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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262_quddus122 3 님의 서재입니다.

한약방의 연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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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안중
작품등록일 :
2024.07.15 15:20
최근연재일 :
2024.09.1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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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6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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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31 - 각성

DUMMY

#031




강천호는 부드럽고 강한 사람이었다.


기자들의 질문들을 재치있게 넘기면서도, 결코 그들이 함부로 말할 수 있도록 두지 않았다.


처음에는 오늘만 살 것처럼 질문을 던져대던 기자들도 점점 눈치를 보며 정중하게 질문을 이어나갔다.


실로 감탄만 나오는 화술이다.

저 정도는 되어야 미래 그룹을 이끌 수 있구나.


슬쩍 강하윤을 바라봤다.

몇 년 만에 공석에 선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는 존경심과 애정이 가득했다.


“백현호 씨.”


단상을 바라보던 강하윤이 대뜸 눈가를 훔쳤다.


“백현호 씨가 정말 큰 일 한 거예요.”

“사장님이 울 정도로 큰일인 줄은 몰랐는데···.”

“우는 게 아니라 먼지 들어간 거예요.”


강하윤이 뻔뻔하게 눈을 비볐다.

눈가가 벌게졌다고 놀리려다가 한 소리 들을 것 같아 꾹 참았다.


인터뷰가 거의 끝나갈 즈음 내 옆에 앉은 기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강천호의 눈이 자연스레 이쪽을 향했다.


“네, 말씀하세요.”

“서동일보 강홍규 기자입니다. 과거 건강 이상설이 돌 정도로 과체중이셨는데 다이어트를 결심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기자들이 흠칫 놀라며 홍규를 바라봤다.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것도 미래 전자의 앞길을 책임질 신제품 발표회에서 ‘살을 왜 뺐냐’고 묻는 건 실례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강천호가 기자를 보더니 빙긋 웃었다.


“살 빼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요.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역시나 능숙한 대답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강천호이 입에서 전혀 뜻밖의 말이 나왔다.


“···라고 생각했었죠.”

“예?”


강천호가 묵묵히 강홍규를···, 아니, 그 옆에 있는 나를 바라봤다.


“저는 참 오만한 놈이었습니다. 이깟 뱃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뺄 수 있다, 맨몸으로 회사도 이만큼 키운 놈이 제 몸뚱어리 쯤이야···, 하고 생각했으니까요.”


강하윤이 놀란 표정으로 단상을 바라봤다.

비단 강하윤 뿐 아니라 자리에 모인 모두가 비슷한 표정으로 강천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천호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제가 틀렸습니다.”

“그 말씀은···.”

“저는 제 몸 하나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놈이었습니다. 그런 주제에 자존심 때문에 제대로 된 도움도 받지 못했죠.”


인간적인 모습이 돋보이는 말이었고, 그래서 강천호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숙연해졌다.

한 글자라도 놓칠까 노트북을 두들기던 기자들조차 늙은 대부의 말을 경청했다.


“그런데 제게 한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고작 서른 남짓한 어린 나이였지만, 그 친구는 제게 새로운 삶을 선물했지요.”

“새로운 삶이란 어떤 겁니까?”

“공원으로 바둑 두러 다니는 삶입니다.”

“···예?”

“친구랑요.”


친구.


이 흔해 빠진 단어가 가슴을 쿵 하고 때렸다.

나는, 나조차 모르는 새에 강천호의 가슴 깊은 곳에 있는 갈증을 해소한 듯했다.


기자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그분이 누구신지 알 수 있습니까?”

“옆에 앉아 계시네요.”


기자의 눈이 반사적으로 나를 향했고, 동시에 수십 개의 눈동자가 화살처럼 내게 꽂혔다.


“아···.”


순간 머리가 멈춰버렸다.


안녕하세요?

아니면 반갑습니다?

그것도 아니면 한약방 그 청년입니다?


뭐라고 인사해야 이상하지 않을까.

머리에서 김이 날 정도로 굴리는데 강천호가 나를 보더니 가볍게 손을 올렸다.


“백 선생, 손 한 번 흔들어주세요.”


강천호의 말에 로봇처럼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양손을 번쩍 들었다.


미친놈처럼 왜 양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정신 차리니까 양손을 들고 있었다.


어쩌지?


“하···, 하하···.”


양손을 가볍게 좌우로 저었다.

구조 신호를 보내는 꼴이라는 것도 모른 채.



< 31 >



[ 강천호 회장이 존경한다는 '백 선생'의 정체! 젊은 영웅의 화려한 복귀? ]


[ ‘A’ 브랜드 양복 당일 품절! 젊은 영웅 백현호, 이번에는 연예계 진출하나···. ]


[ 미래백화점 강하윤 사장 열애설 언급, “동료일 뿐이니 섣부른 추측 말아달라.” ]


[ 한약방의 젊은 영웅 백현호, 로열패밀리 입성? 재조명되는 과거 논란들! ]


“로열패밀리 같은 소리 하네···.”


어처구니없는 기분으로 스크롤을 내렸다.


세상이 나에 관해 어떻게 떠들든 신경 쓰지 않기로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논란 터졌을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화력이다.


“···열애설은 또 뭐야?”


착잡한 기분으로 기사를 하나 클릭했다.

망상 덩어리에 가까운 기사에는 나와 강하윤이 소곤거리는 사진이 올라가 있었다.


해명할 거리도 없고, 해명할 수도 없다.

그냥 앉아서 대화 나눈 거를 뭐라고 해명해?


복잡한 기분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죄를 지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몸을 사리는 게 좋아 보였다.


기사를 닫은 후 쇼핑몰 홈페이지를 켰다.


“슬슬 후기가 올라올 때도 됐는데···.”


후기의 개수만 따지자면 수백 개가 넘었다.

문제는 대부분 논란이 터졌을 때 올라온 후기들이라 사람들의 분노가 담겼다는 것이었다.


상품 후기인데 정작 상품에 관한 내용은 없다.

온갖 쌍욕과 저주가 가득한···, 일종의 분노 배출구였다고 해야 하나?


논란이 해결되고도 악성 후기들을 삭제하지 않은 건 강하윤의 조언 덕분이었다.


‘한 철 장사라면 삭제하는 게 맞지만···, 사업을 장기적으로 본다면 후기는 삭제하지 않는 게 좋아요. 그래야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심어줄 수 있거든요.’


이건 나도 어느 정도는 동의하는 내용이다.

무심히 마우스 휠을 긁었다.


“그래도 1점 올랐네.”


1점대 초반을 기어 다니던 평점은 어제저녁부터 서서히 오르더니 하루 아침에 2점대 중반까지 올라와 있었다.


상품이 아니라 ‘백현호’라는 인간의 평가 같아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마우스를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 봐야 기사만 계속 눌러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시 바빠지기 전에 물약이나 만들어 놔야지···.”


수첩과 가방을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쇼핑몰을 닫아놓는 동안 구해놓은 제조법이 수십 개였고, 재료들 역시 가방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둥둥! 물약 만들자!”

“둥!”


창고를 보고 소리치자 놈이 후다닥 달려왔다.

둥둥은 언제부턴가 창고를 집처럼 쓰고 있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흙으로 이글루 같은 집을 만들어놓았으며 안에는 잡초로 엮은 침대까지 두었다.


“집 생기니까 좋냐?”

“둥!”

“청소 잘 해. 창고 더러워지면 철거해버릴 거야.”

“두···, 둥둥?!”


놈이 까무러칠 듯이 펄쩍 뛰었다.

철거라는 단어가 꽤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마당으로 나와 곧장 솥에 불을 올렸다.


“어디 보자···.”


복덕방 할아버지처럼 수첩을 꼼꼼히 살폈다.

아무래도 사람이 먹는 물약이다 보니 만들 때마다 긴장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재료들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솥에 넣었다.


회복 물약, 힘의 물약, 성스러운 물약···.


마음 같아서는 모든 물약을 한 종류씩 다 만들고 싶었지만, '부활의 물약'과 '복제의 물약'은 우선 제외했다.


부활의 물약을 제외한 이유는 재룟값 때문이었다.

뭔놈의 재룟값에 거품이 그렇게 꼈는지···.


피닉스가 출시된 지 몇 달이 지났음에도 부활의 물약 제조법을 가진 사람은 손에 꼽았으며, 덕분에 재룟값도 동결 상태였다.


획득 확률이 대충 0.1% 아래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제대로 찾아보니 무려 0.02%.


피닉스 1천 마리가 아니라, ‘1만' 마리를 잡아야 먹을까 말까 하다는 뜻이다.


실로 악독하기 그지없는 확률이다.

이제는 내 알 바 아니긴 했지만.


흘끗 둥둥을 바라봤다.

놈은 의자에 올라가 열심히 물약을 젓는 중이었다.


복제의 물약을 만들지 못하는 건 저놈 때문이다.

복제의 물약에는 ‘흙 정령의 알’이 들어갔고 둥둥은 거기서 태어난 놈이다.


병아리한테 치킨을 먹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물약을 종류별로 끓이다 보니 어느덧 저녁이었다.

종류가 워낙 많다 보니 전부 만들지 못했지만,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 성과였다.


기지개를 켜며 병에 담긴 물약들을 바라봤다.


“나머지는 내일 만들어야지.”


작업실로 돌아와 샤워를 마친 뒤 컴퓨터 앞에 앉았다.

바탕화면의 게임을 익숙한 배경음과 함께 캐릭터 선택 화면이 떠올랐다.


【 한약방백수 Lv48 】


서울로 출퇴근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올려놓은 덕에 레벨은 어느덧 40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남들은 당연히 몬스터를 사냥해서 올린 줄 알겠지만, 실제로 사냥에 투자한 시간은 1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게임에서 레벨을 올리는 방법은 두 가지다.


사냥 혹은 퀘스트.


효율만 따지자면 사냥 쪽이 압도적이었지만, 문제는 물약이 살살 녹는다는 것이었다.


물약은 곧 돈이다.

통장의 돈이 녹는다고 생각하니, 사냥으로 레벨을 올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올릴 수 있어서 다행이네.”


열심히 마우스를 움직였다.

마우스를 열심히 움직이며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경험치가 99%였다.


“드디어 50레벨이네.”


뻐근한 목을 주물렀다.

직접 레벨을 올려보니 저번에 봤던 100레벨짜리 연금술사가 얼마나 미친놈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마지막 클릭과 함께 캐릭터의 몸에서 빛이 났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 ‘각성’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


“엥?”


의아한 표정으로 머리에 뜬 느낌표를 눌렀다.


【 각성 (연금술사) 】

【 동쪽 숲의 마녀 0/1 】


“···마녀를 잡으라는 건가?”


이 게임에 마녀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고민하다가 게임을 내리고 인터넷을 켰다.


“모를 때는 역시 검색이 최고지.”


그렇게 인터넷을 뒤지길 몇 분.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보며 턱을 어루만졌다.


“각성이 이런 거였어?”


각성은 쉽게 말해, 캐릭터별로 어울리는 ‘패시브 스킬’을 하나씩 주는 시스템이었다.


궁수는 치명타 확률 1%.

전사는 베기 공격력 1%.

마법사는 마법 공격력 1%.


보통 이런 식으로 공격력에 관련된 능력치를 줬지만, 생활 관련 직업은 좀 달랐다.


대장장이는 강화 확률 1%.

광부는 광석 발견 확률 1%.

고고학자는 추가 복원율 1%.


그리고 연금술사는 대성공 확률 1%.


알 듯 모를 듯한 기분에 글을 열심히 읽었지만, 연금술사가 워낙 비주류 직업이라 그런지 그 이상의 정보는 없었다.


“대성공이라···.”


모르긴 몰라도 중요해 보이긴 했다.

심지어 1%면 그렇게 낮은 확률도 아니다.

하루에 열 솥씩만 끓여도 10일이면 ‘대성공 물약’을 하나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니까.


열 솥이 쉬운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인터넷에서는 마녀에 관한 정보도 있었다.

마녀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답은 이랬다.


항아리에 온갖 잡스러운 걸 집어넣고 끓이는, 오로지 독극물에만 관심이 있는 미치광이.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나 몬스터로 분류될 정도로 인간을 많이 죽인 괴물.


아무리 설정이라지만 읽다 보니 등골이 오싹하다.

아래 내려둔 게임을 다시 불러왔다.


“타락한 연금술사···, 뭐 그런 건가?”


마녀에 관한 정보는 저게 전부였다.

나머지는 직접 부딪히면서 알아가는 수밖에.


“오늘은 각성까지만 하고 꺼야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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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051 - 양심 고백 +4 24.09.08 2,418 95 12쪽
50 050 - 연구소 털기 +8 24.09.06 2,582 93 11쪽
49 049 - 강력한 봉인의 물약 +5 24.09.05 2,692 94 12쪽
48 048 - 수소문 +6 24.09.04 2,876 102 12쪽
47 047 - 파주 옆 동두천 +6 24.09.03 3,123 106 12쪽
46 046 - 녹색 괴물 +8 24.09.02 3,385 114 11쪽
45 045 - D-1 +8 24.09.01 3,670 115 12쪽
44 044 - 아더 월드 +10 24.08.30 3,935 123 12쪽
43 043 - 고급화 전략 +5 24.08.29 4,042 135 12쪽
42 042 - 방송사고? +5 24.08.28 4,223 145 12쪽
41 041 - 평화 +4 24.08.27 4,296 136 12쪽
40 040 - 탈출 +9 24.08.26 4,381 132 13쪽
39 039 - 저거 나 아니야? +6 24.08.24 4,581 146 12쪽
38 038 - 복제의 물약 +6 24.08.23 4,644 149 12쪽
37 037 - 악마 +8 24.08.22 4,898 151 12쪽
36 036 - 소방관 +9 24.08.21 5,223 153 12쪽
35 035 - 몽환의 물약 +9 24.08.20 5,465 156 12쪽
34 034 - 저 여자 진짜 뚱뚱하네 +7 24.08.19 5,697 169 12쪽
33 033 - 유아이 +8 24.08.18 6,025 16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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