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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도황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이화영
작품등록일 :
2023.07.31 18:04
최근연재일 :
2023.12.30 10:43
연재수 :
9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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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540
추천수 :
659
글자수 :
649,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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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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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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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6쪽

종말의 혈화문(5)

DUMMY

혈화문 사람 대부분은 인식하지 못했다.

얼마 전부터 어둑어둑한 구름 사이로 흐릿한 빛무리가 나타났단 사실을.

그렇게 미세하게 변해가는 날씨만큼이나 제갈세가의 마지막 충신 조진의 마음도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주군 제갈승을 따라 안채로 향하는 도중 수많은 피난민과 마주쳤다.

혈화문 장원에 야야장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피신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조진이었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무사들의 다급한 외침에 따라 수백에 이르는 피난민이 상춘각 본채에서 후문 방향으로 노도처럼 이동했다.

그들 대부분은 어린아이와 여인네들이었다.

사람인 이상 조진 역시 어제 소중원에서 빼돌린 가족들 생각이 간절했다.

조금 전 끝난 후문 전투에서 희생된 부하들의 모습도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군 제갈승은 어떤 한 가지 상념에 사로잡힌 채 피난민 무리를 거슬러 오직 앞으로만 전진을 거듭하고 있었다.

용기를 낸 조진이 제갈승의 옷자락을 붙잡고 무슨 말이라도 해보려던 그때, 뜨락 한가운데 설치된 철탑 위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어이, 거기 자네 둘.”

조진과 제갈승이 급히 발길을 멈추고 철탑을 올려다봤다.

남루한 복색의 오십 줄 사내가 철탑 중간에 매달린 채 가까이 오라 손짓하고 있었다.

제갈승이 얼굴을 반쯤 가린 목토시를 더욱 위로 끌어 올리며 사내에게 다가가자 사내가 빈 물주머니 두 개를 건네며 말했다.

“곁채 마당에 있는 우물 알지? 거기서 물 좀 채워서 가져다주게. 빨리.”

“···네.”

제갈승과 조진이 물주머니를 하나씩 나눠 들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데 길목에 놓인 백석 울타리 너머에서 목발 짚은 사내가 나타났다.

육손이었다.

육손과 안면이 있던 제갈승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깊이 숙인 뒤 그 곁을 빠르게 지나쳤다.

녀석의 행동이 수상쩍다고 생각한 육손이 두 사람을 불러세우려는데 마침 전각 모퉁이에서 철두가 나타나 황급히 육손을 불렀다.

“육손, 여깄었구나. 나 찾았다면서.”

“아, 그래.”

육손이 안채 방향으로 멀어져가는 두 사람에게서 고개를 돌린 뒤 철두에게 말했다.

“능소 형님 지시사항이 있어서.”

“무슨?”

“너, 정문 전투에서 빠져.”

“응?”

“후원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아상이랑 친구들이 두문택 형님이랑, 두 분 형수님, 몽 고문님 가족, 홍매네 가족, 유이, 안개위를 데리고 너한테 갈 거야. 아, 휘 고문님 두 아들과 의방 사람들도 잊지 마.”

철두가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빈손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어쩌라고?”

“정문에서 다시 전투가 벌어지면 네가 그 사람들 인솔해서 피난민들과 함께 북서 망루 방향으로 도망쳐. 망루에 도착하면 흑화단 무사 몇 명이 담장에 미리 구멍을 뚫어놨을 거야. 내가 시켰어. 그곳으로 장원을 탈출해서 어디로든 가. 마교를 피해 최대한 먼 곳으로 도망쳐.”

가만히 육손의 말을 듣고 있던 철두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술을 파르르 떨며 육손과 눈을 마주쳤다.

육손이 젖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능소 형님 명령이니까 거스를 생각하지 마.”

철두가 입술을 찡그리더니 육손의 한쪽 어깨를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녀석이 육손의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기댄 채 속삭였다.

“···홍금보랑 강군 형님이 돌아가셨어.”

“들었어. ···이주 누님도 가셨어.”

“나 솔직히 겁나서 미치겠어.”

“나도 겁나. 근데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잖아.”

“말 편하게 한다, 이 새끼야. 하··· 인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육손 너랑 더 친해지고 싶었다.”

“철두야. 넌 내가 만난 최고의 친구야.”

“시발, 우리 진짜 살아서 다시 볼 수 있을까?”

“···몰라, 하지만 빌어 봐야겠지. 만일 우리가 다시 살아서 만난다면 모두가 예전처럼 문주님 집무실에서 함께 밥 먹자.”

철두가 육손을 끌어안았다.

육손이 철두의 등을 때리며 다독였다.

순간 철탑 위에서 누군가 다급히 소리쳤다.

“능소님, 상공의 괴수들의 움직임이 달라졌습니다! 녀석들이 낙하준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능소가 말을 받아 고함쳤다.

“곧 전투가 시작된다. 곧 전투가 시작된다!”

철두와 헤어진 육손이 목발을 짚은 채로 절뚝절뚝 상춘각 정문으로 이동했다.

철두 역시 뒤처진 피난민 무리를 인솔해 후문으로 향했다.

철탑 위 궁화단 무사들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어마무시한 속도로 떨어져 내리는 괴수들을 향해 화살을 난사했다.

육손이 상춘각 대청에 도착했다.

정문 담장 뒤로 겹겹이 도열한 최후의 황군 병사들이 방패를 앞으로 세워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측면에는 혈화문의 수호단, 궁화단, 여화단, 흑화단 무사들이 상주해 있었는데 전체적인 규모가 첫 전투 때의 십 분의 일로 쪼그라들어 있었다.

부상병 중에서도 무기를 들 수 있는 자는 대청 한켠에 나와 죽음을 각오하고 대기 중이었다.

긴장감 속에서 각궁을 맨 임하선이 육손에게 다가와 청강검을 건네주었다.

육손이 청강검을 높이 치켜들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가 황군의 마지막 지휘관인 반백의 백부장 옆에 나란히 섰다.

그가 병사들을 향해 목청 높여 말했다.

“밤새 수고가 많았다. 이젠 편하게 죽어도 된다. 마지막 결전이다. 최선을 다해 괴수 한 마리라도 더 잡고 지옥에 가서 다시 만나자. 알겠나?”

“알겠습니다!”

“황군 병사들아, 너희가 자랑스럽다. 너흰 인정하기 싫겠지만, 오늘만큼은 너희도 우리 혈화문 사람이다. 괜찮겠는가?”

병사들 속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병사들이 다 같이 복창했다.

“좋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는 누구?”

“혈화문!”

“우리는 누구?”

“혈화문!”

육손이 하늘을 향해 폭죽을 쏘아 올리며 외쳤다.

“폭죽이 있는 자는 하늘 위로 마지막 폭죽을 쏘아 올려라!”

하선과 추문강, 나머지 혈화문 필부들도 육손을 따라 하늘 위에 핏빛 꽃을 수놓았다.

펑, 펑펑. 펑 펑 펑 펑.

오래간만에 하늘을 올려다본 무사들은 그제야 밤이 가고 아침이 밝았음을 눈치챘다.

그렇게 하늘을 가득 메운 혈화를 한참이나 올려다보고 있는데 담벼락 위에 올라가 있던 병사 하나가 고함치며 깃발을 흔들어댔다.

쿵, 쿵쿵, 대지가 진동했다.

구릉지 방향에서부터 뿌연 흙먼지가 몰려왔다.

상춘각 주변에 내려앉은 독무가 심하게 흔들렸다.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담장을 무너뜨린 강시들이었고, 그 뒤는 독무에 중독된 요시들, 다음은 멧돼지 괴수 도철이었다.

육손이 전방을 향해 사납게 대갈했다.

“적들을 무찔러라! 한 마리도 살려두지 마라!”

추문강과 정청하가 두 손을 꼭 붙잡은 채로 방패병들 사이를 파고드는 도철을 향해 돌진했다.

병사들이 악을 내지르며 괴수들을 향해 달려나갔다.

“우아아아아아아아!”



*



한 청년이 안채 건물 지하에 있는 광 안에 몸을 숨기고 있다.

청년의 이름은 아문.

아상의 절친으로 밤새 마주한 수많은 죽음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특히 얼마 전까지 자신이 몸담았던 하오문 식구들의 참상 소식을 전해 들은 후, 마지막 남은 그의 이지가 무너져 버렸다.

아문이 차가운 지하실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소리죽여 흐느끼고 있는데 문득 낯선 이들이 광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이었고 주종 관계가 분명한 말투를 보였다.

어디선가 찾아든 등롱으로 계단 아래를 비추던 조진이 제갈승에게 말했다.

“이곳도 텅 비었습니다. 아무래도 아까 피난민들과 섞여 후원으로 이동한 듯싶은데···.”

제갈승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조진에게 반박했다.

“아니야, 여기로 오는 도중에 내가 분명히 피난민들 모두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중에 마심아는 없었어. 확실해.”

조진이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그리 높지 않은 계단을 밟고 내려서며 제갈승을 불렀다.

“주군.”

“응.”

“저 아무래도 여기까지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응? 그게 무슨 소리냐?”

조진이 몸을 돌려 계단 위 제갈승 앞에 무릎 꿇었다.

“더는 주군의 명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뭣이? 왜?”

“당신께서는 제가 알던 제갈승 공자님이 아니십니다. 그간 제가 받들어 모셨던 공자님은 누구보다 정의롭고 영명하며 하찮은 생명도 소중히 여기시던 분이셨습니다. 짧은 기간 형제분들의 희생이 있었다 하더라도 지금의 공자님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하셨습니다.”

제갈승이 계단 난간에 기댄 채 콧방귀를 뀌었다.

그가 웃으며 물었다.

“그래, 조진. 네 말이 맞다 치자. 인정하마, 내가 달라졌다. 하면 적진 한복판에서 뭘 어찌하려고 그러느냐?”

“밖으로 나가서 혈화문 사람들에게 항복하겠습니다. 만일 저들이 저에게 속죄의 기회를 준다면 마교에 저항해 싸우다 죽겠습니다.”

제갈승이 잠깐 황당한 눈으로 조진을 째려보더니 비릿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하하하하하, 오냐, 허락하마, 네 원대로 가서 적에게 항복하고 괴수들과 싸우다 죽어라.”

조진이 제갈승을 향해 절을 세 번 올린 뒤 공수를 모아 정중히 읍하며 말했다.

“끝까지 모시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주군.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제갈승이 차갑게 고개를 돌렸다.

조진이 그의 곁을 지나 계단을 오르는 데 갑자기 차가운 한기가 불어닥치나 싶더니 제갈승의 소매를 빠져나온 새하얀 섬섬옥수가 조진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놀란 조진이 즉시 칼을 빼서 막았지만, 제갈승의 손날과 만난 칼날은 챙, 소리와 함께 허무하게 부러져버렸다.

“아아악.”

살과 뼈를 부수는 고통이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아름다운 외양과는 달리 소수마공의 진기를 흡수한 제갈승의 손날은 그야말로 하나의 날카로운 검날처럼 조진의 옆구리를 잔인하게 파헤쳤다.

“주, 주, ···주군.”

원망 섞인 눈으로 제갈승을 바라보던 조진이 힘없이 계단 위로 고꾸라졌다.

제갈승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향해 말했다.

“그 더러운 입으로 함부로 나를 부르지 마라. 역겨워 죽을 것 같으니까. 뭣이? 적에게 항복하고 괴수들과 싸우다 장렬히 죽겠다고? 하하하, 병신 같은 놈. 지옥에 가서나 네 뜻대로 해라. 퉤, 퉤퉤퉤.”

제갈승이 죽어가는 조진의 얼굴에 침을 뱉은 후 그대로 광을 떠나려는 데 문득 광 깊숙한 곳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여태 두 사람의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고 있던 아문이 조진의 죽음에 깜짝 놀라 실수로 한쪽에 쌓여있던 장작더미를 건드렸던 것이다.

제갈승의 일신이 번쩍 위로 솟구쳤다.

그가 대들보 뒤에 모습을 감추고 있던 아문 앞에 내려섰다.

아문은 입을 한껏 벌리고 소리를 내지르려 했으나 벌린 입에서는 아무 소리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제갈승의 손날이 한 점 망설임도 없이 아문의 목덜미를 쑤시고 들어갔다.


얼마 뒤 바깥쪽에서 광 문이 열렸다.

피난을 떠나기 위해 친구 아문을 찾으러 다니던 아상과 공칠이 마침내 여기 광에 도착한 것이었다.

“아문! 아문!”

공칠이 먼저 계단 아래서 조진의 시체를 발견했다.

불빛에 무언가를 발견한 아상이 공칠을 뛰어넘어 광으로 들어섰다.

아상이 대들보 맡에 쭈그린 채 죽어있는 친구 아문을 발견했다.

“아문! 아문! 안돼!”

공칠이 달려와 아문을 끌어안고 통곡했다.

아상이 멍한 모습으로 일어나 혼잣말했다.

“누군가 침입했고, 이곳을 떠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어. 당장 육손님께 알려야 해.”

그렇게 아상이 공칠을 남겨둔 채 밖으로 튀어나갔다.

아상이 상춘각 정문 방향으로 달리던 그 순간 정문이 무너지며 괴수들이 들이닥쳤다.

상춘각 전체가 혼돈에 휩싸였다.

아비규환이 펼쳐지기 시작한 그 지옥 같은 현장에서 망연자실한 채 잠시 멀뚱멀뚱 서 있던 아상의 옷깃을 누군가 사납게 낚아챘다.

두문택이었다.

두문택 뒤로 마심아와 왕정정, 채인하의 정인 소령도 보였다.

두문택이 아상을 흔들어 깨우며 물었다.

“다른 애들은 어딨어? 너 아문 찾으러 갔었잖아?”

“네? 아, 네. 저, 저기···.”

“일단 빨리 와, 시간 없어. 당장 후원으로 가야 해.”

“아니, 그, 그게···.”

“아, 저기 공칠이 보인다. 빨리 가자. 어서!”

아상과 공칠은 그대로 두문택에게 붙들려 여인들과 함께 후원으로 내달렸다.

화청 중간쯤에서 포위망을 뚫고 들어온 괴수 몇 마리와 맞부닥쳤지만, 철탑 위 궁화단 무사들의 벼락같은 엄호로 무사히 그곳을 탈출할 수 있었다.

후원에 도착하자,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철두가 인원을 파악한 뒤 이호와 함께 후문을 열고 피난민들을 이동시켰다.

능소가 독무의 방향을 바꾸고, 또 각종 독충들이 가는 길을 철통처럼 방어해 피난민 행렬은 적과 큰 마찰 없이 북서쪽 망루로 향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겨우 마음이 진정된 아상이 선두로 나아가 철두에게 말했다.

“철두 형님, 아문이 죽었습니다.”

철두가 돌아보더니 퉁명스레 대답했다.

“아문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죽었다. 지금 이럴 시간 없다. 빨리 장원을 빠져나가야 해.”

“그, 그게 아니라 형님··· 적이, 적이 장원에···.”

철두가 아상의 말을 무시하며 행렬 밖으로 빠져나가더니 후미를 향해 소리쳤다.

“거기 정해진 길을 벗어나지 마. 독충들은 피아를 식별하지 못한다. 어이, 자네. 거기 아이 손 좀 잡아줘. 넘어져서 못 일어나고 있잖아. 그래, 그 녀석. 야, 안개위, 네가 왼쪽 좀 봐줘. 낙오자가 생기지 않게!”

“네, 형님. 맡겨두십시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상은 이 정도 상태라면 굳이 적 걱정을 안 해도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공칠과 함께 뒤처지는 아이들을 어깨에 태웠다.

한편 아상과 함께 피난민 무리에 합류한 마심아와 왕정정은 얼굴을 굳힌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홍매의 세 딸과 함께 길을 걸으면서도 그녀들의 머릿속은 조금 전 상춘각에 남기고 온 금파파 생각뿐이었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금파파는 고집스레 두 사람을 향해 자신을 남기고 떠나라 호통쳤다.

마심아는 끝까지 그녀를 데리고 가려 했으나, 금파파가 계속 이러면 그녀 앞에서 목숨을 끊어버리겠다 엄포를 놓았다.

휘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의 두 아들을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마심아와 왕정정, 두문택을 등 떠밀어 보냈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마심아가 울컥 울음을 터뜨렸다.

정정도 참지 못하고 아이들의 손을 붙잡은 채로 펑펑 울었다.

홍매도 마찬가지였다.

사랑하는 이를 그 지옥 같은 곳에 남겨두고 떠나는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모두가 흐느끼며 정처 없이 길을 떠났다.

하지만 그 행렬 속에서 남모르게 미소 짓고 있는 자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제갈승이었다.

녀석은 어느샌가 피난민 무리에 합류했고 호시탐탐 마심아를 죽일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



세 필의 인마가 엄청난 속도로 야야장을 가로질렀다.

달리는 말 위에서 모용균이 동쪽 산에 떠오른 해를 가리키며 기겁해서 소리쳤다.

“맙소사, 해가 뜨고 있습니다. 어느새 아침입니다.”

놀랄만했다.

어젯밤 세 사람이 소중원에 진입했을 때가 아직 자정도 되기 전이었으니까.

채인하가 지상을 돌아보며 말했다.

“미로의 진. 우리가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현실에서의 몇 배는 됐나 봐.”

지상은 대답 대신 험상궂은 얼굴로 한혈마에 채찍질을 가했다.

바로 그때 저 멀리 어디선가 폭죽 소리가 들렸다.

잿빛 하늘 위에 혈화가 그려지고 있었다.

한 송이가 아니었다.

수십, 수백 개의 혈화가 동시에 수 놓이고 있었다.

지상이 앞서 달려나가며 사납게 부르짖었다.

“이런 시바아아아아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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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종말의 혈화문(6) 23.12.30 86 3 17쪽
» 종말의 혈화문(5) 23.12.20 89 3 16쪽
91 종말의 혈화문(4) +1 23.12.17 86 3 16쪽
90 종말의 혈화문(3) 23.12.16 85 3 15쪽
89 종말의 혈화문(2) 23.12.15 97 3 14쪽
88 종말의 혈화문(1) 23.12.03 138 1 18쪽
87 피할 수 없는 전쟁(8) 23.11.27 148 2 14쪽
86 피할 수 없는 전쟁(7) 23.11.25 143 4 13쪽
85 피할 수 없는 전쟁(6) 23.11.22 143 2 18쪽
84 피할 수 없는 전쟁(5) 23.11.19 158 3 18쪽
83 피할 수 없는 전쟁(4) 23.11.15 163 2 19쪽
82 피할 수 없는 전쟁(3) 23.11.13 171 3 17쪽
81 피할 수 없는 전쟁(2) 23.11.12 184 3 14쪽
80 피할 수 없는 전쟁(1) 23.11.08 212 3 15쪽
79 그날의 기억(2) 23.11.06 208 2 21쪽
78 그날의 기억(1) 23.11.04 193 3 16쪽
77 여후의 장례식(6) 23.11.02 219 3 20쪽
76 여후의 장례식(5) 23.10.31 225 3 19쪽
75 여후의 장례식(4) 23.10.29 224 5 15쪽
74 여후의 장례식(3) 23.10.27 216 5 14쪽
73 여후의 장례식(2) 23.10.25 251 5 17쪽
72 여후의 장례식(1) 23.10.24 290 5 17쪽
71 야야장 사람들(5) 23.10.22 265 5 16쪽
70 야야장 사람들(4) 23.10.20 248 6 14쪽
69 야야장 사람들(3) 23.10.19 259 5 19쪽
68 야야장 사람들(2) 23.10.17 266 5 14쪽
67 야야장 사람들(1) 23.10.16 250 4 16쪽
66 중간 결산(2) 23.10.15 240 4 15쪽
65 중간 결산(1) 23.10.13 302 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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