었다.

그래서 죽을 힘을 다해 북을 두드렸다.

둥 둥 둥 둥 둥둥 둥둥둥, 둥 둥 둥둥둥

누군가 자신을 깨우고 전쟁이 끝났다고 말해주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그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사항이라는 것을.

북 소리가 거슬린 요시들이 하나둘씩 지붕 위로 올라왔다.

소년 병사를 보고 입맛을 다신 요시 한 마리가 펄쩍펄쩍 기와를 타고 넘어 소년을 덮치려했다.

한데 때마침 나타난 거대한 뱀이 요시를 공중에서 꿀꺽 집어 삼켰다.

동시에 누군가 소리치며 뱀의 머리에서 지붕 위로 뛰어내렸다.

“꼬마가 제법이구나! 하하하, 담력이 대단한 녀석일세.”

소년 병사는 아직 눈을 뜨지 않았다.

당지위가 우선을 꺼내 얼굴 위로 부치며 소년병에게 물었다.

“용감한 병사여, 네 이름이 무엇이냐?”

병사는 눈을 찡그린 채 북을 치며 대답했다.

“다, 다, 당추.”

“당추? 당추? 헐, 어디 당 씬데?”

“우, 우, 운주 당 씨.”

“하하, 하하하. 좋다, 좋아. 운주면 어떻고 사천이면 어떻냐, 넌 당 씨고 또 나와 만나는 기연을 얻었다. 하하하, 자, 애들아. 내려와서 이 운주 당 씨 소년을 보호해라.”

“네, 주군!”

사요 위에서 부하들이 뛰어내렸다.

당지위 곁으로 붙어선 기동우가 잠시간 전각 밑에서 펼쳐지는 끔찍한 참상을 숨을 참고 지켜봤다.

부채를 접고 일어선 당지위가 기동우에게 명령했다.

“동우야, 말했다시피 그 비구니년을 찾아 없애면 우리에게도 승산이 있다. 당장 사요를 끌고가서 비구니년을 없애라.”

“주군! 그 말 십분 틀림없는 게지요?”

“암, 의심하지 마라. 내 촉이 그리 속삭이고 있으니까. 그년이 바로 저 괴수들의 어머니다. 그년을 없애면 뭔가 사단이 나도 반드시 날 것이다. 그러니 빨리 가서 그년을 죽여라. 야야장 사람들 다 죽어나가기 전에.”

“네, 주군.”

사요에 다시 올라탄 기동우가 즉시 지붕 뒤로 사라졌다.

“모개와 호려, 칠혈랑과 나머지는 나와 함께 혈화문 사람들을 살린다. 일단 저기 보이는 전각부터 사수하자.”

당지위가 부하들을 향해 명랑히 외친 뒤 소년 병사를 안아서 모개에게 안겼다.

순간 호려가 하얗게 질린 창백한 낯으로 주군에게 물었다.

“주군, 저 지옥같은 곳으로 내려가면서 너무 좋아하시는 거 아니에요?”

“하하, 어차피 한 번 죽으면 끝인 인생. 너희들과 함께 싸우다 죽는 것만큼 기쁜 일이 또 어딨겠느냐. 자, 가자. 호려야. 나를 따라라!”

당지위가 앞장서 달리다 전각 아래로 뛰어내렸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보랏빛 독기를 먹금은 금빛, 은빛 장침 수십 개가 사방으로 쏘아져 날아갔다.

침에 맞은 요시들이 일순 배를 까고 드러눕더니 다리를 버둥거리다 주둥이로 흰 거품을 뱉어내며 죽어갔다.

약간의 희망을 지켜본 호려와 부하들이 당지위를 따라 전각의 대청 방향으로 뛰어내렸다.


그 무렵 전각의 북쪽 안채에선 치열한 살육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혈화문과 황군 병사들의 결연한 자세만큼이나 비구니 요화가 이끄는 마교 무리도 마지막 전투에 모든 걸 다 쏟아붓고 있었다.

부상당한 도올 역시 약간의 응급처치 후 바로 전장에 뛰어든 상태였고, 요화도 그녀의 거미요괴 홍지주(紅蜘蛛)와 함께 상춘각 안으로 깊숙이 침입한 상태였다.

멧돼지 괴수 도철은 추문강과 정청하의 포위망을 뚫고 전각 앞 마당을 빠져나가 능소가 있는 화청으로 달려갔다.

추문강과 정청하가 녀석을 쫓으려 했지만, 시야 속 동료들이 처한 위기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상춘각 안채에서 괴수들과 맞서 싸워야했다.

한 무리 황군 병사를 처치한 도올이 부상자들이 누워있는 안채로 뛰어들었다.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채찍꼬리로 무장한 요시들이 녀석의 뒤를 따라붙었다.

길쭉한 낭하로 들어선 녀석들이 낭하 옆으로 난 작은 방들로 들어가 그 안에 있던 부상자들을 닥치는대로 살육했다.

비명소리가 하늘에 닿을 지경이었다.

도올이 부러뜨린 뼈낫을 손으로 꽉 움켜쥔 채로 방을 빠져나왔다.

녀석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시뻘건 핏물이 한가득했다.

도올이 낭하 중간을 막고 있는 사잇문을 걷어차자 문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신형이 번쩍 위로 솟구쳤다.

다람쥐를 연상케하는 작은 몸집의 마상춘이었다.

도올의 시선이 처마를 붙잡고 빠르게 이동하는 상춘을 쫓을 무렵 정면에서 빛나는 화살이 쏘아졌다.

하선이 쏜 유령시였다.

두 개의 화살이 촌각을 다투며 도올을 향해 날아갔다.

뒤늦게 화살을 발견한 도올이 앞서 지쳐든 화살을 뼈낫으로 갈랐지만 뒤이어 나타난 쌍둥이 화살은 가슴팍으로 받아내야했다.

“이런 젠장할!”

도올이 가슴에 박힌 화살을 붙잡고서 허리 숙여 깊이 신음했다.

순간 머리 위에서 마상춘이 떨어져내렸다.

상춘의 쌍단도가 도올의 뒷목에 꽂히려던 그때 바람을 가르고 날아온 허연 그물망이 상춘의 몸을 덮쳤다.

끈적끈적한 그물망은 요화가 탄 홍지주가 주둥이로 쏘아낸 것이었고, 그것의 정체는 사실 그물망이 아니라 커다란 거미줄이었다.

거미줄이 상춘의 몸을 통째로 처마 밑 대들보에 끈적하게 접착시켰다.

상춘이 바둥거릴수록 거미줄은 그의 몸을 더욱더 강하게 조여 들어왔다.

마침 화살을 부러뜨린 도올이 절뚝절뚝 전방의 임하선을 향해 내달리며 휘파람을 길게 불었다.

방을 빠져나온 요시 수십 마리가 도올 앞으로 쏘아지듯 달려나갔다.

차마 상춘을 버리고 갈 수 없었던 하선은 자리를 우뚝 지키며 화살통의 화살을 모조리 꺼내 시위에 먹였다.

그가 시위를 놓자, 대여섯발의 화살이 동시에 요시들을 향해 날아갔다.

화살을 정면으로 맞은 요시 두 마리가 쿵, 다리를 접고 쓰러지자 그 위로 다른 녀석들이 솟구쳐 날아들었다.

하선이 허리춤에서 곡도를 꺼내 날아드는 요시의 발을 베었다.

발 하나가 잘려나갔지만 반대쪽 발이 하선의 어깨를 내리눌렀다.

시퍼런 발톱이 살을 고통스럽게 파고 들었다.

요시가 아가리를 크게 벌리고 하선의 머리통마저 집어삼키려 했다.

뒤편에서 자수침 하나가 번개처럼 날아와 그 요시의 눈을 꿰뚫었다.

여화단 무사 두 사람에게 의지한 금파파가 모퉁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괴수들을 향해 자수침을 연신 뿌려댔다.

침끝에 달린 주홍빛, 연분홍빛 실들이 하선의 앞에 마치 울타리를 세우듯 촘촘한 방어진을 형성했다.

하선이 곡도를 자수침에 찔려 신음하는 괴수의 배에 마구마구 쑤셔넣었다.

발버둥치던 요시가 자수침에 이어진 실들과 만나자 살점이 싹둑싹둑 잘려나갔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요시들이 돌진을 멈추고 잠시 그 앞에서 머뭇거렸다.

순간 들이닥친 도올이 요시 한 마리의 꼬리를 붙잡아 공중에서 뱅뱅 돌린 후 금파파가 만들어낸 금사진(金絲陣)을 향해 사납게 던졌다.

실을 통과한 괴수의 몸뚱이가 두부처럼 조각조각 썰려나갔다.

한 마리로는 안 되겠는지, 두 마리를 양손으로 붙든 도올이 연거푸 금사진을 향해 요시들을 던져댔다.

그 무렵 하선은 죽은 요시의 발톱에서 벗어나 낭하를 기듯 달려 금파파 쪽으로 이동했다.

그의 시선에 아직 천장에 매달린 채 몸부림치고 있는 상춘의 모습이 들어왔다.

상춘이 달라붙어있는 처마 쪽 나무기둥 위로 뭔가가 이동 중이었다.

그것들의 정체는 손가락 크기의 작은 거미들이었다.

하선이 등 뒤로 손을 돌려 화살통을 더듬었지만 남은 화살이 없었다.

옆에 선 금파파가 기침을 심하게 하더니 입 밖으로 선혈을 한움큼 토해냈다.

그녀가 손으로 입가를 빠르게 훔친 뒤 여화단 무사가 건넨 자수침 전부를 상춘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작은 거미들을 향해 내던졌다.

거미들과 함께 침에 수없이 강타당한 나무기둥이 쩌억, 소리를 내며 중간 부분이 부러져나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눈앞에 펼쳐놓았던 금사진도 도올이 내던진 요시들에 의해 너덜너덜 찢어지다 마침내 큰 구멍이 만들어졌다.

놓칠세라, 구멍 안으로 도올이 뛰어들었다.

녀석이 휘두른 날카로운 뼈낫이 여화단 여자 무사의 머리를 자르면서 옆에 있던 금파파의 상반신을 한 자 가량이나 베어버렸다.

뿜어진 핏물이 하선의 얼굴을 덮쳤다.

“안 돼!”

하선이 비명을 내지르며 도올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뒤미처 구멍 속으로 뛰어든 요시의 발톱이 하선의 머리칼을 잡아챈 뒤 함께 공중으로 솟구쳤다.

그때였다.

도올이 내지른 송곳같은 손날이 금파파의 명치를 꿰뚫고 등뒤로 빠져나왔다.

때를 같이해 뒷문을 열고 나타난 추문강과 정청하, 육손과 혈화문 무사 무리가 그 장면을 목격했다.

“금파파!!”

얼굴을 기괴하게 일그러뜨린 추문강이 황금만도를 도올을 향해 내던지며 전방으로 날아갔다.

정청하가 공중으로 솟구친 요시를 진매검으로 베어내며 하선을 구해냈다.

후방의 무사들이 고성을 내지르며 쏟아져 들어오는 괴수들을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우아아아아아!”

황금만도에 어깨를 맞은 도올이 냉큼 송곳 팔을 뽑아내자 피로 물든 금파파의 몸뚱이가 낭하 바닥으로 힘없이 나자빠졌다.

나무바닥에 순식간에 커다란 피웅덩이가 만들어졌다.

곧바로 쓰러진 금파파를 사이에 두고 지옥같은 혈전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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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말의 혈화문(6) 23.12.30 84 3 17쪽
92 종말의 혈화문(5) 23.12.20 88 3 16쪽
91 종말의 혈화문(4) +1 23.12.17 85 3 16쪽
90 종말의 혈화문(3) 23.12.16 85 3 15쪽
89 종말의 혈화문(2) 23.12.15 96 3 14쪽
88 종말의 혈화문(1) 23.12.03 137 1 18쪽
87 피할 수 없는 전쟁(8) 23.11.27 148 2 14쪽
86 피할 수 없는 전쟁(7) 23.11.25 142 4 13쪽
85 피할 수 없는 전쟁(6) 23.11.22 143 2 18쪽
84 피할 수 없는 전쟁(5) 23.11.19 158 3 18쪽
83 피할 수 없는 전쟁(4) 23.11.15 162 2 19쪽
82 피할 수 없는 전쟁(3) 23.11.13 171 3 17쪽
81 피할 수 없는 전쟁(2) 23.11.12 183 3 14쪽
80 피할 수 없는 전쟁(1) 23.11.08 211 3 15쪽
79 그날의 기억(2) 23.11.06 208 2 21쪽
78 그날의 기억(1) 23.11.04 192 3 16쪽
77 여후의 장례식(6) 23.11.02 219 3 20쪽
76 여후의 장례식(5) 23.10.31 223 3 19쪽
75 여후의 장례식(4) 23.10.29 222 5 15쪽
74 여후의 장례식(3) 23.10.27 215 5 14쪽
73 여후의 장례식(2) 23.10.25 251 5 17쪽
72 여후의 장례식(1) 23.10.24 287 5 17쪽
71 야야장 사람들(5) 23.10.22 264 5 16쪽
70 야야장 사람들(4) 23.10.20 246 6 14쪽
69 야야장 사람들(3) 23.10.19 259 5 19쪽
68 야야장 사람들(2) 23.10.17 266 5 14쪽
67 야야장 사람들(1) 23.10.16 250 4 16쪽
66 중간 결산(2) 23.10.15 240 4 15쪽
65 중간 결산(1) 23.10.13 302 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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