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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1262_quddus122 3 님의 서재입니다.

한약방의 연금술사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평택안중
작품등록일 :
2024.07.15 15:20
최근연재일 :
2024.09.1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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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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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051 - 양심 고백

DUMMY

#051




빠르게 복도를 걷는데 보안요원이 나를 붙잡았다.


“야! 너 어디가?!”

“소장님이 이것 좀 전해주고 오라고 하셔서···.”

“그게 뭔데?”

“연구자료입니다.”


보안요원이 저벅저벅 다가왔다.

남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입안의 침이 바짝바짝 말랐다.


보안요원이 품에 안고 있는 박스를 바라봤다.


“이런 상황에도 심부름을 시켜? 그 양반은 지금 연구소 발칵 뒤집힌 거 모른대?”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쯧, 누구한테 갖다 주래?”

“강대현 사장님께 전달하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질문이 이렇게 많아?

이만 가도 되냐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보안요원이 휙 고갯짓했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지나치려는데 놈의 우악스러운 손이 또다시 나를 잡아 세웠다.


“잠깐만.”


설마 들킨 건가?

보안요원이 돌연 품에서 만 원짜리 하나를 꺼내더니 내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올 때 담배 좀 사와.”



< 51 >



차가 유유히 연구소를 빠져나왔다.


내가 갖고 나온 건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을 비인륜적 실험의 증거들과 담뱃값으로 받은 만 원짜리 한 장이었다.


연구소를 벗어나서도 한참이나 더 달렸다.

차가 멈춘 곳은 연구소에 잠입하기 전 미리 점 찍어 두었던 야산이었다.


조용히 차에서 내리자 변해있던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이로써 연구소에 잡힌 03번도, 자료를 갖고 나온 보안요원도 없어졌으니 완전범죄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기분 참 묘하네.”


이걸 진짜 성공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만약을 대비한 보험도 들어둔 참이다.

근처에 숨겨둔 핸드폰을 찾아 곧장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 백현호 씨! 내일 아침까지 연락 안 되면 경찰 보내라는 게 무슨 뜻이에요? ]


강하윤의 목소리가 꽤 다급하다.


“만나서 다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지금 저 좀 데리러 오실 수 있으세요? 중요하게 드릴 말씀이 있는데.”


[ 파주 근처에서 대기하라면서요. 가만 보면 나를 아주 비서처럼 부려먹는다니까···. ]


“죄송합니다! 그럼 주소 찍어드릴게요!”


강하윤에게 주소를 찍어준 뒤 산에서 내려갔다.

산 입구에서 얼마간 기다리니 세단 한 대가 다가왔다.

운전석에는 최기현이 타고 있었고, 뒷자리 창문이 열리더니 강하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백현호 씨.”

“빨리 오셨네요.”

“바로 옆이었거든요.”

“감사합니다. 우선 가면서 얘기하시죠.”


뒷자리에 타자 강하윤이 슬쩍 나를 노려봤다.


“그건 뭐예요?”

“여기서 바로 말하기에는 좀···.”

“불편하면 자리 비켜드리겠습니다.”


최기현이 조용히 일어날 준비를 했다.

강하윤이 앉아있으라는 듯 의자를 톡톡 두들겼다.


“최 비서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이런 말 하기는 뭣하지만···, 제가 아버지보다 더 믿는 사람이거든요.”

“예, 알겠습니다.”


연구소에서 갖고 나온 박스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카메라에 넣고 쓰는 SD카드 몇 개와 두툼한 서류뭉치들이 들어있었다.


“이게 뭔데요?”

“말하기 전에 하나만 묻겠습니다.”

“사장님은 오빠에 관해···, 그러니까 강대현 사장에 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그냥 망나니 같은 새끼라는 것만 알죠.”


예전부터 느낀 건데 강하윤은 제 오빠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어 보였다.


“미래 기술 연구소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네?”

“요 앞에 있는 곳이요. 아시죠?”

“당연히 알죠. 이걸 거기서 빼 왔다고요?”


강하윤이 드물게 당황한 표정을 했다.


“백현호 씨가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일을 벌이지는 않았겠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이건 제 선에서 막기 힘든 일이에요. 연구소를 대체 어떻게···, 아니, 대체 왜···.”

“거기서 생체실험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강하윤이 멍하니 나를 바라봤다.

출발하려고 준비하던 최기현조차 액셀 밟는 것을 잊고 나를 바라봤다.


“바, 방금 뭐라고···.”


약물을 투여한 사람은 모두 고블린이 되었다.

당연히 이렇게 말 할 수는 없지만···.


“약물을 투여한 사람은 모두 미쳐버렸습니다.”


강하윤이 무슨 말을 하려다가 다시 입을 닫았다.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는 위태롭도록 혼란스러웠다.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는 곧장 언론에 터뜨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미래 그룹이 단숨에 무너질 수도 있는 사안인 만큼 사장님께는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그 상자 안에 있는 게 증거들인가요?”

“예, 실험 영상과 보고서들입니다.”

“사장님.”


최기현이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신중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만약 백현호 씨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세상 밖으로 나가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놀라서 최기현을 바라봤다.

나름대로 믿는 사람이었는데 묻자는 말을 저렇게 당당하게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강하윤이 정색하고 최기현을 노려봤다.


“헛소리하지 말아요. 이걸 묻자고?”

“사장님과 백현호 씨를 위해섭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최기현이 답답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두 분은 회장님을 너무 모르십니다. 이번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 회장님이 두 분을 가만히 둘 것 같습니까?”

“아버지는 그럴 분이 아니세요.”

“아니요, 그럴 분이십니다! 미래 그룹을 위해서면 그러고도 남을 분이시라고요!”


강천호가 그런 인물이라고?

직접 보았기 때문에 더욱 믿기 힘든 말이었다.


강하윤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선 출발해요.”


* * *


늦은 새벽, 작업실.


화면 속 연구원이 카메라로 다가왔다.


[ 이것으로 32번째 투약 실험을 종료합니다. ]


화면이 틱- 하고 꺼졌다.

공포영화보다 더 공포 같은 현실에 강하윤은 물론 최기현과 나까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걸로 영상은 모두 확인했다.

남은 건 사람들이 어떻게 변해갔는지 세세하게 기록한 연구 일지뿐이었다.


강하윤이 창백해진 얼굴로 이마를 짚었다.


“이···, 이게 대체···.”

“사장님, 역시 이건 세상에 나오면 안 됩니다.”


최기현이 담담하게 날 바라봤다.


“사장님을 위해서···, 아니, 백현호 씨 자신을 위해서라도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시죠.”


쉽게 대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미래 그룹이 끝장난다는 건 비단 강천호의 몰락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미래 그룹이 무너지면 당연히 미래백화점도 끝일 터였고, 그렇게 되면 내가 만든 상품도, 쇼핑몰도 끝이다.


거대한 진실과 개인의 안위···.

이 사이의 저울은 놀랍도록 수평을 이루고 있었다.


작업실에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조용히 생각에 잠겨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잠깐만.

근데 그 남자는 어디 갔지?


“잠깐 나갔다 올게요.”

“어디 가게요?”

“탈출한 피해자를 작업실로 데려왔었거든요. 어머니 뵈러 가야 한다던데 그냥 갔나···.”


소파에서 일어나 작업실을 여기저기 뒤졌지만, 창고에도 마당에도 사내는 없었다.


진짜 그냥 가버린 건가?

여기서 버스 정류장까지도 거리가 꽤 될 텐데···.

딱히 인사를 나눌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휙 사라져버릴 줄은 몰랐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 걱정이 되기도 했고.


뒷마당을 마지막으로 돌아가려던 걸음이 우뚝 멈췄다.

숲속 나무에 무언가 매달려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풀썩-


“어···, 어어···?”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마침 뒤따라 나온 강하윤이 놀라서 입을 틀어막았다.


나무에는 목을 매달고 죽은 사내가 있었다.


그 뒤로는 뭐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정신없이 경찰과 구급차를 부르고 늦은 새벽 작업실 마당으로 차와 사람이 들이닥쳤다.


창백한 얼굴로 앉아있는 내게 다가온 건 경찰이었다.


“백현호 씨, 잠깐 얘기 좀 하시죠.”

“저랑 하세요.”


강하윤이 경찰에게 눈짓했다.

경찰이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백현호 씨와 할 이야기입니다.”

“···말씀하세요.”

“혹시 고영준 씨의 범행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멍청히 경찰을 바라봤다.

방금 목을 매달아 죽은, 생체실험 피해자한테 범행이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의문이다.


“무슨 소립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같이 계신 겁니까?”

“우연히 만나서 도와드린 겁니다. 저는 저분 이름이 고영준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우연히 만나셨다고요?”


경찰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고영준 씨는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도주 중이었습니다. 정말 모르셨습니까?”


터질 것도 없는 황무지에 핵폭탄이 터졌다.

고장 난 표정으로 경찰관의 얼굴을 바라봤다.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농기구로 잔인하게 모친을 살해한 후 인근 야산으로 도주 중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충청남도까지 와서 목숨을 끊는다는 게···.”


농기구.


다른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 분명 낫을 들고 있었다.

그때 고영준은 인간이 아니라 고블린인 상태였다.


이제야 모든 게 맞춰지는 기분이다.


사람으로 돌아오자마자 통곡하던 이유.

내게 진실을 말해주면서도 상황이 나아지길 기대하지는 않는, 그저 짐을 덜려는 듯한 눈빛.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어머니를 뵈러 가야 하거든요.’

‘어머니가 어디 계시는데요? 아니, 옷 입으시죠. 지금 제가 모셔드리겠습니다.’

‘멀리 계십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서 그런···."


다음 날 오후까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다.

자칫 공범으로 몰릴 수도 있었지만, 그가 범행을 저지른 시간에 강하윤과 같이 별장에 있었다는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나머지 자잘한 부분들은 미래백화점 법무팀에서 맡았다.


강하윤과 나란히 걸어 경찰서를 나왔다.

앞에서는 최기현이 차를 대고 기다리고 있었다.


“타요, 데려다줄게요.”

“···기자들 만나러 갈 겁니다.”


문을 열던 강하윤의 손이 우뚝 멈췄다.


“백현호 씨.”

“사람이 둘이나 죽었습니다. 사장님께는 죄송하지만, 저는 이걸 세상에 알려야겠습니다.”


강하윤이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무거운 입이 떨어진 건 한참 뒤였다.


“제가 직접 제보할게요.”

“···예?”

“타요.”


강하윤이 먼저 뒷자리에 올랐다.

고민하다가 결국 나도 따라 차에 올랐다.


서울로 올라가며 나와 강하윤은 말을 나누지 않았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올 즈음 강하윤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진실을 영원히 숨길 수는 없어요. 고영준 씨가 연구소를 탈출한 것만 봐도 그렇죠. 백현호 씨가 아니었어도 어떻게든 밝혀졌을 거예요.”

“···그렇겠죠.”


연구소에 있던 인원만 100명이 넘는다.

이번 탈출 사태로 이상함을 느낀 게 한두 명이 아니었을 테고, 21세기의 생체실험은언제고 수면 밖으로 드러났을 터였다.


그렇다면 일이 왜 이지경까지 됐는가?


추측컨대 한참 전에 끝나야할 실험이 모종의 이유로 실패했고, 폭탄을 안고 시간이 흐르다가 결국 터져버린 듯했다.


연구가 실패한 이유도 궁금하긴 했지만, 당장 따질 문제는 아니었다.


강하윤이 묵묵히 창밖을 내다봤다.

크고 날카로운 눈에는 그림자가 내려앉아 있었다.


“이번 일이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면 미래 그룹은 정말 끝이에요. 그럴 바에야 제가 먼저 양심 고백을 하는 게 낫죠.”


에어백 같은 건가?


미래 그룹의 오너 가문이 직접 나서서 죄를 자백하고, 관련자인 강대현을 쳐낸다.


이런다고 국민의 분노를 피할 수는 없겠지만, 미래 그룹이 공중분해되는 건 막을 수 있을 터였다.


영리하면서도 최선의 대처인 건 분명했다.


조용히 달린 차가 서울의 한 카페에 도착했다.

카페 안에는 강하윤이 부른 기자가 몇 명 있었다.


꽤 오랜 인터뷰가 이어졌다.


연구소에서 챙겨 온 자료들, 내가 직접 눈으로 본 것들, 거기에 잔인하게 살해당한 노모와 그를 죽인 아들의 이야기까지 이어지자 기자들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


“대한민국에서 이게 무슨···.”

“사장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강하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살려고 이러는 거예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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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052 - 새로운 바람 +14 24.09.09 2,326 86 12쪽
» 051 - 양심 고백 +4 24.09.08 2,419 95 12쪽
50 050 - 연구소 털기 +8 24.09.06 2,582 93 11쪽
49 049 - 강력한 봉인의 물약 +5 24.09.05 2,693 94 12쪽
48 048 - 수소문 +6 24.09.04 2,876 102 12쪽
47 047 - 파주 옆 동두천 +6 24.09.03 3,124 106 12쪽
46 046 - 녹색 괴물 +8 24.09.02 3,385 114 11쪽
45 045 - D-1 +8 24.09.01 3,671 115 12쪽
44 044 - 아더 월드 +10 24.08.30 3,935 123 12쪽
43 043 - 고급화 전략 +5 24.08.29 4,042 135 12쪽
42 042 - 방송사고? +5 24.08.28 4,223 14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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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035 - 몽환의 물약 +9 24.08.20 5,465 15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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