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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도황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퓨전

이화영
작품등록일 :
2023.07.31 18:04
최근연재일 :
2023.12.30 10:43
연재수 :
9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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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7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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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종말의 혈화문(4)

DUMMY

“독무다, 독무가 뿌려진다! 모두 전각 안으로 후퇴!”

젊은 사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상춘각 뒤편 전장에 가득 울려 퍼졌다.

안개위였다.

녀석이 사사키 유이와 함께 전장을 뛰어다니며 아군의 후퇴를 독려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후퇴 명령을 듣고도 현재 처한 곳에서 섣불리 발을 빼기 힘들었다.

죽창이 그득 꽂힌 구덩이에 빠진 제갈세가 무사들이 살려달라 울부짖고, 3장 높이 상춘각 담장을 기어오르는 피난민 사내의 등짝에 시퍼런 칼날이 내려앉았다.

이지를 상실한 채, 이미 죽은 자의 머리를 곤죽이 되도록 낭아봉으로 내리치는 자도 있었고, 피비린내 나는 전장을 거닐며 잘려나간 자신의 팔을 찾는 자도 있었다.

전투가 벌어지기 전 아군 대부분은 능소가 제조한 해독약을 먹고 나왔지만, 이 해독약의 효능이라는 것이 독이 몸속 요혈로 침투하는 것을 방지할 뿐 기본적인 피해를 모두 차단하는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후원 연못 방향에서부터 불어닥친 독무가 전장을 뒤덮자 적군인 제갈세가 무사들은 물론이와 아군까지 콜록콜록 기침을 해대며 입으로 피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거친 천으로 입을 틀어막고 누군가를 찾아 전장을 휘젓던 강군이 정청하와 마상춘 일행이 처한 위급한 상황을 발견한 건 그때쯤이었다.

추문강과 철두를 떼어낸 도올이 청하와 상춘, 이호를 덮치기 직전 강군이 나타나 녀석을 향해 수리검을 날리며 측면에서 공격해 들어갔다.

도올은 주둥이로 음공을 토해내 날아오던 수리검과 강군을 함께 떨궈버린 뒤 몸을 바퀴처럼 회전시켜 돌진하듯 청하 일행을 덮쳤다.

이호가 칼을 들어 녀석의 뼈낫을 막았지만, 뼈낫이 칼날에 잘못 튕기며 이호의 손가락 네 개를 모두 끊어버렸다.

기회를 노리고 있던 상춘이 도올의 눈을 향해 비수를 던졌다.

도올이 송곳 팔로 비수를 막고는 좌측 뼈낫으로 마상춘의 목을 베었다.

순간 아래쪽으로 미끄러지듯 몸을 날린 정청하가 전력으로 도올의 한쪽 다리를 들이받았다.

평소라면 별 타격이 없었겠지만, 하필 도올이 서 있던 자리가 빙판이 생긴 곳이라 도올의 양다리가 멀어지며 한쪽으로 쭉 미끄러졌다.

덕분에 상춘이 딱 세 치 차이로 뼈낫의 공격에서 벗어났다.

달려온 추문강이 다리를 한껏 벌린 채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있는 도올의 가슴팍에 칼질을 가했다.

칼질에 옷자락이 찟기고 가죽이 떨어져나가며 공중으로 핏물이 튀었다.

도올이 노호를 터뜨리며 양팔을 사납게 허우적대는데 멀리서부터 달려와 공중에서 떨어져내린 강군의 무릎팍이 도올의 등허리를 찍어버렸다.

녀석의 거대한 몸이 기우뚱하더니 좌측에 있던 함정 구덩이로 빨려들 듯 쿵, 떨어졌다.

구덩이는 5장 높이로 꽤 깊었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역삼각형 형태로 좁아지는 구조라 몸 절반이 그곳으로 떨어진 도올은 뒤집힌 채 어찌할 바를 몰라 한참이나 허우적댔다.

때를 놓칠세라, 청하와 상춘이 구덩이 밖에 걸쳐진 녀석의 한쪽 다리에 무수한 칼질을 가했다.

하지만 녀석의 가죽이 워낙 두꺼워서 자잘한 생채기를 내는 성과에 그쳤다.

벽력탄이라도 있었으면 구덩이에 던져 넣어 폭사라도 시키겠건만 그저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이내 구덩이 속에서 도올이 사납게 포효했다.

녀석이 몸을 뒤집으려고 죽기 살기로 안간힘썼다.

마침 철두가 근처에서 황군 병사들이 쓰던 양날 도끼 형태의 월을 주워왔다.

청하와 상춘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도올의 다리를 부둥켜안자, 철두가 도끼로 버둥대는 도올의 발꿈치를 힘껏 내리쳤다.

팍, 팍, 가죽이 찢기고 피와 살점이 튀었다.

허연 발목뼈가 밖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죽을 힘을 다해 내려치는 데도 녀석의 뼈를 잘라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구덩이 속 도올이 고통의 괴성을 내지르더니 좁은 공간에서 움직임을 방해하는 자신의 거대한 뼈낫을 강제로 부러뜨렸다.

녀석이 기필코 구덩이 안에서 몸을 뒤집는 데 성공했다.

피범벅이 된 녀석의 발이 한 차례 회전하며 번개와 같은 속도로 공중으로 솟구쳤다.

다리를 붙잡고 있던 청하와 상춘이 강력한 힘에 밀려 저만치 날아갔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안개위가 달려오며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

“독무에요, 어마어마한 독무가 몰려오고 있어요. 빨리 상춘각 안으로 들어가야 해요!”

정말 안개위 뒤편으로 세상 짙푸른 독무가 빠른 속도로 밀려오고 있었다.

추문강이 철두에게서 월을 빼앗으며 대갈했다.

“여긴 나한테 맡기고 모두 후퇴! 빨리!”

하지만 녀석의 연인, 정청하는 결코 그럴 생각이 없는 듯 다시금 달려와 추문강 옆에 붙어섰다.

순간 쌕, 소리가 나며 도올이 구덩이 밖으로 일신을 솟구쳤다.

모두가 놀라 몸이 얼어붙은 그때, 도올의 하나 남은 뼈낫이 추문강의 목을 향해 맹렬히 들이닥쳤다.

깡, 소리와 함께 뛰어든 강군이 도올의 뼈낫을 단도로 막아냈다.

강군이 다짜고짜 공중으로 껑충 뛰어오르더니 도올의 오른쪽 팔에 온몸으로 매달렸다.

강군의 쌍단도가 도올의 팔 근육을 파고들었다.

그러자 도올이 지금까진 들어본 적 없는 진짜배기 고통의 비명을 내질렀다.

녀석의 우수는 은룡채에서 진가엽 대장에 의해 한 차례 근맥이 크게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운 좋게 그곳을 찌르고 들어간 강군 덕에 도올이 때아닌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하늘이 주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추문강이 월을 크게 호를 그리며 휘둘렀다.

도끼날이 쩌억, 도올의 갈비뼈 사이를 깊숙이 파고들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입술을 질끈 깨문 도올이 단전에서 절륜신마공을 모조리 끌어올려 귀신같은 움직임으로 팔에 매달린 강군과 도끼를 쥔 추문강을 떨쳐냈다.

엄청난 힘에 밀려 튕기듯 날아간 강군이 도중에 도올의 뼈낫에 등을 썰렸다.

붉은색 혈흔이 눈 위에 뿌려졌다.

강군이 몸을 활처럼 크게 휘며 눈밭 위로 쓰러졌다.

철두와 이호가 강군을 양쪽에서 붙든 채로 전방을 향해 힘껏 내달렸다.

추문강과 정청하, 마상춘과 안개위가 날뛰는 도올을 뒤로하고 상춘각 후문을 향해 도망쳤다.

도올이 으르렁 포효하며 녀석들을 쫓았다.

하지만 녀석도 몸 곳곳에 난 상처 때문에 이전만큼의 완력을 보여주진 못했다.

다리를 절뚝이던 도올이 금세 능소의 독무 속에 갇혀 버렸다.

무심코 독기를 흡입한 도올의 얼굴과 피부에 순식간에 녹색 반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반점은 극도로 가려웠고 또 몸속에선 피가 부글부글 끓어올라 계속해서 욕지기가 터져 나왔다.

도올이 끝내 추격을 포기하고 독무 밖을 향해 큰 걸음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중간에 몇 번이고 쓰러져 한 움큼이나 속을 게워냈지만, 포기하지 않고 독안개를 벗어났다.

도올마저 이 지경이니 다른 제갈세가 무사들은 안 봐도 상태가 뻔했다.

특히 최전방에 있던 자들은 독무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현장에서 그대로 죽음을 맞이할 참이었다.

죽기 직전의 인간은 없던 힘도 내는 법이라.

아직 정신이 온전한 자들은 죄다 상춘각 후문으로 몰려들었다.

독무를 빠져나갈 가능성이 없어진 순간, 유일한 탈출구는 상춘각으로 들어가는 길뿐이었다.

마침 함정 구덩이를 기어 나온 강시들이 앞에서 방패 역할을 해주었기에 녀석들은 강시 뒤로 촘촘히 붙어서서 상춘각 후문에 엄청난 압박을 가했다.

그 덕에 후문으로 향하던 정청하를 비롯한 혈화문 일행은 졸지에 전장 한복판에서 발목이 묶여버렸다.

앞에는 강시와 제갈세가 무사들, 뒤에는 짙어지는 독무, 이 절체절명의 상황에 갑자기 그들을 향해 하늘에서 구원의 손길이 떨어졌다.

사다리였다.

장인 우공과 사사키 유이가 전각의 기왓장을 밟고 내려와 아군을 향해 사다리를 떨어트린 것이었다.

“뭐해요! 빨리 올라와요!”

후방에서 도올이 또 느닷없이 나타날지 몰라 추문강과 철두가 앞을 지켜선 사이 나머지 일행은 사다리를 밟고 올랐다.

그때 전방에 있던 제갈세가 무사 일부가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일행을 발견하고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시발.”

차례를 기다리면 안 되겠다, 판단한 추문강이 부상 상태가 심한 강군을 들쳐업고 담벼락 위로 힘껏 몸을 솟구쳤다.

3장 높이 기와 위에서 청하와 이호가 추문강의 어깨를 붙잡는 데 성공했다.

마지막으로 철두가 사다리를 타고 오르며 아래쪽에서 개떼처럼 달라붙는 제갈세가 무사들을 향해 칼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사다리째로 끌어올리죠!”

상춘의 외침에 철두와 사다리가 동시에 위로 올려졌다.

추문강이 철두가 내민 손을 붙잡고 기와 위로 쭉 올리자, 철두가 근처에 있던 피난민에게서 장창을 건네받아 담벼락에 달라붙는 제갈세가 무사들을 향해 힘껏 찔러댔다.

옆에 있던 피난민 아낙네들은 돌팔매질까지 해댔다.

상춘각 담벼락은 미리 미끄럽게 옻칠을 해놓았던 터라 타고 오르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곧 아래쪽에서 짙은 진청색의 독무가 제갈세가 무사들을 덮쳤고 녀석들은 양손으로 자신들의 목을 부여잡은 채로 피를 토하며 픽픽 쓰러졌다.

한 가지 일이 해결되고 나니 이제 다른 문제가 눈에 들어왔다.

후문 쪽 상황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었다.

안쪽에서 문을 지키던 피난민 중 한 사람이 추문강 일행을 향해 다급히 외쳤다.

“문이 부서집니다! 곧 문이 부서져요!”

추문강과 철두가 지붕 용마루를 따라 전력으로 내달렸다.

남겨진 강군이 홀로 담장 밑으로 뛰어내렸다가 등의 상처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고통에 비명을 내지르며 땅바닥에 쓰러졌다.

상춘이 달려가 강군을 부축했다.

“강군 아저씨, 괜찮아요?”

“으···.”

강군이 이를 악물며 상체를 곧추 세웠다.

등의 상태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임을 깨달은 강군이 주변을 둘러보는 데 처마 맡에 놓인 벽력탄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상춘아, 날 좀 부축해다오.”

“네.”

강군이 상자로 다가가 벽력탄을 꺼내 옷 주머니 속에 마구 쑤셔넣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화섭자.”

“네? 내 화섭자를 좀 꺼내줘. 바지 뒷주머니에 있어.”

상춘이 강군이 시키는대로 화섭자를 꺼내자 강군이 그것을 입으로 질끈 문 뒤 어기적어기적 후문을 향해 걸어갔다.

상춘이 부축하려 했으나 강군이 고개를 흔들어 뿌리쳤다.

강군이 근처 전각의 문을 떼어 들고서 후문을 등으로 막고 있는 추문강과 철두, 피난민들을 향해 소리쳤다.

“추 고문, 철두, 당장 목책이나 문짝을 빼 들고 와. 후문이 뚫린 순간 나랑 함께 적들을 밖으로 밀어내는 거야.”

추문강이 험해 보이는 강군의 상태를 살피며 물었다.

“자네 괜찮아?”

“흐흐, 내 인생에서 가장 괜찮은 시간이요. 내 걱정일랑 마시고 빨리 문짝이나 하나 빼서 들고 오시오.”

“···알았네.”

추문강이 앞으로 쏘아지듯 달려가 커다란 문짝 하나랑 들보로 쓰던 목책을 여러 개 가지고 도착했다.

철두가 추문강에게서 목책을 받아 피난민 중 나름 건장한 체격의 사내들과 나눠 들었다.

뻑, 뻑 소리와 함께 후문이 통째로 흔들리더니 가장자리 경첩이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강군이 문을 등으로 밀고 있던 피난민들에게 목청 높여 소리쳤다.

“당장 앞으로 빠져, 빨리!”

피난민들이 파도에 쓸리듯 앞으로 한꺼번에 튀어나오자, 그 즉시 후문이 무너지며 강시와 제갈세가 무사들이 상춘각 안으로 들이닥쳤다.

강군이 가로로 든 문짝으로 녀석들 앞을 가로막았다.

추문강과 철두, 상춘과 안개위 등 현장에 있던 모든 이가 각종 무기와 목책 등으로 녀석들을 틀어막으며 동시에 밖으로 힘껏 밀어내기 시작했다.

추문강이 너무 앞에 나가 있는 강군에게 외쳤다.

“강군, 뒤로 빠져. 그러다 함께 휩쓸리겠어.”

문짝을 땀에 젖은 머리로 밀고 있던 강군이 힘겹게 일행 쪽으로 몸을 돌리더니, 모두를 향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철두야, 철두야!”

뒤편에 있던 철두가 강군의 목소리에 응답했다.

“네, 형님!”

“하선이한테 전해줘라. 겨울 낚시는 다음에 하자고. 홍금보랑 나랑 빙어 많이 잡아놓고 있을 테니까 나중에 꼭 보자고.”

“형님··· 강군 형님! 무슨 말씀이세요!”

강군이 다시 몸을 돌리더니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밀어, 밀어. 모두 힘내서 밖으로 밀어내!”

그의 손에 들린 벽력탄의 심지에는 이미 빨간 불꽃이 빠르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밀어버리라고오오오오, 으아아아아악!!!”

강시들의 힘이 막강했지만, 후문 앞이 온통 빙판으로 변한 탓에 한번 밀려 나간 적들은 그대로 쭉쭉 뒤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강군이 문짝의 방향을 틀어 커다란 구덩이 쪽으로 놈들을 유인하자 녀석들의 후미가 구덩이로 와르르 떨어져 내렸다.

강군이 뒷발을 차올리며 아군들에게 그만 오라 신호했다.

이제 강군 혼자서 독무를 뚫고 적들을 구덩이로 몰아넣고 있었다.

강군의 입에서 피가 줄줄 새어 나왔다.

이곳저곳에서 제갈세가 무사들의 절규에 가까운 비명이 터졌다.

“살려줘! 제발 살려줘!”

“목숨만! 이렇게 죽긴 싫어! 아아아악!”

어찌어찌해서 필사적으로 구덩이를 벗어난 자들도 결국엔 독무에 중독돼 피를 토하며 나뒹굴었다.

그러다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무게가 빠르게 줄어들자, 강군의 미는 힘은 더욱 증대됐다.

심지가 거의 다 타들어 갈 무렵, 강군이 강시들을 최대한 많이 끌어안고 끝내 구덩이로 몸을 날렸다.

“강군 형님!”

추문강이 울부짖는 철두의 뒷목을 붙잡아 피난민들과 함께 후문으로 밀어 넣었다.

추문강이 문짝 두 개로 문을 틀어막았다.

잠시 후 거대한 폭음과 함께 천지가 진동했다.

기와에 쌓인 눈들이 바닥으로 후두둑 끝도 없이 떨어져 내렸다.

지금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철두가 문짝에 기댄 채로 바닥에 꿇어앉아 펑펑 울음을 터뜨렸다.

추문강과 정청하, 마상춘과 사사키 유이, 이호, 안개위 등도 어느덧 밝아오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구슬피 눈물을 떨궜다.


안타깝게도 강군의 희생으로 얻은 휴식기는 짧게 끝났다.

안개위를 비롯한 사람들이 하늘을 나는 괴수를 발견했다.

총 다섯 마리였다.

그때 화청에 있는 철탑 쪽에서 아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후원에 있는 사람들은 당장 정문으로 이동해 주세요. 괴수들이 몰려옵니다!”

모두가 다시 무기를 들고 일어났다.

철두가 소매로 눈물자국을 훔친 뒤 즉시 선두에 섰다.

청룡도를 쥔 녀석의 손이 파리하게 떨렸다.

도올의 뼈낫에 맞아 날개뼈를 상한 탓에 오른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였다.

한데 상태가 안 좋은 건 철두 뿐만이 아니었다.

현장에 있는 사람 중에 몸이 성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철두의 명을 받은 이호와 일부 피난민들이 부서진 후문을 고치며 현장을 지키는 사이 나머지 사람들은 철두를 따라 정문으로 달려갔다.


이호가 목수 몇 사람과 함께 후문에 방책을 세우고 있는데 피난민 중 일부가 바닥에 쓰러지더니 선지 덩어리 같은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이호가 물병과 주머니 속에 들어있던 해독약 몇 알을 꺼내 들고 피난민들에게 다가갔다.

“아니, 당신들. 약을 먹지 않았소?”

쓰러진 자가 격하게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먹었는데 독무를 너무 많이 들이마셨나 봅니다.”

“그럼, 한 알씩만 더 먹으시오. 하지만 이 역시 몸에 좋은 것은 아닌 터라 최대 두 알만 먹어야 하니 행여 세 알을 먹는 게 아닌지 기억을 더듬어보시오.”

“이걸 먹으면 두 알이 맞습니다.”

“그럼, 두 사람 다 빨리 약을 복용토록 하시오. 먹고 나서 바로 힘쓰지 말고 잠시 저쪽으로 가서 휴식을 취했다 오시오.”

“···고맙습니다.”

이호가 두 사람이 약을 먹는 걸 지켜본 뒤 자리를 뜨려다 문득 뭔가를 발견하고 물었다.

“귀를 뜯겼군?”

“네?”

“자네 뒤에 있는 사람, 한쪽 귀가 잘려나갔다고. 저런 상처가 심한데?”

얼굴을 천으로 가리고 있던 조진이 뒤편에 앉아 있는 주군 제갈승을 돌아보더니 이호를 향해 얇게 미소하며 대꾸했다.

“제 동생 놈인데 아까 제갈세가 놈들하고 싸우다 다친 것 같습니다. 안쪽으로 들어가서 치료를 받아야겠습니다.”

“어, 그래. 빨리 홍 의원을 찾아가 보게. 당장 뭐라도 발라야지. 놔두면 영영 소리를 못 들을지도 몰라.”

“네, 알겠습니다.”

조진이 제갈승을 부축해 안채를 향해 걸어 들어갔다.

이호는 다시 후문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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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종말의 혈화문(6) 23.12.30 83 3 17쪽
92 종말의 혈화문(5) 23.12.20 87 3 16쪽
» 종말의 혈화문(4) +1 23.12.17 85 3 16쪽
90 종말의 혈화문(3) 23.12.16 85 3 15쪽
89 종말의 혈화문(2) 23.12.15 96 3 14쪽
88 종말의 혈화문(1) 23.12.03 137 1 18쪽
87 피할 수 없는 전쟁(8) 23.11.27 147 2 14쪽
86 피할 수 없는 전쟁(7) 23.11.25 142 4 13쪽
85 피할 수 없는 전쟁(6) 23.11.22 142 2 18쪽
84 피할 수 없는 전쟁(5) 23.11.19 158 3 18쪽
83 피할 수 없는 전쟁(4) 23.11.15 161 2 19쪽
82 피할 수 없는 전쟁(3) 23.11.13 171 3 17쪽
81 피할 수 없는 전쟁(2) 23.11.12 183 3 14쪽
80 피할 수 없는 전쟁(1) 23.11.08 211 3 15쪽
79 그날의 기억(2) 23.11.06 208 2 21쪽
78 그날의 기억(1) 23.11.04 192 3 16쪽
77 여후의 장례식(6) 23.11.02 218 3 20쪽
76 여후의 장례식(5) 23.10.31 223 3 19쪽
75 여후의 장례식(4) 23.10.29 222 5 15쪽
74 여후의 장례식(3) 23.10.27 215 5 14쪽
73 여후의 장례식(2) 23.10.25 251 5 17쪽
72 여후의 장례식(1) 23.10.24 287 5 17쪽
71 야야장 사람들(5) 23.10.22 263 5 16쪽
70 야야장 사람들(4) 23.10.20 246 6 14쪽
69 야야장 사람들(3) 23.10.19 258 5 19쪽
68 야야장 사람들(2) 23.10.17 266 5 14쪽
67 야야장 사람들(1) 23.10.16 249 4 16쪽
66 중간 결산(2) 23.10.15 240 4 15쪽
65 중간 결산(1) 23.10.13 301 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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