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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262_quddus122 3 님의 서재입니다.

한약방의 연금술사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평택안중
작품등록일 :
2024.07.15 15:20
최근연재일 :
2024.09.1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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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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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52 - 새로운 바람

DUMMY

#052



퀭한 눈으로 밤을 새웠다.

멍하니 창가에 앉아있다가 새벽 6시에 TV를 켰다.

채널을 돌리니 마침 뉴스가 시작하는 중이었고, 화면에는 익숙한 로고가 떠올라 있었다.


[ 간밤에 들어온 소식입니다. 파주의 미래 기술 연구소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해당 사건으로 연구원 7명이 희생됐으며···. ]


멍하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시에 손에 쥔 핸드폰이 진동했다.

당연히 강하윤인 줄 알고 번호도 확인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사장님, 지금···.”


[ 백 선생. ]


깜짝 놀라 번호를 확인했다.

강하윤이 아니라 강천호다.


[ 지금 집으로 좀 오지. ]



< 52 >



오전 9시, 강천호의 저택.


몇 번이나 왔던 곳인데 오늘따라 대문이 낯설다.


오는 길에 몇 번이고 뉴스를 확인했지만, 생체실험에 관한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으며 미래 기술 연구소의 화재에 관한 보도만 있을 뿐이었다.


뉴스를 막았다.


그런 짓을 할 사람은 몇 명 없었고, 가장 유력한 후보는 당연히 강대현이었지만···, 그에게 뉴스를 틀어막을 능력이 있던가?


만약 있다고 해도 강하윤이 기자들과 인터뷰했다는 걸 강대현이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

떨리는 손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철컹! 하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렸다.


저택으로 들어가니 강천호가 반갑게 날 맞았다.

웃는 얼굴을 보고 순간 머리가 멈추는 기분이었다.


강천호가 아닌 건가?

꼭두새벽부터 밥이나 먹자고 불렀을 리는 없는데···.


“어서 와, 백 선생.”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들어가지. 안에 하윤이도 있어.”


강천호가 나를 식당으로 안내했다.

식탁에는 강하윤과 강대현, 그리고 어처구니없게도 남춘태 연구소장까지 앉아있었다.


고요한 식사가 이어졌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밥이 목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도 모르겠다.


강하윤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고 강대현과 남춘태는 어딘가 겁에 질린 표정이다.


강천호가 먼저 수저를 내려놨다.

그의 인자한 눈이 나를 향했다.


“쇼핑몰은 잘 돼?”

“···예, 잘 되고 있습니다.”

“다행이야. 자네가 잘 되길 바랐거든.”


순수하게 나를 응원하는 눈동자.

그래서 더 기괴하게 느껴진다.


“요즘 만나는 사람은 있고?”

“없습니다.”

“그래, 그럼 하윤이는 어때? 하윤이 정도면 어디 가도 빠지지 않는···.”

“아버지.”


강하윤이 지그시 눈을 찌푸렸다.


“너도 결혼해야지.”

“제가 알아서 할게요.”

“알아서 못 하니까 하는 말 아니야. 회사 운영에서 손 떼라고 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런 사고를 치고 다녀?”


사고?


강대현이 들어야 할 말을 강하윤이 듣고 있다.

회사를 무너뜨리려고 작정한 놈은 강대현과 그 옆에 앉아있는 남춘태 연구소장이다.


문득 강천호의 핸드폰이 울렸다.


“···어, 그래. 고생했어.”


짧게 통화를 마친 강천호가 날 바라봤다.


“백 선생이 갖고 있던 자료들은 모두 회수조치 했어. 사본은 없을 거라고 믿지.”

“회장님!”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강천호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지금 빈 작업실을 털었다는 건가?

이따위 짓거리를 하려고 나를 서울 집으로 불렀다는 거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백 선생과 오래 봤으면 좋겠어.”

“그러면 이러지 마셨어야죠. 주인도 없는 작업실을 터시고, 이게 뭐 하는 겁니까?”

“대현이 이놈은 내가 잘 알아듣게 혼쭐을 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미래 그룹도 이만한 손해를 봤으니 값을 치른 게 아닌가? 그 연구소가 얼마짜린데···.”


어처구니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이게 묻는다고 묻어질 것 같습니까?”

“당연하지. 나 강천호가 직접 묻을 거니까. 혹시나 영상을 퍼뜨릴 생각이면 관두시게. 나도 자네 인생을 망치고 싶지는 않아.”

“회장님!”

“그러게 적당히 했어야지.”


강천호가 가볍게 혀를 찼다.


“자네가 대현이 이놈과 어떤 악연이든 상관없어. 하윤이 짝으로 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진심이고.”

“그럼 왜···.”

“그래도 미래 그룹은 안 돼.”


완벽한 뒤통수에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그제야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강천호’라는 인물의 진짜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6·25전쟁 구두닦이로 시작해 대한민국의 기둥이라는 ‘미래 그룹’을 키워낸 사업가.


그에게 회사가 보통 의미일 리가 없었다.

사업가이기 이전에 아버지이고, 그 이전에 한 명의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게 실수였다.


강천호는 그 무엇이기 이전에 사업가였다.


“하윤아.”

“말씀하세요.”

“너도 이만 사장 자리 내려놓고 회사 일에서 손 떼라. 이사진 소집해서 강제로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래도 네가 스스로 물러나는 게 그림이 좋지 않겠어?”


강천호가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은 이유가 이거구나.


내게는 미래 그룹을 건들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경고를, 강하윤에게는 이제 회사 일에서 손 떼라는 압박을, 그리고 강대현에게는 회사를 물려줄 테니 이번과 같이 무리한 짓을 벌이지 말라는 위로를···.


“실험자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내 물음에 남춘태가 움찔했다.

강대현이 입 닥치라는 듯 눈빛을 쏘아 보냈지만, 나도 이쯤 되니 이판사판이다.


“거기 수십 명의 약물 투여자가 있었잖습니까.”

“아, 안타깝게도 화재 현장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미친 새끼!”


쾅!


식탁을 치며 벌떡 일어났다.


묻었구나.

잿더미 속에 진실과 증거를 모두 묻은 거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던가?

눈앞에 앉아서 밥숟가락을 들고 있는 놈들이 인간인지 악마인지 분간이 안 될 지경이었다.


강천호가 조용히 남춘태를 바라봤다.

시종일관 담담하던 늙은 눈에 분노가 타올랐다.


“내가 들은 얘기와 다른데. 대현이 네가 병원에서 치료받는 중이라고 하지 않았나?”

“아, 아버지! 제가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치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사람들이 왜 그렇게 변했는지도 모르는 놈들이 치료?

현실에서는 치료방법이 없다는 건 다른 누구보다 남춘태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아무래도 둘의 말이 엇갈린 모양이다.

아니면 내가 여기까지 물어볼 줄 몰랐거나.


“···이건 내가 더 알아보도록 하지.”


강대현의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손에 젓가락이 아니라 칼이 있었으면 찔렀겠네.


강하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일어나죠, 백현호 씨.”


* * *


정신없는 몇 주가 흘렀다.


그간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진실을 알리고자 했지만, 증거도, 자료도 모두 빼앗긴 마당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세상의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았다.

기자들은 21세기에 생체실험이, 그것도 미래 그룹 연구소에서 이뤄지고 있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나를 미친놈 취급하기 일쑤였다.


한 달 동안 강하윤도 연락이 없었다.

정확히는 문자 하나만 딱 남겨 뒀다.


‘쇼핑몰은 계속해요.’


말하지 않아도 계속할 생각이기는 했다.

남춘태가 연구에 사용한 게 회복 물약이긴 했지만, 이미 구매한 수천 명이 구매한 물약을 인제 와서 막는 것도 별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게 지난 한 달간의 이야기였다.

모든 게 바뀐 듯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성실하면서도 무력한 삶···.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찌뿌둥하게 기지개를 켜며 마당으로 나왔다.

간밤에 내린 눈으로 마당에는 소복한 눈이 쌓여있었다.


“하암.”


늘어지게 하품을 하다가 우뚝 멈춰 섰다.

마당에는 익숙한 세단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사장님?”


뒷자리에서 내린 강하윤이 가볍게 미소지었다.


“오랜만이네요.”

“갑자기 어쩐 일이세요? 전화는 받지도 않더니.”

“일이 좀 많았어요. 백화점 정리하면서 인계해야 할 서류가 한두 개가 아니었거든요. 마음 같아서는 콱 망하게 두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잖아요.”


미래백화점을 바닥부터 키워낸 게 강하윤이다.

아무리 지독한 이별이라도 강하윤이 백화점에 굉장한 애정이 있는 건 당연했다.


강하윤이 슬쩍 마당을 둘러봤다.


“여긴 눈이 내렸네요.”

“서울은 안 왔어요?”

“네, 아직.”

“추운데 서 있지 말고 들어와요. 최 비서님도.”

“최 비서는 이제 없어요.”


얼떨떨한 표정으로 세단을 바라봤다.

그럼 저기서 걸어 나오는 사람은 귀신인가?


강하윤이 픽 웃었다.


“회사 관뒀거든요. 나도 이제 사장 아니고.”

“사장님은 그렇다 치는데···, 최 비서님은 왜요?”


강하윤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최기현이 저벅저벅 걸어오더니 손을 쑥 내밀었다.

옛날에는 공손하게 허리를 굽혔었는데···, 나도 그건 부담스러워서 별로였던 참이다.


“오랜만입니다.”

“예, 오랜만이네요. 이젠 뭐라고 불러야 하죠?”

“기현이 형?”


최기현이 빙긋 웃었다.

매번 딱딱한 모습만 봐서 그런지 웃는 모습이 퍽 낯설게 느껴졌지만, 싫지는 않았다.


작업실에 들어와 간단하게 근황을 나눴다.

따뜻한 차를 마시며 오랜만에 수다를 떠니 그날 일이 오래된 옛날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문제였다.

진짜 수다나 떨자고 온 건 아닐 터였으니까.


마시던 차를 가볍게 탁자 위에 올려놨다.


“이제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강하윤이 끄덕이며 마찬가지로 컵을 내려놨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백현호 씨는 쇼핑몰을 어디까지 키울 생각이에요?”


쉬우면서도 쉽지 않은 질문이었다.

당연히 키울 수 있는 만큼 키우고 싶긴 했지만,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놓은 건 아니니까.


“능력 닿는 데까지 키워야죠.”

“미래 그룹도 잡아먹을 만큼?”

“···예?”


황당한 표정으로 강하윤을 바라봤다.


“제가 운영하는 건 쇼핑몰이고 미래 그룹은 대기업이잖아요. 새우가 무슨 수로 고래를 잡아먹어요?”

“새우···.”


강하윤이 킥킥대며 웃었다.

백화점 뺏기고 우울증 온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어째 옛날보다 상태가 더 좋아 보인다.


“저 집 나왔어요.”

“독립한 거예요?”

“아니요, 아버지랑 연 끊었어요.”

“가, 강 회장님이랑 연을 끊어요? 왜요?”


강천호가 강하윤에게 한 짓은 물론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강하윤이 가진 게 어디 한두 개던가?

강천호와···, 아니, 미래 그룹과 연을 끊었다는 건 갖고 있던 것들을 포기했다는 뜻이다.


강하윤이 쓰게 웃었다.


“아버지는 제가 알고 있던 아버지가 아니었고···, 미래 그룹도 제가 알고 있던 미래 그룹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기현이 형이랑 같이···.”

“나는 원래 퇴직하려고 했어.”


최기현이 태연히 손을 들었다.


“말 편하게 해도 돼?”

“벌써 편하게 하고 있으신데.”


어째 이 인간도 정상은 아닌 듯하다.


“그럼 진짜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이게 본론이 아니었어요?”

“우리 동업해요. 내가 책임지고 쇼핑몰 키워줄게요.”


어질어질한 기분으로 강하윤과 최기현을 번갈아 봤다.


“키워서 뭘 어쩌게요?”

“그날의 진실을 밝힐 거예요.”

“증거는 강 회장님 손에 전부 넘어갔잖아요. 벌써 폐기했으면 어쩌려고···.”

“아니요,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그걸 가지고 계실 거예요. 강대현이 권력을 손에 쥐면 아버지까지 휘두르려고 할 테니까요. 목줄처럼 쓰는 거죠.”


하긴, 강대현은 그러고도 남을 놈이지.

강천호가 그걸 모를 리가 없었으며, 제 딸도 매정하게 쳐냈는데 아들이라고 믿을까.


“우리 손에 증거가 없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방법은 찾아봐야죠. 그 날이 사라진 건 아니니까.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


강하윤이 똑바로 나를 바라봤다.


“다만 진실을 밝히려면 힘이 필요해요. 우리 같이 그 힘을 만들어서 진실을 밝혀요.”


작가의말

실수로 일찍 올려버렸네요ㅠㅠ 예약 수정하는 법을 몰라서 그냥 오늘은 일찍 올리는 거로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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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053 - 둥둥의 수집품 +9 24.09.10 2,042 85 12쪽
» 052 - 새로운 바람 +14 24.09.09 2,327 86 12쪽
51 051 - 양심 고백 +4 24.09.08 2,420 95 12쪽
50 050 - 연구소 털기 +8 24.09.06 2,583 93 11쪽
49 049 - 강력한 봉인의 물약 +5 24.09.05 2,694 94 12쪽
48 048 - 수소문 +6 24.09.04 2,877 102 12쪽
47 047 - 파주 옆 동두천 +6 24.09.03 3,124 106 12쪽
46 046 - 녹색 괴물 +8 24.09.02 3,386 114 11쪽
45 045 - D-1 +8 24.09.01 3,671 115 12쪽
44 044 - 아더 월드 +10 24.08.30 3,936 123 12쪽
43 043 - 고급화 전략 +5 24.08.29 4,042 135 12쪽
42 042 - 방송사고? +5 24.08.28 4,223 145 12쪽
41 041 - 평화 +4 24.08.27 4,297 136 12쪽
40 040 - 탈출 +9 24.08.26 4,382 132 13쪽
39 039 - 저거 나 아니야? +6 24.08.24 4,581 146 12쪽
38 038 - 복제의 물약 +6 24.08.23 4,645 149 12쪽
37 037 - 악마 +8 24.08.22 4,899 151 12쪽
36 036 - 소방관 +9 24.08.21 5,223 153 12쪽
35 035 - 몽환의 물약 +9 24.08.20 5,467 156 12쪽
34 034 - 저 여자 진짜 뚱뚱하네 +7 24.08.19 5,699 169 12쪽
33 033 - 유아이 +8 24.08.18 6,027 16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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