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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도황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이화영
작품등록일 :
2023.07.31 18:04
최근연재일 :
2023.12.30 10:43
연재수 :
9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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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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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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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9,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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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5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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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피할 수 없는 전쟁(4)

DUMMY

혈화문 장원 앞 밤나무 숲길.


휘이이잉, 무시무시한 한파를 머금은 거센 눈발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매섭게 몰아쳤다.

길 가장자리를 따라 밝혀진 홍색 등롱 하나가 바람에 줄이 끊어져 저 멀리 밤하늘 위로 사라졌다.

근처 가로수 잔가지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하오문 문주 봉비호가 문득 자신의 무게를 버틸만한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리더니, 장원의 남쪽 망루를 향해 야명주를 꺼내 보였다.

손바닥으로 가렸다가 다시 보이기를 세 차례 반복한 뒤 망루 쪽에서 응답의 불빛이 깜박이자 야명주를 빠르게 품에 갈무리했다.

순간 반대편 가지를 사뿐사뿐 밟고 다가온 작은 몸집의 부하 하나가 봉비호에게 소리 죽여 물었다.


“문주님, 너무 추워요. 이러다 나무 위에서 얼어 죽겠어요.”


열 예닐곱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부하를 말없이 바라보던 비호가 살얼음이 하얗게 내린 자신의 목토시를 벗어 부하에게 내밀었다.


“연두 너랑, 개복치, 은율이 셋은 반 시진만 더 있다가 장원으로 돌아가.”


부하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목토시를 살살 털어서 머리 위로 뒤집어쓰며 물었다.


“문주님은요?”

“나까지 가면 혈화문 녀석들이 뭐라고 하겠냐?”


연두가 입을 삐죽이며 대답했다.


“그럼 저희도 안 갈래요.”

“인마, 가. 이건 명령이야. 가서 뜨거운 차도 마시고 좀 쉬어.”

“갔다가 차랑 먹을 것 좀 가지고 다시 돌아올까요?”


비호가 힘든지 연신 거친 숨을 토해내며 나직이 대꾸했다.


“그냥 가서 자. 돌아올 생각 하지 말고. 내 말 들어.”

“···네.”


부하가 뒷걸음질로 사라지자, 비호가 다시 나무 꼭대기로 올라갔다.


장원 북쪽.


토사로 쌓아 올린 축대 위에서 북쪽 오솔길을 감시하고 있던 염방의 방주, 종조용이 봉비호처럼 북쪽 망루를 향해 야명주를 꺼내 보였다.

신호를 주고받은 뒤, 축대 밑으로 납작 엎드린 그의 곁으로 부하가 다가와 차가운 감자와 물통을 내밀었다.

먼저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려던 종 방주가 얼어붙은 물통을 거꾸로 들고 탈탈 털고 있는데 문득 오솔길 쪽에서 자박자박 눈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종 방주가 축대 뒤로 은신한 부하들을 향해 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잠시 겹쳐진 통나무 틈 사이로 밖을 살피던 종방주가 안도의 숨을 토해냈다.

커다란 뿔을 가진 수사슴 한 마리가 축대 근처까지 다가와 서성이고 있었다.

종 방주가 사슴 근처에 돌조각을 던지자, 녀석이 순식간에 근처 산등성이 방향으로 사라졌다.

오솔길엔 다시 쥐죽은 듯 정적이 찾아 들었다.


장원 내부.


최근 3장 높이까지 증축한 담장 안쪽에는 폭이 한 자 정도 되는 좁은 단상이 길쭉하게 설치돼있었다.

추문강은 현재 대문 바로 옆 단상 위에서 황군 병사들과 함께 눈을 맞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오늘 장원으로 들어온 황군 병사 수는 천이 조금 안 됐는데, 이들은 오후까지 서하강과 야야장 오문을 수비하던 병력이었다.

원래 만여 명에 가까웠던 그 병력은 황도에서 온 긴급 서신을 받고 9할이 강을 건너 황도로 돌아가는 바람에 천여 명만 혈화문 장원에 합류한 상태였다.

그마저도 임하선이 황군의 젊은 지휘관 강서진이란 장교를 적극적으로 설득한 결과였다.

저녁 이후로 비둘기가 돌아오지 않았다.

육손의 지시로 대도무문 무령궁과 황도의 황궁을 향해 수십 마리의 비둘기를 날려 보냈지만, 단 한 마리도 돌아오지 않았다.

추문강 앞에 놓인 사다리 위로 누군가 머리를 빼꼼히 내밀었다.

정청하였다.

추문강이 피우던 담배를 비벼 끄고 손을 뻗어 청하를 단상 위로 끌어 올렸다.

주변 병사들을 짧게 일별한 청하가 추문강 옆에 있던 병사에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소반을 내밀었다.

병사가 뜨거운 감자와 찻주전자가 든 소반을 받아들고 연신 감사의 말을 전했다.

청하가 병사가 따라준 찻잔 두 개를 들고 추문강 옆으로 바싹 붙어 앉았다.

그녀에게서 차를 받아든 추문강이 뜨거운 찻물을 한 모금 홀짝이더니 살 것 같다는 표정으로 하늘을 향해 더운 숨을 토해냈다.

청하는 담장에 난 작은 화살 구멍으로 밖의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그녀가 몸을 돌아 누이자, 추문강이 다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게 그렇게 맛있어요?”


추문강이 코를 훌쩍이다가 청하를 향해 불붙인 담배를 쓱 내밀었다.

정청하가 담배를 받아 입으로 한 모금 빨더니 콜록콜록 기침을 해댔다.

추문강이 킬킬거리자 청하가 그를 한 차례 사납게 노려본 다음 갑자기 몸을 돌려 문강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추문강이 심장을 벌렁거리며 앞만 바라보고 있는데 청하가 그의 손에 담배를 다시 쥐여주며 혼잣말하듯 말했다.


“현무관에서 수련할 때 사형들 몰래 접근해오던 남자들이 꽤 있었어요.”

“하하, 당연하겠지. 당신 정도면.”

“걔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도 있었지만, 다 거절했어요. 미래의 낭군을 위해 정절을 지키고 싶었거든요.”

“음···.”

“고맙죠?”


추문강의 호흡이 가빠졌다.

그가 고개를 돌려 불빛에 발그레해진 정청하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추문강이 말없이 고개를 주억이자, 청하가 그를 양팔로 꼭 끌어안은 채 그의 널찍한 가슴에 머리를 파묻었다.

담배를 단상 밑으로 내던진 추문강이 두꺼운 바람막이를 펼쳐 청하의 몸을 빠짐없이 감쌌다.

그가 바람막이 속으로 들어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청하의 반쯤 벌어진 입술에 그의 뜨거운 입술을 가져다 댔다.

청하의 가늘고 긴 두 팔이 추문강의 목을 휘감았다.

옆자리에 있던 병사들이 슬그머니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혈화문 마구간.


저녁부터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말들이 급기야 설사까지 해대며 좁은 마구간 안에서 미친 듯이 날뛰었다.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온 철두와 강군은 말들의 고삐를 붙든 채 말과 함께 뛰어다니느라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마침 양계장 닭들을 잠재우고 돌아온 홍금보가 마구간 안으로 들어섰다.

철두가 홍금보를 향해 사납게 소리쳤다.


“야, 홍금보. 빨리 이 말들 좀 어떻게 해 봐!”

“헤헤, 잠깐만 그대로 있어 봐. 건초 좀 가져올게.”


무사들과 함께 창고로 뛰어가 건초를 가져온 홍금보가 말들에게 건초 냄새를 맡게 해주며 천천히 말들을 진정시켜 나갔다.

철두와 강군, 다른 무사들도 홍금보처럼 수백 마리의 말들에게 건초 냄새를 맡게 했다.

얼마 뒤, 기적처럼 말들이 완전히 진정 국면으로 들어서자 철두가 땀에 흠뻑 젖은 얼굴로 홍금보에게 물었다.


“너 황도에서 무슨 일 했다고 했지?”

“나? 양돈장에 있었어.”

“돼지 키우는 데?”

“엉, 거기 돼지들도 도축날이 되면 귀신같이 알고 이렇게 흥분 상태로 변하거든. 그때 마른 풀을 가져다가 냄새를 맡게 하면 어지간해선 이렇게 진정이 되더라고. 아, 거기 불 좀 꺼줄래요? 애들 잠 잘 수 있게?”


마구간 불을 모두 끄고 무사들과 함께 밖으로 나온 철두가 홍금보에게 물었다.


“홍금보, 너도 유이나 안개위처럼 상춘각에 가 있을 거야?”


홍금보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나는 그냥 여기 있을게. 저쪽 사육장에 있는 개들도 돌봐야 하고, 또 저녁때 날려 보낸 비둘기가 이따 늦게라도 돌아올지 모르니까. 그냥 여기 있는 게 나을 것 같아.”

“혼자서?”

“응, 반 시진 마다 순찰도는 무사 형님들도 있으니까, 괜찮을 것 같아.”


철두가 끄덕이더니 자신 없이 말했다.


“그럼 그럴래?”


그때 강군이 뒷춤에서 큼직한 손도끼 하나를 꺼내 홍금보 손에 쥐여주었다.


“이거라도 가지고 있어라. 혹시 모르니까.”

“아, 네, 고마워요.”

“그럼, 우린 간다. 만에 하나라도 이쪽에서 무슨 일이 터지면 바로 폭죽을 터뜨려서 알려줘.”

“네, 형님!”


철두와 강군이 무사들과 함께 상춘각 쪽으로 이동했다.

이동 중에 흑화단의 바타르가 보낸 혈화문 무사 하나와 마주쳤다.


“어디 가나?”

“아, 철두님. 바타르 단주가 한파에 남서호가 통째로 얼어서 감시망을 넓힐 필요가 있을 것 같답니다. 해서 본부 막사에 지원 요청을 하러 가는 길입니다.”

“헐, 호수가 다 얼었어?”

“네.”

“알았다, 일단 본부로 가서 육 책사한테 말해.”

“네.”


강군과 철두가 상춘각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전각 밖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얼기설기 앉아 있던 야야장 부호들이 철두를 향해 달려왔다.


“철두님!”

“왜 그러시죠?”

“하하하, 이거··· 젊은 사람 앞에 두고 이런 말 하긴 좀 뭐한데. 우리가 언제 칼을 휘둘러봤어야 들고 있는 게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지 않겠소?”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하하, 다름이 아니라···.”

“일단 제가 시간이 없으니까, 알아들을 수 있게 최대한 단순하게 말해주세요.”

“아, 그게 실은··· 우리한테까지 칼을 쥐여줄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소리요. 그러니 우리도 이만 칼을 반납하고 전각 안으로 들어가서···.”


철두가 차가운 표정으로 부호의 말을 잘랐다.


“혹시 여러분들, 아까 육 책사가 피난민들 모두 모아놓고 했던 말, 제대로 이해 못 하셨어요?”

“들었소. 그리고 분명히 이해했소. 하지만, 우린 칼을 들고 있어 봤자···.”


철두가 짜증 섞인 얼굴로 강군을 돌아보자, 강군이 대표로 얘기하던 부호의 엉덩이를 연속으로 걷어찼다.

놀란 부호가 손을 들어 그만 때리라, 외쳤지만 강군은 사나운 발길질을 멈추지 않았다.

함께 왔던 부호들이 천천히, 뒤로 몇 발짝이나 물러났다.

철두가 강군에게 됐다고 말하자, 강군이 마지막으로 부호의 관자놀이를 걷어찬 뒤 옆으로 비켜섰다.

철두가 모두를 향해 말했다.


“만일 오늘 밤 예상대로 적이 습격한다면, 여러분 목숨을 지켜줄 사람은 여러분들밖에 없을 겁니다. 우린 여러분의 가족들을 지키기에도 손이 부족한 상태니까요. 그러니 당장 칼 들고 일어서서 자기 목숨은 스스로 지키도록 하세요. 아니면 우리한테 먼저 죽으시던가.”


쓰러졌던 사내가 신음을 토해내며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철두가 다가가 사내의 옷에 묻은 눈과 흙부스러기를 털어주고는 곧장 몸을 돌려 상춘각 대청 안으로 들어섰다.

문을 지키고 있던 무사들이 옆으로 물러서자, 대청을 가득 메운 피난민들의 모습이 철두의 눈에 들어왔다.

노인과 여자, 아이들로 구성된 피난민들이 한 발짝도 앞으로 못 나갈 만큼 다닥다닥 대청 안에 붙어 앉아 있었다.

전각도 예외가 아니었다.

수백, 수천의 피난민들이 사합원 내부에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사실 피난민들을 위한 숙소는 진즉에 장인 우공이 따로 만들어 놓았지만, 오늘 밤은 예외적으로 모두를 상춘각 안에 몰아넣은 상태였다.

괴수들의 침입을 대비해서였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피난민들의 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때 어디선가 철두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능소였다.

능소가 맞은편 전각 2층 창문에서 그를 부르고 있었다.

철두와 강군이 근처에 있던 나무 들보를 이용해 처마 위로 몸을 날렸다.

사람들을 피해 지붕을 타고 이동한 두 사람이 창문을 통해 2층 전각 안으로 들어섰다.

능소가 다짜고짜 철두에게 캐물었다.


“혹시 오다가 형수님들 봤니?”

“네? 형님이랑 같이 있는 거 아니었어요?”

“그게, 조금 전까지 나랑 이곳에 같이 있었는데 내가 잠시 바람을 쐬러 후정에 나갔다 온 사이 두 분 다 사라지셨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근처 아무 데도 안 보여.”

“흠, 잠시만요.”


철두가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민 뒤 아래쪽에 있는 피난민들에게 형수들의 소재를 캐물었다.

늙은 아낙네가 손을 들어 대답했다.


“혈화문 마님들은 요 아래 지하에서 아이들과 함께 계세요.”

“고맙습니다.”


철두가 능소의 팔을 살며시 붙잡고 말했다.


“제가 갔다 올게요. 걱정하지 말고 여기 계세요.”

“응.”


철두가 계단을 타고 1층을 지나 지하 광으로 이동했다.

열린 문틈 사이로 아이들을 무릎에 앉혀놓고 자장가를 불러주고 있는 형수가 보였다.

철두가 광으로 들어서자 마심아가 그를 향해 밝게 미소했다.

한쪽에서 귤을 까고 있던 왕정정도 철두를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철두가 두 형수에게 물었다.


“두 분, 여긴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마심아가 잠이 든 아이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대답했다.


“아이 우는 소리가 나서 밑으로 내려왔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지 뭐에요. 한데 아이들한테 부모님이 어디 계신지 물어봐도 아무도 대답을 안 하더라고요.”


철두가 고개를 주억이며 말했다.


“고아들이에요.”


마심아가 정정이 건넨 귤을 근처에 있는 아이들에게 나눠주며 대답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원래 고아가 아니라 최근에 고아가 된 애들이에요. 그래서 아직 쉽게 입 밖으로 못 꺼내는 걸 거에요.”

“아···.”

“혹시 애들이랑 같이 여기 계시고 싶으세요?”


심아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네.”

“그럼 가서 능소 형님한테 말해 놓을게요.”

“고마워요. 철두 씨.”

“아니에요.”


철두가 다시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가 능소에게 사정을 얘기한 다음 문득 고개를 수그린 채 잠자코 있었다.

능소가 갸웃하며 물었다.


“왜그래? 무슨 일 있어?”


철두가 창 쪽으로 다가가더니 말없이 강군을 바라봤다.

강군이 능소에게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까 육 책사하고 우리끼리만 나눈 얘긴데 말입니다.”

“응.”

“만에 하나 마교 괴수들에게 혈화문 장원이 점령당했을 때를 대비해야 하지 않나 싶어서 말입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점령당하다니.”


철두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형님에게 말했다.


“철혈대 천 명이 지키던 소중원까지 초토화됐는데 우리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없잖아.”


능소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하면 어쩌게?”

“아까 황군 병사들이랑 같이 들여온 자재 중에 벽력뇌화탄이란 게 있더라고.”

“화약?”

“응.”


능소가 침음하더니 등잔 불빛 아래 작은 눈동자를 반짝였다.


“양이 얼마나 되는데?”

“각 구획 별로 충분히 배치할 분량이 돼. 여기는 적어도 스무 상자는 가져다 놔야 할 거고. 하선이 말로는 두 상자를 터뜨리면 전각 한 채 정도는 날려버릴 수 있대.”


능소가 철의거 어딘가를 매만지자 팔걸이에서 담뱃갑이 빠져나왔다.

능소가 떨리는 손으로 두 사람을 향해 담뱃갑을 내밀었다.

철두와 강군이 능소 옆에 쭈그려 앉아 뿌연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연기 속에서 능소가 말했다.


“하려면 빨리해야겠지?”


철두가 담담히 대답했다.


“응.”


그때 안개위와 사사키 유이가 무어인 소년 시아티와 함께 2층 전각 안으로 들어섰다.

강군이 정색하며 물었다.


“뭐야, 너희들. 이 밤중에 어디 갔다 와?”

“아, 중망루에요. 금파파님이 모포 좀 갖다 달래서 갖다 주고 왔어요.”


금파파의 여화단은 현재 중망루에 주둔해 있었다.

휘노인과 그의 가족들, 몽 고문의 가족들도 그곳에 있었다.

철두가 담배를 끄고 일어났다.

그가 능소를 바라보자, 능소가 이해한다는 듯 가만히 고개를 주억였다.

철두가 능소의 손등을 쓸듯이 쓰다듬고선 창문을 통해 전각 밖으로 사라졌다.

강군이 빠른 걸음으로 그를 뒤쫓았다.



혈화문 장원 대문에서 10장 거리 구릉 위에 설치된 본부 막사.


철두와 강군이 막사 문을 젖히고 들어오자, 지도를 보고 작전을 구상 중이던 육손과 황군 장교 강서준, 임하선이 그들을 맞이했다.

철두가 흑화단 일을 캐묻자 육손이 북서쪽 망루로 황군 병사 백여 명과 백부장 둘을 파견했노라 보고했다.

강군이 곧장 막사 한쪽에 쌓여 있는 벽력뇌화탄 쪽으로 이동했다.

그 모습을 보고 육손이 철두에게 물었다.


“얘기됐어?”

“응, 일반 사람들은 모르게 주요 거처 수장들하고만 말을 맞춰놨어. 단, 마구간은 제외할 거야.”

“응, 그래.”


육손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하자 하선이 강서준 장교에게 대신 말했다.


“빨리 보급 시작해서 반 시진 내로 마무리 지읍시다.”

“병사들을 부르겠소.”


강 장교가 밖으로 나가자, 한편에서 글을 쓰고 있던 두문택이 무슨 일인가 싶어 사람들에게 캐물었다.

강군이 두문택에게 다가가 그냥 비상시를 대비하는 조처가 있을 것이라고만 대답을 해주었다.

마침 순찰을 나갔던 이주와 마상춘이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연달아 반대쪽 문으로 아상과 아문, 공칠이 들어섰다.

녀석들이 옷에 묻은 눈을 털고 막사 가운데 놓인 화로 곁으로 모여들었다.

좀 있으니 강 장교와 병사들이 수레를 가지고 들어와 수레에 나무 상자를 가득 싣고 어딘가로 사라졌다.

철두와 강군, 하선이 눈을 맞춘 뒤 곧장 그들을 뒤따라 나갔다.

순간 이주가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저거 화약 맞지? 나 전에 전장 털 때 사용하던 거랑 상자가 똑같이 생겼다.”


두문택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화약?”


그때였다.

조홍매가 밤참을 광주리에 한가득 들고 막사 안으로 들어섰다.

육손이 과도한 몸짓으로 그것을 받아 들더니 두문택과 이주 앞에 광주리를 내려놨다.

녀석들이 밤참에 정신이 팔린 사이 육손이 조홍매의 손을 잡고 막사 밖으로 나왔다.

육손이 홍매에게 다급히 물었다.


“아이들은 어딨소?”

“중망루에요. 금파파님하고 같이 있어요.”

“아.”


조홍매가 젖은 목소리로 육손에게 물었다.


“저기···.”

“응?”

“저도 당신하고 함께 막사에 있으면 안 될까요?”


육손이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대답했다.


“안 되오. 여긴 너무 위험하오. 중망루에 가 있으시오.”

“벼, 별일 없겠죠?”


육손이 갑자기 홍매를 가슴에 꽉 끌어안았다.

두 사람은 약 한 달 전부터 연인이 된 사이였다.

고백은 육손이 먼저 했다.

육손이 홍매의 검은 머리칼을 매만지며 말했다.


“홍매, 만일, 만일 전쟁이 끝나면···.”

“···네.”

“내가 세 아이의 아빠가 되어주어도 괜찮겠소?”


홍매가 젖은 눈망울로 육손을 올려다봤다.

그녀가 육손을 지그시 바라보며 자그맣게 대답했다.


“···그럼요.”

“···고맙소.”

“아니에요. 제가 더 고마워요.”

“사랑하오, 홍매!”


두 사람이 잠시간 서로를 끌어안은 채로 말없이 눈을 맞고 서 있었다.

얼마 뒤 육손이 조홍매를 중망루로 돌려보냈을 때 갑자기 북쪽 망루에서 뿔나팔 소리가 길고 묵직하게 장원 전체로 울려 퍼졌다.

축대를 지키던 염방 방주 종조영이 망루를 향해 긴급 신호를 보낸 직후였다.

육손이 막사 밖에 있던 무사들과 함께 황군 병사들이 지키고 있는 장원 대문을 향해 달려나갔다.

순간 남쪽 망루에서도 똑같은 뿔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뿌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적이 침입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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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종말의 혈화문(6) 23.12.30 83 3 17쪽
92 종말의 혈화문(5) 23.12.20 87 3 16쪽
91 종말의 혈화문(4) +1 23.12.17 85 3 16쪽
90 종말의 혈화문(3) 23.12.16 85 3 15쪽
89 종말의 혈화문(2) 23.12.15 96 3 14쪽
88 종말의 혈화문(1) 23.12.03 137 1 18쪽
87 피할 수 없는 전쟁(8) 23.11.27 147 2 14쪽
86 피할 수 없는 전쟁(7) 23.11.25 142 4 13쪽
85 피할 수 없는 전쟁(6) 23.11.22 143 2 18쪽
84 피할 수 없는 전쟁(5) 23.11.19 158 3 18쪽
» 피할 수 없는 전쟁(4) 23.11.15 162 2 19쪽
82 피할 수 없는 전쟁(3) 23.11.13 171 3 17쪽
81 피할 수 없는 전쟁(2) 23.11.12 183 3 14쪽
80 피할 수 없는 전쟁(1) 23.11.08 211 3 15쪽
79 그날의 기억(2) 23.11.06 208 2 21쪽
78 그날의 기억(1) 23.11.04 192 3 16쪽
77 여후의 장례식(6) 23.11.02 218 3 20쪽
76 여후의 장례식(5) 23.10.31 223 3 19쪽
75 여후의 장례식(4) 23.10.29 222 5 15쪽
74 여후의 장례식(3) 23.10.27 215 5 14쪽
73 여후의 장례식(2) 23.10.25 251 5 17쪽
72 여후의 장례식(1) 23.10.24 287 5 17쪽
71 야야장 사람들(5) 23.10.22 263 5 16쪽
70 야야장 사람들(4) 23.10.20 246 6 14쪽
69 야야장 사람들(3) 23.10.19 259 5 19쪽
68 야야장 사람들(2) 23.10.17 266 5 14쪽
67 야야장 사람들(1) 23.10.16 250 4 16쪽
66 중간 결산(2) 23.10.15 240 4 15쪽
65 중간 결산(1) 23.10.13 302 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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