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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262_quddus122 3 님의 서재입니다.

한약방의 연금술사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평택안중
작품등록일 :
2024.07.15 15:20
최근연재일 :
2024.09.1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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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4.09.11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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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54 - 숙취가 없는 술

DUMMY

#054



창고에 숨 막히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언제고 한 번 사고를 칠 줄은 알았는데, 설마 이런 사고를 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적을 깬 건 엉뚱하게도 둥둥이었다.


“두···, 둥둥! 둥!”


놈이 힘껏 뛰어 내 손의 USB를 낚아챘다.


“야! 그거 안 내놔?!”

“둥! 둥둥!”

“내가 다른 거 줄 테니까 이리 내놔!”


다급한 마음에 얼른 손을 뻗었지만, 어떻게 된 놈이 날이 갈수록 재빨라지는 탓에 잡는 게 쉽지 않았다.


“기현이 형! 그놈 잡아요!”

“어···, 어떻게 잡아?!”

“그냥 손으로 머리통 잡아요!”


최기현이 덜덜 떨리는 손을 뻗었다.

귀여워하는 강하윤과 달리 최기현은 아직 낯선 생명체에 대한 내성이 부족한 듯했다.


“자···, 잡았다!”

“두악!”


머리통이 잡힌 둥둥이 공중에서 버둥댔다.

남들이 보면 처자식 병원비라도 뺏어가는 줄 알 정도로 눈에는 다급한 슬픔이 가득했다.


얼른 달려가 손에 쥐고 있던 USB를 뺏었다.

둥둥이 인형뽑기 기계에 잡힌 것처럼 매달려 꺼이꺼이 울음을 내뱉었다.


"두아악! 두아아아악!"

“혀, 현호야! 얘 이제 놔준다?”

“···예, 놔주세요.”


최기현이 조심스럽게 둥둥을 놔줬다.

땅으로 내려온 둥둥이 눈을 까뒤집더니 내게 달려와 종아리를 주먹으로 마구 때렸다.


“두아악! 두악! 두아아악!”

“이, 이거 말고 다른 거 준다니까!”

“두아아아악!”


놈이 기어코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진짜 진흙이라 철푸덕 소리가 나서 순간 웃음이 튀어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막았다.


이게 그렇게 마음에 들었나?

반짝거리는 건 둘째 치고, 내가 꽁꽁 숨겨 놓은 걸 찾아서 더 애정이 갔던 모양이다.


혼란을 해결한 건 의외로 강하윤이었다.

둥둥에게로 다가온 강하윤이 서럽게 우는 둥둥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아가, 이거 줄까?”

“···둥?”


강하윤이 손에서 반지 하나를 뺐다.

딱 봐도 자동차 한 대 값은 나와 보이는, 진짜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였다.


“두···, 둥둥?”


둥둥의 눈이 순간 커다래졌다.


“저거 눈빛 바뀌는 거 봐라? 주지 마요!”

“괜찮아요. 이런 거 많아요. 아가, 저 안에 있는 자료만 옮기고 다시 돌려줄 테니까 잠깐만 빌려줄 수 있을까?”


나조차도 처음 들어보는 나긋나긋한 말투다.

둥둥이 다이아몬드 박힌 반지를 조심스럽게 쥐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강하윤이 나를 보며 가볍게 혀를 찼다.


“이 간단한걸···.”


다이아몬드 반지가 언제부터 간단한 거였지?

라는 말은 속으로 삼키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 54 >



본체에 USB를 꽂고 조용히 숨을 골랐다.

뒤에 선 강하윤과 최기현도 긴장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띵-!


이내 USB 연결음과 함께 폴더가 하나 떠올랐다.


【 31일 차 영상 기록 】

【 32일 차 영상 기록 】

【 33일 차 영상 기록 】

【 34일 차 영상 기록 】

.

.

.


비명과 광기로 점철된 영상들을 하나씩 눌러 확인했다.

작업실에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고 가장 먼저 입을 뗀 사람은 강하윤이었다.


“이정도면 되겠어요.”


강하윤의 말처럼 이건 명백한 증거였다.

심지어 남춘태의 얼굴도 담겨 있었던 덕분에 세상에 퍼지기만 한다면 굉장한 이슈 몰이를 할 수 있을 터였다.


문제는 딱 거기까지라는 거겠지.


흘끗 강하윤과 최기현을 바라봤다.

따로 말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두 명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아직은 시기상조겠죠?”

“네, 아버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걸 막을 거예요. 미래 그룹이 작정하고 막으려 든다면 우리는 저번처럼 당하고 있을 수밖에 없고요.”


분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일개 소시민이 대기업을 압박하는 건 말 그대로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강천호의 수를 읽을 수 없다.

단 한 번의 기회를, 상대의 수도 모른 채로 던지는 것만큼 멍청한 짓도 없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영상을 껐다.


“결론은 역시 같겠죠?”

“네, 덩치를 키워야죠. 모두가 우리 말을 들을 수 있게.”

“생각해둔 계획은 있습니까? 명색이 호적까지 파고 나오려고 했던 분이 아무 생각 없으실 리는 없고···.”


강하윤이 당연히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강하윤이 말을 꺼냈다.


“미래 그룹은 철저한 가족경영이에요.”

“그럴 것 같았습니다. 강 회장님만 봐도 21세기에 장자승계를 고집하는 분이니까요.”

“우리 미래 식품부터 노리죠.”


강하윤이 소파 옆에 둔 캐리어를 끌고 왔다.

옷이 들어있을 줄 알았던 캐리어 안에는 웬 서류들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미래 식품에 관한 자료들이에요. 회사 내부에서 빼낸 자료가 아니라, 제가 직접 돈 써서 조사한 것들이니까 출처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근데 왜 미래 식품입니까?”

“미래 식품 사장인 강천수는 제 작은아버지예요. 올해로 환갑이 넘었는데도 정신 못 차리고 술집이나 들락날락하는 인간이죠.”


강하윤의 얼굴에 혐오감이 떠올랐다.

작은아버지라는 인간을 어지간히도 싫어하는 듯했다.


“거긴 미래 그룹 산하가 아니었으면 망해도 진즉에 망했을 곳이에요. 우리는 미래 식품의 파이를 뺏어 먹으면서 크면 돼요.”

“그게 가능할까요?”


집안이 콩가루인 건 알겠다.

들어보니 미래 식품의 사장인 강천수도 능력이 있는 사람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상대는 미래 그룹이었다.


회사가 아무리 개판이라도 연 매출 1억짜리 쇼핑몰이 비빌 수 없는 건 당연했다.


강하윤이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장에 정면으로 뛰어들면 다른 모든 업체와도 경쟁해야겠지만, 미래 식품만을 저격해서 움직이면 충분히 가능성 있어요. 계획은 처음부터 다시 세워야겠지만.”

“왜 처음부터 다시 세워요?”

“내 계획 속의 백현호 씨는 쇼핑몰 사장이었거든요. 설마 정체가 마법사일 줄 알았나.”

“마법사가 아니라 연금술사.”

“···아무튼.”


강하윤이 슬쩍 눈을 흘겼다.

내 존재가 아무래도 변수가 된 모양이다.

당연히 나쁜 쪽으로의 변수는 아니겠지만, 계획을 다시 짜는 건 나도 찬성이었다.


곰곰이 생각하다가 강하윤을 바라봤다.


“주류 쪽을 공략하는 건 어떨까요?”

“주류요?”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술이 소주고, 제일 잘 나가는 소주가 ‘새벽’이잖아요?”


강하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식회사 새벽은 2000년대 초반 미래 그룹이 인수한 주류 회사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팔리는 소주의 꼭대기에 미래 그룹이 있는 것이다.


강하윤이 고민스러운 표정을 했다.


“뺏어올 수만 있다면 말 그대로 대박이긴 하지만···, 주류 쪽은 쉽지 않을 거예요. 식사처럼 매일 다른 걸 먹는 게 아니라 평소에 마시던 것만 마시니까요.”


강하윤의 말처럼 소비자 층이 콘크리트이긴 했다.

매일 다른 소주를 마시는 사람은 드무니까.

하지만 원래 콘크리트라는 게 한 번 구멍 나기 시작하면 와르르 무너지지 않던가?


“충성 고객만 흡수하면 저희 사업의 기반이 될 거예요. 거기다 고객층이 너무 단단해서 미래 식품 쪽도 방심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래요, 다 좋은데 술을 어떻게 만들 건데요?”

“굳이 우리가 만들 필요 있나.”


전국에 술을 만드는 공장만 수십, 수백 개다.

물론 유통과 판매에 여러 절차가 필요하겠지만, 그건 하나씩 처리하면 될 일이었다.


의자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향했다.

냉장고 한 편에는 먹다 남은 양주와 맥주 몇 캔, 그리고 소주 몇 병이 들어있었다.


이리 오라는 듯 손짓하자 강하윤과 최기현이 냉장고 쪽으로 다가왔다.


강하윤이 새삼스러운 표정을 했다.


“백현호 씨가 술을 좋아했구나···.”

“힘들 때마다 한 잔씩 하죠. 찰흙 덩어리 만지면서 먹으면 그만한 힐링도 없거든요.”

“···찰흙 덩어리요?”

“둥둥이요.”

“아.”


강하윤이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제가 딱 한 잔만 하는 걸 잘 못 해요. 원래 사람이 그렇잖아요? 한 잔 마시면 한 잔 더 하고 싶고···.”

“저는 술을 안 마셔서 몰라요.”

“나는 알지.”


최기현이 근엄한 표정으로 끄덕였다.

뭐 저렇게까지 진지한가 싶을 정도의 표정이었다.


“아무튼, 이게 그때 개발한 거예요.”

“보기에는 그냥 소주 같은데···.”

“이건 그냥 소주 맞고 제가 개발한 건 이거!”


냉장고 구석에 넣어둔 병을 꺼냈다.

안에는 다홍색의 액체가 찰랑대고 있었다.

강하윤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병을 받아들었다.


“이건 어떤 물약이에요?”

“두 개를 섞은 거예요. 회복 물약이랑 성스러운 물약을 섞으니 이런 색이 나오더라고요.”


여기에는 나름의 뒷이야기도 있었다.


“제가 원양어선 탔었다고 얘기했죠?”

“그랬죠.”

“거기 아저씨들이 밤마다 술을 한 잔씩 하는데, 또 엄청나게 빨리 마시거든요. 빨리 취해서 빨리 자야 하니까.”

“···술 안 먹고 그냥 자면 되는 거 아닌가?”

“배가 흔들리면 잠이 안 오거든요. 뭐···, 그분들은 베테랑이라 그런 이유는 아니었고 그냥 술을 좋아하는 분이셨지만요.”

“그래서요?”


강하윤이 흥미진진하게 날 바라봤다.

옛날얘기를 듣는 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그 아저씨들 따라서 마시다 보니까 저도 습관이 들어버린 거예요. 어느 순간부터는 느긋하게 마시고 싶어도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방법을 찾았죠.”

“방법?”

“똑같이 마시고 느리게 취하면 되겠구나.”

“···네?”


주황색 물병을 가볍게 흔들었다.

제조법에도 없고 팔지도 않지만, 이건 내가 가장 사랑하는 물약 중 하나였다.


“술은 엄밀히 따지면 독이에요. 그래서 성스러운 물약은 그걸 바로 해독해버리죠.”

“그럼 안 취하는 거 아니에요?”

“성스러운 물약의 양을 줄이면 돼요. 몇 방울만 넣으면 해독하다가 말거든요. 쉽게 말해서, 100만큼 취하면 50만큼만 해독하는 거죠. 거기에 회복 물약을 넣어서 숙취도 없죠.”

“천천히 취하고 숙취도 없는 술···.”


강하윤이 눈이 커다래졌다.

이제야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한 듯했다.


“마셔볼래요?”


* * *


오후 11시, 작업실 마당.


탁자에 올라온 소주만 10병이 넘었다.

그리고 우리 중 인사불성이 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셋 다 적당히 취하긴 했지만, 말 그대로 기분 좋을 정도의 적당한 취기였다.


최기현이 붉어진 얼굴로 다홍색 병을 들어 올렸다.


“소주랑 맛이 비슷해서 좋다. 텁텁함도 없고···.”

“맛을 유지하려고 고생 좀 했죠. 참, 판매용에는 회복 물약만 섞으려고요. 성스러운 물약은 제가 덜 취하려고 넣은 거니까.”


최기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성스러운 물약도 같이 넣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야 사람들이 덜 취하고···, 더 많이 팔아줄 테니까.”

“그런가?”

“나는 지금 이정도가 딱 좋다.”


하긴, 비율을 새로 찾는 것도 일이지.

성스러운 물약을 빼면 숙취도 심해질 테고, 그만큼 회복 물약을 더 넣어야 한다.


문제는 그러면 맛이 바뀔 수도 있었다.

최기현의 말처럼 지금이 딱 좋기는 했다.


최기현이 씩 웃으며 잔을 비웠다.

입에 잘 맞고 말고 할 것도 없는 게, 미묘하게 더 쓴 소주일 뿐이었다.


이것도 신경 쓰지 않으면 모를 정도였다.


문득 고개를 돌려 강하윤을 바라봤다.

아까부터 참고 있던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근데 사장님은 왜 바보가 됐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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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053 - 둥둥의 수집품 +9 24.09.10 2,042 85 12쪽
52 052 - 새로운 바람 +14 24.09.09 2,326 86 12쪽
51 051 - 양심 고백 +4 24.09.08 2,418 95 12쪽
50 050 - 연구소 털기 +8 24.09.06 2,582 93 11쪽
49 049 - 강력한 봉인의 물약 +5 24.09.05 2,692 94 12쪽
48 048 - 수소문 +6 24.09.04 2,876 102 12쪽
47 047 - 파주 옆 동두천 +6 24.09.03 3,124 106 12쪽
46 046 - 녹색 괴물 +8 24.09.02 3,385 114 11쪽
45 045 - D-1 +8 24.09.01 3,670 115 12쪽
44 044 - 아더 월드 +10 24.08.30 3,935 123 12쪽
43 043 - 고급화 전략 +5 24.08.29 4,042 135 12쪽
42 042 - 방송사고? +5 24.08.28 4,223 145 12쪽
41 041 - 평화 +4 24.08.27 4,296 136 12쪽
40 040 - 탈출 +9 24.08.26 4,381 132 13쪽
39 039 - 저거 나 아니야? +6 24.08.24 4,581 146 12쪽
38 038 - 복제의 물약 +6 24.08.23 4,644 149 12쪽
37 037 - 악마 +8 24.08.22 4,898 151 12쪽
36 036 - 소방관 +9 24.08.21 5,223 153 12쪽
35 035 - 몽환의 물약 +9 24.08.20 5,465 156 12쪽
34 034 - 저 여자 진짜 뚱뚱하네 +7 24.08.19 5,697 169 12쪽
33 033 - 유아이 +8 24.08.18 6,025 16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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