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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262_quddus122 3 님의 서재입니다.

한약방의 연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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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안중
작품등록일 :
2024.07.15 15:20
최근연재일 :
2024.09.1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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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8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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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33 - 유아이

DUMMY

#033




쿠싱 증후군.


당질 코르티코이드가 어쩌니, 자극 호르몬(ACTH)이 어쩌니, 하는데 중간까지 듣다가 이해하기를 포기해버렸다.


강하윤이 멍청한 표정으로 있는 나를 바라봤다.


“쉽게 말하면, 호르몬이 과다 분비돼서 살이 찌는 병이에요.”

“아하.”


처음부터 이렇게 말할 것이지.


내가 쿠싱 증후군에 관해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연예계 생활이 걸려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들어보니 일반인에게도 치명적인 증후군이다.

하물며 무대와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직업인 사람한테는 얼마나 치명적으로 다가올까.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겠네요.”

“글쎄요. 생각보다 잘 지낸다는 소문도 있어요.”

“예?”

“애초에 백현호 씨를 찾은 것도 유아이 본인이 아니라 소속사 사장이거든요. 당사자 마음은 당사자만 알지 않겠어요?”

“그렇기는 한데···.”


선뜻 이해하기 힘든 답변이었다.

연예계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이참에 은퇴하려고 각 재고 있는 게 아니고서야···.


아니, 만약 그렇다 해도 건강한 몸으로 은퇴해야지, 이건 사실상 쫓겨나는 꼴이다.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만나볼게요.”



< 33 >



강천호가 분노한 표정으로 이를 갈았다.


“오늘 그 영감탱이한테 또 졌다니까!”

“또요?”

“내가 다 이긴 대국이었어! 병아리 같은 인간들이 옆에서 삐악삐악 자꾸 훈수를 두니까···!”

“회장님도 처음에 훈수 두셨으면서.”

“뭐?!”


호랑이 같이 번뜩이는 눈이 날 향했다.

옛날이라면 무서워서 숟가락을 놓았겠지만, 이제는 정겹기까지 한 느낌이다.


“백 선생은 내 편 들어야지!”

“회장님, 원래 호적수가 있어야 바둑이 더 즐거운 법이잖습니까? 거기 계시는 노인네들 다 평정했다고 생각해보세요. 무슨 재미로 공원에 가요?”


강천호가 지그시 나를 노려봤다.


“···그런가?”

“그렇다니까요.”

“아버지, 바둑 얘기 그만하시고 식사 좀 하세요. 백현호 씨 체하겠어요.”


강하윤이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고작 이런 거로 체하지는 않지만, 나도 대화보다는 식사가 좋아서 얌전히 있었다.


일이 터진 건 식사가 끝나갈 즈음이었다.

과일로 입가심을 하는데 익숙한 낯짝 하나가 식당으로 들어섰다.


강대현이 나를 보더니 눈을 확 찌푸렸다.


“이 새낀 또 왜 여기 있어?”


포크를 놓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긋지긋한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불렀어, 백 선생.”

“아버지, 왜 자꾸 이런 새끼를 끼고도십니까?!”

“강대현.”


강천호의 엄한 눈이 강대현을 향했다.


“백 선생께 정식으로 사과해라.”

“···농담이시죠?”


강대현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나와 강천호를 번갈아 바라봤다.


강하윤 역시 피곤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중간에 끼어있으려니 문득 새삼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한약방에서 포장기나 돌리던 놈이 어쩌다 대한민국 최고 재벌이라는 강씨 집안이랑 엮여서 이러고 있는 걸까.


강대현이 짜증스럽게 소파에 앉았다.


“못합니다!”

“못 해?”

“예, 못하겠습니다! 차라리 저번처럼 때리세요! 몇 대 얻어맞고 말지 이런 놈한테 무슨 사과를···.”

“강대현.”


강천호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러다 사달이 나는 거 아닌가 싶은 순간 강천호의 입에서 충격적인 말이 튀어나왔다.


“사과하기 싫으면 집에서 나가.”

“···예?”

“나는 너 같은 망나니한테 회사 못 넘겨준다. 네가 가진 집, 차, 주식, 싹 다 놓고 나가!”

“아, 아버지!”


강대현이 놀라서 일어났다.

나는 나 대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열심히 눈을 굴려야 했다.


“지···, 진심이세요?!”

“장난처럼 보였던 모양이구나.”


강천호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어, 윤 비서. 가서 강대현이 지분 정리하고···.”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강대현이 내게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사과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역시 돈 앞에서는 장사 없는 모양이다.


강천호가 버럭 언성을 높였다.


“똑바로 다시 해!”

“죄송합니다! 제가 그때 잠깐 정신이 나갔었던 모양입니다! 다시는 그런 일 없게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보기 애처로울 정도로 간절한 사과였다.

강천호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나를 바라봤다.


“백 선생, 나를 봐서라도 한 번만 용서해주는 게 어떤가? 다 내가 잘못 가르친 탓이야. 이놈이 철딱서니는 없어도 천성이 악한 놈은 아니거든.”


제 동생 이겨보겠다고 나를 매장하려 했던 놈이다.

천성이 악하지 않다는 말에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사과를 받지 않을 수도 없었다.


어딘가 강천호답지 않은 방법이다.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 * *


강천호가 멀어지는 차를 바라봤다.

마당으로는 백현호를 태운 세단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아버지.”


강하윤이 조용히 옆에 섰다.


“왜 그러신 거예요? 백현호 씨가 이런 식의 사과를 원하진 않을 것 같은데···.”

“욕심이 나서.”


영 뜬금없는 대답이었다.

강천호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바라봤다.


“백 선생은 이제 내 옆에 있을 명분이 없어. 이렇게 가끔 밥이나 먹으며 지내겠지.”

“그렇겠죠.”

“나는 그게 싫다.”

“네?”


강천호의 눈이 강하윤을 향했다.


“네 오빠는 결혼할 사람이 정해져 있어도···, 하윤이 너는 아니잖아. 좋은 사람 만나서 시집 가야지.”


강하윤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

말 속에 숨은 뜻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그래야죠."


장자승계.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지만, 강천호는 지독하도록 장자승계를 고집하는 인간이었다.


그런 망나니에게 미래 그룹의 척추인 ‘미래 전자’를 맡긴 것만 해도 그랬다.


강대현은 장자로 태어난 순간 이미 미래 그룹을 물려받은 것과 다름없었다.


강하윤이 조용히 기억을 더듬었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지지만, 바로 어제 들었던 대화처럼 기억에 생생했다.


학교가 일찍 끝난, 어느 여름이었다.


‘회장님, 그래도 가족분들께는 말씀하시는 게···.’

‘안 돼.’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대현이 그놈은 쉽게 오만해지는 성격이야. 하윤이랑 경쟁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되면 얼마나 막 나갈지 상상이 되나?’

‘하윤 아가씨께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겁니다.’


첨언에 대한 강천호의 답은 퍽 간단했다.


‘그 아이는 잘 이겨낼 거야.’


자신은 강대현을 위한 엑스트라일 뿐이다.

17살 나이에 그 사실을 알았지만, 강하윤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모른 척했다.


강하윤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억지로 사과시키신 거였어요? 매형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이랑 으르렁거리지 말라고?”


강하윤이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이 참에 회사 운영에도 손 떼라고요?' 하는 말은 끝내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강천호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시대에 저런 사람이 어디 흔해? 키도 훤칠하니 잘생기고, 착하고, 능력도 좋고···.”

“관심 없어요.”

“흘려듣지 말고 잘 생각해봐.”

“아니요, 저 말고.”


강하윤이 무심히 떠나간 세단을 바라봤다.


“저 사람이 저한테 관심 없다고요.”


* * *


며칠 뒤, 작업실.


아침 일찍부터 옷을 차려입고 거울 앞에 섰다.

손님을 만나러 가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가슴이 떨렸다.


“···나도 유아이 팬이었나?”


대한민국에 팬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작업실에서 나온 게 오전 10시쯤이었다.

오랜만에 차를 끌려니 핸들이 퍽 낯설다.


조심조심 운전해서 서울에 도착한 시간이 12시 정도, 유아이가 산다는 오피스텔에 도착한 게 오후 1시쯤이었다.


“와···.”


나도 모르게 입을 떡 벌렸다.


서울살이할 때 전세 사기를 당했던 곳도 오피스텔이다.

그때 전세가 2억짜리였는데 여기는 ‘평당 가격’이 2억짜리 오피스텔이다.


괜히 긴장하며 현관에 호수를 입력했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더니 문이 열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701호 문을 두들기니 문이 달칵 열렸다.


“어···.”


나도 모르게 말문이 막혀버렸다.

절대 당황하지 말자고 몇 번이나 다짐하고 왔는데도, 살이 찐 유아이의 모습을 보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황급히 허리를 굽혔다.


“안녕하십니까. 미래백화점 강하윤 사장님 소개로 온 백현호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저보다 유명하신 분 아닌가?”

“하하···.”

“거기 서 계시지 말고 얼른 들어오세요.”


유아이가 밝게 웃으며 나를 안내했다.


뒤를 따라 걸으며 든 생각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었다.


집도, 유아이의 몸집도.


솔직한 마음으로는 살이 쪄봐야 얼마나 찌겠어 하고 의심했는데, 직접 보니 90kg은 넘어 보인다.


프로필에 나온 유아이의 키가 163cm.

90kg이 넘는 건 고도비만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근데 몸이 많이 호전됐다고 하지 않았나?

전혀 괜찮아진 것 같지는 않은데···.


복잡한 머리로 걷다 보니 어느덧 거실이었다.

거실까지도 힘겹게 걷던 유아이가 큰 숨을 내쉬었다.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

“예, 물 한 잔 부탁드립니다.”

“잠시만요!”


생각보다 엄청 밝네.

TV에서 보던 모습은 어느 정도 만들어진 모습일 줄 알았는데, 말투도 표정도 거의 똑같다.


얼마간 기다리니 유아이가 부엌에서 음료수 두 잔을 가져왔다.


물끄러미 음료수를 바라봤다.

유아이가 의아한 표정을 했다.


“콜라 안 좋아하세요?”

“아니요, 좋아합니다.”


콜라를 받으며 흘끗 부엌을 바라봤다.


“죄송한데 이거 마시고 냉장고 좀 볼 수 있을까요?”

“냉장고는 왜···.”

“소속사 사장님께서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도 확인해달라고 하셔서요. 불편하시면 제가 사장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확인해보세요.”


당연히 거짓말이었지만, 확인해볼 게 있었다.

유아이가 약간 어두워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엌으로 가 곧장 냉장고와 선반, 쓰레기통을 확인했다.

역시나 의심 가는 제품이 한두 개가 아니었고, 혹시나 하던 생각은 역시나 하고 변했다.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냉장고에 정리할 제품들이 꽤 많네요. 소속사에서는 목표 체중을 40kg 정도로 생각하던데 유아이 씨도 동의하십니까?”

“네, 물론이죠! 얼른 다이어트 성공하고 복귀해서···.”

“거짓말.”


유아이가 깜짝 놀라 나를 바라봤다.


“정말 살 빼고 싶은 거 맞아요?”

“다···, 당연하죠!”


또 거짓말이다.

바쁜 사람 불러놓고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네.


“살 뺀다는 사람이 설탕 덩어리 음료를 마시지 않나, 냉장고에 있는 샐러드나 닭가슴살들은 손도 안 대서 다 썩어있고, 쓰레기 통에는 소속사에서 보내준 도시락이 한가득···.”

"그, 그건 이유가 있어요!"

"이것도 이유가 있나요?"


주머니에서 영수증 덩어리를 꺼내 탁자에 올려놨다.

쓰레기통에 도시락과 섞여있던 영수증들이었다.


“새벽마다 치킨 한 마리씩 뜯는 분이 뭘 열심히 하겠다는 거예요? 날짜 보니까 어젯밤에도 시켜 드셨네.”


유아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제까지는 집에 사람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빼는 척’ 하는 걸 들키지 않았던 모양이다.


영수증을 보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유아이 씨한테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이건 너무 민폐잖아요. 소속사는 둘째 치고 저는 무슨 죕니까? 유아이 씨 다이어트 실패했다는 거 소문나면 저는 이 바닥 떠야하는데.”


영수증과 유아이를 번갈아 바라봤다.


"정말 살 빼고 싶은 거 맞아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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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049 - 강력한 봉인의 물약 +5 24.09.05 2,693 94 12쪽
48 048 - 수소문 +6 24.09.04 2,876 102 12쪽
47 047 - 파주 옆 동두천 +6 24.09.03 3,124 106 12쪽
46 046 - 녹색 괴물 +8 24.09.02 3,385 114 11쪽
45 045 - D-1 +8 24.09.01 3,671 115 12쪽
44 044 - 아더 월드 +10 24.08.30 3,935 123 12쪽
43 043 - 고급화 전략 +5 24.08.29 4,042 135 12쪽
42 042 - 방송사고? +5 24.08.28 4,223 14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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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039 - 저거 나 아니야? +6 24.08.24 4,581 146 12쪽
38 038 - 복제의 물약 +6 24.08.23 4,644 14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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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036 - 소방관 +9 24.08.21 5,223 153 12쪽
35 035 - 몽환의 물약 +9 24.08.20 5,465 156 12쪽
34 034 - 저 여자 진짜 뚱뚱하네 +7 24.08.19 5,697 169 12쪽
» 033 - 유아이 +8 24.08.18 6,026 16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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