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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262_quddus122 3 님의 서재입니다.

한약방의 연금술사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평택안중
작품등록일 :
2024.07.15 15:20
최근연재일 :
2024.09.1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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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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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35 - 몽환의 물약

DUMMY

#035



유아이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안 그래도 모자와 마스크 때문에 안 보이던 얼굴이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뒤돌아서 화라도 내야 하나?

아니, 그것보다 멍청한 선택지도 없다.

그랬다가는 여기 살찐 유아이가 걸어가고 있어요, 하고 홍보하는 꼴이 될 테지.


유아이를 끌고 근처 벤치로 갔다.


“잠깐만 여기 계세요.”


인적이 드문 벤치에 유아이를 앉혀둔 뒤 편의점으로 뛰어가 마스크를 하나 사 왔다.


유아이가 어두운 표정으로 눈을 피했다.


“미안해요, 괜히 나 때문에···.”

“저도 사람들이 알아보면 불편해서 그럽니다. 유아이 씨 때문 아니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백현호 씨는 사람이 참 착한 것 같아요.”


마스크를 쓰다가 물끄러미 유아이를 바라봤다.

얼마나 봤다고? 하는 말이 튀어나오려 하는 바람에 참느라 애먹어야 했다.


“인터넷에서 백현호 씨 뉴스 종종 봤거든요.”

“영광이네요.”

“저희 소속사에서도 얘기 나왔던 거 아세요?”


당연히 처음 듣는 소리였다.


“제 얘기가 왜 나와요?”

“화제성도 있고 마스크도 좋잖아요. 소속사에서 투자한 웹드라마가 있는데 거기 캐스팅하면 어떻겠냐고 의견이 나왔었거든요. 결국 무산되긴 했지만···.”

“아하.”


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거짓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어서 그런가, 선뜻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안이 왔어도 거절했겠지만···, 어쨌든.


“몸은 어때요? 괜찮아요?”

“네, 숨이 조금 차긴 하는데 괜찮아요!”


유아이가 맑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걸어 볼까요?”



< 35 >



92.46kg.


체중계를 보며 조용히 턱을 어루만졌다.

유아이는 누군가 자신의 몸무게를 빤히 본다는 사실이 부끄러운지 고개를 돌려버렸다.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일주일.


처음 시작 몸무게가 91kg 남짓이니까···.


“1kg이 더 쪘네요?”

“그···, 그러게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유아이가 나를 보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다시금 체중계 쪽으로 눈을 돌렸다.

아무리 봐도 말이 안 되는 숫자다.


대체 왜 살이 찐 거지?


갑자기 물약의 효능이 사라졌을 리도 없다.

만들 때마다 하나씩 먹으며 효과를 확인하기도 하고, 유아이도 먹을 때마다 즉각적으로 몸에 반응이 왔으니까.


그렇다면 대체 왜?


내가 놓치는 무언가가 있다.


“몰래 야식 드시는 건 아니죠?”

“아니에요!”


유아이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저건 거짓말일까 진심일까.

속내를 읽어보려 빤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대화할 때마다 거짓말인지 아닌지를 구분해내는 건 상상 이상으로 피곤한 일이었다.


“잠깐 부엌 좀 확인하겠습니다.”

“네.”


유아이를 두고 부엌으로 와서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 위아래로는 싱싱한 채소와 고기들이 가득했으며, 부엌 어디에서도 배달음식을 먹은 흔적은 없었다.


처음 왔을 때처럼 흠잡을 곳 없는 부엌이다.


“물약이 안 드는 체질 같은 게 있는 건가···.”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말이 안 된다.

분명 내가 놓치는 무언가가 있을 터였다.


부엌을 나와 거실 소파로 돌아갔다.

유아이는 소파게 앉아 통창 밖으로 펼쳐진 서울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은 이만 가보겠습니다.”

“산책 안 하시고요?”

“계획을 새로 짤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요.”


고개를 꾸벅 숙인 뒤 오피스텔을 나왔다.


서울부터 작업실까지 운전해 내려오며 온통 ‘내가 놓치고 있는 것’만을 생각했다.


물약에 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만든 물약들에 불량품은 있을 수 없다.


“···대체 뭐지?”


끼익-


작업실 마당에 차를 대고 기지개를 쭉 켰다.

아무리 비즈니스라지만 매일같이 서울에 다녀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작업실로 다가가니 창고에서 둥둥이 머리를 내밀었다.


“물약 만들 거니까 준비···, 아니다.”


둥둥이 까만 눈을 끔뻑였다.

놈의 차갑고 축축한 머리를 툭툭 두들겼다.


“오늘은 좀 쉬자.”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곧장 컴퓨터 앞에 앉았다.

준비해놓은 재료도 다 떨어져 가는 참이고, 몇 주 손 놓은 레벨도 다시 올릴 때가 됐기 때문이다.


게임에 접속해 가장 먼저 경매장을 뒤적였다.

보이는 족족 사서 그런가, 경매장에 있는 대부분의 제조법은 이미 구매한 것들이었다.


심드렁하게 마우스 휠을 긁었다.


“999개가 존재하기는 해?”


연금술 가방을 얻은 날부터 경매장을 들락날락했지만, 내가 구매한 제조법 종류는 고작해야 100개 남짓이었다.


대체 나머지 900개는 어디서 구하라는 거야?


“그때 그 연금술사한테 물어볼 걸···.”


아쉬운 마음으로 경매장을 닫았다.


경매장을 공쳤으니 남은 건 퀘스트밖에 없었다.

한창 마을을 돌아다니며 레벨을 올리는데 캐릭터 위에 느낌표가 떠올랐다.


【 직업 퀘스트 - 로라의 악몽 】


“이건 또 뭐야?”


의아한 표정으로 느낌표를 눌렀다.

동시에 화면이 검게 변하더니 캐릭터가 정체불명의 집으로 이동했다.


언뜻 봐도 낡고 오래된 집이다.

거실 벽난로 앞에는 웬 노파가 한 명 서 있었다.


【 안녕하세요, 모험가님. 】


늙고 힘없는 목소리가 스피커로 흘러나왔다.

미안하지만 스토리에는 별로 관심 없다.

스킵하고 넘어가려는데 아무리 키보드를 두들겨도 노파의 말이 끊기질 않았다.


“뭐야, 렉 걸렸나···.”


불만스럽게 모니터를 노려봤다.

키보드도, 마우스도 먹히지 않은 탓에 궁금하지도 않은 노파의 사연을 끝까지 들어야 했다.


딱히 대단할 것도 없는 사연이었다.

손녀딸인 ‘로라’가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것 같은데···.


【 이게 도움이 될 거예요. 】


노파가 돌연 보라색 물병을 내밀었다.


【 ‘몽환의 물약’을 획득했습니다. 】

【 ‘강력한 몽환의 물약’을 획득했습니다. 】


깜짝 놀라서 모니터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소지품을 확인해보니 방금 노파가 건넨 것으로 보이는 물약 2개가 들어있었다.


“물약을 주네?”


몽환의 물약.

경매장에서도 못 보던 물약이다.

마우스를 올려 물약에 관한 설명을 확인했다.


【 대상의 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


악몽과 썩 어울리는 내용의 물약이다.

마우스를 움직여 옆에 있는 '강력한 몽환의 물약' 위에 올려놓았다.


‘강력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으로 보아, 아마 대성공한 물약을 말하는 듯했다.


“어디 보자···.”


【 대상의 꿈에 관여할 수 있습니다. 】


턱을 괴고 가만히 모니터를 바라봤다.

대상의 꿈에 관여할 수 있다라···.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기분이었다.


이럴 때는 직접 부딪혀보는 게 최고지.

심지어 여긴 현실도 아니고 게임 속이라 물약을 먹는 것에 아무런 부담도 없었다.


마우스로 물약을 집어 로라 쪽으로 옮겼다.


【 이걸 마시라는 건가요? 】


“···그건 너희 할머니한테 물어보셔야죠.”


로라가 물약을 반쯤 마시고 내게 건넸다.

아마 나눠 마셔야 효과가 있는 모양이었다.

반쯤 남은 물약을 받아 꿀꺽꿀꺽 마시자 모니터가 또다시 어두워졌다.


"키에엑!"

“흐익!”


깜짝 놀라서 스피커 소리를 줄였다.


“뭐, 뭐야?!”


검은 화면이 차차 밝아지더니, 이내 거대한 들판과 도륙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고블린?”


가느다랗게 눈을 찌푸렸다.

녹슨 무기로 사람들을 마구 찌르는 놈들은 서양판 도깨비라 불리는 ‘고블린’이었다.


낯선 놈들은 아니다.

회복 물약에 들어가는 것도 저놈들 손가락이었으니까.

게임을 시작한 사람들이 제일 먼저 사냥하는, 일종의 입문자용 샌드백 같은 놈들이다.


물론, 그건 모험가의 입장이지만.


“사, 살려줘!”

“꺄악!”


콰직!


사람들의 비명이 들판을 울렸다.

행색을 보니 상인들인 듯했고 옆 마을로 가다 재수 없게 고블린 무리의 눈에 걸린 모양이었다.


잘 빚어진 그래픽 덕분인지 한 편의 잔혹한 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케륵!”

“케르륵! 케륵!”


상인들을 모두 죽인 고블린이 전리품을 챙겼다.

문득 무너진 마차 아래에 숨은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하.”


마차 아래에 숨어있는 건 로라였다.

제 부모가 괴물에게 학살당하는 걸, 그것도 눈앞에서 지켜봤으니 악몽에 시달릴 만도 하네.


게임이라는 것을 고려해도 꽤 잔인한 설정이다.


영상은 저게 끝이었다.

화면이 어두워지더니 이내 노파에 집에 서 있는 캐릭터가 나타났다.


“흐음.”


모니터를 보고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우선 몽환의 물약이 뭔지는 확인했다.

아직 현실에서 쓸 방법이 떠오른 건 아니지만, 능력을 확인한 것만 해도 큰 성과였다.


남은 건 ‘강력한’ 몽환의 물약.

추측이 맞는다면 이건 대성공 버전이다.


로라의 악몽은 고블린 무리였고, 거기에 관여할 수 있다는 건 내가 고블린 무리와 싸워야 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창고에 보관해둔 물약을 모두 꺼냈다.

강력한 몽환의 물약을 로라와 나눠 마시자 화면이 소용돌이처럼 비틀렸다.


이제까지 와는 다른 연출이고 생각하는 순간, 스피커에서 익숙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케륵!”


역시.


화면으로 이내 캐릭터가 나타났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아까의 그 들판.

노랗게 물든 잔디 위에 서 있는 캐릭터.


그리고,


“케륵!”

“케르륵! 케륵!”


사방으로 몰려드는 고블린 무리.


“뭐, 뭐가 저렇게 많아?!”


놀라서 마우스를 마구 돌렸다.

로라의 꿈에서 봤던 고블린은 10마리 남짓이었지만, 지금 캐릭터를 둘러싼 고블린은 족히 50마리가 넘었다.


이유를 찾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아무리 10레벨짜리 몬스터라지만 저렇게 무더기로 몰려오면 나도 답이 없다.


심지어 나는 전투 직업도 아니지 않던가?


급히 소지품 창을 불러낸 뒤 전투에 필요해 보이는 물약들을 마구잡이로 입에 부었다.


서걱-!


고블린의 녹슨 칼이 캐릭터를 베었다.


【 -10 】


지금 내 캐릭터의 체력이 986.

대충 100대 정도 맞으면 죽는다는 뜻이다.

얼핏 많은 수처럼 보였지만, 저놈들이 2대씩만 때려도 100대는 훨씬 넘을 터였다.


“에이, 씨!”


* * *


새벽 2시, 작업실.


의자에 앉아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불 꺼진 작업실로 야트막한 달빛이 들어왔다.


“하얗게 불태웠다···.”


마우스를 쥘 힘도 없이 모니터를 바라봤다.

퀭해진 눈으로 고마워하는 노파와 행복한 표정으로 잠든 로라의 모습이 들어왔다.


【 칭호 ‘고블린 학살자’를 획득하셨습니다. 】


입에서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흘렀다.


총 131번의 실패.

이제껏 잡은 고블린의 숫자만 5000마리.

사용한 물약은 300개 남짓···.


말 그대로 미친 듯한 난이도의 퀘스트다.

고블린 50마리의 공격 패턴을 모두 외우는 지경이 이르고 나서야 가까스로 성공할 수 있었다.


이건 로라의 악몽이 아니다.

내 악몽이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마우스를 쥐었다.

소지품 구석에는 장장 12시간의 개고생 끝에 얻은 보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 몽환의 물약 (제조법) 】


몽환의 물약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랬다.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물약’


상대의 트라우마를 꿈을 통해 확인하고, 그걸 없애는 것으로 트라우마를 치료한다.


시급 수백만 원짜리 정신과 의사도 못 하는 일을 내가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걸 누구한테 쓰느냐.

마침 책상 위에 올려둔 핸드폰이 울렸다.


“응, 엄마.”


[ 주말에 아빠 기일인 거 알지? ]


엄마의 목소리는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쓰린 기분이다.

이번에 내가 트라우마를 치료해줄 사람은 엄마다.


전화를 끊고 엉뚱하지만 그럴 듯한 고민이 밀려왔다.


"···설마 아빠랑 싸워야하는 건 아니겠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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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053 - 둥둥의 수집품 +9 24.09.10 2,042 85 12쪽
52 052 - 새로운 바람 +14 24.09.09 2,326 86 12쪽
51 051 - 양심 고백 +4 24.09.08 2,419 95 12쪽
50 050 - 연구소 털기 +8 24.09.06 2,583 93 11쪽
49 049 - 강력한 봉인의 물약 +5 24.09.05 2,694 94 12쪽
48 048 - 수소문 +6 24.09.04 2,877 102 12쪽
47 047 - 파주 옆 동두천 +6 24.09.03 3,124 106 12쪽
46 046 - 녹색 괴물 +8 24.09.02 3,386 114 11쪽
45 045 - D-1 +8 24.09.01 3,671 115 12쪽
44 044 - 아더 월드 +10 24.08.30 3,936 123 12쪽
43 043 - 고급화 전략 +5 24.08.29 4,042 135 12쪽
42 042 - 방송사고? +5 24.08.28 4,223 145 12쪽
41 041 - 평화 +4 24.08.27 4,297 136 12쪽
40 040 - 탈출 +9 24.08.26 4,382 132 13쪽
39 039 - 저거 나 아니야? +6 24.08.24 4,581 146 12쪽
38 038 - 복제의 물약 +6 24.08.23 4,645 149 12쪽
37 037 - 악마 +8 24.08.22 4,899 151 12쪽
36 036 - 소방관 +9 24.08.21 5,223 153 12쪽
» 035 - 몽환의 물약 +9 24.08.20 5,466 156 12쪽
34 034 - 저 여자 진짜 뚱뚱하네 +7 24.08.19 5,698 169 12쪽
33 033 - 유아이 +8 24.08.18 6,026 16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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