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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262_quddus122 3 님의 서재입니다.

한약방의 연금술사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평택안중
작품등록일 :
2024.07.15 15:20
최근연재일 :
2024.09.1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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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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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37 - 악마

DUMMY

#037




헐레벌떡 옷을 챙겨 현관을 나왔다.


“예, 사장님. 방금 뉴스 보셨어요?”


[ 봤어요. ]


“제가 지금 서울로 올라갈게요. 유아이 씨 입원한 병원 주소 좀 문자로 보내주세요.”


[ 네, 알았어요. ]


운전석에 올라 착잡하게 머리를 쓸어넘겼다.


유아이를 만나고 온 게 바로 어제다.

평소와 다른 점은커녕, 내 눈에는 오히려 행복해 보이기까지 했던 사람이다.


시동을 넣으며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거야···.”



< 37 >



오후 11시, 강남대학병원 12F.


병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는데 가드들이 날 막았다.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유아이 씨한테 제 이름 말하면···.”

“죄송합니다.”

“아니요, 제 이름만 말씀해달라니까요.”


가드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시 돌아가지도, 그렇다고 억지로 뚫고 들어가지도 못한 채로 있는데 병실 문이 열렸다.


병실 밖으로 고개를 내민 건 민홍기였다.


“내 손님이야.”

“···예, 대표님.”


가드들이 언제 막았냐는 듯 길을 열었다.

유아이 병실인데 통제는 민홍기가 하고 있다.

당연한 듯 보이면서도 어딘가 이상한 상황이었다.


병실로 들어가니 가장 먼저 죽은 듯이 누워있는 유아이가, 다음으로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선 민홍기가 눈에 들어왔다.


민홍기가 다가와 한숨을 내쉬었다.


“백현호 씨도 많이 놀라셨겠어요. 지연이가 어쩌다가 저런 선택을 했는지···.”

“생명에 지장은 없는 겁니까?”

“네, 다행히 위험하기 전에 발견했다고 하더라고요.”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민홍기를 바라봤다.


발견했다고?


유아이는 병적으로 집 밖을 나오지 않는 사람이다.

뉴스 내용으로 보면 손목을 그은 듯한데···, 사람 많은 공원에서 그랬을 리도 없고.


“누가 발견했습니까?”

“아···.”


민홍기의 눈동자가 짧게 흔들렸다.


“지연이 어머니께서 오셨거든요!”

“···어머니요?”

“예, 반찬을 주러 종종 오신다고 들었는데, 참 다행이죠? 어떻게 그때 딱 발견하셔서.”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진짜 이해해서 끄덕인 건 아니었다.

유아이와 관련된 인간들은 왜 죄다 거짓말을 못 해서 안달인 건지···.


어머니가 종종 반찬을 가져다줘?

첫날 방문했을 때의 냉장고에도, 그리고 바로 어제 확인한 냉장고에도 반찬 따위는 없었다.


내가 유아이 집에 가자마자 하는 일이 냉장고 검사하는 건데 모를 리가 있나.


민홍기가 화제를 돌리려는 듯 나를 안내했다.


“우선 앉으시죠.”

“아니요, 유아이 씨 깨어났을 때 다시 오겠습니다. 그리고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흘끗 병실 밖을 바라봤다.


“병문안 올 때마다 대표님께 연락을 드려야 할까요?”

“에이, 그럴 리가요! 제가 말해두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조만간 강 사장님이랑 같이 식사 한번 하시죠.”


고개를 꾸벅 숙이고 병실을 나왔다.


병원 로비로 내려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일부러 찾으려 해도 찾기 힘든 구석 자리였다.


그 뒤로는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민홍기는 10시쯤 병원을 나갔지만, 나는 계속 구석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새벽 3시.


조용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피곤한 목을 주무르며 12층으로 향하니 의자에 앉아 졸고 있던 가드가 벌떡 일어났다.


가드가 게슴츠레 눈을 찌푸렸다.

이 새벽에 찾아오니 귀신인가 싶은 모양이다.


“이 시간에 어쩐 일로···.”

“유아이 씨와 할 얘기가 있어서요.”

“아직 깨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연락처 남겨주시면 제가 따로 연락 드리겠습니다.”

“병실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성큼 걸어가자 가드가 본능적으로 막아섰다.


“이만 돌아가시죠. 새벽 3시입니다, 지금.”

“대표님께 전화 드리면 될까요? 새벽 3시라 좋아하실 것 같지는 않은데···.”


가드가 난처한 얼굴을 했다.

이 시간에 민홍기에게 전화했다가는 무슨 욕을 얻어먹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가드가 고민하더니 결국 옆으로 비켜섰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병실로 들어왔다.

유아이는 아까의 모습 그대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품에서 미리 챙겨온 몽환의 물약을 꺼냈다.


“잠깐 실례.”


유아이의 입에 몽환의 물약을 쪼르륵 따라 넣었다.

나머지 반은 내가 마신 뒤 소파에 앉아 눈을 감았다.


"어디 뭘 숨기고 있는지 보자···."


다시 눈을 뜬 곳은 거대한 거실이었다.


“여긴 또 어디야?”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담길 정도로 높은 곳.

서울에서 이만큼 높고 거대한 펜트하우스에 거주할 수 있는 인간은 많지 않다.


열심히 돌아다니던 눈동자가 우뚝 멈췄다.

거실 벽에는 집주인의 얼굴이 박힌 액자가 있었다.


【 스타 엔터테인먼트 대표, 민홍기 】


민홍기의 집이구나.


대문짝만하게도 박아놨네.

나르시시스트도 아니고···.


어쨌든 악몽의 장소가 민홍기의 집이라는 건 민홍기도 분명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뜻이었다.


천천히 거실을 돌아다니는데 멀찍이 불 켜진 방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대, 대표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괜찮다니까.”


한쪽은 유아이고 다른 한쪽은 민홍기 목소리다.

불길한 예감을 누르며 불 켜진 방으로 향했다.


소파에 마주보고 앉아있는 건 한창 예쁠 때의 유아이와 지금보다 10년은 젊어 보이는 민홍기였다.


성큼성큼 방으로 들어가 둘 사이에 섰다.

이렇게 서 있어도 어차피 나를 보지 못 할 터였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민홍기가 대뜸 하얀 가루를 내밀었다.


저거 설마···, 아니지?


민홍기가 사람 좋게 웃었다.


“알만한 애들은 다 해. 얼마 전에 상 받은 하창섭 알지? 보이온 리더. 이거 걔가 추천해준 거라니까. 그리고 요새 기술이 좋아서 이정도로는 검사해도 안 나와. 나 믿고···.”

“아, 아니요! 저는 안 할래요!”


유아이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 순간, 민홍기의 얼굴에 악마가 떠올랐다.


남들 앞에서는 세상 해맑게 웃던 인간이 순식간에 악마로 변하는 모습은 꽤 충격적이었다.


“너 나 못 믿냐?”

“그, 그게 아니라···.”

“아니기는, 씨발!”


챙그랑!


민홍기가 탁자 위의 글라스를 던졌다.

유아이가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쌌다.


지그시 눈을 찌푸렸다.


피하는 게 아니라 막으려고 한 걸 보니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했다.


"야, 유지연."


촥-!


민홍기가 품에서 사진 몇 장을 꺼내더니 유아이의 얼굴에 던졌다.


얼굴에 부딪힌 사진이 요란하게 흩어졌다.


“너 다른 엔터랑 얘기 중인 거 내가 모르고 있을 줄 알았냐? 씨발, 내가 엔터 굴린 짬이 몇 년인데 사람 하나 안 붙여놨을까 봐···.”


유아이의 눈동자가 두려움으로 흔들렸다.

사진 속 유아이는 중년의 사내와 나란히 앉아 밥을 먹는 중이었다.


“이, 이건 그냥 식사 한 끼 하자고 해서 간 거예요! 계약 얘기는 없었어요!”

“지랄하고 있네. 요새 안 맞았더니 자꾸 거짓말하지? 내가 씨발, 거짓말은 너한테 돈쓰는 팬 새끼들 앞에서만 하라고 했잖아.”


민홍기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으로 향했다.

그가 꺼내온 건 흉측하도록 거대한 골프채였다.

유아이는 두려움에 눈물조차 흘리지 못했다.


민홍기가 흘끗 술잔을 바라봤다.


“내가 너랑 화해하겠다고 이런 것까지 준비한 거 아니야. 그러니까 같이 마시고 쌓인 거 있으면 대화로 풀자, 지연아.”


저게 골프채 들고 할 소린가.


유아이가 떨리는 손으로 잔을 집었다.


그 뒤로는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둘 다 약에 취해 헛소리를 늘어놓더니 춤을 추다가, 웃다가, 울다가 난리가 났기 때문이다.


보는 내 정신도 이상해질 지경이었다.

유아이는 이런 기억을 갖고···, 아니, 매번 이런 기억들을 새로 쓰며 연예계 생활을 이어왔구나.


문득 유아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연예계 생활에 지쳤나 봐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 순간 최선의 대답이었을 뿐이다.


차마 맨정신으로 계속 보고 있기가 힘들어 몸을 돌리는데, 선반 쪽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이를 꽉 물었다.


“이거 진짜 개새끼네?”


선반에서 반짝이는 건 카메라 렌즈였다.

알고 봐도 모를 만큼 꼼꼼하게도 숨겨놨다.


카메라에 다가가 뚫어질 듯 렌즈를 바라봤다.

역겹게도 카메라 렌즈는 절묘한 각도로 틀어져 있었으며, 약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유아이만을 찍고 있었다.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이제 확인할 건 다 확인했다.

나가서 새로운 계획을 세우든, 뭘 하든···.


비틀!


“어어?”


순간 주변이 크게 일그러졌다.


약에 취해 나풀거리는 두 명의 모습이 빠르게 멀어지더니 이내 점이 되어 사라졌다.


타임머신이라도 탄 것 같은 기분이다.

까만 공간이 서서히 무너졌고, 이내 내가 서 있게 된 곳은 유아이의 오피스텔이었다.


뭔가 또 있는 건가?


“우욱! 우웩!”


구역질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흐느낌이 섞인, 괴로운 구역질 소리였다.

화장실 문을 열며 걸어 나온 사람은 눈이 시뻘게진 유아이였다.


유아이가 비틀거리며 걸어 부엌으로 향했다.

홀리듯 뒤를 따라 부엌으로 향했다.


살이 왜 빠지지 않는가.


유아이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들려주려는 듯했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엌에는 살찔만한 음식이 없다.


유아이가 힘없이 선반을 열었다.

소금, 간장, 식초, 등, 요리할 때 쓰는 조미료들을 모아둔 선반이었다.


“잠깐만, 설마···.”


유아이가 꺼낸 건 설탕이었다.

그리고는 냉장고에서 버터를 꺼내더니 그 두 개를 입에 억지로 쑤셔 넣었다.


세상 누구보다 독한 표정으로.


끔찍한 기분으로 얼굴을 감쌌다.

설마 저렇게 매일 퍼먹었던 건가?

만약 그랬다면 살이 안 빠지는 건 둘째 치고 몸 상태가 정상일 리가 없다.


화장실에서 구역질하는 것만 봐도 그랬다.

아마 속은 완전히 망가져 있을 터였고, 치료를 받는다 해도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


유아이는 그것조차 상관없던 거구나.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다.

유아이가 떠나고 싶던 건 연예계가 아니라 민홍기였다.

약점을 잡힌 자신이 떠날 수는 없으니, 민홍기 쪽에서 떠나도록 뚱뚱한···, 그러니까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기필코 그 몸무게를 유지하면서.


“환장하겠네···.”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건드려야 할까.


* * *


늦은 아침이 되어서야 작업실로 돌아왔다.

유아이는 내가 떠날 때까지 깨어나지 못했다.


피곤한 몸으로 샤워를 한 뒤 의자에 앉았다.

간밤에 봤던 장면이 계속 떠올라 도저히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우선 내가 봤던 건 비밀로 할 생각이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유아이를 위해서였다.

자칫 소문이 잘못 났다가는 유아이가 지키려 했던 것들이 우르르 무너질 수도 있었다.


"이제부터 어쩌냐···."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가장 좋은 방법은 민홍기가 가진 자료를 스스로 삭제하고 자수하게 하는 건데,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됐다.


그럴 놈이었으면 애초에 일을 벌이지도 않았겠지.


한창 고민하고 있는데 대뜸 창고에서 둥둥이 고개를 내밀었다.


“둥···. 둥둥···.”


놈이 가볍게 배꼽인사를 했다.

졸린 와중에도 인사는 하러 나온 모양이다.

배꼽 인사는 또 어디서 배워서는···.


가만히 놈을 보다가 돌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생각났다.


민홍기가 경찰서에 약을 들고 제발로 찾아가서 '저 이거 했어요!' 라고 말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이.


이 작품은 어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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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049 - 강력한 봉인의 물약 +5 24.09.05 2,693 94 12쪽
48 048 - 수소문 +6 24.09.04 2,877 102 12쪽
47 047 - 파주 옆 동두천 +6 24.09.03 3,124 106 12쪽
46 046 - 녹색 괴물 +8 24.09.02 3,385 114 11쪽
45 045 - D-1 +8 24.09.01 3,671 115 12쪽
44 044 - 아더 월드 +10 24.08.30 3,936 123 12쪽
43 043 - 고급화 전략 +5 24.08.29 4,042 135 12쪽
42 042 - 방송사고? +5 24.08.28 4,223 145 12쪽
41 041 - 평화 +4 24.08.27 4,297 136 12쪽
40 040 - 탈출 +9 24.08.26 4,381 132 13쪽
39 039 - 저거 나 아니야? +6 24.08.24 4,581 146 12쪽
38 038 - 복제의 물약 +6 24.08.23 4,645 149 12쪽
» 037 - 악마 +8 24.08.22 4,899 151 12쪽
36 036 - 소방관 +9 24.08.21 5,223 153 12쪽
35 035 - 몽환의 물약 +9 24.08.20 5,465 156 12쪽
34 034 - 저 여자 진짜 뚱뚱하네 +7 24.08.19 5,698 169 12쪽
33 033 - 유아이 +8 24.08.18 6,026 16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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