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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262_quddus122 3 님의 서재입니다.

한약방의 연금술사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평택안중
작품등록일 :
2024.07.1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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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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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 - 신제품 설명회

DUMMY

#030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강천호의 진심을 듣는 기분이었다.

태산 같기만 하던 노인네의 등에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화살이 박혀있었다.


강천호가 조용히 창밖을 내다봤다.


“사람들의 관심은 양날의 검 같은 거야. 자네도 베여 봐서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내가 알고 있다니?

무슨 소린지 몰라 강천호를 바라봤다.

그가 조심스럽게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대현이 그놈에게 못된 짓을 당했더군.”

“인터넷에 퍼졌던 루머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지는 않았다.

워낙 유명한 사건이기도 했고, 그게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강하윤이 말했을 테니까.


강천호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해, 내가 자넬 볼 낯이 없어.”



< 30 >



경기도 파주, 미래 식품 연구소.


“씨발!”


남춘태가 책상을 쾅! 내리쳤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연구를 이어간다는 건 여러 의미로 피가 마르는 일이었다.


정체불명의 원소를 연구한 지 1개월.


연구소 하나를 통째로 지원받으면서까지 연구에 매진했지만, 성과라고 부를 만한 건 전혀 없었다.


“대체···.”


남춘태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아래에 깔려있던 연구 일지가 애처롭게 구겨졌다.


“대체 뭐가 문제야?”


무려 살아 움직이는 원소다.

원소가 가진 잠재력은 말 할 필요도 없었으며, 사용법만 알아낸다면 21세기 인간의 삶 자체를 바꿔버릴 수도 있을 터였다.


"사용법···."


남춘태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사용법만 알아내면 된다.

남은 숙제는 그거 하나뿐이었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그 숙제를 풀 수 없었다.


얼리고, 녹이고, 가열하고, 찢고, 붙이고···.


머리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봤다.

그리고 그때마다 원소는 번번히 생명력을 잃었다.


대체 왜?


이걸 연구하기 위해 팔자에도 없는 라인을 탔다.

그룹의 차기 후계자라는 강대현이 그의 라인이었다.


멍청한 주제에 욕심만 많은, 5살 어린 동생에게 질투심이나 느끼는 병신이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남춘태가 초조하게 손톱을 씹었다.


“슬슬 성과를 내놓아야 하는데···.”


강대현은 인내심 있는 투자자가 아니다.

미래백화점을 잡을 수 있다는 말에 연구소까지 내어주긴 했지만, 밑천이 까발려지는 순간 여기서 쫓겨나 업계에는 발도 못 붙일 터였다.


돌연 남춘태의 눈이 연구실 구석을 향했다.


“······.”


네모난 시험관에 들어있는 건 흰색 쥐였다.

이제까지 쥐를 이용해 수많은 실험을 했지만, 딱히 사고라고 부를 만한 건 없었다.


실험 쥐로만 실험하는 건 한계가 있다.

문득 남춘태의 머리에 한 가지 가설이 스쳤다.


쓸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썼는데도 안 된다면, 그건 방법의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실험체의 문제지.


“···어차피 임상시험도 해야 하잖아?”


남춘태의 눈이 서늘하게 번뜩였다.

실험 쥐 쪽으로 손을 뻗는 순간 연구실 문이 열리더니 강대현이 걸어 들어왔다.


“남 소장.”

“오셨습니까, 사장님.”


강대현이 의자를 끌어와 삐딱하게 앉았다.


“연구는 어디까지 진행됐습니까? 미래백화점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해놓고 여태 성과가 없을 리는 없고.”

“···마침 보고서를 올리러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성과가 있다는 겁니까?”


의외의 대답에 강대현이 놀란 눈을 부라렸다.

사실 연구 성과에 관한 기대는 전혀 없었고, 연구실 빼라는 말이나 전하러 온 참이었기 때문이다.


남춘태가 가느다랗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 막바지 단계입니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사장님.”

“막바지면 얼마나요?”

“임상시험 단계만 거치면 됩니다만···, 이게 워낙 새로운 형태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허가해줄지가 걱정이네요.”

“그런 건 걱정할 시간에 연구나 끝내세요.”


강대현이 자신 있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 * *


미래 전자 신제품 발표회까지 일주일.


그때까지 강천호의 살을 최대한 빼야 한다.

물론 지금의 모습도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했지만, 정작 본인이 만족하지 못하는 듯했다.


어제보다 비장해진 마음으로 저택에 들어갔다.

강천호의 방으로 가니 이제는 아주 문을 열어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멍하니 열린 문을 바라봤다.


"···신기하네."


첫날에는 굳게 닫혀 있었고, 시간이 지나서는 발소리만 듣고도 내가 온 줄 알았다.


이윽고 활짝 열린 문이 강천호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 새삼스러운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래도 노크는 해야겠지?

가볍게 열린 문을 두들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어서 와, 백 선생.”


어느 순간부터 ‘백 선생’이 자연스러운 호칭이 됐다.


소파에 앉아 약밥을 꺼냈다.

강천호가 자연스럽게 약밥을 입에 넣었다.


“여전히 입에 안 맞으십니까?”

“당연하지. 자네는 식당 같은 거 하지 마.”

“한 번은 맛있다고 해주실 줄 알았는데···.”


강천호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요즘 세상에는 맛없는 음식이 더 귀해.”

“···예,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강천호가 마침 생각난 듯 덧붙였다.


“오늘부터는 가볍게 뛰어보자고.”

“뛰다니요?”

“신제품 발표회까지 보름도 안 남았잖아. 이왕 모습을 보이기로 한 거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단 말이지.”

“예, 알겠습니다. 그럼 뛰는 것보다는 빠르게 걷는 것부터 시작해보시죠.”

“그걸로 되겠어?”

“충분합니다.”


강천호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한 소리는 아니었고, 실제로 빠르게 걷는 것도 굉장히 효과적인 유산소 운동이다.


약밥을 다 먹고 곧장 공원으로 향했다.

나도 모르는 새에 강천호는 ‘성격 더러운데 바둑은 좀 두는 영감’으로 소문이 나 있었다.


“오늘도 나오셨네!”

“어, 그래!”

“아들이랑 운동하는 거예요?”

“자네들도 운동해!”

“운동 끝나면 바둑이나 한판 둬요!”


강천호가 알겠다는 듯 손을 들어 보였다.

공원에는 생각보다 노인들이 많았고, 나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 강천호에게 손을 흔들었다.


“어르신, 오늘도 나오셨네요!”

“어, 박 사장. 점심은?”

“지금 먹으러 가는 길입니다!”

“그래, 식사 맛있게 해!”

"예, 형님도 고생하세요!"


보다 보니 황당함이 밀려왔다.


“저 없을 때도 공원 나오세요?”

“저녁 먹고 가끔 나와. 요새 저놈들이랑 바둑 두는 맛으로 살거든.”

“신기하네요.”

“뭐가?”

“저 많은 사람 중에 회장님 정체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거잖아요. 다들 집에 TV가 없나···.”

“하하, 그냥 닮은 사람인 줄 알더라고.”


강천호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하긴, 미래 그룹 회장이 점심때마다 공원에서 바둑 두고 성질내고 산책한다는 걸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심지어 TV에 모습을 비춘 지 오래됐기도 하고.


흘끗 강천호를 바라봤다.

그는 건강한 노인들도 버거울 정도로 빠르게 걷는 중이었고, 숨 역시 눈에 띄게 헐떡대는 중이었다.


“회장님, 잠깐 쉬었다 갈까요?”

“됐어! 허억! 더 빨리 걷자고! 허억!”


강천호가 씩 웃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 * *


빠르게 디데이가 가까워졌다.


강천호의 변화는 내 삶의 변화이기도 했다.

안 그래도 다이어트에 속도가 붙던 참이었는데, 강도 있는 유산소까지 더해지니 강천호는 하루가 멀다고 살이 쭉쭉 빠졌다.


일주일이 지났을 때는 거의 뛰는 비슷한 속도로 걷는 지경에 이르렀다.


탈진이 물약의 효과도 대단했다.

줄어가는 몸무게에 부스터를 달았다고 해야 하나?


변화의 바람이 분 건 식탁도 마찬가지였다.

매번 호화롭기만 하던 식탁은 잡곡밥과 풍부한 단백질, 채소 위주로 바뀌었다.


약밥 하나와 30분의 산책으로 시작되었던 만남은, 1개월이 지난 지금 강천호의 삶을 크게 바꿔놓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망의 신제품 발표회.


아침 일찍부터 양복을 입었다.

메이저 방송국의 기자들과 VIP들에게만 간다는 초대장이 내게도 왔다.


"출세했네, 백현호···."


머리를 정리하는데 마당으로 차가 들어섰다.

강하윤이 차에서 내리더니 장난스럽게 웃었다.


“모시러 왔어요, 백 선생님.”

“민망하게 사장님까지 왜 그래요?”


강하윤이 빤한 눈으로 나를 훑었다.

지금 입은 양복을 사서 보내준 사람이 강하윤이다.

그냥 있던 거 입고 가겠다니까 굳이 양복을 사서, 그것도 퀵으로 보내왔다.


“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딱 맞네요?”

“예, 잘 입고 반납하겠습니다.”

“내가 그거 가져서 뭐 한다고···. 그냥 두고 입어요.”


강하윤이 가볍게 고갯짓했다.


“준비 다 했으면 가죠.”


* * *


강대현이 능숙하게 기자들을 둘러봤다.

희대의 망나니인 줄만 알았는데 할 때는 하는구나.


“1부는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5분간 휴식한 뒤 질의응답 시간이 있으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강대현이 허리를 꾸벅 숙이며 돌아섰다.

그의 몸에 가려져 있던 반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래 전자의 신제품은 반지였다.

전자 회사에서 웬 반지냐고 묻는다면, 놀랍게도 저 반지가 하나의 전자제품이었다.


제품 이름은 ‘미래 바이오 링’.


착용자의 수면 및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원격 마우스나 통화까지 가능한 제품이었다.


나도 모르게 감탄을 흘렸다.


“세상 참 좋아졌네요.”

“2세대부터는 홀로그램도 도입한다고 하더라고요.”

“홀로그램이요?!”


깜짝 놀라서 강하윤을 바라봤다.

홀로그램은 영화에서도 몇 번 본 적이 있다.


허공에 휘적대면 화면 떠오르는 그거 아닌가?


“아직은 개발 단계.”

“벌써 2세대를 개발하고 있다는 것도 신기하네요. 근데 사장님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저도 이 집안사람이에요.”

“아, 맞다.”

“맞다는 뭐야?”


강하윤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2부 역시 다른 의미로 반응이 뜨거웠다.

몇 년 만의 신제품에 기자들은 쉴 새 없이 질문들을 쏟아냈고 강대현은 능숙하고 친절하게 답을 내놓았다.


내 따귀를 쳐버리겠다느니 했던 망나니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이윽고 마지막 순서.


인터뷰를 마무리한 강대현이 의자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잡았다.


“마지막으로, 오늘 이 자리를 빛내주시기 위해 아버지이신 강천호 회장님께서 자리해주셨습니다.”

“강천호 회장?!”

“강천호 회장이 여기 왔다고?”

"그 양반 이런 자리에 안 나온지 한참 됐잖아."


기자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소란이 일었다.

강대현이 빙긋 웃으며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뜨거운 박수로 맞아주세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단상 옆의 계단으로 한 사람이 성큼성큼 걸어 올라왔다.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자 강하윤이 빙긋 웃었다.


“멋있죠?”

“네···, 호랑이가 따로 없네요.”


단상 중앙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강천호는, 말 그대로 한 마리의 호랑이 같았다.


떡 벌어진 어깨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을 이끈다는 자부심과 가득했으며, 깊고 강렬한 눈동자 속에는 그가 걸어온 길이 그대로 담겨 있는 듯했다.


“강천호 회장 맞아?”

“완전 다른 사람이 됐네···.”


기자들의 입에서 순수한 감탄이 흘렀다.

강천호가 여유롭게 웃으며 마이크를 잡았다.


“반갑습니다. 강천호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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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044 - 아더 월드 +10 24.08.30 3,936 123 12쪽
43 043 - 고급화 전략 +5 24.08.29 4,042 135 12쪽
42 042 - 방송사고? +5 24.08.28 4,223 14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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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035 - 몽환의 물약 +9 24.08.20 5,465 15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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