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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도황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이화영
작품등록일 :
2023.07.31 18:04
최근연재일 :
2023.12.30 10:43
연재수 :
9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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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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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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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9,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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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4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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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여후의 장례식(1)

DUMMY

지상이 귀신보로 채인하의 그림자를 밟으려 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간격을 놓쳤다.

금세 장원의 입구에 도착한 채인하가 막아서는 수호단 무사들을 뛰어넘어 장원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녀석이 사라지는 걸 끝까지 지켜본 지상은 망연자실한 채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온 부하들에게 물었다.


“누가 이 상황을 나한테 설명 좀 해줄래?”


육손과 철두가 입을 굳게 닫은 채 안색마저 창백해졌다.


반 시진 뒤.


추문강이 지상의 집무실로 불려왔다.

참모진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지상의 주먹이 추문강의 코뼈를 부러뜨렸다.


와당탕 탕탕―!


대노한 지상이 바닥에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는 추문강을 걷어차며 윽박질렀다.


“이런 시발! 어떻게 채인하의 여자가 우리 의방에서 치료받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모를 수가 있어? 엉? 입이 있으면 말을 해 봐. 이 개새끼야.”

“미··· 미안하다. 지상아. 내가 보고하는 걸 깜빡했다.”

“깜빡할 게 따로 있지! 이 새끼야. 도대체 정신머리를 어디다두고 사는 거야? 당장 적이 들이닥쳐도 이상하지 않은 이 시국에, 네 안일한 판단 하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위험에 빠트렸는지 알아? 아냐고?”

“진짜 미안하다. 지상아, 내가··· 요새 제정신이 아니었다.”

“얼빠진 놈의 자식!”


지상이 책상에 몸을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 능소가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녀석이 벽에 일렬로 늘어서서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는 참모들을 발견했다.

철두가 몸을 낮춰 추문강을 일으켜 세웠다.

능소가 멋쩍은 표정으로 철두, 추문강과 함께 벽에 나란히 붙어섰다.

지상이 씩씩거리며 창가로 걸어갔다.

그가 창틀에 몸을 기댄 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부하들에게 말했다.


“십만이다. 십만. 상관세가와 제갈세가 무사들을 포함하지 않은 순수 무림맹 병력만 해서 십만이라고. 그 많은 병력이 일주일 뒤면 우리 장원에 들이닥칠 예정이다.”


육손이 참모들에게 눈짓하자 모두가 동시에 복창했다.


“죄송합니다! 문주님!”


지상이 지친 듯 소리 죽여 말을 이었다.


“우리가 아무리 준비를 잘 한다 해도 누군가는 죽고 또 누군가는 가족이나 친구를 잃을 거다. 그게··· 전쟁이니까, 그게··· 우리에게 닥친 현실이니까.”

“······.”


그때 금파파가 대청 안으로 헐레벌떡 뛰어들어오며 말했다.


“문주님, 무림맹에서 초대장이 도착했어요.”



*



묘강밀림과 인접한 서하강 상류.


일반 범선의 두 배는 될법한 거대한 누선(樓船) 한 척이 수로를 따라 내려오고 있다.

누각의 지붕 위로 솟아난 키 높은 돛대에는 사천당가(四川唐家)라는 네 글자가 적힌 붉은색 깃발이 강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갑판 아래 선내에선 오십 인의 노잡이들이 강한 구령에 맞춰 힘차게 노를 젓고 있었고, 구령을 외치는 이는 다름 아닌 칠혈랑 모개였다.

그때였다.

돛대 위 망루에 올라 견시(見視) 중이던 무사 하나가 전방 어딘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칠석교다! 전방에 칠석교가 보인다!”


배가 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키가 10척에 달하는 꺽다리 사내가 누선의 꼭대기 층 작실(爵室) 안으로 들어섰다.

순간 반쯤 벌거벗은 두 남녀가 기동우의 시야에 들어왔다.

방 한가운데 놓인 침상 위에서 속옷 하나만 걸친 당지위가 반짝이는 황금색 고리를 몸 곳곳에 장식한 짧은 머리의 미녀에게 안마를 받고 있었다.

여인 역시 상체를 완전히 드러낸 상태였기에 기동우는 뻣뻣해져 오는 아랫도리를 강제로 억누르며 주군에게 다가갔다.

그때 당지위의 입에서 격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아야, 야 야야.”


당지위의 배에 올라가 팔을 주무르고 있던 여인이 아직 아물지 않은 당지위의 상처를 건든 것이다.


“어머, 죄송해요. 가주님.”

“아프다, 이년아, 살살 좀 해라. 살살. 엉?”


당지위가 미녀의 궁둥이를 찰싹 때리다 문득 옆에 선 기동우를 발견했다.


“어라? 기동우, 너 언제 왔어?”

“방금 올라왔습니다. 가주님, 칠석교에 도착했습니다.”

“뭐? 벌써?”

“네.”


당지위가 살짝 일으켜 세웠던 상체를 풀썩 눕히더니 어느샌가 침상 옆으로 내려가 있는 미녀에게 말했다.


“호려야, 가서 내 옷 좀 가져와라.”


호려라 불린 여인이 기동우의 끈적한 시선을 피해 구석에 있는 옷장으로 사뿐사뿐 이동했다.

기동우의 눈이 호려의 탐스러운 엉덩이를 쫓고 있는 사이 당지위가 녀석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찔렀다.


“야, 인마.”

“네, 가주님.”

“모개는 어딨어?”

“노실에서 무사들하고 같이 있습니다.”

“모개 불러서 갑판 위로 올라오라고 하고 너도 당장 무장 갖춰서 대기해.”

“네!”


얼마 뒤 강 위에 정지해있는 누선을 향해 황군의 범선 두 척이 다가왔다.

범선 갑판에 우뚝 선 젊은 장교가 누선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이 앞으론 지나갈 수 없다. 당장 뱃머리를 돌려 상류로 올라가라.”


3층 누각의 난간에 기대 서 있던 당지위가 장교를 향해 외쳤다.


“나는 사천당가 가주 당지위다. 황건명 대장군을 뵈러 온 것이니 당장 그분께 내 방문을 알려라.”

“당지위?”

“그렇다.”

“잠시 기다려라.”


범선에서 아군 진영을 향해 비둘기가 날아올랐다.

곧바로 비둘기가 가져온 쪽지를 읽은 젊은 장교가 누선 위 당지위를 향해 외쳤다.


“배는 여기 고정해두고 수행원 한 명만 대동해서 범선에 오르시오. 우리가 당신을 대장군께 안내하겠소.”

“하하, 고맙소이다.”


당지위와 기동우를 태운 범선이 칠석교 아래 부두로 접근했다.

다시 쪽배로 옮겨탄 두 사람은 부두에 도착 후 곧바로 대장군 막사로 안내됐다.

중랑장 남궁연의 부관이 두 사람의 몸수색을 끝낸 뒤 그들을 황건명 앞으로 데려갔다.

화로 곁에서 불을 쬐고 있던 황건명이 무심한 눈으로 당지위를 바라보자, 당지위가 한 발 앞으로 나와 자신을 소개했다.


“대장군, 처음 뵙겠소이다. 나는 사천당가의 가주 당지위라고 합니다.”


황건명이 끄덕이며 대답했다.


“음··· 여기저기서 얘기는 많이 전해 들었소. 한데 이 시국에 이 위험한 곳에 무슨 용무로 오시었소?”

“장군님께 한 가지 귀한 선물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선물?”

“네.”


당지위가 기동우를 돌아봤다.

기동우가 손에 들고 있던 낡은 책 한 권을 옆에 서 있는 부관에게 내밀었다.

부관에게서 책을 건네받은 황건명이 남궁연과 함께 차분히 책을 들여다봤다.

삼보전설(三寶傳說), 책의 제목이었다.

노진규(盧陳珪), 책을 쓴 저자의 이름이었다.

황건명은 왠지 익숙한 저자의 이름을 보고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었다.


‘노진규, 노진규, 어디서 들어봤더라.’


그때 당지위가 황건명을 향해 나직이 읊조렸다.


“노진규란 자는 30년 전 마교척살단에서 살아남은 네 번째 생존자입니다.”


황건명이 자신의 무릎을 때렸다.


“아! 맞네, 그 사람. 그렇다면 이 책은?”

“그자가 남긴 기록물 중 하나입니다. 원래는 그의 사후 다른 서적과 함께 천상각 비고에 기증될 예정이었지만, 어떠한 이유로 중간에 분실돼 강호를 떠돌다가 우연히 제 손에 들어왔습니다.”

“아··· 하면 그대가 이 귀한 것을 내게 주는 이유가 뭐요?”

“뭐,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일단은 저희 누선을 통과시켜 주십사하는 것이고, 다음은 다가올 재앙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 뭐 그 정도로 압축할 수 있겠습니다.”

“방금 재앙이라 말했소?”

“네.”


황건명이 끄덕이더니 장대한 몸을 일으켰다.

십 보 거리에 있던 기동우가 움찔했다.

키는 기동우가 훨씬 컸지만, 산신 백호를 연상시키는 황건명의 단단한 체구에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제왕의 기세가 느껴졌다.

저번 날 천마를 마주했을 때와는 또 다른 의미의 패도적인 기운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황건명이 갑자기 자신의 검으로 손을 가져가더니 검을 뽑아 단숨에 당지위를 베어버렸다.

소스라치게 놀란 당지위가 팔을 들어 검을 막으며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질렀다.


“흐아아아아악!”


놀란 기동우가 한발 늦게 주군 위로 몸을 날렸다.

순간 시간이 멈춘 듯 막사 안은 천근만근 무거운 정적에 휩싸였다.

잠시 뒤 느릿느릿 고개를 들어 올린 기동우가 주군을 살폈다.

움츠린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주군의 몸엔 검상은 커녕 작은 생채기도 생기지 않은 상태였다.

기동우가 주군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당지위가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들어 올리다 황건명과 눈이 마주쳤다.

황건명이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차가운 눈빛으로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제야 당지위는 깨달았다.

방금 전 목격했던 황건명이 검을 내지르던 모습은 그의 정신이 그대로 현실로 구현된 모습이었다는 것을.

당지위와 기동우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황건명이 당지위를 향해 말했다.


“당지위, 네가 묘강밀림에서 죽인 진신민과 곽진예는 내 동서와 처제였다.”

“······!”

“자리에 앉아라.”


부관들이 두 사람 앞에 의자를 내려놨다.

당지위가 숨죽인 채 의자에 자리하자, 황건명이 무뚝뚝한 어조로 물었다.


“청방 무사 모두를 데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 게냐?”


당지위가 마른 침을 꿀꺽 삼킨 뒤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해, 해룡도로 가고 있습니다.”


해룡도는 동해파의 본거지였다.


“무슨 목적으로?”

“저번 날 묘강밀림에서 혈화문 문주 이지상에게 나효를 잡아다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나효, 그자가 해룡도에 있다?”

“···네.”

“하면 동해파와 전면전이라도 벌일 생각인 겐가?”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지요.”

“그 말을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네?”


황건명이 부하 남궁연을 돌아보며 말했다.


“천하에 비열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당지위 나리께서 지난날 적과 맺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전 병력을 데리고 전쟁을 치르러 해룡도로 간다, 남궁연 자네는 이 말이 믿겨 지는가?”

“미친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당지위가 자신을 싸늘하게 바라보는 황건명에게 말했다.


“저 당지위 지금까지 온갖 비열한 짓은 다 하고 살아왔지만, 제 인생에서 꿋꿋이 지켜온 신념이 하나 있습니다.”

“약속을 지키는 거?”

“네, 단, 제가 인정하는 사람과의 약속입니다.”

“인정하는 사람?”

“네, 언젠가 저와 천하 패권을 놓고 자웅을 겨룰 사람 말입니다.”


순간 남궁연이 코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웬일인지 황건명은 당지위를 비웃지 않았다.

그가 확연히 달라진 목소리로 당지위에게 물었다.


“아까 다가올 재앙이라고 했지?”

“네.”

“자네 생각엔 우리가 그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보나?”

“흠, 우리는 모르겠고, 저는 막을 수 있습니다.”


당지위의 당돌한 대답에도 황건명은 화는커녕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그때 당지위를 데려왔던 젊은 장교가 막사로 들어와 황건명에게 직접 귓속말을 전했다.

황건명이 다시 당지위에게 물었다.


“누선 내부에 거대한 나무가 실려 있다는 데, 그 쓰임새가 뭐지?”

“해룡도에는 나무가 거의 자라지 않는다는 소리가 있어 그에 대비해서 챙겨가는 겁니다. 이 시기 바다의 바람이 육지보다 추운 곳도 있습니다.”

“흠···.”


황건명이 잠시 고민한 뒤 남궁연에게 말했다.


“누선이 지나도록 길을 내주고 행여 건너편 무림맹 세력에게 공격받지 않도록 십 리 거리까지 호위해주게.”

“네.”


당지위가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황건명 앞에 부복하며 외쳤다.


“감사합니다. 대인!”


황건명은 아무 말 없이 당지위와 기동우에게 그만 가보라 손짓했다.

두 사람이 뒤돌아 막사를 나섰을 때 기동우가 주군에게 속삭였다.


“아,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조용 해라.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당지위는 진짜 간이 콩알만해진 상태였다.

황건명이 진신민 부부의 형부였다는 사실은 그로선 추호도 몰랐던 일이었다.

목이 아직 붙어있는 게 정말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얼마 뒤 사천당가의 누선을 호위하던 범선까지 완전히 물러서자, 당지위가 호들갑스레 갑판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그가 노잡이들 중앙에 놓인 거대한 나무를 가린 천을 벗겨 내자 요마가 번쩍 눈을 떴다.

요마가 침음하며 당지위에게 물었다.


“무사히 통과했느냐?”

“네, 요마님.”

“아······ 다시 돌아온 세상은 무척이나 성가신 게 많구나.”


순간 요마의 양쪽 어깨에 달린 두 개의 머리가 왁자지껄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탁단봉의 영혼과 대운종 주지 요성이었다.


“요마님, 고달픈 거로 치면 당신께 몸을 빼앗긴 저만 하겠습니까?”

“시끄럽다.”

“요마, 어서 날 풀어줘! 당지위, 어서 날 내 심장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라고!”

“시끄럽다고, 이 새끼들아!”


당지위가 슬금슬금 뒷걸음질치더니 도망치듯 갑판 위로 올라갔다.

그가 소매 속 요령을 울리자, 뱃머리에 마치 조각상처럼 휘감겨있던 사요가 똬리를 풀고 전방을 향해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끼이이이이잉야야야야야야야야야야.”



*



늦은 밤.


지상이 심아와 정정이 깨지 않게 조심하며 침소를 빠져나왔다.

그가 소복이 내려앉은 눈을 밟으며 어딘가로 빠르게 걸어 내려갔다.

장원 요소요소에 설치된 초소 안에서 지상을 발견한 무사들이 문주를 향해 짧고 용맹하게 구호를 외쳤다.


“주군!”

“혈화문을 위하여!”

“문주님!”


지상이 장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저녁 내내 내린 눈으로 피난민 야영지는 어느새 반 자 높이의 눈 속에 파묻히고 있었다.

야영지로 들어선 지상이 아직 불이 밝혀져 있는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추문강의 천막이었다.

화로 위에 찌그러진 주전자를 올려놓고 칡차를 끓이고 있던 추문강이 지상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지상이 의자를 끌어다 앉으며 말했다.


“뭘 그렇게 놀라냐.”

“아니, 갑자기 웬일인가 싶어서.”

“아상은 어디 가고 혼자 있어?”

“응, 잠깐 화장실 간다고 나갔는데 또 애들 만나러 갔나 보다.”

“애들?”

“응, 아문, 공칠이라고 아상 친구들.”

“아.”


아상은 짧았던 소홍루 루주 생활을 접고 가족들과 함께 혈화문 장원으로 피신해온 상태였다.

괜찮다고 하는 데도 녀석은 굳이 무사들과 함께 힘든 경계근무를 서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녀석이 데리고 온 아문과 공칠이라는 녀석들도 임시로 혈화문 무사 자격을 얻어 경계근무에 참여 중이었다.

지상이 화로에 바싹 다가가 손을 비벼댔다.

추문강이 머쓱한 표정으로 지상을 흘끔 바라봤다.

지상이 문강에게 말했다.


“아까 애들 앞에서 때려서 미안하다.”

“아니야, 내가 맞을 짓을 했지.”

“그건 그래.”

“······.”

“농담이야, 인마. 육손한테 들었어. 여자가 생겼다고?”


순간 추문강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지상이 웃으며 말했다.


“다행이다. 노총각 생활 벗어나서.”

“응.”


잠시간 침묵이 이어졌다.

지상이 한숨을 쉰 뒤 화로 안에 장작을 던져 넣으며 말했다.


“문강아.”

“엉.”

“나 두렵다.”

“뭐라고?”

“두렵다고.”

“······.”

“우리가 다 함께 무사히 새해를 맞이할 수 있을까?”

“다··· 당연하지.”

“······진짜?”

“응, 반드시.”


지상이 손수건을 꺼내 콧물을 훔쳤다.


“나 내일 모용균이랑 같이 대도무문으로 출발할 거야.”

“결정했어?”

“엉, 여불선한테 가서 담판 지을 수 있으면 한번 시도라도 해보려고. 전쟁을 막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해야 하잖아.”

“내가 같이 갈까?”

“아니, 넌 여기서 능소랑 같이 혈화문을 지켜줘. 몽 고문도 좀 있으면 어느 정도 회복될 거니까. 세 사람이 함께 장원과 피난민들을 지켜줘.”


추문강이 입을 다문 채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모레 황군 5만이 서하강을 넘어올 거야. 뒤따라 군량미도 도착할 거고. 육손이랑 하선이가 알아서 할 테지만. 너도 알고 있어. 기지는 여기 피난민 야영지가 될 거니까.”

“아.”

“사람들을 미리 장원 안 임시 숙소로 이주시켜 두면 나중에 좀 수월할 거야.”

“응.”

“행여 피난민 사이에 또 첩자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각별히 조심하고.”

“맡겨둬.”

“그리고··· 이번 기회에 연애도 잘 해봐.”


추문강이 이맛살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게··· 청하 소저도 내일 대도무문으로 떠날 생각인 것 같더라고.”


지상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아까 내가 모용균이랑 얘기했어. 장례식장엔 우리 둘이서만 갈 거야.”


추문강의 얼굴이 빛과 같은 속도로 환해졌다.

녀석이 불현듯 든 생각에 지상에게 물었다.


“설마 너, 나 때문에 일부러?”

“당연하지. 내일 새벽 일찍 출발할 거니까 정청하 네가 잘 붙들고 있어.”

“고맙다, 고맙다. 지상아.”

“고맙긴, 인마. ···그나저나 칡차 향기 좋다. 대충 끓었으면 형님한테 한잔 따라 봐라.”

“엉, 하하하. 두 잔도 따라 주마.”


그때 아상이 아문, 공칠과 함께 눈을 흠뻑 맞은 채로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어, 문주님!”

“아상~.”

“어인 일이세요?”

“너희들 보러 왔다. 눈 털고 앉아라. 차 한 잔씩 하자.”

“네!”


그렇게 사내들의 겨울밤은 깊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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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종말의 혈화문(6) 23.12.30 86 3 17쪽
92 종말의 혈화문(5) 23.12.20 89 3 16쪽
91 종말의 혈화문(4) +1 23.12.17 86 3 16쪽
90 종말의 혈화문(3) 23.12.16 86 3 15쪽
89 종말의 혈화문(2) 23.12.15 97 3 14쪽
88 종말의 혈화문(1) 23.12.03 138 1 18쪽
87 피할 수 없는 전쟁(8) 23.11.27 148 2 14쪽
86 피할 수 없는 전쟁(7) 23.11.25 143 4 13쪽
85 피할 수 없는 전쟁(6) 23.11.22 144 2 18쪽
84 피할 수 없는 전쟁(5) 23.11.19 158 3 18쪽
83 피할 수 없는 전쟁(4) 23.11.15 163 2 19쪽
82 피할 수 없는 전쟁(3) 23.11.13 171 3 17쪽
81 피할 수 없는 전쟁(2) 23.11.12 185 3 14쪽
80 피할 수 없는 전쟁(1) 23.11.08 212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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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그날의 기억(1) 23.11.04 193 3 16쪽
77 여후의 장례식(6) 23.11.02 220 3 20쪽
76 여후의 장례식(5) 23.10.31 225 3 19쪽
75 여후의 장례식(4) 23.10.29 224 5 15쪽
74 여후의 장례식(3) 23.10.27 216 5 14쪽
73 여후의 장례식(2) 23.10.25 251 5 17쪽
» 여후의 장례식(1) 23.10.24 291 5 17쪽
71 야야장 사람들(5) 23.10.22 265 5 16쪽
70 야야장 사람들(4) 23.10.20 248 6 14쪽
69 야야장 사람들(3) 23.10.19 259 5 19쪽
68 야야장 사람들(2) 23.10.17 267 5 14쪽
67 야야장 사람들(1) 23.10.16 250 4 16쪽
66 중간 결산(2) 23.10.15 241 4 15쪽
65 중간 결산(1) 23.10.13 302 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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