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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262_quddus122 3 님의 서재입니다.

한약방의 연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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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안중
작품등록일 :
2024.07.15 15:20
최근연재일 :
2024.09.1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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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4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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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39 - 저거 나 아니야?

DUMMY

#039




골프백이 지폐와 금괴로 꽉 찼다.

살면서 이런 금액을 만지게 될 줄은···, 아니, 훔치게 될 줄은 몰랐다.


혹시 몰라 금고에 있는 것들을 전부 챙겼다.


두껍게 쌓인 서류들, 수십 개나 되는 USB 박스, 거기에 비닐로 포장된 흰색 가루···.


다른 것들도 그랬지만, 특히 흰색 가루를 만질 때는 왠지 내 손이 더럽혀지는 것 같아 불쾌했다.


“또 털어갈 거 없나.”


진짜 도둑놈이 된 것처럼 온 방을 뒤졌다.

내일이면 민홍기도 이 집이 아니라 철창에 들어가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흔적을 남기지는 않았다.


한창 집을 터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아까부터 울리고 있던 건가?

집을 터느라 정신이 없어 몰랐던 모양이다.


핸드폰 화면에는 ‘미래백화점 강하윤 사장님’이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심지어 부재중은 5통이나 찍혀 있다.


“설마···.”


불길한 예감으로 전화를 받으려다 우뚝 멈췄다.

지금 나는 외형 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민홍기다.

전화를 받았다가는 이상한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전화를 끊고 문자를 보냈다.


【 지금 전화 받기 어렵습니다. 】

【 민홍기 사장 거기로 가고 있어요. 30분 전에 출발했으니까 곧 도착할 거예요. 】


민홍기가 오고 있다고?


아무래도 일이 꼬인 모양이다.

황급히 거실에 둔 골프가방을 챙겨 현관으로 가는데 다시금 핸드폰이 울렸다.


문자를 확인하다가 우뚝 멈춰 섰다.


【 내가 거기를 발로 차버렸어요. 】


“···이건 또 뭔 소리야?”



< 39 >



1시간 전, 한남동 와인바.


민홍기가 조심스럽게 룸을 열고 들어갔다.

큼직한 소파에 앉아있던 강하윤이 손을 들어 올렸다.


“어서 와요, 민 대표.”

“안녕하십니까.”


민홍기가 설레는 미소를 지으며 걸어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즈니스적인 관계일 뿐이었지만, 민홍기의 마음은 달랐다.


“어쩐 일로 연락을 다 주셨습니까?”

“오자마자 본론부터 하기에요?”


강하윤이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민홍기가 놀라서 손사래 치더니 주변을 살폈다.


“현호 씨는요?”

“백현호 씨를 왜 나한테 찾아요?”

“두 분이 하도 붙어 다니셔서요. 말이 나와서 그런데···, 백현호 씨랑은 정말 아무런 사이도 아니신 거 맞죠?”


강하윤이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매번 무시하려 해도 저렇게 속이 뻔히 보이는 질문을 들을 때면 거북한 느낌이었다.


강하윤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민홍기는 강하윤에게 관심이 있다.’


여자의 육감까지 갈 것도 없이, 만날 때마다 저렇게 티를 내니 모를 수가 없었다.


“아무 사이···.”


문득 강하윤이 고민에 잠겼다.


여기서 만약 아무 관계 아니라는 것을 밝힌다면?

민홍기는 더욱 적극적으로 들이댈 게 뻔했다.

아무리 비위 좋은 강하윤이라도 예비 범죄자에게 그런 대우를 받는 건 끔찍하게 싫었다.


고민하던 강하윤이 말을 바꿨다.


“아무 사이 아닌 건 아니죠. 제가 백현호 씨한테 관심이 좀 많거든요.”

“예?”

“멋있는 사람이잖아요. 키 크고, 잘생기고, 성품도 바르고, 거기에 야망도 있는 것 같고···. 민 대표가 보기에도 멋있지 않나요?”

“···예, 현호 씨 멋있죠.”


민홍기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근데 사장님이랑은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저번에는 잘 어울린다더니?”

“예의상 한 소리였습니다.”


강하윤이 어이없는 표정을 했다.

옛날에는 그래도 제 마음을 숨기는 시늉 정도는 했는데, 이젠 그럴 생각도 없어 보였다.


“저랑 백현호 씨가 왜 안 어울려요?”

“원래 사람은 끼리끼리 만나야 하는 법이잖습니까.”

“끼리끼리라···.”


강하윤이 조용히 와인을 홀짝였다.

별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의외로 흥미롭게 흘러가는 중이었다.


“저희 아버지도 백현호 씨를 좋아하세요.”

“어르신들이 원래 시골 사람을 좋아합니다.”

“아니요, 제 결혼 상대로.”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민홍기가 대놓고 눈을 찌푸렸다.

둘 사이를 굳건하게 지키던, 적어도 겉으로는 그래 보디던 ‘비즈니스’라는 선에 자그마한 균열이 갔다.


강하윤이 예쁘게 웃었다.


“민 대표, 혹시 나 좋아해요?”

“예.”

“미안한데 저는 관심 없어요. 그러니까 이런 얘기는 그만하고 이번에 들어가는 광고 얘기나···.”

“왜 백현호는 되고 저는 안 됩니까?!”


민홍기가 이를 바득 갈았다.

강하윤이 민홍기를 빤히 바라봤다.


“민 대표, 그만 해요.”

“그만 못합니다! 제가 사장님께 마음을 표현한 게 벌써 몇 년인 줄 아십니까?!”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관심도 없는데.”

“오늘 사장님께서 따로 보자고 하셨을 때 내심 기대했습니다. 한 번도 저를 따로 부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드디어 기회가 오는 줄 알았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제가 백현호보다 못한 게 뭡니까?”


강하윤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대가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올 때는 잠깐 흐름을 끊어주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민홍기가 성 난 표정으로 따라 일어났다.


“어디 가십니까?”

“화장실이요.”


강하윤이 매정하게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민홍기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강하윤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지금 도망가는 겁니까?! 백현호는 되고, 나는 안 되는 이유가 뭐냐고요!”

“민 대표, 앞으로 나 어떻게 보려고 자꾸 선을 넘는 거예요? 말했잖아요, 나는 민 대표한테 관심 없다니까.”

“그러니까 대답해 보시라고요! 가진 거 하나 없는 새끼가 뭐가 좋다고!”

“가진 거···”


강하윤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손을 탁 빼냈다.


“내 앞에서 가진 거 많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또 처음 보네···.”


강하윤이 휙 돌아섰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민홍기가 이번에는 손목이 아닌 강하윤의 어깨를 돌려세웠다.


오르는 줄도 모르던 온도가 어느 순간 끓는 점을 넘어버린 것이다.


민홍기가 거칠게 강하윤의 허리를 감쌌다.


“이런 미친···!”


강하윤이 본능적으로 무릎을 차올렸다.

뻐억! 하는 소리와 함께 민홍기가 주저앉았다.

남자가 느낄 수 있는 최악의 고통에 민홍기가 주저앉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꺽꺽댔다.


강하윤이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었다.


“최 비서!”


* * *


골프가방을 질질 끌고 건물을 나왔다.

안에 수십억은 족히 될 법한 현금과 금괴가 있던 탓에 무게가 엄청났다.


집은 들어오기 전과 똑같이 치워놓았다.

민홍기는 금고가 비었다는 걸 언제쯤 눈치챌까.


지하주차장으로 가서 가쁜 숨을 골랐다.

축구라도 한 경기 뛰고 온 것처럼 온몸에서는 땀이 흐르고 있었다.


“도둑질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네···.”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냈다.

현관에 주렁주렁 걸려 있던 차 키 중에 아무거나 골라서 가져온 놈이었다.


가방을 끌고 지하주차장을 누비며 연신 키를 눌렀다.


삐빅-!


“찾았다!”


가방을 끌고 소리가 난 곳으로 향했다.

주차장 한쪽 면 전체에는 휘황찬란한 스포츠카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아마 대부분 민홍기 것인 듯했다.


“자전거나 끌고 다닐 것이지···.”


골프가방을 조수석에 던져 넣은 뒤 곧장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넣었다.


부아앙-!


귀가 떨어질 듯한 소리와 함께 차가 흔들렸다.

출발하기 전에 흘끗 골프 가방을 바라봤다.


“······.”


솔직히 탐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수십억’이라는 단위는 일반인이 평생 허리가 휘도록 일해도 구경조차 못 할 단위였으니까.


다만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었다.


지폐나 금괴에 일련번호가 있는 탓에 괜히 꿀꺽했다가는 덜미가 잡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걸 어떻게 처리하느냐도 문제인데···.


원래는 전부 다 기부해버릴 생각이었지만, 이정도 금액을 경찰서 앞에 툭 던져놓고 ‘기부요’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민하다가 차를 출발시켰다.

시설에 기부하든, 바다에 뿌리든 그걸 지금 당장 결정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차를 끌고 향한 곳은 한남동의 강천호 저택이었다.

당장 떠오른 사람이 강천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대문 앞에 골프가방을 놓고 핸드폰을 꺼냈다.


“회장님···, 문 앞에 있는 가방 며칠만 보관···.”

“여기는 또 어떻게 알고 왔어요?”


한창 문자를 두들기다가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은 강하윤이었다.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들려다가 우뚝 멈췄다.


“이봐요, 민 대표.”


그래, 나는 지금 민홍기다.

심지어 몇 분 전에 강하윤에게 거기가 차인.


섣불리 입을 열지도, 그렇다고 가방을 두고 돌아서지도 못한 채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그, 그게···.”


첫 마디를 뭐라고 떼야 하지? 고민하는데 먼저 입을 연 쪽은 강하윤이었다.


“확실하게 말해두죠. 설령 내가 백현호 씨한테 차인다고 해도 민 대표랑 만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요. 그러니까 꿈 깨요.”

“···예?”

“그리고 한 번만 더 내 몸에 손대면 그때는 정말 가만 안 있을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멍청히 강하윤을 바라봤다.

듣지 말아야 할 내용을 우르르 들어버린 기분이다.

대체 민홍기와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건 또 뭐예요?”


강하윤이 손에 든 골프가방을 바라봤다.

재빨리 머리를 굴려 대답할 말을 찾아냈다.

다른 건 몰라도, 민홍기가 거기를 차일 정도로 강하윤의 분노를 샀다는 건 확실했다.


머리를 냅다 조아렸다.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 잠깐 미쳤었던 모양입니다.”


강하윤이 흠칫 놀라며 물러났다.


“사죄의 의미로 ‘미래 재단’에 약소하게나마 기부를 하고 싶습니다. 강 사장님 이름으로요. 부디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뜬금없이 무슨 기부를···.”

“안 되겠습니까?”


애처로운 눈으로 강하윤을 바라봤다.

나를 바라보는···, 아니, 민홍기를 바라보는 강하윤의 눈은 마치 벌레를 보는 듯했다.


괜히 나까지 상처받는 기분이다.

고민하던 강하윤이 핸드폰을 들었다.


“잠깐 기다려요.”


* * *


같은 시간, 민홍기의 집.


민홍기가 절뚝거리며 부엌으로 향했다.

독한 위스키를 따르던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잔을 냅다 벽에다 던져버렸다.


“백현호 이 개새끼···!”


나는 왜 백현호에게 밀리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시골 촌놈이 착한 게 뭐 대단하다고···."


씩씩거리던 민홍기가 몸을 휙 돌렸다.

요 며칠 미디어에 얼굴 비출 일이 많아 자제하고 있었는데, 오늘 같은 날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터벅터벅-


“유지연 그 년은 하필 이럴 때 손목을 긋고 지랄이야? 대표님이 아프면 와서 위로도 할 줄 알아야···.”


덜컹-!


금고를 연 민홍기의 얼굴이 묘해졌다.

안에 들어있던 현금과 금괴, USB 박스와 필로폰까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민홍기가 꿈을 꾸는 것같은 표정으로 눈을 끔뻑였다.

그래, 이건 꿈이 아니면 말이 안 된다.


금고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세상에 딱 둘이었다.

병실에 있는 유아이와 지금 금고 앞에 있는 자신.


유아이가 와서 직접 털어갔다는 건 말이 안 되고···.


대체 누가?

아니, 대체 어떻게?


집을 비운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았다.

괴도 루팡이 들이닥친다 해도 눈앞의 금고를 하루 만에 털기는 불가능했다.


민홍기가 곧장 겉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관리실까지 한달음에 달려간 민홍기가 경비를 옆으로 밀치며 CCTV 앞에 앉았다.


“대, 대표님?”

“27층 복도 CCTV 돌려! 빨리!”


경비가 놀라서 다가와 버튼을 만졌다.

자그마한 화면이 빠르게 돌아갔다.


1시간 정도 되감았을 때 민홍기가 소리쳤다.


“그만!”


민홍기가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리고 텅 빈 금고를 보았을 때보다 더욱 꿈을 꾸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저거 나 아니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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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049 - 강력한 봉인의 물약 +5 24.09.05 2,694 94 12쪽
48 048 - 수소문 +6 24.09.04 2,877 102 12쪽
47 047 - 파주 옆 동두천 +6 24.09.03 3,124 106 12쪽
46 046 - 녹색 괴물 +8 24.09.02 3,386 114 11쪽
45 045 - D-1 +8 24.09.01 3,671 115 12쪽
44 044 - 아더 월드 +10 24.08.30 3,936 123 12쪽
43 043 - 고급화 전략 +5 24.08.29 4,042 135 12쪽
42 042 - 방송사고? +5 24.08.28 4,224 145 12쪽
41 041 - 평화 +4 24.08.27 4,297 136 12쪽
40 040 - 탈출 +9 24.08.26 4,382 132 13쪽
» 039 - 저거 나 아니야? +6 24.08.24 4,582 146 12쪽
38 038 - 복제의 물약 +6 24.08.23 4,646 149 12쪽
37 037 - 악마 +8 24.08.22 4,900 151 12쪽
36 036 - 소방관 +9 24.08.21 5,224 153 12쪽
35 035 - 몽환의 물약 +9 24.08.20 5,467 156 12쪽
34 034 - 저 여자 진짜 뚱뚱하네 +7 24.08.19 5,699 169 12쪽
33 033 - 유아이 +8 24.08.18 6,027 16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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