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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도황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이화영
작품등록일 :
2023.07.31 18:04
최근연재일 :
2023.12.30 10:43
연재수 :
9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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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542
추천수 :
659
글자수 :
649,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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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2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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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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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피할 수 없는 전쟁(6)

DUMMY

중망루 꼭대기 층.


금파파와 휘 노인, 몽일천 고문이 초조한 눈빛으로 암담해져 가는 장원 외곽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금파파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


“문주님은 오고 계시겠죠?”


휘 노인이 잠긴 목소리로 힘없이 대답했다.


“그러면야 좋겠지만서도··· 만에 하나 우리 사정을 전혀 모르고 계실 수도 있소.”


금파파가 도리질하듯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말했다.


“아니에요. 지금쯤 분명 정신없이 달려오고 계실 거예요.”


몽일천이 갑자기 계단 쪽을 돌아보며 두 사람을 향해 쉿, 조용히 하라 외쳤다.

잠시 뒤 휘 노인의 두 아들 성연과 정연이 나무상자 두 개씩을 머리에 이고 망루 안으로 들어섰다.

휘 노인과 몽 고문이 상자를 건네받아 망루 안에 내려놓고는 성연과 정연에게 4층 방으로 내려가 있으라 일렀다.

성연과 정연이 몸을 돌려 계단을 내려서는데 문득 휘 노인이 아들들을 붙잡아 세우더니 돌연 녀석들을 한 가슴에 끌어안았다.

휘 노인이 두 아들에게 무언가 당부의 말을 읊조리는 사이 몽일천은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살폈다.

금파파가 몽일천에게 넌지시 물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이걸 괴수들에게 사용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아무리 봐도 앞으로 반 시진도 못 버틸 것 같은데?”


몽일천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괴수가 몇백 마리라면 모를까. 벽력탄을 다 끌어모아도 간의 기별도 안 찰 거요. 육 책사 말대로 최후를 대비하는 용도로 남겨두는 게 좋을 듯싶소.”


금파파가 괴로운 듯, 한 손으로 이마를 부여잡았다.

몽일천이 상자를 덮은 다음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며 말했다.


“금파파, 너무 극단적으로만 생각하지 마시오. 정말로 지상이 지원군을 데리고 당장이라도 도착할 수도 있으니···.”


울먹이는 아들들을 달래서 내려보낸 휘 노인이 두 사람에게 다가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몽 고문께서도 가족분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마지막 이야기라도 나눠야 하지 않겠소?”


몽일천이 눈 내리는 하늘 위로 담배 연기를 뻐금뻐금 내뱉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금방 다시 또 볼 텐데 쓸데없는 짓은 하고 싶지 않소이다.”

“하하, 내 전부터 몽 고문의 그런 긍정적인 성격이 무척이나 부러웠소.”


몽일천이 금파파와 휘 노인을 향해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의부이신 사천화께선 모든 일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하셨소. 살아생전 온갖 불효막심한 짓으로 그분 속을 썩이긴 했지만, 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의부님의 말을 믿어보고 싶소이다. 아버지께서도 이 못난 아들과 손녀, 며느리를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실 거라 믿소.”


금파파가 몽일천에게 다가오더니 불쑥 손을 내밀었다.

몽일천이 금파파와 시선을 마주한 채 그녀의 손을 부여잡자 휘 노인이 그 위에 자기 손을 얹으며 말했다.


“최선을 다해 봅시다.”

“꼭 살아서 다시 만나요.”

“그렇게 될 거요.”


여화단 여자 무사 하나가 올라와 고했다.


“금 단주님, 흑화단 바타르가 북서쪽 망루에 최소한의 병력만 남겨두고 제2 저지선에 합류했습니다.”

“응, 그래. 너는 거기 나무상자 하나를 챙겨서 나와 함께 내려가도록 하자.”

“네.”


금파파가 휘 노인과 몽일천에게 인사 후 아래로 내려갔다.

얼마 안 있어 휘 노인도 몽일천에게 몇 마디 당부 후 금파파를 따라 망루를 빠져나갔다.

계단 쪽에서 들리는 망치 소리에 몽일천이 아래로 시선을 돌리자, 여화단 무사가 그의 가족과 무어인 아이 시아티, 휘 노인의 두 아들이 있는 방문을 나무판자로 단단히 틀어막고 있었다.

문 앞에는 벽력뇌화탄이 들어있는 나무상자가 놓여 있었다.

잠시 뒤 무장한 여화단 무사 다섯이 망루 위로 올라와 몽일천과 함께 전투태세를 갖췄다.

몽일천은 바닥에 좌정하고 앉은 채 참으로 오랜만에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



사방이 흙더미로 틀어막힌 땅굴 속.


선두의 강시들이 파헤친 비좁은 지하 굴을 따라 백여 명의 제갈세가 무사들이 느릿느릿 전진하고 있다.

그 중간쯤에 도올과 제갈승, 그리고 제갈승의 오른팔 조진도 섞여 있었다.

후덥지근한 땅굴 속 온도에 땀으로 흠뻑 젖은 조진이 문득 뒤를 돌아보며 제갈승을 불렀다.


“가주님.”

“응.”

“질문 하나만 해도 됩니까?”

“그래.”


조진이 잠시 더운 숨을 고르더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 천마란 분 말입니다···, 정말로 믿을 수 있습니까?”

“믿을 수 있냐니? 그게 무슨 말이냐?”

“나중에··· 모든 일이 다 끝난 다음 말입니다. 행여라도 그분께서 우리를 헌신짝처럼 팽개치지는 않을까 싶어 여쭤본 겁니다.”

“흐흐, 조진. 사부님은 절대 그럴 분이 아니시니 걱정 붙들어 매라.”


제갈승의 대답에도 조진은 답답한 마음이 어지간히 풀리지 않는지 계속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조진 바로 앞에서 땅굴을 기던 도올이 뒤를 돌아보며 한소리를 해댔다.


“병신년아. 천마께선 다 생각이 있어서 너나 네 주군을 거두신 건데, 감히 너 따위가 그분을 믿지 못하니 뭐니 주둥아릴 함부로 나불거리는 게냐? 정 그리 믿지 못하겠거든 당장 이 자리서 목을 내놓으면 될 일이다. 어찌 네가 힘들면 내 손으로 직접 네 명줄을 끊어줄까?”


조진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차갑게 대꾸했다.


“쳇, 되었소.”


축 처진 부하의 모습에 제갈승이 도올에게 따지듯 말했다.


“내 부하는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그쪽은 강시들더러 굴 좀 빨리 파라 이르시오. 이게 뭐요. 전투는 진작 일어났을 터인데 우리는 아직도 땅굴에 처박혀 있으니.”


도올이 히죽 웃더니 혀를 차며 대꾸했다.


“아이고, 우리 잘 나신 귀공자님 말씀하시는 본새 좀 보소. 주군의 제자가 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분 밑에서 삼십 년을 구른 부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하하, 아주 간이 배 밖으로 나와도 진즉에 빠져 나오셨구만.”


제갈승이 지지 않고 말했다.


“당신 그 말, 나중에 사부님께 올려도 되오?”

“하하하, 아, 일러바치시게?”

“······.”

“그래, 일러라, 일러. 주군께서 과연 누구 손을 들어주실지 한 번 지켜보도록 하자.”


조진이 당혹해하며 제갈승에게 말했다.


“가주님, 저는 괜찮으니 불필요한 싸움은···.”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너는 당장 그 입 다물어라!”

“아, 넵.”


도올이 돌연 움직임을 멈추더니 제갈승을 돌아보며 약올리듯 말했다.


“아이고, 잘 하면 한 대 치시겠네?”

“그만하시오. 많이 참고 있으니까.”

“하하하, 네가 안 참으면 어떡할 건데? 응? 아, 그 왜, 소중원에서 다른 사람들한테 했던 것처럼 나한테도 배신이라도 하시게?”


제갈승이 참지 못하고 부르짖었다.


“이런 개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하하하, 저 새끼 저거 화내는 꼬라지도 배신자 냄새 팍팍 풍기네. 하하하하하.”


그런데 그때였다.

앞쪽에서 흙더미가 우르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뭐야? 굴이 무너지나?”


누군가 소리치자, 도올이 여유 있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무너지긴 병신새끼야, 대가리에 구멍이라도 뚫어졌냐? 목적지에 다 온 거다.”


조진이 다급히 물었다.


“정말입니까?”

“그래, 이 새끼야. 다 왔다고. 혈화문 장원에 도착했다고. 그러니까 빨리 따라오기나 하셔.”


한 십 장을 더 앞으로 나아가자 드디어 굴속에서 차갑고 맑은 공기가 느껴졌다.

도올의 말이 맞았다.

전방에 지표면을 향해 수직으로 뚫린 갱도가 이어져 있었다.

제갈세가 무사들이 강시들이 뚫어놓은 갱도를 통해 혈화문 장원으로 올라갔다.

얼마 뒤 제갈승과 조진도 땅굴 밖으로 나와 맑고 신선한 공기를 한참이나 들이마셨다.

그사이 도올은 옷을 털고 일어나 대기 중인 강시들을 향해 지시했다.


“보이는 건 모조리 파괴해라. 살아 있는 생명체는 전부 다 죽여 없애라!”


도올의 명령을 들은 강시들이 전방의 마구간을 향해 어기적어기적 걸어갔다.

제갈승도 질세라, 제갈세가 무사들을 향해 목청을 높였다.


“제갈세가 인들이여! 마침내 기다렸던 그 날이 왔다. 오늘 이후 혈화문이란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제갈근, 제갈윤 두 형님의 원수, 혈화문을 철저히 파괴한다!”

“네! 가주님!”


칼을 빼 든 조진과 제갈세가 무사들이 녹색 장포를 휘날리며 장원 곳곳으로 달려나갔다.



*



원래 이주는 전투가 시작되면 두문택과 함께 상춘각으로 가기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호방한 성격상 후방에서 손 놓고 전투를 지켜보는 건 무척이나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거기다 이주에게 있어 혈화문 사람들은 그녀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접한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자신을 가족으로 받아준 그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만 했다.

전투가 시작된 뒤, 상춘각으로 향하던 중에 이주가 발길을 멈추고 앞서가는 두문택을 불러세웠다.


“야, 두 씨.”

“엉?”

“너 이번에 쓰는 글에 나도 나오냐?”

“뭐라고?”

“듣자니까 너 새로운 무협지 쓰기 시작했다며, 거기에 나도 나오냐고?”


쓰던 글과 필묵을 품에 가득 안은 채로 두문택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갑자기 그건 왜 묻는데?”

“빨리 대답이나 해줘. 나 나와, 안 나와?”


두문택이 잠시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더니 짧게 콧김을 내뿜으며 대답했다.


“나와.”

“정말?”

“응, 근데 악역이야. 하하하.”

“야, 악역이라도 나오면 좋은 거지. 쿠쿠쿠, 그래, 고맙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가기나 하자.”

“너 먼저 가.”

“응?”

“먼저 가라고, 나 잠깐 소피 좀 보고 뒤따라 갈게.”


두문택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이주를 향해 물었다.


“너 또 사고 치려고 그러지?”

“뭔 소리야, 이 와중에 내가 사고를 왜 쳐. 사실 오줌이 아니라 큰 게 마려워서 그래. 하하하, 네가 이해 좀 해주라. 나도 여자잖냐.”

“후, 진짜 사고 치지 말고 빨리 와라. 지금 전시 상황이다.”

“알았네요···. 싸고 바로 갈게요. 키키키.”


두문택과 헤어진 이주는 곧장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한데 가는 도중에 장원 요처마다 쌓여있는 벽력뇌화탄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말마따나 과거 은행을 털 때 벽력뇌화탄을 수차례 다뤄본 경험이 있는 이주였다.

주변에 누가 있나 살피던 이주는 상자 안에서 비교적 사용법이 간단한 폭탄 몇 개를 훔쳐 품 안에 갈무리했다.

길목에 있던 황군 막사에서 병사들 군복을 훔쳐 황군으로 위장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준비를 끝낸 이주는 곧장 치열한 전투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녀의 무위는 황군 일반 병사보다 월등히 뛰어나진 않았지만, 지난날 악인곡에서 괴수들을 상대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담장을 넘어오는 요시들을 상대로 나름 선방을 펼칠 수 있었다.

덕분에 황군 병사 몇 사람의 목숨도 구해내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던 중 이주가 근처에서 정청하를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청하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설 때 갑자기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날아다니며 요시들의 채찍꼬리를 잘라나가던 정청하가 단상 위 핏물을 잘못 밟아 착지 중 미끄러졌다.

미끄러짐과 동시에 유독 몸집이 커다란 요시에게 한쪽 어깨를 붙들렸다.

요시가 그녀를 꼬리에 매단 채로 사방팔방을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청하가 저항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주변 담장과 연달아 부딪치다 끝내 그녀의 진매검까지 떨어트렸다.

한쪽에서 날이 선 손도끼를 옆으로 세워 들고 요시가 멈춰 서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이주가 발 앞으로 떨어진 청하의 진매검을 주워들었다.

그 순간 몸을 빠르게 회전시켜 돌아온 요시가 이주에게 몸통 박치기를 날리는가 싶더니 손도끼와 진매검을 교차해 가슴을 틀어막은 이주의 어깻죽지를 물어뜯었다.

어깻살이 한 근이나 떨어져 나간 이주가 고통에 몸부림치다 단상 앞으로 고꾸라졌다.

창졸간 뒤편에 있던 병사들이 이주를 뛰어넘어 덩치 큰 요시를 향해 창을 찌르며 압박해갔다.

어디선가 단발마의 절규가 들린 건 그때였다.

추문강의 목소리였다.

아니 울부짖음이었다.

이주가 힐끗 돌아보자, 추문강이 그의 정인 정청하를 목놓아 부르며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주가 어깨의 상처에서 나는 피를 손바닥으로 틀어막은 뒤 담장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정청하가 요시에게 붙들린 채로 담장 밖 요시 무리 속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피에 굶주린 요시들과 강시들이 청하를 향해 서슬 퍼런 눈동자를 반짝이고 있었다.

생각하고 자시고 할 여력도 없었다.

이주가 품에서 꺼낸 폭탄의 심지에 허겁지겁 화섭자로 불을 붙인 뒤 청하의 낙하지점에 있던 괴수들을 향해 힘껏 내던졌다.


쾅, 쾅 쾅쾅――!


커다란 폭음과 함께 폭탄의 파편에 직격당한 괴수들이 육편이 되어 공중으로 수천 개의 살 조각을 흩뿌렸다.

고통의 순간이 최대한 짧게 끝나기만을 바라며 두 눈을 감고 추락하던 정청하가 번쩍 눈을 떴다.

날아든 핏물이 그녀의 얼굴을 차갑게 적셨다.

요시들의 피가 얼음처럼 차가운 것이 오히려 그녀에게 도움이 되었다.

다시금 삶의 의지를 되찾은 정청하가 바닥에 착지한 뒤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벽력뇌화탄의 영향으로 잠시 흩어졌던 괴수들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향해 사방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청하가 즉시 몸을 돌려 폭사 당 한 요시들의 사체를 밟고 오른 뒤 담벼락을 향해 있는 힘껏 몸을 날렸다.

한데 그때 처음 꼬리로 청하를 낚아챘던 거대한 덩치의 요시가 담장을 옆으로 타고 달리며 또다시 청하에게 채찍꼬리를 쏘아냈다.

하지만 이번엔 청하를 낚아채지 못했다.

공중에서 몸을 날린 누군가가 요시의 꼬리를 도끼날로 싹둑 잘라버렸다.

이주였다.

상처 입은 이주가 아래쪽으로 떨어지는 힘을 이용해 요시의 꼬리를 잘라낸 것이다.

청하가 그제야 자신을 도와준 이가 황군 병사가 아니라 이주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이주야!”

“청하!”


한 사람은 아래로 한 사람은 위로 교차해 지나갔다.

담장을 간신히 밟고 선 청하가 몸을 돌려 해자 위로 떨어진 이주를 향해 다시 몸을 날리려던 그때 누군가 그녀의 허리를 거칠게 낚아챘다.

추문강이었다.

청하가 문강에게 다급히 소리쳤다.


“문강 씨! 저기 이주가!”


문강이 요시들의 사체 속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는 이주를 발견했다.

밀려든 요시와 강시들이 이주를 물어뜯기 일보 직전이었다.

문강이 근처에서 끊어진 밧줄을 찾아 담장 위로 둘러 묶은 뒤 밧줄을 붙잡은 채로 이주를 향해 몸을 날렸다.

마침 마지막 폭탄 하나에 불을 붙이고 죽을 준비를 하고 있던 이주가 떨어져 내린 문강에게 허리를 붙들린 채로 하늘 위로 높이 날아올랐다.

불붙인 폭탄이 아래로 떨어졌다.


쾅, 쾅쾅쾅――!


폭탄의 가공할 위력에 달려들던 수십의 괴수들이 모조리 사방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한데 그중 한 마리의 잘린 채찍꼬리가 하필 이주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날카로운 쐐기침이 이주의 한쪽 젖가슴을 뚫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문강이 이주를 꽉 끌어안은 채로 담장 위에 내려섰다.

황급히 이주를 안아 든 청하가 눈물을 글썽였다.

이주가 빙그레 웃으며 청하에게 말했다.


“야, 청하야. 나 잘했지?”

“응, 잘했어. 고마워, 이주야.”

“흐흐, 지상이 돌아오면 전해주라. 이 이주가 사람 구실 한 번 제대로 하고 갔다고.”

“헛소리하지 마. 전하려면 네가 직접 전해.”

“아··· 그나저나 눈 좆나게 내리네.”


순간 이주가 새빨간 선혈을 벌컥벌컥 토해냈다.


“문강 씨! 빨리 의방으로!”

“알았소!”


추문강이 이주를 등에 업고 단상 아래로 뛰어내렸다.

추문강과 정청하가 이주와 함께 제2 저지선에 있는 의방 막사로 향할 무렵 북쪽 담벼락 근처에서 연달아 폭음이 들려왔다.

이주의 행동을 지켜본 황군 병사들이 벽력탄이 효과가 있음을 깨닫고 연이어 폭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폭음에 소스라치게 놀란 건 오히려 육손이었다.

이호와 철두, 황군 병사들과 함께 대문을 사수하고 있던 육손이 다급히 근처에 있던 황군 백부장을 향해 대갈했다.


“당장 가서 벽력탄 사용을 멈추게 하시오!”

“왜 그러십니까? 효과가 있는 것 같은데?”

“우리 담장, 장원의 담장이 위험하단 말이요!”

“아!”


화들짝 놀란 백부장이 북쪽 망루를 향해 전력 질주했다.

그 와중에도 폭음 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러다 갑자기 무사들의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벽력탄의 파괴력에 해자의 얼음이 쪼개졌고, 그 여파가 담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담장을 따라 설치된 단상이 조금씩 흔들리는가 싶더니 북쪽 담장 한곳에 쩌억, 쩌억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담장 밖에 산처럼 쌓인 요시 사체의 무게가 균열이 일어나는 속도를 더욱 가중시켰다.

백부장이 단상 위 무사들을 향해 폭탄 사용을 멈추라고 외치던 순간, 갑자기 땅이 쿵, 쿵 진동하기 시작했다.

단상 위에 있던 병사 하나가 괴성을 내질렀다.


“괴물, 괴물이 달려온다! 뛰어내려! 담벼락이 무너진다!”


병사의 말대로 요시들보다 몸집이 두 세배는 더 큰 거대한 멧돼지 괴수가 균열이 생긴 담벼락을 향해 네 발로 땅을 차며 돌진해오고 있었다.

녀석의 정체는 바로 사흉 중 하나인 도철이었다.

겁먹은 병사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단상 아래로 뛰어내렸다.

백부장이 혼란에 빠진 병사들을 향해 빨리 대열을 갖추라고 마구 소리 지르던 순간 멧돼지 괴수 도철이 담벼락에 박치기를 가했다.


뻐어어어어어억―――!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돌조각이 날아갔다.

그중 하나가 병사들을 수습하던 백부장의 머리를 박살 냈다.

바로 눈앞에서 상관의 머리가 사라진 걸 지켜본 병사들이 앞다퉈 제2 저지선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우르르, 쾅, 쾅쾅 소리와 함께 북쪽 담벼락이 송두리째 무너졌다.

도철과 수백, 수천의 괴수들이 무너진 담벼락을 뛰어넘어 장원 안으로 속속들이 침투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육손이 낮게 침음하더니 몇 개 남지 않은 폭죽을 하늘을 향해 쏘아 올렸다.

모든 병사와 혈화문 무사들에게 제2 저지선으로의 후퇴를 알리는 신호였다.

곧바로 뿔나팔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전보단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눈발은 더욱더 굵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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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종말의 혈화문(6) 23.12.30 86 3 17쪽
92 종말의 혈화문(5) 23.12.20 89 3 16쪽
91 종말의 혈화문(4) +1 23.12.17 86 3 16쪽
90 종말의 혈화문(3) 23.12.16 85 3 15쪽
89 종말의 혈화문(2) 23.12.15 97 3 14쪽
88 종말의 혈화문(1) 23.12.03 138 1 18쪽
87 피할 수 없는 전쟁(8) 23.11.27 148 2 14쪽
86 피할 수 없는 전쟁(7) 23.11.25 143 4 13쪽
» 피할 수 없는 전쟁(6) 23.11.22 144 2 18쪽
84 피할 수 없는 전쟁(5) 23.11.19 158 3 18쪽
83 피할 수 없는 전쟁(4) 23.11.15 163 2 19쪽
82 피할 수 없는 전쟁(3) 23.11.13 171 3 17쪽
81 피할 수 없는 전쟁(2) 23.11.12 184 3 14쪽
80 피할 수 없는 전쟁(1) 23.11.08 212 3 15쪽
79 그날의 기억(2) 23.11.06 208 2 21쪽
78 그날의 기억(1) 23.11.04 193 3 16쪽
77 여후의 장례식(6) 23.11.02 220 3 20쪽
76 여후의 장례식(5) 23.10.31 225 3 19쪽
75 여후의 장례식(4) 23.10.29 224 5 15쪽
74 여후의 장례식(3) 23.10.27 216 5 14쪽
73 여후의 장례식(2) 23.10.25 251 5 17쪽
72 여후의 장례식(1) 23.10.24 290 5 17쪽
71 야야장 사람들(5) 23.10.22 265 5 16쪽
70 야야장 사람들(4) 23.10.20 248 6 14쪽
69 야야장 사람들(3) 23.10.19 259 5 19쪽
68 야야장 사람들(2) 23.10.17 266 5 14쪽
67 야야장 사람들(1) 23.10.16 250 4 16쪽
66 중간 결산(2) 23.10.15 240 4 15쪽
65 중간 결산(1) 23.10.13 302 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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