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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262_quddus122 3 님의 서재입니다.

한약방의 연금술사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평택안중
작품등록일 :
2024.07.15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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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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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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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 - 아더 월드

DUMMY

#044




빨간 유리병.


30년 경력의 유리 장인이 직접 만들었을 것 같은 고급스러운 유리병과 루비를 갈아 넣은 것 같은 붉은 액체···.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유리병은 물론이고 그 위에 붙은 라벨까지도 실제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이었다.


고급화는 결국 ‘어떻게 보이는가’의 싸움이다.

백화점 사장인 강하윤은 핵심을 잘 알고 있었다.


내 눈에는 그냥 빨간 음료수일 뿐이었는데 강천호 앞에 있으니 확실히 비싸 보이긴 했다.


“아!”


TV를 보다가 급히 컴퓨터 앞에 앉았다.

오늘부로 마지막 예약분을 처리한 참이고, 이제 홈페이지에 공지를 올려야 했다.


줄글로 쓸까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글 쓰는 데 소질이 없기도 했고, 무엇보다 지금 떠오르는 건 ‘빨간 유리병’의 이미지 아니던가?


【 해당 글을 공지로 설정하시겠습니까? 】


'예' 를 클릭하고 F5 키를 누르니, 방금 내가 등록한 공지가 메인에 떠올랐다.


공지에 올라간 건 빨간 유리병 사진이었다.

다른 설명은 전혀 없었으며, 아래에 ‘11월’이라는 간단명료한 날짜만 있을 뿐이었다.


“······.”


막상 올리고 나니 어딘가 복잡한 기분이다.

이거 한 방에 사업이 날아오를 수도, 고꾸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되는 것도 당연했다.


한참을 화면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픽 웃었다.


“이미 망해봤는데 뭐가 무서워?”



< 44 >



다음 날부터 인터넷을 완전히 끊었다.

정확히는 인터넷 '검색'을 끊은 거지만···, 아무튼.


이미 배는 태평양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중이었고, 이제 목적지에 닿느냐 바다로 가라앉느냐 하는 선택지만이 있을 뿐이다.


악플은 마치 마약과도 같다.

나쁜 걸 알면서도 스스로 찾아보게 만들며, 끝내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뒤집어 놓기 때문이다.


11월에 내놓을 상품만 생각하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때까지 최대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쌓는 것뿐이다.


몸을 일으켜 마당으로 나갔다.

머리 굴릴 일이 있을 때는 이렇게 마당을 한 바퀴 돌아주면 곧잘 떠오르곤 했기 때문이다.


설렁설렁 걸어 뒷마당으로 향했다.

어제 물약을 만들고 식혀놓은 솥이 있는 곳이었다.


뒷마당에는 잔디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으며, 그건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의 평화였다.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힘주고 있던 마음도 느슨해지는 기분이다.


“나중에 여기서 다 같이 바비큐 해 먹어야···.”


순간 눈에 익숙한 무언가가 들어왔다.

게슴츠레 눈을 찌푸리며 다가가니 작업실에 있어야 할 연금술 가방이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가방을 집어 올렸다.


“이게 왜 여깄어?”

“두···, 두악!”


뒷마당으로 나오던 둥둥이 놀라서 펄쩍 뛰었다.

멍청한 표정으로 가방과 둥둥을 번갈아 바라봤다.


“너 설마···.”

“둥! 둥둥! 둥!”


놈이 찰흙 대갈통을 마구 흔들었다.

순수해서 그런지 거짓말은 지독히도 못 하는 놈이다.


가방을 들고 둥둥 앞으로 걸어갔다.


“솔직히 말해. 이걸로 뭐 했어?”


도리도리-


“어쭈, 얘기 안 해?”


주먹까지 들어 올리며 추궁했지만, 둥둥은 세상 어색하고 순종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둥둥이 뻣뻣하게 몸을 돌리더니 걸음을 옮겼다.


“···너 팔이랑 다리랑 같이 나가고 있는 건 아냐?”


뒤통수에 대고 말했지만 둥둥은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물끄러미 손에 든 가방을 바라봤다.


“뭐야 대체?”


그냥 두면 사고를 쳐도 단단히 칠 놈이다.

당분간은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겠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 건 그날 저녁이었다.

심지어 이상한 걸 발견한 장소도 게임이었다.

오랜만에 접속해 연금술 가방을 정리하는데 가방 구석에 엉뚱한 것들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모양을 보니 식물의 잎 같은데···.

내가 이런 걸 샀던 적이 있나?


대부분의 물약에 약초류가 들어가긴 하지만, 이렇게 이파리만 따로 떨어진 경우는 없다.


의아한 표정으로 마우스를 올렸다.


【 Item, alchemy material_leaf_unregistered 】


“···엥?”


아이템 이름이 뜬금없이 영어로 뜰 리는 없고 아마도 표기 오류인 듯했다.


마우스를 몇 번 치웠다가 다시 댔다.

일시적인 오류라면 이런 식으로 해결되는 때도 있었는데, 일시적인 오류도 아닌 모양이다.


찝찝한 기분으로 아이템 창을 바라봤다.

오류는 그렇다 치고 대체 이게 무슨 이파리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게 문제였다.


개수도 무려 312개.

이건 실수로 살 만한 개수가 아니다.

분명 의도를 갖고 샀다는 건데···, 내가 처음 보는 게 말이 되나?


의문스러운 와중에 문득 영어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unregistered’


어딘가 눈에 익은 단어다.

토익 공부하겠다고 까불었을 때 본 것 같은데.


저 단어 뜻이 아마도···.


“···등록되지 않은?”


영어로 적힌 것들을 직역하면,


【 아이템_연금술 재료_이파리_등록되지 않은 】


정도가 된다.


등록되지 않은 아이템이라니?

개발자가 만들지 않은 아이템이 게임에 존재할 수는 없다.


고민하다가 연금술 가방을 들어 올렸다.

게임 속 가방에 들어있다면 아마 손으로 넣어서 꺼낼 수도 있을 터였다.


망설임 없이 손을 집어넣자 예상대로 정체불명의 이파리들이 손에 잡혔다.


이파리를 꺼내 유심히 살폈다.


“···이거 녹차 아니야?”


게임 아이콘으로 봤을 때는 몰랐는데, 꺼내서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황당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확인했다.

방금 내가 꺼낸 녹차 이파리가 30개 남짓.

모니터에 표시된 숫자도 312에서 281로 줄어있는 걸로 보아 제대로 꺼낸 것도 맞다.


당최 무슨 일인지 감도 못 잡는 와중에 창고에서 둥둥이 걸어 나왔다.


느릿느릿 다가오던 둥둥의 눈이 내 손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내 손 위의 녹차 이파리였다.


“두···, 두악!”


찰싹!


놈이 펄쩍 뛰며 내 손등을 때렸다.

손에 들려있던 30개 남짓의 이파리가 허공으로 나풀나풀 떨어졌다.


둥둥이 허겁지겁 이파리들을 끌어모았다.

창고로 도망가려는 놈의 뒤통수를 움켜쥐었다.


“어딜 도망가?!”


놈이 놓으라는 듯 마구 발버둥 쳤다.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나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나머지 이파리들 다 태워버린다?”

“두···, 둥둥?!”

“그래, 싹 다! 지금 얘기 안 하면 아궁이에 던져서 땔감으로 쓸 테니까 그렇게 알아!”


버둥거리던 몸뚱이가 얌전해졌다.

슬쩍 놓자 둥둥이 좌절한 표정으로 바닥에 엎드렸다.


태워버린다고 협박하는 건 좀 심했나?


한동안 슬퍼하던 둥둥이 몸을 일으켰다.

놈이 원망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따라오라는 듯 먼저 걸어갔다.


둥둥을 따라간 곳은 작업실 근처의 공터였다.

아니, 몇 주 전까지만 해도 공터였던 곳이었다.


눈 앞에 펼쳐진 녹차 밭에 순간 어이가 없어졌다.

아직 완전히 자라지는 않았지만, 분명 녹차 밭이었다.


“이···, 이게 다 뭐야?”

“둥둥.”

“네가 키운 거라고?”


끄덕끄덕-


“씨앗도 아니고 이파리로 어떻게 나무를 키워?”


뿌리는 이파리가 아니라 씨앗에서 나온다.

이건 내게 너무도 당연한 상식이었다.


상황을 보니 물약을 만들 때마다 이파리를 하나씩 뜯어서 보관한 모양인데···, 그걸로 나무를 키운다는 건 말이 안 됐다.


둥둥이 발끝으로 야무지게 땅을 팠다.

그러더니 구멍에 새끼손톱만 한 녹차 이파리를 넣고 다시 흙을 덮었다.


우웅-!


둥둥의 손에서 짧은 빛이 뿜어졌다.

녹차 밭에 잠깐의 침묵이 내려앉았고 이내 이파리를 심은 곳에서 녹차 나무가 쏙 올라왔다.


깜짝 놀라 바닥에 엎드려 나무를 확인했다.

콩나물처럼 얇긴 하지만, 분명 녹차 나무다.


“너···!”


고개를 휙 돌려 둥둥을 바라봤다.

놀라기도, 감동하기도 한 표정에 둥둥이 흠칫 놀라더니 뒤로 물러났다.


“이런 재주가 있었어?!”


* * *


흙 정령은 예로부터 생명과 치유의 상징이었다.

이는 공식 홈페이지에도 적혀있는 사실이다.


둥둥의 능력을 조사하며 내린 결론은 ‘식물을 키워내는 능력’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놈의 능력은 ‘치유와 재생’이었다.


문득 과학 시간에 배운 아메바 분열이 떠올랐다.

아메바를 반으로 자르면 2마리가 되듯, 둥둥 역시 녹차에서 떼어낸 이파리를 치유해 새로운 생명으로 키워내는 것이다.


원리는 모르고, 궁금하지도 않다.

어차피 판타지일 테니까.


그 뒤로도 몇 번의 실험이 있었다.


사과 껍질을 사과나무로 키워내는 건 성공했고, 생선 대가리를 살아있는 생선으로 바꾸는 건 실패했다.


아직은 재생의 범주가 작은 모양이었지만, 사실 그런 건 크게 상관없다.


가장 중요한 점은 따로 있었으니까.


‘생명의 창조’


연금술 가방은 게임과 현실을 이어주는 통로다.

거기서 가져온 것들을 새로운 생명으로 창조한다면?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만약 고블린의 손가락에 둥둥의 능력을 쓰면···.


“판타지 대한민국 오픈이겠네.”


그런 미친 짓을 하지 않는다는 건 어디까지나 내 경우였고, 아직 둥둥의 능력도 거기까지 닿지는 않을 테지만···, 혹시 모르니까 미리 경고는 해둬야겠다.


그리고 다음 문제가 아이디 정지.


뜬금없이 웬 아이디 정지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녹차 이파리는 어디까지나 ‘버그 아이템’이었다.


개발자가 의도하지 않은 아이템을 그대로 둔다?


이건 이것대로 말이 안 됐다.

아마 들키면 아이디가 정지당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참이나 모니터를 노려봤다.

머리나 좀 비우려고 시작한 산책이었는데 머리에 폭탄이 터진 느낌이다.


한숨을 푹 내쉬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강하윤과 눈이 딱 마주쳤다.


“흐익!”

“이게 그렇게 재밌어요?”

“노···, 노, 노크도 안 해요?!”

“뭔 소리예요. 아까부터 계속했는데.”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하윤은 여전히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 큰 어른인데 게임 좀 하면 어때요. 술 먹고 사고 치는 것보다는 낫지.”

“···민망하잖아요. 저쪽으로 가서 얘기하시죠.”

“왜요, 더 구경하고 싶은데. 이거 게임 이름이 뭐예요? 설마 이것도 영업비밀이라고 안 가르쳐주려나?”


생각보다 집요하다.

게임은 혐오할 것 같은 이미지였는데, 생각보다 나쁘게 보지는 않는 모양이다.


“아더 월드(Other World)요.”


강하윤이 흥미진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지의 제왕 같은 건가?”

“그것보다는 좀 가벼운 느낌이죠.”

“용도 나오고 그래요? 백현호 씨는 레벨이 몇이에요?”

“50레벨 좀 넘었습니다.”


말하는 걸 보면 게임에 완전히 무지한 듯했다.

놀리려는 건 아니겠지만, 질문들이 너무 순수했던 탓에 괜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강하윤의 눈빛에 불안한 호기심이 맺혔다.


* * *


그날 밤, 미래백화점 사장실.


최기현이 굳은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봤다.

그간 비서 일을 하며 셀 수도 없는 난관을 이겨낸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자신이 없었다.


최기현이 천천히 손을 뻗어 마우스를 잡았다.


딸깍-


“이게 클릭입니다, 사장님.”

“···장난하지 말아요.”

“죄송합니다.”

“근데 왜 클릭했는데 안 들어 가지죠?”


강하윤은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듯했지만, 최기현은 아까부터 단 한 번도 장난이 아니었다.


“···2번 클릭하셔야 합니다.”

“아하.”


딸깍딸깍-


가벼운 클릭 소리와 함께 화면이 밝아졌다.

그리고 백현호의 작업실에서만 떠오르던 화면이 미래백화점 사장실에서 떠올랐다.


【 Other World 】


“오!”


강하윤이 모니터로 들어갈 뜻 머리를 들이댔다.

지켜보던 최기현의 입에서 나직한 한숨이 흘렀다.


화면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던 마우스가 우뚝 멈췄다.


【 캐릭터 생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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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051 - 양심 고백 +4 24.09.08 2,419 95 12쪽
50 050 - 연구소 털기 +8 24.09.06 2,582 93 11쪽
49 049 - 강력한 봉인의 물약 +5 24.09.05 2,693 94 12쪽
48 048 - 수소문 +6 24.09.04 2,876 102 12쪽
47 047 - 파주 옆 동두천 +6 24.09.03 3,124 106 12쪽
46 046 - 녹색 괴물 +8 24.09.02 3,385 114 11쪽
45 045 - D-1 +8 24.09.01 3,671 115 12쪽
» 044 - 아더 월드 +10 24.08.30 3,936 123 12쪽
43 043 - 고급화 전략 +5 24.08.29 4,042 135 12쪽
42 042 - 방송사고? +5 24.08.28 4,223 145 12쪽
41 041 - 평화 +4 24.08.27 4,296 136 12쪽
40 040 - 탈출 +9 24.08.26 4,381 132 13쪽
39 039 - 저거 나 아니야? +6 24.08.24 4,581 146 12쪽
38 038 - 복제의 물약 +6 24.08.23 4,644 149 12쪽
37 037 - 악마 +8 24.08.22 4,898 151 12쪽
36 036 - 소방관 +9 24.08.21 5,223 153 12쪽
35 035 - 몽환의 물약 +9 24.08.20 5,465 156 12쪽
34 034 - 저 여자 진짜 뚱뚱하네 +7 24.08.19 5,697 169 12쪽
33 033 - 유아이 +8 24.08.18 6,026 16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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