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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도황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이화영
작품등록일 :
2023.07.31 18:04
최근연재일 :
2023.12.30 10:43
연재수 :
9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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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560
추천수 :
659
글자수 :
649,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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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9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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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야야장 사람들(3)

DUMMY

황도의 황군과 대도무문의 무림맹 간 첫 전투가 발생한 곳은 서하강 상류에 있는 칠석교 지역이었다.

칠석교는 강이 지나는 협곡 사이에 건설된 아치형 다리였는 데 길이가 1 마장, 폭과 높이가 각각 20장, 100장에 달하는 거대한 돌다리였다.

전투는 그 돌다리 위에서 벌어졌고 양측 다 근본이 무림 동도들인지라 초반 전투 방식은 백병전으로 치러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싸움의 양상은 군사 수에서 이미 상대를 압도한 무림맹 측으로 기울었다.

첫날 7차례나 치러진 백병전은 모두 무림맹의 승리로 끝났다.

이튿날 소림사 출신 공선(空禪)대사의 주도하에 칠석교 한복판에서 양측 수장들의 회담이 이루어졌다.

회담을 주관한 공선대사는 예전 야야장 백석교 사건 때 능소의 독무를 장풍으로 없앤 그때 그 백발 고승이었다.

점심 무렵, 황금빛 갑주에 진홍빛 바람막이를 두른 대장군 황건명과 누런 용포에 백색 바람막이를 두른 무림맹주 여불선이 작은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했다.

백발의 공선대사가 두 사람 앞에 따듯한 차 한 잔을 올려놓고 저만치 뒤로 물러났다.

다리 위로 불어오는 매서운 삭풍 속에 여불선과 황건명이 차 한잔의 온기로 잠시간 몸을 데웠다.

찻잔을 내려놓은 여불선이 미간을 찡그린 채 황건명에게 물었다.


“자넨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리도 무모한 짓을 저지른 겐가?”


한때 자신의 상관이었던 여불선의 질문에 황건명이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로 화답했다.


“무모한지 아닌지는 더 대봐야 알겠지요.”


여불선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황건명, 자네가 진짜 바라는 게 뭔가?”

“황제 폐하의 입장은 이미 서신을 통해 맹주님께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니, 나는 지금 그 꼭두각시 어린 황제가 아니라 자네의 생각을 묻고 있는 걸세. 도대체 자네는 내게서 뭘 바라는 겐가?”

“흠······.”


황건명이 찻주전자를 들어 그와 여불선의 빈 잔에 뜨거운 김을 뿜어내는 차를 채워 넣었다.

그가 담뱃갑을 꺼내 탁자에 내려놓자 여불선이 잠시 먼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황건명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제가 원하는 건··· 무림 질서의 회복입니다.”


여불선이 고개를 돌려 황건명을 노려봤다.


“질서?”

“네. 황제는 황제답게, 무림맹주는 맹주답게, 백도는 백도답게, 또 흑도는 흑도다운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게 제 신념입니다.”


여불선이 불쾌한 듯 낮게 신음했다.

황건명이 말을 이었다.


“이 전쟁을 촉발시킨 건 제가 아니라 여 맹주님의 욕망입니다. 무림맹주가 천륜을 어기고 감히 황제가 되고자 하는 욕망, 그것이 바로 이번 전쟁의 원인입니다.”


여불선이 목을 길게 빼고 말했다.


“어지간히도 답답한 친구로구만. 못 본 척 가만히 있기만 했어도 내 밑에서 평생 부귀영화를 누렸을 사람이···.”

“세상엔 부귀보다 공명심(功名心)에 이끌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 자네 덕분에 나도 알게 되었네. 하면 이 전쟁은 결국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겠군.”

“아마도 그렇겠지요···.”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게 있네.”

“네.”

“자네가 보기에 내가 황도의 어린 황제보다 부족한 게 무엇인가?”


여불선의 치기 어린 질문에 황건명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담배를 발로 비벼 끄며 대답했다.


“죄송하지만, 너무 많아서 다 얘기해 드릴 수가 없군요.”


여불선이 콧방귀를 뀌며 물었다.


“쳇, 그래, 그렇다 치세. 하면 자넨 정말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겐가?”

“뭐, 쉽게 질 자신은 없다는 정도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하, 여보게 황건명. 차라리 이 자리에서 나와 일대일로 검을 겨뤄 승부를 보는 건 어떤가?”


황건명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원하신다면 상대해드리겠습니다.”


여불선이 콧잔등을 잔뜩 찡그리더니 황건명을 차갑게 노려보며 물었다.


“무당 장 진인께서 남기신 현천십삼검(玄天十三劍)의 마지막 검초의 비밀을 알아냈나 보구만.”


황건명이 팔짱을 낀 채로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았다.

여불선의 몸에서 쏘아지던 살기가 금세 사그라들었다.

여불선이 공선대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백발의 고승이 주홍색 가사를 질질 끌며 두 사람에게로 다가왔다.

여불선이 공선대사에게 말했다.


“대화는 끝났소. 전쟁은 계속될 거요.”


공선이 합장한 채 고개를 조아리더니, 탁자에 한쪽 손을 올리고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탁자에서 희뿌연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찻주전자와 찻잔 포함 탁자가 통째로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여불선과 황건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이 부관들과 함께 각자의 진영으로 돌아가자 노승이 하늘 위로 솟구쳐 한 줄기 빛이 되어 사라졌다.

반 시진 뒤 양 진영에서 웅장한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다리 위에서 다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하지만··· 전투의 양상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황건명이 이끄는 황군은 무림인이 아닌 정식 군대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단한 갑주로 무장한 그들은 각개로 싸우지 않고 미리 편성된 군제에 맞춰 움직였다.

돌격병이 돌진하는 동안 후방에 있던 궁병은 활을 쏘며 전진했다.

방패를 든 검병이 궁병을 수호했다.

무림맹 측에선 일신에 상승의 무공을 보유한 일류 고수 수십이 개인의 능력을 발휘해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측면에서 나타난 기마병과 방패 든 검병들에게 몰려 오히려 100장 다리 아래로 떨어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얼마 후 무림맹 진영의 북소리가 빨라졌다.

달라진 황군의 모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던 수천의 무림인이 천천히 다리 뒤로 물러났다.

칠석교 밖으로 완전히 물러난 그들은 드넓게 산개해서 학익진을 펼쳤다.

하지만 그때 황군 진영에서 징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끄러운 징소리는 좁은 협곡 안에서 한참동안 메아리쳤다.

황군이 전진을 멈추고 자신들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이 한 차례 전투에서 무림맹이 받은 피해는 앞선 일곱 차례 전투에서 얻은 이득의 열 배에 달했다.



*



대도무문 무령궁 지하 뇌옥.


궁궐의 하수구와 이어진 감옥 내부는 통로 중앙으로 더러운 똥물이 지나갔다.

덕분에 냄새는 물론이와 상시 역겹고 습한 상태가 유지돼 벌레와 시궁쥐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연쇄 살인범 같은 악랄한 범죄자를 수용한 북쪽 동의 상태가 그야말로 최악이었는데, 지금 그곳에 때아닌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전쟁 통에 일시적으로 치안 상태가 허술해진 틈을 타 역도 무리가 감옥을 습격했다.

저번 날 소중원 환락시장에서 지상과 마주친 적이 있는 칠혈랑(七血狼) 패거리들이 막아서는 간수들을 죽이고 그들의 우두머리 모개(牟介)를 찾아 감옥 안을 뛰어다녔다.


“두목! 두목! 모개 두목! 어디 있소?”


이곳저곳을 죄다 뒤진 후에야 패거리들은 목에 칼이 둘린 채로 차가운 감옥 바닥에서 신음하고 있는 모개를 발견했다.

녀석들이 간수들에게서 빼앗은 열쇠로 철창을 따고 들어가 칼을 부수고 두목을 구해냈다.

그들이 막 철창을 빠져나가려는 데 갑자기 반대편 철창 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대로 나가면 너흰 다 죽는다.”

“뭐?”

“방금 누구야?”

“누가 말했어?”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림맹 무사들이 밖에서 매복한 채 너희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칠혈랑이 조심스럽게 목소리가 들려오는 철창으로 다가갔다.

한데 유독 그 철창 앞에만 횃불이 없었다.

누군가 반대편 통로로 뛰어가 횃불을 가지고 돌아왔다.

횃불로 철창 내부를 비추자 발가벗긴 채 온몸에 칼질을 당한 끔찍한 모습의 죄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알몸 상태의 죄수는 천정에서 내려온 거대한 쇠고랑에 사지가 묶인 채로 허공에 둥둥 매달려 있었다.

그 상태로 어떻게 시궁쥐를 뜯어먹었는지 그의 발밑에는 머리만 남은 시궁쥐의 사체가 산을 이루고 있었다.

칠혈랑 중 한 사람이 용기를 내서 죄수에게 물었다.


“방금 우리에게 말 건 사람이 당신이오?”


그러자 죄수가 칠혈랑을 향해 흉흉한 얼굴을 들어 올렸다.

그가 씹고 있던 시궁쥐의 꼬리를 뱉어내며 말했다.


“이대로 나가면 너흰 모두 죽는다. 살고자 한다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칠혈랑들이 시선을 교환한 후 다시 죄수에게 물었다.


“당신을 풀어주길 원하오?”


죄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흰 날 풀어줄 수 없다. 이 쇠고랑은 묘강의 곤오강(昆吾鋼)으로 만든 것이라 보통의 칼로는 끊어낼 수 없고, 열쇠도 간수들이 가지고 있지 않다.”

“하면 우리보고 어쩌란 소리요?”

“내 엉덩이.”

“뭐?”

“항문 위 3치쯤 되는 곳에 실밥 자리가 있을 것이다. 실밥을 뜯고 그 안에 있는 황금 대롱을 내게 꺼내주면 된다.”


순간 누군가 실소를 터뜨렸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 이 미친 새끼가 지금 우리를 가지고 놀고 있구만. 뭐? 엉덩이에서 뭘 꺼내줘? 콱, 대가리에 칼을 꽂아버릴라, 시발 새끼. 야, 그만 가자.”


칠혈랑이 돌아서는 순간 그들의 두목 모개가 신음하듯 말했다.


“저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해라.”

“어, 두목. 정신이 돌아오셨네요?”


모개가 콜록, 콜록 심하게 기침한 뒤 다시 부하들에게 말했다.


“당장 저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라니까. 이대로 나가면 우리 모두 죽어!”

“아, 알았어요. 두목!”


방금 전 죄수를 비웃었던 녀석이 모두에게 떠밀려 죄수의 뒤로 돌아갔다.

녀석이 죄수의 냄새 나는 엉덩이에서 황금 대롱을 뽑아냈다.

그가 얼굴을 잔뜩 구긴 채 대롱을 죄수의 얼굴에 들이대자 죄수가 입을 쩍 벌리고 대롱을 꽉 물었다.

죄수가 있는 힘껏 대롱을 불기 시작했다.

한데 신기하게도 대롱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칠혈랑 녀석들이 멀뚱멀뚱 서로를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여인의 비명소리 비슷한 요사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끼야야야야야야야아아아악―――


부하들에게 부축 당한 채로 모개가 죄수에게 물었다.


“다, 다, 당지위, 저게 바로 당신이 말한 그 사요란 뱀의 울음소리요?”


당지위가 대롱을 바닥에 떨어뜨리더니 모개를 향해 고개를 주억였다.


“그렇다.”


곧이어 뇌옥의 입구 방향에서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고성이 들려왔다.

천지를 진동시키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감옥의 입구가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매복 중인 무사들을 모조리 집어삼킨 사요가 삼각진 대가리를 무너진 감옥 안으로 쑥 들이밀었다.

번뜩이는 핏빛 세로눈이 감옥 잔해에 깔린 모개와 칠혈랑 패거리를 지나쳐 당지위에게 머물렀다.

당지위가 눈짓으로 쇠고랑을 가리키자, 사요가 송곳니를 치켜들고 쇠고랑을 향해 독물을 쏘아냈다.

치이익― 소리와 함께 곤오강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당지위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가 바닥에 좌정한 채 손목과 발목을 주무르며 칠혈랑과 모개를 향해 물었다.


“나와 함께 할 테냐?”


모개가 신음하듯 대답했다.


“네, 주군!”


잠시 뒤 사요의 등에 올라탄 당지위가 막아서는 무림맹 무사들과 무령궁 담벼락을 모조리 박살 내며 무영전으로 돌진했다.

무영전을 지키던 총관 사마랑이 멀리서 사요와 당지위를 목격한 뒤 뒷문으로 부리나케 도망쳤다.

당지위는 사마랑을 발견했지만 애써 그를 쫓지 않았다.

여불선이 자리를 비운 지금이야말로 그에게 남은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이다.

당지위가 사요를 몰아 무영전 뒤에 있는 수정궁으로 향했다.

수정궁을 지키던 시위들을 모조리 해치운 당지위가 사요에서 뛰어내려 쫓아온 칠혈랑 무리와 합류했다.

그가 모개를 돌아보며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라.”

“네, 주군.”


당지위가 궁궐 안을 온통 뒤덮은 치렁치렁한 비단 휘장들을 뚫고 수정궁 내부 깊숙이 침입했다.

중간중간 칼을 빼든 시녀들이 나타나 그를 막아섰지만, 일개 무녀 따위가 그의 상대가 될 순 없었다.

당지위가 화려하게 치장된 방의 입구를 지키던 시녀들을 독수장(毒手掌)으로 모조리 때려죽인 뒤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윽한 분내와 더불어 아편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가 한 겹의 투명한 휘장을 젖히자 침상 위에 누워있는 여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소란 통에 잠에서 깨어난 미모의 여인이 당지위를 보며 물었다.


“구검, 당신이에요?”


당지위는 대답 없이 여인의 머리맡에 놓인 수정구 쪽으로 이동했다.

수정구를 덮고 있어야 할 붉은색 보자기가 보이지 않았다.

수정구 안에서 뭔가가 튀어 오르더니 육지가 유리면에 찰싹 달라붙은 채로 당지위를 요염한 눈빛으로 노려봤다.

당지위가 급히 육지의 시선을 피한 뒤 여인의 침상을 뒤져 요령을 찾아냈다.

그가 요령을 흔들자 육지가 스르륵 잠이 들었다.

휘장을 뜯어 수정구를 덮은 당지위가 성큼 걸음으로 방을 나서려는 데 여인의 손이 당차게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여인이 애원하듯 당지위에게 말했다.


“안돼요. 구검 오라버니. 이번만큼은 저를 놔두고 가실 수 없어요.”

“놓으시오, 나는 구검이 아니오.”


순간 방의 기운이 달라졌다.

귀가에 들려오던 여인의 목소리도 달라졌다.


“멍청한 것!”

“뭐?”


화들짝 놀란 당지위가 여인을 돌아봤다.

한데 방금 전까지 있었던 미모의 여인은 온데간데없고 표독스럽게 생긴 중년 여인이 그를 매서운 눈초리로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었다.

당지위가 전신을 바들바들 떨며 여인에게 물었다.


“어, 어머니?”

“그래, 이 멍청한 것아. 어디 있다, 이제야 어미를 찾아왔느냐?”

“아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다, 당신은 분명 이십 년 전에···.”

“이십 년 전에 뭐? 말을 해라. 말을 해야 알지.”

“아, 아닙니다. 어머니.”

“이리 와라, 아들아, 어미를 좀 안아다오. 이곳은 너무 춥구나.”


당지위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중년 여인을 끌어안았다.

여인이 마치 아이처럼 안겨있는 당지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당지위가 저도 모르게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 어머니, 죄송해요. 그땐 정말 제가 눈깔이 돌아가서···.”

“아니다, 아니야, 우리 아들. 이해한다. 어미는 널 이해한다. 하지만 아들아, 넌 이 어미가 왜 그리 했는지 이유를 알아야 한다. 그때 난 정말 너를 그놈들로부터 지키고 싶었다. 너를 지키기 위해 더러운 방계 놈들에게 몸을 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오직 널 위한 행동이었다.”

“알아요, 압니다. 어머니.”


그때였다.

당지위가 뭔가 싸한 느낌에 고개를 쳐들었다.

어머니가 피로 물든 눈으로 자신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가 느닷없이 당지위의 목을 양손으로 움켜잡았다.


“그걸 아는 놈이 감히 어미를 목 졸라 죽여! 이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새끼야. 옜다, 너도 한번 죽어봐라!”

“어, 어, 어머니! 어머니!”


중년 여인이 어마어마한 괴력을 발휘해 당지위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당지위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혈관이 부풀어 오르고 입 밖으로 침이 질질 새 나왔다.

눈깔까지 튀어나오려는 마당에 당지위가 팔, 다리를 마구 휘둘러댔지만, 여인의 바위처럼 단단한 두 다리에 붙들려 공허한 움직임에 그쳤다.

이대로면 꼼짝없이 죽겠구나 싶은 생각에 당지위가 중년 여인의 얼굴을 정수리로 있는 힘껏 들이받았다.

목을 조르던 손이 풀리고 여인이 침상 위로 철퍼덕 쓰러졌다.

당지위가 그때를 놓치지 않고 어느새 검게 변한 양손으로 중년 여인의 목을 감아쥐었다.

어머니를 내려다보는 녀석의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죽어, 죽어, 죽어버려, 제발 좀 죽으라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당지위는 초췌한 모습으로 힘없이 떨어져 있는 여인의 다리 앞에서 하염없이 흐느끼고 있었다.

아이처럼 코를 훌쩍이던 그가 짧게 한숨을 뱉은 뒤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한데 침상을 내려다보던 당지위가 뭔가에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나자빠졌다.

침상 위에는 조금 전 자신이 죽인 어머니가 아닌 여불선의 아내 은이정이 쓰러져 있었다.

미모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초라한 늙은 노파의 모습으로 숨이 끊어져 있었다.

당지위가 꿀꺽 침을 삼킨 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수정구를 돌아봤다.

그가 가느다랗게 침음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육지··· 네, 네가.”


당지위는 그제야 깨달았다.

조금 전 육지와 눈이 마주쳤던 그 짧은 순간 육지의 요술에 홀려버렸다는 사실을···.

등골이 오싹해진 당지위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수정구를 챙겼다.

그가 막 방을 빠져나가려는 데 불현듯 어떤 생각이 그를 멈춰 세웠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당지위가 몸을 돌려 죽은 은이정에게 다가갔다.

그가 자연스럽지 않은 형태로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는 은이정의 가슴을 더듬었다.

녀석이 손안에 무언가를 잡아냈다.

당지위가 이마에 땀을 훔친 뒤 은이정의 옷섶을 해치고 커다란 구슬이 달린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그의 손안에 들어온 녹황색 구슬에서 영롱한 광휘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왔다.

당지위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띤 채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흐흐, 흐흐흐, 흐흐흐흐흐. 드디어 찾아냈구나. 용심설혼주. 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



두 필의 인마가 엄청난 속도로 야야장을 가로질렀다.

매복 중이던 도적 떼의 화살 공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은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는 폐허로 변한 홍등가 거리를 지나 야야장 오문에 도착한 이들은 황도로 가는 서하강 쪽이 아닌 서쪽 오솔길로 방향을 돌렸다.

반 마장 정도를 더 달리자 갑자기 요란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더니 사방에서 복면인들이 튀어나와 그들을 덮쳤다.

한 사람이 복면인들이 내던진 암기를 피해 말 위에서 뛰어내린 뒤 낙엽 위를 빠르게 굴렀다.

그자가 봉황검으로 쏟아지는 암기들을 모조리 쳐낸 후 양 손가락을 뒤집어 8자 모양의 호구를 만들었다.

뒤이어 말에서 뛰어내린 자가 앞선 자를 지키듯 가로막고 서서 복면인들을 향해 날카롭게 소리쳤다.


“물러서! 우린 적이 아니야!”


복면인들이 깔깔깔 웃으며 두 사람을 향해 매섭게 칼을 휘둘렀다.

순간 땅바닥이 우르릉 진동하더니 땅속에서 돌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푸핫!”


복면인 중 하나가 돌기둥에 엉덩이를 강타당해 하늘 위로 날아갔다.

그자가 하늘 위에서 부하들을 향해 일갈했다.


“죽여 버려, 저것들을 당장 썰어 버리라구!”


그때였다.

혈화문 장원 방향에서 말을 달려 나타난 추문강이 하늘 위 봉비호를 향해 소리쳤다.


“어이, 봉비호, 이 멍청한 놈아. 너는 손님과 적도 구별 못 하는 거냐?”


하오문 문주 봉비호가 돌기둥 위에 내려서서 사납게 대꾸했다.


“뭐? 손님? 뭔 개소리야? 저들이 입고 있는 옷을 보라구, 분명 무림맹 철릭이잖아!”


추문강이 봉비호를 향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옷으로 사람을 구별한다면 넌 강도 새끼랑 다른 바 없잖아. 이 멍청한 자식아. 하하하.”


봉비호의 부하들이 추문강을 따라 웃다가 문주에게 눈총을 샀다.

추문강이 말에서 내린 뒤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고 있는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가 둘 중 안면이 있는 한 사람에게 반갑게 말했다.


“여긴 어쩐 일이요. 정청하 여대협.”


정청하가 수줍게 웃은 뒤 사형 모용균과 함께 추문강을 향해 포권의 예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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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여후의 장례식(3) 23.10.27 217 5 14쪽
73 여후의 장례식(2) 23.10.25 251 5 17쪽
72 여후의 장례식(1) 23.10.24 291 5 17쪽
71 야야장 사람들(5) 23.10.22 265 5 16쪽
70 야야장 사람들(4) 23.10.20 249 6 14쪽
» 야야장 사람들(3) 23.10.19 260 5 19쪽
68 야야장 사람들(2) 23.10.17 267 5 14쪽
67 야야장 사람들(1) 23.10.16 251 4 16쪽
66 중간 결산(2) 23.10.15 241 4 15쪽
65 중간 결산(1) 23.10.13 303 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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